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0)
470화
“……이 무슨 참담한 일인가! 감히!!”
건장한 청년의 가슴 높이에도 닿지 않을 만큼 왜소한 노인의 외침.
하지만 그 외침에 마검사단을 정리하던 성기사들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그 목소리에 실린 묘한 마력이 그들의 정신을 간섭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검은 뱀의 수장이다! 죽여라!”
스테판 로이어의 외침에 정신을 차린 성기사단은 일제히 노인에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흑색 마검사들을 상대하며 희생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100명은 훌쩍 넘는 수의 성기사들.
그들 개개인의 수준도 최소 포스유저 중급이니, 적이 아무리 대마도사라고 한들 세 명의 오러유저 부단장까지 합세한다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켜보던 루이사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의 성지다!!”
분노가 서린 음성과 함께 노인이 발을 구르자, 광장 전체에 깔려 있던 마법진의 빛이 한층 더 강렬해지며 달려오는 성기사들을 휘감았다.
“배덕한 신들의 종 따위가 설쳐도 되는 곳이 아니란 말이다!”
쿵.
이내 성기사들의 움직임이 급격히 느려졌다.
마치 일부러 장난을 치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면서도, 성기사들 대다수의 표정엔 한 치의 변화도 없었다. 스스로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 믿지 못할 광경에 루이사의 눈이 경악으로 커졌다.
‘……시간을!!? 아니, 아니야. 사고 속도를 느리게 만든 거야.’
물론 그조차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대마도사라 한들 상성을 무시하고 이 같은 마법을 행할 순 없었다. 성기사들의 성력은 로건 왕의 힘처럼 완벽한 극상성은 아니더라도 카셀 마탑의 마력에 비하면 확실히 우위를 보였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를, 루이사는 탑주를 보는 순간 깨달을 수 있었다.
‘마법진과 지브릭 카셀의 성물들.’
일단 광장에 깔린 마법진이 엄청난 힘을 전해 주었고, 탑주의 왼쪽 손목에 걸린 팔찌와 머리에 쓰인 은빛의 면류관이 그 힘을 통제 및 증폭해 주고 있었다.
“천벌을 받아라, 무도한 놈들아!”
거만한 음성이 결코 허세로 들리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힘이 탑주의 전신에서 넘실거렸다.
“그분께 바치는 제물로 써 주마!”
콰지지직.
노인의 작은 손이 허공을 움켜쥐는 순간.
부단장들을 비롯한 성기사들의 몸이 일순간 공중에 떠올랐다.
“끄아악!”
“제, 젠장.”
“이럴 수…….”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난 성기사들이 기겁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때, 루이사가 움직였다.
반 조니가 억지로 끌어다 쓴 술식. 그리고 지금 탑주가 보여 주는 퍼포먼스.
그 대조되는 광경이 그녀에게 상황을 반전시킬 영감을 준 것이다.
정확한 술식 따위는 몰라도.
‘할 수 있어.’
루이사는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해 바닥에 깔린 마법진의 힘 일부를 움직였다.
쿵.
전체에 비하면 아주 작은 힘일 뿐이었지만, 흐름을 깨기에는 충분했다.
“루이사!!? 뭐 하는 짓이냐!”
가장 먼저 이변을 느낀 탑주의 고함이 그녀를 향하는 순간.
공중에 떠올랐던 성기사들의 몸이 속박에서 벗어나 지상으로 추락했다.
쿵.
쿠쿠쿵.
“끄윽!”
“노, 놈을!”
“잡아!”
지상으로 추락한 성기사들이 다시 탑주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때다!”
“놈을 죽여라!”
스테판, 아스트로, 앤소니를 중심으로 번개처럼 거리를 좁히는 이들.
“하!!”
탑주는 살벌한 눈으로 루이사를 노려보더니 이내 전신에서 회색빛 안개를 뿜어냈다.
“배덕한 놈들의 종과 배신자라…….”
그가 의미심장한 혼잣말을 내뱉은 순간.
– 그분께 올릴 제물로는 더할 나위 없다.
기괴한 음성과 함께 회색 안개 속에서 체고만 5m가 넘을 듯한 근육질의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날카롭게 찢어진 두 쌍의 붉은 눈에서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마에서부터 자라나 머리 뒤쪽으로 완만하게 휘어진 두 개의 뿔은 마치 창처럼 날카로웠고, 터질 듯한 근육을 자랑하는 시뻘건 피부는 웬만한 무기로는 흠집조차 내기 어려워 보였다.
거대한 두 손에 달린 검은 손톱은 하나하나가 잘 벼려진 단검처럼 예리했고, 부풀어 오른 덩치에 맞춰 커진 듯한 면류관과 왼쪽 손목의 은빛 팔찌는 얼핏 기괴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런 괴물을 향해, 성기사단의 대표들이 그대로 돌진했다.
“천벌을 받아라, 악마 놈!”
“신의 뜻으로!”
“신벌이다!”
그러자 다시 한번 기괴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 닥쳐라! 이것이 진짜 천벌이다!
쿵.
악마의 형상으로 변한 탑주가 다가오는 성기사들을 향해 걸음을 내딛자, 그 몸에서 검붉은 마력이 불꽃처럼 솟아올랐다.
콰아아앙!
“컥!”
“흡!”
“어윽!”
뒤이어 휘둘러진 탑주의 주먹에 성기사단의 세 초인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거창한 묘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 주먹질과 함께 퍼진 검붉은 마력이 일대를 통째로 휩쓸어 버렸을 뿐.
단 일격에 신위를 선보인 탑주는 나가떨어진 성기사들 대신 루이사를 노려보았다.
– 그래, 암시를 깼구나. 하지만 흐름을 방해한다고 뭐라도 될 줄 알았더냐?
루이사는 옛 스승의 물음에 회색빛 마력을 쏟아내는 것으로 답했다.
“묶어라!”
마법진에서 흡수한 힘과 자신의 마력을 더해 차원의 문을 열자,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마계의 덩굴이 뻗어 나와 악마의 전신을 옭아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 감히 내게 배운 마법으로…….
비웃는 듯한 탑주의 음성과 함께 검은 불꽃이 솟구치는 순간.
회색의 넝쿨은 삽시간에 그 불길에 휩싸여 소멸해 버렸다.
그녀가 소환 마법을 배운 이래 가장 강력할 거라 자부한 것이 허무할 정도로.
‘……차원이 달라.’
루이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마법진의 힘을 일부 빌려 쓰고 있지만, 그 또한 편법에 불과했다.
거의 9할 9푼에 달하는 힘을 탑주가 끌어다 쓰고 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 너는 따로 쓸 데가 있으니 죽이진 않으마.
우웅.
이내 기이한 울림을 담은 음성과 함께 시야가 새카맣게 물들며, 전신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동시에 6서클 마법 악마 현신의 변신이 풀려 버렸고, 마치 새카만 공간에 홀로 둥둥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발 하나 까딱하지 못한 채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듯한 감각이 전신을 엄습하며 일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그렇게 체감상으로 무수한 시간이 흘러갔다.
자신이 누군지, 어디에 있는지도 점점 잊어 가던 순간.
무의식적으로 버둥거리던 그녀의 발끝에 무언가가 닿았다.
“으……?”
힘겹게 눈을 떠 보니, 환한 공간이 펼져짐과 동시에 새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그녀가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키는데.
“루이사, 왜 그러니? 악몽이라도 꿨어?”
눈앞에 평생을 그리워하던 이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놀란 모양이구나. 이리 오렴.”
자신을 포근하게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는 손길.
꿈이라기엔 너무나도 생생한 체온과 따스한 음성.
“엄……마?”
“그래, 엄마야. 괜찮아, 다 꿈이야. 괜찮아, 뚝.”
……꿈이었구나.
“무서운 꿈이라도 꿨어?”
“……응.”
“어떤 꿈?”
그 다정한 웃음을 바라보던 루이사의 눈망울이 촉촉해졌다.
“……엄마가 죽었어. 그리고 아빠랑 나랑…….”
“놀랐겠구나. 괜찮아, 엄마 여기 있어.”
“엄마…….”
“응?”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야, 우리 딸. 이렇게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걸.”
그 부드러운 웃음이, 체온이 너무나도 좋아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것이, 지금 이 모든 상황이.
“……정말 현실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뭐?”
한 줄기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자 어린 루이사의 전신에서 회색 마력이 솟구쳤다.
이내 따스하기만 하던 광경이 와장창 깨어져 나가고, 광장 바닥에 주저앉아 입가에 피를 흘리고 있는 루이사의 본체가 드러났다.
“암천결계는 내 주특기였어, 탑주!”
– ……귀찮게 구는구나.
덤벼드는 성기사 둘을 한주먹에 날려 버린 탑주가 정신을 차린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탑주의 마법은 내가 막습니다! 싸워요!”
루이사는 혼란에 빠진 성기사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다시금 마력을 끌어 올렸다.
– 가능할 것 같으냐!
탑주의 외침과 함께 다시금 퍼져 나간 검은 안개가 성기사들을 휘감았다.
하지만.
“디스펠(Dispell!)”
우웅. 그그극.
심장에 자리한 서클이 부서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법진의 힘을 잔뜩 끌어들인 루이사가 피를 토하며 그 안개를 흩어 버렸다.
“빨리!”
그리고 그 간절한 외침에 성기사들이 반응했다.
‘빌어먹을.’
스테판 로이어는 대놓고 악마의 형상으로 변한 이단의 모습을 보며 이를 갈았다.
분했다.
도무지 당해 낼 수 없는 적의 힘이.
또 다른 이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저항조차 불가능한 이 상황이.
‘하먼이 있었다면…….’
그리고 이 자리에 없는 이를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이 견딜 수 없게 분했다.
전 단장이자 전 배교자, 그리고 이제는 스스로를 희생하여 성녀이자 교황을 부활시킨 성자.
그가 있었다면 저 악마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절로 그런 생각이 드는 한편.
‘왜 그는 그때 변명을 하지 않았을까.’
적극적으로 그를 참하려 했던 자신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그러니 이번엔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라도 그 빈자리를 메울 것이다.
“신의 뜻으로!”
스테판은 수명이 줄어드는 것을 체감하면서도 다시 한번 ‘빛의 축복’을 썼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을 향해 쏟아지는 악마의 공세를 신성 오러로 베어 내며 호기롭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엄호한다! 아스트로, 길을 열어라! 앤소니, 놈을 끝장내!”
“예!”
이번에야말로 저 악마의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는 듯, 한계 이상으로 솟구쳐 오른 신성오러가 쏟아지는 검붉은 불길을 조각내기 시작했다.
‘크으윽.’
생명력이 뭉텅뭉텅 깎여 나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적과 아군의 실력 차이가 너무 큰 만큼 누군가는 희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각오는, 생각보다 더 효과가 있는 듯했다.
“서둘러요!”
신의 편으로 돌아온 이단이 악마의 마법을 방해하며 시간을 끌어 주었다.
스테판은 성기사들과 함께 검붉은 마력의 방패를 걷어 냈다.
카이트 실드를 든 아스트로가 악마의 주먹질 한 방에 주저앉는 것이 보였지만, 그 역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거창을 곧추세운 앤소니가 적의 심장을 겨누고 뛰어들었다.
‘됐다!’
그런데 그 순간.
– 발악이 귀엽구나.
쾅!
냉소 어린 목소리와 함께, 성스러운 창이라 불리는 앤소니의 거창이 놈의 급소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꽈아아아앙!
“안 돼!!!”
뒤이어 휘둘러진 악마의 주먹에 앤소니의 상반신이 터져 나가는 광경이 스테판의 눈에 박히듯 파고들었다.
쿠우우웅.
어느 틈에 치켜 올라간 악마의 발이 여태 일어서지 못한 아스트로를 벌레처럼 짓밟았고, 놈의 마법을 방해하던 회개한 이단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 불타올라라, 배덕한 자의 종들아.
그리고 이어진 악마의 한마디에, 스테판은 전신이 타오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스테판은 결과를 직감했다.
‘끝이다.’
졌다.
신의 적을 참하지 못하고 모두가 이곳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이제 저 악마가 얼마나 참담한 짓을 저지를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신이시여!!”
그는 고통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와중에도 천상에서 자신을 굽어볼 신들을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미욱하고 어리석은 종들을 돌보시어, 세상에 떨어질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이 한 몸, 이 영혼을 바쳐 간절히 바라옵니다.’
그는 죽어 가는 동료들 역시 자신과 비슷한 소원을 빌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침내 그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
스테판은 자신의 영혼이 그토록 바라던 천상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며 미소를 지었다.
‘신께서 기도에 응답하셨다……. 악마 놈, 천벌을 받을 것이다.’
– 정화의 시간이 끝났다.
허공으로 시선을 돌린 악마의 눈동자가 잠시 커지는 듯했다.
– 배덕한 신들이여. 이제 와 움직이려 해 봤자 늦었다.
무언가 느낀 것일까.
알 수 없는 말과 함께 냉소를 지은 악마가 고개를 저었다.
화르륵.
이내 검은 불길이 일어나더니, 거대한 악마는 다시 왜소한 노인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피를 토하며 자신을 노려보는 옛 제자를 향해 인자한 미소를 보였다.
“루이사, 이 가련한 것아. 어찌 진리를 거부하느냐.”
“진리? 속임수겠지. 네놈은 남을 속여 놓고 진리라 말하느냐?!”
연신 피를 토하느라 대답하지 못하는 루이사 대신 멀리서 들려온 목소리.
그 고함에 노인의 시선이 광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낭패한 몰골로 소리를 지르는 전 동익왕, 제라드의 초라한 몰골.
‘내가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탈진한 벌레 주제에 발악을 하는군.’
피식 비웃음을 흘린 노인이 고개를 저었다.
“어찌 미천한 벌레가 그분의 뜻을 이해할까. 불길한 예감에 신체(神體)를 두고 내가 먼저 여기 임한 것 또한 그분의 뜻이 이뤄지리라는 증거다.”
“……미친놈.”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창백한 안색의 루이사.
그녀가 힘겹게 뱉어 낸 욕설이 뒤늦게나마 노인의 귀를 파고들었다.
“흘흘. 배덕이 골수까지 침투했구나. 뭐, 의식의 때가 가까워졌으니 그때까지는 살려 두마.”
이내 노인의 손에서 검은 안개가 퍼져 나오는 순간.
그를 제외한 장내의 모든 이가 의식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