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1)
471화
“맥라인 만세!”
“로건 폐하 만세!”
“이제 우리가 제국이다!”
“야, 그건 너무 갔지.”
웅성웅성.
왕국 전역이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승전의 기쁨도 컸지만, 길었던 전란의 시대가 드디어 끝났다는 사실이 모두를 환호하게 한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은 없겠지?”
“그럼! 누가 감히 대륙 최강 맥라인에 시비를 걸겠어.”
대륙 최강. 이제는 왕국민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이 쉽게 나왔다.
“제국을 아예 멸망시킬 수도 있었는데, 자애로운 폐하께서 동부까지만 먹고 선을 그으신 거라는데?”
“난 아무래도 좋다. 전쟁이 끝났다는 게 중요하지.”
“그래, 그게 제일 중요하지.”
물론 대부분이 잔치라도 벌일 듯 기뻐하는 와중에도 가슴을 졸이는 이들은 있었다.
“신이시여, 부디 우리 아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 딸…….”
돌아오지 않는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들의 간절한 기도가 떠들썩한 축제 분위기의 이면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맥라인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대륙의 다른 곳은 그야말로 혼란만이 가득했다.
황제가 실종됐다.
제국에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지만, 민간에서는 그 소문이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아무리 상처를 입어 요양 중이라 한들 서방 10국의 선전 포고와 신전의 움직임, 맥라인의 영역 선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정말 요양 중이라면, 의식을 잃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거겠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우리 제국이…….”
“난리가 나는 거 아냐?”
“난리는 이미 났지, 이 사람아. 어서 식량부터 챙기라고.”
대륙 최대의 도시 아세리안의 시민들마저 이런 상황이었으니, 제국은 맥라인 전쟁이 끝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미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 우리 트레비스 가문은 아레스의 그늘에서 독립하여 별개의 길을 걷겠다. 그리고…….
제국 남부에서도 이름난 명문이라 불리던 트레비스 공작가가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남부 산맥에 인접한 영지 덕에 제국의 군단제에서 살짝 벗어나 어느 정도 사병을 양성할 수 있었던 가문.
중앙 정부에도 연줄이 많은 그 가문이 가장 먼저 발을 뺀 것이다.
그것은 이내 다른 세력들에게도 확신을 주었다.
황제의 신상에 정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
트레비스 영지를 시작으로, 백작급 이상의 고위 귀족들은 합종연횡하며 하나둘씩 독립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제각기 내건 독립 선언문에는 공통된 사항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략 이랬다.
– 우리는 제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성국의 정벌 대상에서 빼 달라. 서부 10국과도 싸우고 싶지 않다.
불과 일주일 사이 독립을 선언한 영지가 열 곳이 넘어가는 웃지 못할 상황.
그러자 황실에서도 포고문을 내걸었다.
– 황제 폐하의 지엄한 권위에 도전하는 자, 제국의 철퇴를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황제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그 선포는 오히려 분열을 재촉하는 악수가 되었다.
황제에겐 더 이상 지방을 정벌할 여력이 없다.
귀족 사회에 돌던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제국의 자랑이던 동·서부의 15개 군단과 중앙군이 대파되었고, 남은 것은 2개 군단급도 되지 않는 초라한 병력뿐인 상황이다.
물론 그중 기사의 수가 5천이 넘었으니 다른 어떤 왕국보다 강력한 병력이긴 하지만, 이제 남은 초인은 삭풍의 마도사와 제국의 신성이라 불리는 제롬 디카이드 둘뿐이라는 사실은 치명적이었다.
패배한 맥라인과 다시 싸우긴커녕 지난 전쟁으로 몰락한 서방 10국과 맞붙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빈약한 전력.
황실은 이미 제국 전역을 통제할 수 있는 군사력을 잃었다.
황실의 평판이 그렇게 굳어지자, 제국의 귀족들은 저마다 살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맥라인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영역으로 선포한 제국 동부의 귀족들이었다.
* * *
“푸린 게르힌 자작입니다.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으니, 작위만 보장해 주시옵소서.”
“트렌 밀레스 남작입니다. 전 재산을 바칠 터이니 부디 영지의 자치권만 인정해 주십시오.”
“테피 아논 백작이…….”
“그만, 그만.”
탕. 탕.
팔걸이를 내리치는 소리에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던 제국 귀족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낮췄다.
왕좌에 앉은 로건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가운데, 그 옆에 선 데미안이 족자를 꺼내 들더니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폐하의 뜻에 따라 제국 귀족들의 처분에 일괄 규정을 적용한다. 우선…….”
꿀꺽.
평범한 얼굴의 30대 관리를 쳐다보는 많은 이들의 심중에는 긴장이 가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구 제국 귀족 당사자거나 후계자, 혹은 전권 대리인이다. 저 명령서 하나에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갈 운명이라는 것이다.
숨이 막힐 듯한 분위기 속에서 데미안의 말이 이어졌다.
“자치권은 인정할 수 없다. 재산에 대한 봉납은 인정하되 절반만 받겠다. 제국에서의 작위는 한 단계 낮춰 왕국 귀족으로 삼는다. 이의는 받지 않는다. 반발하는 자는 모든 것을 버리고 그 땅에서 떠나라.”
“아…….”
데미안의 말에 많은 이들의 안색이 흐려졌다. 일괄 적용된다는 규정이 생각보다 더 빡빡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제국에서 왕국으로 귀의하는데 작위가 강등된다는 것 자체가 귀족들에게는 모욕일 것이었다.
하지만 데미안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명령서를 접어 버리며 등 뒤의 군주를 향해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그러자 로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나 대전에 자리한 이들을 둘러보았다.
시선이 닿는 순간 회피하는 이들이 대다수였지만, 그와 상관없이 로건의 능력은 이미 대전에 자리한 모두의 마음을 읽어 내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따르는 수밖에.’
‘빌어먹을, 폭군인가.’
‘작위 강등이라니.’
‘재산을 들고 도망갈 방법을 강구해야겠어.’
‘차라리 트레비스 공작가나, 서방 10국에…….’
피식.
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점차 확장되던 감각은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타인의 속을 훤히 읽을 수 있는 경지에 올라 있었다.
“할 말 있는 자는…… 없는 것 같군. 그렇지?”
“예, 폐하.”
“이만 보내라.”
“예.”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전에 상주하던 기사들이 귀족들과 대리인들을 몰아세웠다.
모두 대전을 나가자 로건은 태연히 명령을 내렸다.
“세 번째 줄에 있던 콧수염 놈이랑 그 뒤에 있던 대머리, 다섯 번째 줄에 꽃문양 제복을 입고 있던 놈들은 철저히 감시해. 그리고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전부 참해라. 재산은 모두 몰수하고.”
“예.”
간결하게 대답하는 데미안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굳이 간자를 심을 필요도, 감시를 늘릴 필요도 없다.
그저 한 번 대면하는 것만으로 굴복할 자와 딴생각을 할 자를 가려낼 수 있으니, 군주에겐 번거로워도 충분히 할 만한 작업이었다.
“이것으로 저희 영토 내 모든 제국 귀족들의 선별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데미안과는 달리, 로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래, 황제의 소식은 여전히 없고?”
“……예, 죄송합니다.”
“아니, 아니야. 이 정도라면 놈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니까.”
황제는 그야말로 큰 골칫거리였다.
최소 8클래스급 강자가 어디서 숨어 있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렸다.
‘내가 놈을 찾으러 돌아다닐 수도 없고.’
물론 제국의 상황을 보니 황제가 죽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지만.
게다가 마지막 전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카셀 마탑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속을 알 수 없는 그 행태와는 별개로 놈들은 반드시 척결해야 할 악의 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당장은 전후 처리가 우선이었다.
“……제국 귀족들의 재산이 들어오는 대로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부터 실행하라. 예산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으로.”
“폐하, 일단 군단 복구부터……. 아니, 아닙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을 내세우려던 데미안은 군주의 붉은 눈이 살짝 찡그려지자마자 바로 소견을 바꾸었다.
“전후 보상이 가장 중요하지요. 암요. 험, 험.”
“……어차피 치러야 할 전쟁이었다 한들 희생된 이들은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천년 왕국의 시작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눈물부터 닦아 주는 것이 우선이다. 이견은 용납하지 않는다.”
“……예, 폐하.”
“……그리고 전쟁 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은 그랑에서 실행하겠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지와 통치권 위주로 나눌 것이야. 따로 준비해 놓도록.”
“알겠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또다시 한계를 넘어 본 덕인지, 오러마스터의 벽 너머가 조금씩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예전 같았으면 망설이거나 고민했을 만한 안건에 대한 대책도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다만, 부작용도 있었다.
‘나는 보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지? 백작위에 영지……는 너무 과한가?’
피식.
“과하지 않다.”
“예, 그럼요. 당연히 과……, 옙!?”
“백작위에 영지, 괜찮지. 너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어.”
“아, 아하하. 예, 예. 감사합니다, 폐하.”
속마음을 들키고 어색하게 웃는 데미안의 모습을 보니 다시금 쓴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속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이까지 반응이 이러니, 요즘에는 충실한 신하들마저도 조금씩 멀어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마 착각은 아니겠지.’
자신의 생사여탈을 손에 쥔 군주가 속마음까지 훤히 읽는다면 어찌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지만 어찌할 방도는 없었다.
그냥 보이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로건은 말없이 데미안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그대로 대전을 나섰다.
‘신인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부작용도 개선되려나?’
아니, 마음을 못 읽게 되면 그건 개선이 아니라 퇴보겠지.
그럼 더 잘 읽게 된다면…….
더욱 외로워지려나?
‘외로워?’
흠칫.
스스로 떠올린 단어에 헛웃음이 나왔다.
‘전쟁 끝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대륙 동부를 평정한 군주.
이제 명실공히 대륙 최강국이 된 국가의 왕이자 오러마스터.
그런 주제에 신하들이 자신을 어려워한다고 외로움을 느끼다니?
대체 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랑말랑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던가.
“왜 이런 한심한 생각을…….”
짝.
로건은 가볍게 얼굴을 두드리며 헛된 감상을 날려 버렸다.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전생의 사무친 한은 모두 씻어 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토록 답이 없던 전생에 비하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얻은 현생이다.
‘그래, 그거면 됐다.’
좋긴 좋은데.
너무 좋은데…….
자꾸만 왠지 허전한 생각이 들었다.
한 가지 목표만 바라보며 끝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고 나니,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멍한 느낌이랄까.
‘그래, 그래서 그런 것이다.’
새로운 목표야 지금부터 다시 정하면 될 일이었다.
일단 전후 정리를 끝내고 나면, 본격적으로 황제와 카셀 마탑의 흔적을 찾아 후환을 뿌리 뽑을 것이다. 한동안은 거기에 집중하면 될 터였다.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다.
동시에 내면만 바라보던 의식이 외부로 크게 확장되며, 다시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왜 잠시나마 외롭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제 세상이 어찌 되려나.’
‘그래도 우리 왕국은 든든하겠지.’
‘그럼, 폐하께서 계시는걸.’
자신을 추앙하는 병사들의 목소리부터.
‘우리가 천년 왕국의 기틀을 세웠다.’
‘맥라인의 기사인 게 자랑스러워!’
‘기사왕, 로건 폐하께 영광을!’
스스로가 이뤄 낸 성취를 자랑스러워하는 기사들의 마음까지.
그 모든 게 든든한 위안이 되었다.
게다가.
‘폐하께서 계시니 왕국은 적어도 100년은 더욱 번성할 것이다. 백성들도 편안해지겠지. 내 선택은 옳았어.’
뿌듯해하는 스승의 마음이나.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걸까? 왜 말이 줄었지?’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도 느껴지며 가슴이 따뜻해졌다.
다만, 그중 유독 신경 쓰이는 목소리도 있었다.
‘크, 큰일이다! 폐하께 보고를……! 아니 빅토리아 님에게 먼저 가야 하나?’
음?
인상이 슬쩍 찡그려지는 찰나.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카일 성에 모셔 둔 클레이튼 님의 육체가 사라졌습니다!”
좋았던 로건의 기분을 와장창 깨트리는 소식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