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6)
466화 [어림없다!]
8클래스급 마법을 쓴 직후임에도 황제는 다시금 폭발적인 마력을 쏟아 냈다.
마치 몸속 어딘가에 마력이 솟구치는 샘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마력이 순식간에 8겹의 푸른 방패가 되어 황제의 앞을 가로막았다.
– 앱솔루트 실드. 절대로 뚫을 수 없다.
외부로 표현되지 않은 황제의 내심이, 한층 높은 경지에 올라선 로건에게 고스란히 읽혔다.
하지만 인과를 무시하고 결과를 만들어 내는 힘은 ‘한낱’ 8클래스의 마법이 막아 낼 수 있는 권능이 아니었다.
번쩍.
허공에 그어진 황금빛 선.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이어지는 황금빛 선이 전장에 있는 모든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전장의 광기를 압도하는 강렬한 파동과 존재감.
순간적으로 전장의 모든 것이 멈춰 버린 듯한 착각이 드는 가운데.
쩌저저저저적.
금빛 선을 중심으로 하늘과 땅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착시 현상과 함께 강렬한 빛의 폭발이 다시금 전장을 휩쓸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전장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충격파의 폭풍은 한참이나 계속되었다.
바로 옆 사람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 지독한 폭풍이 잦아드는 순간.
[황제가 도망쳤다!]맥라인의 군주가 그 격돌의 결과를 알렸다.
“우와아아아아!”
맥라인군이 지르는 기쁨의 함성과.
“어, 어찌, 황제 폐하께서…….”
“후퇴! 후퇴하라!”
절망한 제국 기사들이 황급히 퇴각하는 소리가 루스펠하임의 전역에 울려 퍼졌다.
[도망치는 적군을 요격하라! 성 밖으로의 추격은 금한다!]“이거나 먹고 꺼져라, 제국 놈들!”
“엉덩이에 화살을 박아 주마!”
파바바박.
꽈아아앙!
그야말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맥라인군과 믿었던 군주의 도주로 좌절한 제국군의 표정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그 중심에 선 로건은 잔뜩 굳어진 얼굴로 황제가 존재했던 공간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신검 비전의 비기들은 하나같이 제 경지보다 한 단계 높은 힘을 다루는 수법들이다. 달리 말하면 신검 비전의 9식 광령참, 인과를 비틀어 결과를 만들어 내는 힘은 9클래스급의 권능이라는 것이다.
즉, 상대 역시 9클래스급의 힘을 갖추지 못했다면 저항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분명히 힘이 다해 8클래스급의 마법만 쓰던 황제가 그 힘을 뿌리치고 공간째로 사라졌다.
오직 그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 하나만을 희생한 채로.
그 과정과 원리가, 점차 신인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는 게 체감되는 지금의 자신에게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제국군은 사실상 끝났다. 하지만…….
‘황제가 살아 있으면 크나큰 후환이 될 거야. 내가 아니면 막을 수 없어.’
황제를 죽이지 못하면 재앙이 벌어질 게 분명하다. 초전에 보여 줬던 9클래스급 마법, 그런 마법이라면 도시 하나를 날리는 것쯤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그가 전쟁의 승리를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달랐다.
“우리가, 우리가 해냈어요, 로건!”
전신에 그을린 상처가 가득한 에일렌이 멍하니 서 있던 로건을 끌어안았다.
그녀 역시 생명을 걸었다.
만약 황제를 단번에 물리치지 못했더라면, 시간이 조금만 더 지체되었더라면 그녀는 한 줌의 재가 됐을 것이다.
‘그래. 그랬는데…….’
자신의 반려가 목숨을 걸어 만들어 준 기회를 온전히 살리지 못했다.
로건의 주먹이 부르르 떨리는데, 에일렌이 그 손을 억지로 펴며 깍지를 걸어 왔다.
“괜찮아요. 우리가 이겼어요. 황제는 무너지는 제국을 건사하는 것만으로도 힘들 거예요.”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듯한 그 말에야 로건도 굳은 표정을 풀 수 있었다.
‘그래. 그렇겠지.’
복수보다는 남은 것을 지켜야 할 테니까.
서방에서 패퇴했다는 서부 10국도 이 소식을 듣는다면 남은 병력이나마 동원해 다시 진군을 시작할 테고, 맥라인 역시 루스펠하임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국의 선전 포고도 있고.’
황제는 제국의 멸망을 원하는 게 아니고서야 동부와 중부, 그리고 서부까지 전부 신경 써야 할 것이다. 자신에 대한 원한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게다가 황제는 마지막 공세에서 막대한 대가를 치른 것이 분명했다.
특성을 써서 영혼이 승격됐을 때, 억지로 크기를 불린 황제의 영혼을 지탱하는 것 중 하나가 그가 들고 있던 지팡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확실하게 박살을 냈다.
‘어쩌면 이제 9클래스급 마법은 더 이상 못…… 아니,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하지는 말자.’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가슴속에 자리한 불안감이 확연하게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킁.”
어느새 다가온 티르 녀석도 수고했다는 듯 가운데 머리의 콧잔등으로 자신의 등을 툭 밀었다.
집채만 한 덩치로 변한 녀석의 퉁명스러운 애교에 순간 비틀거리면서도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래, 너도 수고 많…….”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다시 스르륵 작아진 녀석이 폴짝 뛰어올라 에일렌의 품에 안겼다.
녀석은 순간 자신을 째려보더니.
“끼잉.”
어느새 안타깝다는 듯한 눈망울을 한 채, 옅은 화상을 입은 에일렌의 볼을 할짝거렸다.
“가, 간지러워, 티르.”
그 모습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외팔이 노인이 비틀거리며 다가와서는 밭은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 냈다.
“후우. 이제야 속이 시원하군요.”
노인은 피가 흥건한 입가를 닦으며 씩 웃었다.
“카셀 마탑 놈들은 없었지만, 이걸로 은혜를 갚은 셈 쳐도 되겠습니까?”
그 얼굴을 보며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입니다. 하…… 흠, 흠. 헤이먼 경. 감사합니다.”
이렇게 세 사람, 아니 두 사람과 한 신수만 보아도 새삼 운이 좋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이 모두 여기 있을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수많은 인연이 얽히고설켜 이 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그 덕분에, 회귀한 직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위업을 이루었다.
이 상황에 걱정만 하고 있는 건 분명 지나치게 비관적인 태도였다.
로건은 꽁지가 빠지게 도망가고 있는 제국군을 보며 한순간에 근심을 털어 낸 채 검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고 남은 힘을 모두 끌어모아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가 승리했다! 제국을 물리쳤다!!!!!”
영파로 외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육성으로 소리치는 것도 그 나름의 효과가 있었다.
현실감이 넘치게 전달이 된다는 효과가.
“우리가 이겼다!”
“맥라인 만세!”
“로건 폐하 만세!”
루스펠하임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성부터.
“우와아아아아아!”
“폐하!”
“우리가 이겼어요!”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동생과 스승,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모습까지.
절로 마음이 든든해지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미래에 대한 걱정이 아예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 지금은…….’
승리를 만끽할 때다.
로건은 그렇게 생각하며 달려오는 이들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뭔가 잊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마음 한구석, 약간의 찜찜함이 있긴 했지만.
– 맥라인 만세!
– 우리 폐하 만세다!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오는 상황은 그 작은 찜찜함 정도는 쉬이 잊게 할 만큼 벅찬 감동을 전해 주었다.
그 시각, 루스펠하임의 지하 내성 광장.
“다 됐어요! 다 됐다고요! ……폐하!? 폐하!!”
간신히 대마법진의 변형을 마친 빅토리아는 울상을 짓고 있었다.
“부, 분명 그냥 생각만 해도 명령을 전달해 주신댔는데?”
혼잣말까지 중얼거려 봤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폐하! 명대로 대마법진 변형 준비를 끝냈습니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 보아도.
다아아아아.
자신의 목소리만 메아리쳐 돌아올 뿐이었다.
‘어쩔 수 없어. 그냥 가동한다.’
전시 상황이다. 일일이 허락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우우웅.
빅토리아는 입술을 깨물며 마력을 끌어 올렸다.
이내 ‘8클래스급 초인’만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억제를 가하도록 변형된 대마법진이 가동되었다.
우우우우웅.
눈이 시리도록 선명한 푸른 빛이 사방에 퍼지는 순간.
“돼, 됐어.”
빅토리아는 식은땀을 닦아 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이제 마력도 바닥났으니 당장은 전장에 복귀한다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폐하, 제발 이기세요.”
신을 향한 기도뿐.
그리고 그 행위로 인해 성벽 위에서 동료들을 안아 주던 로건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쓰러져 난리가 났다는 것을, 그녀는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 * *
– 맥라인이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또다시 전해진 맥라인의 승전 소식에 세상은 다시금 소란스러워졌다.
이제 와 맥라인의 승리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여론은 제국과 맥라인이 이길 확률을 반반으로 점치고 있었으니까.
다만.
제국군이 단기 접전에서 충격적일 만큼 큰 손해를 보았고, 그 과정에는 갑자기 쏟아진 푸른 유성이 가장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대륙의 신민들에게 굉장한 오해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신벌이야. 성웅을 적대해서 내린 신벌이라고!”
“역시 우리 폐하는 신이 내린 영웅이 확실해!”
“맥라인 만세!”
“우하하하하!”
맥라인 왕국은 그야말로 환호성 일색이었고.
“신벌이 한 번 내렸으면 됐지, 왜 또 전쟁을 일으킨 거래?”
“멍청한 제국 놈들.”
“그래도 정말 그런 영웅이 있구나. 난 신전에서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어.”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리를!”
“뭐 어때? 내가 틀린 말 했어? 최근에 신전이 하는 꼴을 봐…….”
“좀 그렇긴…….”
제국과 상관이 없는 이들조차 그저 감탄하기 바빴다.
그 신벌이라는 것이 황제 본인이 만들어 낸 재앙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생긴 오해였지만, 제국 황실로서는 차마 그것을 공표할 수도 없었기에 그 오해는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덕분에 제국민들 역시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우리 제국은 어찌 되는 거야?”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런…….”
“말세야. 말세가 온 거야.”
“엄마…….”
제국의 패배를, 그것도 신벌로 인한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제국민들은 그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황제가! 황제가 재앙을 끌어들였다!”
“내 아들을 살려 내라, 이놈들아!”
“왜 그런 짓을 한 것이냐! 저주받을 놈들 같으니라고!”
수십만의 병사가 사망한 전후 상황, 그 유가족들의 울음소리가 제국 전역에서 터져 나왔다.
원래의 제국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전쟁으로 병력 대다수를 잃은 황실은 그것을 통제할 능력이 없었다.
물론.
“황제 폐하는?”
“폐하께서 나서셔야지!”
그런 상황에서조차 황실을 믿는 이들도 있었다.
대마도사라 알려진 황제의 능력이라면 이 위난을, 이 피해를 어느 정도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비롯된 신뢰였다.
하지만 루스펠하임에서 도망쳤다는 황제가 며칠째 어디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자 혼란은 점차 커지기만 했다.
– 폐하께서는 요양 중이시다. 제국민은 흔들리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라. 제국은 건재하다!
삭풍의 마도사 갈렌 디카이드와 철안의 재상 록터스 구스펠트가 그리 공표했지만,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민심은 걷잡을 수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가신 거 아냐?”
“끔찍한 소리 하지 마!”
“그래도…….”
황제와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한 아세리안의 주민들마저도 그런 말을 할 정도로 민심이 요동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더욱 부추긴 것은 연이어 이어진 선전 포고들이었다.
– 우리 서방 10국은 제국의 횡포를 잊지 않았다. 그 죗값을 받아 내겠다.
제국을 침략했다가 패퇴한 서방의 패잔병들이 다시금 힘을 모아 진격을 선언했고.
– 대륙 동부는 이제부터 맥라인의 영토다. 구(舊) 제국령의 펜나를 기준으로 직선을 그어, 그 동쪽을 맥라인령으로 선포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맥라인의 일방적인 영역 선포가 이어졌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 카셀 마탑에 동조하여 극악무도한 수법을 사용한 제국 황실에 책임을 묻겠다.
성도, 노비엔스에 모이는 성국의 총력까지.
무엇 하나 제국이라는 이름으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저, 정말 어찌 되는 거야?”
“이대로 제국이 망한다고?”
“설마…….”
서부의 위협과 동쪽의 승전국, 그리고 사실상 제국 안에서 제국을 공격하는 신전의 병력까지.
제국이라는 이름을 단 이래, 아레스의 시민들은 처음으로 조국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통감하며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