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69)
469화 ‘정말 그가 온 걸까?’
의아하기는 루이사도 마찬가지였다.
로니안은 제국과 전쟁 중인 맥라인의 초인 중 한 사람으로, 절대 전장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전력이었다.
한데 그가 나라의 전쟁도 마다하고 자신을 구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면…….
두근.
‘……그럴 리가 없잖아!’
나도 슬슬 미쳐 가는구나.
상기된 뺨을 가볍게 두드리며 헛된 생각을 날려 보지만, 동굴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폭음이 가까워질수록 기대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괜스레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 같아, 루이사는 옆에 있던 반 조니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녀에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반 조니는 이를 뿌득 갈 뿐이었다.
“이렇게 빠르다고?”
그의 안색이 굳어질수록 루이사의 마음속 기대감은 오히려 부풀어 올랐다.
“전부 전투 준비!”
얼굴을 기괴하게 일그러트리며 외치던 반 조니는 갑자기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빛내더니, 느닷없이 고개를 숙였다.
“장로님, 초인급 적이 섞여 있습니다. 그간 제가 무례하게 군 일이 있었다면 잊어 주시고, 적들을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도록 힘을 빌려주십시오.”
생각지도 못한 상황.
마음 같아서는 숙인 목을 그대로 후려치고 싶었지만, 놈과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게다가 놈이 거느린 흑색 마검사단 200여 명 중 100여 명이 이 선발대에 같이 있다. 그녀에게, 그들의 무력을 전부 감당할 힘은 없었다.
일단은 협력하는 척할 수밖에…….
“물론.”
거짓말이 마법사에게 치명적인 독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루이사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순간, 가슴속에 자리한 6번째 서클이 흐려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 한마디로 날아간 적공이 못해도 한 달 치 수련량은 되겠지만, 그만한 손해를 감수한 보람은 있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고개를 숙였던 반 조니의 얼굴이 대답과는 달리 오히려 불퉁해지는 것이 보였으니까.
‘이 새끼가…….’
아마도 노린 것일 터였다.
거짓이 독임을 아는 마법사는 거짓을 말하지 못하고, 혹여나 말한다 해도 티가 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다만 그가 놓친 게 있다면, 자신의 특수성이었다.
‘이놈,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군.’
왕부의 공주로서, 또 카셀 마탑의 마도사로서.
이중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게 어디 한두 번일까.
– 네가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진득이 수련했다면, 어쩌면 성년이 되기 전에 마도사가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아깝다, 아까워. 흘흘.
이제는 원수가 되어 버린 탑주가 그리 말했을 정도였다.
물론 마도사가 된 이후에는 패널티가 더 커진 탓에, 가능한 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실제로 마도사가 된 이후 대놓고 거짓말을 해 본 것은 로건 왕을 처음 만났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평생을 해 온 연기 실력이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았다.
“뒤는 맡겨 둬.”
진심이라곤 티끌만큼도 없는 한마디에 다시 한번 흐려지는 서클.
하지만 루이사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고, 그런 그녀를 본 반 조니의 얼굴은 더욱 찌푸려졌다.
“……아쉽군요.”
이제 속셈을 숨기지도 않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뭐?”
“아니, 아닙니다. 아무튼 최대한 빨리 적을 처리하도록 하지요. ……그런데, 이 시점에 이곳에 올 수 있는 초인이라면 설마…….”
반 조니가 무언가 생각에 잠겨 연신 고개를 젓는데, 루이사는 그런 놈의 뒤통수를 보며 살벌하게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대로 지금 오는 이들이 맥라인의 정예들이라면, 네놈은 내 손에 죽는다.’
그에 대한 선명한 적의는 악행을 일삼는 놈을 처단하겠다는 등의 거창한 정의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자의든 타의든, 자신 역시 인간을 제물로 바쳐 마법을 썼던 몸이다. 그런 제게, 반 조니의 악행을 욕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놈은 외모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게 유독 잔혹한 면모를 보이곤 했다. 자신을 볼 때도 넘실거리는 살기를 주체 못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소름 끼치는 느낌을 기억하는 한, 놈과의 공존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식의 장소를 알아낼 필요가 없었다면, 아버지와 둘만 있던 안가에 홀로 찾아왔을 때 이미 죽여 버렸을 것이다.
그렇게 루이사가 속으로 칼을 가는데, 고민을 마친 반 조니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어떤 적이 올지는 모르지만, 그들을 저기 제단 위로 보내서는 안 됩니다. 신체 후보, 바로스 황자를 재워 놓은 저 수정관은 결코 건드리지 못하게 막아 주십시오.”
그래. 내가 저 수정관은 반드시 박살 내 줄게.
루이사의 눈을 더욱 빛나게 만든 말을 끝으로, 반 조니는 흑색 마검사들을 동굴 입구를 철저히 가로막는 형태로 배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제라드가 포함된 후발대가 상당히 지친 듯한 몰골로 쫓기듯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대장! 신전, 신전 놈들입니다!”
“빌어먹을! 그래, 이 시점에 움직일 만한 놈들은 그놈들밖에 없지.”
반 조니야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루이사는 뜻밖의 전개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신전이라니? 왜?’
맥라인이 아닌 것은 둘째 치고, 성국이라면 자신은 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기껏 반 조니의 뒤통수를 때려 봤자, 카셀 마탑의 마도사 신분으로 성국에 잡히면 죽느니만 못한 꼴을 당할 수도 있다.
그녀의 마음속에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는데.
[루이사.]귓가에 아버지의 메시지 마법이 날아들었다.
“적, 적이다! 헉, 헉.”
마도사가 되지 못한 마법사는 아무리 5서클이라 한들 체력은 일반 남자와 비슷한지라, 주저앉아 가쁜 숨을 토하는 제라드의 모습은 그리 이상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루이사의 귓가에 들리는 음성은 그 모습과는 달리 차분하기만 했다.
[아무래도 신전 기사들이 네 표식을 따라온 것 같다. 최초의 폭음이 들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후발대를 따라잡았어.]그 말에 루이사는 결심을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사악한 마법사들을 타도하라!”
새하얀 머리와 새하얀 눈썹. 동굴 안의 격전을 거치고 왔는데도 깨끗하게 빛나는 갑옷과 은빛의 오러.
성령의 기사 스테판 로이어의 외침과 함께 거의 이백에 달하는 성기사들이 광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나 마검사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이제는 우리가 더 우세다!”
“반격해!”
제라드를 비롯한 사방왕이나 제국의 방계 황족으로 보이는 이들을 호위하던 병력까지도 단숨에 전부 공세로 나섰다.
“인비저블 포그(Invisible Fog)!”
“타깃 온 세인트 서클(Target on Saint-circle). 버서커(Berserker)!”
“커스(Curse)!”
“인탱글링 카오스(Entangling Chaos)!”
회색 안개를 내뿜으며 투명해지거나 붉은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며 미친 듯이 검격을 쏟아 내고, 정신을 혼란시키는 마법이나 회색의 가시덤불로 성기사들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등.
마검사단은 그야말로 수많은 마법을 쏟아 내며 성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마치 같은 수의 검사와 마법사가 동시에 협공하는 듯한 그 모습은, 왜 그들이 카셀 마탑의 정예로 꼽히는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상성이 좋지 않았다.
“신이시여!”
“바치나이다!”
우우웅.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신성력은 카셀 마탑의 마법을 굳건히 피해 내며 검 대 검의 물리 대결을 유도했다.
게다가 성기사들의 선두에 선 이들은 모두 신성 오러를 쓰는 초인들이었다.
가장 앞에선 작고 단단한 인상의 중년 남자, 아스트로 하이젠이 몸통만 한 카이트 실드에 은빛 성스러운 기운을 두른 채 마검사단을 밀어붙였고.
그 뒤쪽에서는 비쩍 마른 몸으로 자신의 키보다 큰 거창을 휘두르는 앤소니 에버렛이 은빛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마검사들을 꿰뚫었다.
그들의 합공에 마검사단은 형편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웃기지 마라, 거짓된 신의 종들아!”
검붉은 오러를 휘두르는 난쟁이가 전면에 나서는 순간 상황은 또 한 번 반전되었다.
난쟁이, 반 조니는 난전의 와중에는 그 머리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그런 신체 조건을 십분 활용해 적진의 틈을 잽싸게 파고든 뒤, 철저하게 초인이 아닌 일반 성기사들만 노렸다.
“윽!”
“모, 몸이.”
“독!?”
그의 검붉은 오러에 한 번이라도 스친 자는 강력한 마비독을 들이마신 듯 움직임이 굼떠졌고, 곧바로 다른 마검사들의 희생양이 되었다.
루이사가 나선 것은 그때였다.
쿵.
발을 구름과 동시에 그녀의 마력이 움직이고, 마검사들 틈에서 난전을 이끌어 가던 반 조니의 몸이 일순간 굳어졌다.
“암천결계(暗天結界), 영혼 오염! 얼어붙어라!”
“이익! 미친!”
반 조니의 몸을 뒤덮은 검푸른 안개가 그의 영혼을 강타하고, 그 발밑에서는 서슬 퍼런 냉기가 전신을 얼어붙게 만들기 시작했다.
카셀 마탑의 비전 중 하나이자 루이사의 장기인 매크로(Macro) 마법. 그 완벽한 연계가 오러유저조차 쉽게 벗어날 수 없는 강력한 속박을 걸었다.
그렇게 그의 움직임이 멈춘 순간.
“신의 품으로!”
한때는 신검의 후계자로 불리던 성창(聖槍), 앤소니 에버렛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돌진해 왔다.
새하얗게 백열된 거창과 함께 그의 몸이 일순간 가속하며, 마치 기마를 타고 차징하는 듯한 속도로 반 조니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앙!
쾅.
푸확.
그것은 전세를 뒤집고 있던 난쟁이에게 확실한 치명타를 입혔다.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난 채 날아가는 난쟁이.
하지만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던 그 상처의 주인은 이내 허공에서 몸을 비틀더니, 원독 어린 눈을 빛내며 루이사에게 달려들었다.
“네년이 감히 탑을 배신해!”
줄줄 흘러나오는 살기, 구멍이 뚫린 배를 부여잡고도 더욱 진해지는 검붉은 오러.
하지만 그 모습을 본 루이사는 차갑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녀의 매크로 마법의 마지막.
“악마현신(惡魔現身).”
검붉은 안개에 뒤덮인 그녀의 모습이 순식간에 기괴한 형상으로 변했다.
호리호리한 체형, 이마에서부터 자라나 머리 위쪽으로 휘어진 두 개의 뿔.
가느다란 체형임에도 강인해 보이기만 하는 회색의 피부.
그리고 등 뒤에 몸보다 크게 펼쳐진 박쥐의 날개와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안광까지.
그야말로 매혹적인 악마의 모습으로 변한 루이사의 손이 검붉은 기운을 휘감은 채 반 조니의 검을 후려쳤다.
꽈아아아앙!
“컥!”
그녀가 무술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이미 중상을 입은 반 조니를 튕겨 내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그 일격에 피를 토해 낸 반 조니가 이내 이를 악물면서 최후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모두 그분을 위해 순교한다! 성지를 지켜라!”
그 외침이 마법의 시동어라도 되었던 걸까.
일순간 흑색 마검사단의 기운이 무섭게 폭증되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싸우던 성기사들을 단숨에 밀어낼 정도의 위력.
‘이런…….’
지면에 깔린 마법진의 기운 일부가 그들에게 흘러 들어갔다는 것을 눈치챈 루이사가 빠르게 바닥을 후려쳐 보지만.
쾅!
오러유저에 가깝게 강화된 그녀의 주먹질로도 마법진에는 조금의 흠결도 생기지 않았다.
이내 온몸에 핏줄이 선명하게 튀어나온 반 조니가 기괴한 음성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 이곳이야말로 우리의 성지.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우리를 이길 수 없다!
그리고 루이사는, 그제서야 탑주의 의중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선택이 옳았어.’
반 조니가 아무리 마검사 출신이라 한들 어찌 자신보다 카셀 마탑의 마법에 대해 더 잘 알겠는가.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이 사전부터 철저하게 배제되었음을 알려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놓고 배신이 어쩌고 저째?’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당장은 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더 급했다.
“시간을 끌면 돼요! 피하세요!”
악마현신의 모습으로 하는 말에 모두가 따라 줄지 순간 우려가 되었지만, 다행히 스테판 로이어가 그녀의 말을 받아 주었다.
다만.
“그대가 바로 루이사 공? 반성하는 죄인이요?”
그 한마디에 루이사는 그들이 이곳에 온 전후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반성하는 죄인이라니…….
누구 맘대로 죄인이래?
절로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걸 뱉어 낼 틈은 없었다.
– 모두, 저, 저, 적을, 주, 주, 죽…….
눈알이 돌아간 반 조니가 기괴한 음성을 흘리기 시작했다.
“피할 필요 없다! 악도들에게 진정한 신의 힘을 보여 주어라!!”
그 순간, 매서운 고함과 함께 스테판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성령의 기사, 스테판 로이어의 특기. 빛의 축복.
비틀거리던 성기사들이 전신에서 성스러운 광휘를 발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신의 적을 토벌하라!”
누구보다 밝은 빛을 휘감은 성전기사단의 부단장 셋을 필두로 돌진하는 성기사들.
반 조니를 위시로 기괴하게 변화한 마검사들은 미친 듯이 맞섰지만, 그 발악은 오래가지 못했다.
“크륵.”
“끄으으.”
“이, 이런…….”
성기사단을 몰아치던 마검사들은 일정 시점을 기준으로 스스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힘을 너무 과하게 주입했어.’
그 이유를 단숨에 파악한 루이사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애처로운 감정을 느꼈다.
특히나.
– 나, 난, 그저, 키가 크고 싶…….
반 조니의 마지막 한마디를 들었을 때는 조금이나마 측은지심이 드는 듯도 했다.
“죄인은 지옥으로!”
스각.
그러나 스테판의 한마디와 함께 반 조니의 목이 떨어져 나가는 순간.
“이건 또 무슨……!!!”
분노한 음성과 함께 허공에서 왜소한 노인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