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카일 성에 있던 클레이튼이 사라졌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병력 일부를 남겨 놓고 귀환 준비를 서두르던 맥라인의 지휘부는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쾅.
“데미안 님!”
빅토리아가 문을 거칠게 열어젖히며 들어서자, 데미안이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섰다.
“어, 어떻게 된 거예요!?”
“들으신 대로 클레이튼 님의 시…… 아, 아니 육신이 사라졌습니다. 정황상 납치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카일 성을 지키는 병력들은 대체 뭘 했길래요!?”
빅토리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날카로웠지만, 그 태도를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자신의 스승을 끔찍이 존경하는 빅토리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는 없었으니까.
“성녀 부활 사건 이후로 경계는 더 강화하였습니다. 다만 세간에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는데, 결국…….”
카일 성을 뒤집은 전적이 있는 로건이 빅토리아의 날 선 시선을 슬그머니 피하는데, 데미안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현장 보고를 보면 불가항력에 가까운 사건인 듯합니다.”
“왜죠?”
“내성을 지키던 기사들 전부가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고 합니다. 강력한 마법에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상자는 하나도 없었죠.”
적은 감히 저항조차 못 할 무력을 보여 주면서도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
“그래. 클레이튼 공을 죽이고자 했다면 시체가 남아 있었을 테지. 단순 강도였다면 내성까지 침입하지도 못했을 테고.”
로건이 빠르게 한마디를 보태자,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라는 듯 빅토리아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위안이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클레이튼 님의 생명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그럼에도 마음을 놓지 못한 빅토리아가 다시 목소리를 높이자, 데미안이 황급히 말을 보탰다.
“단순히 클레이튼 공의 생명, 혹은 그 육체가 목적이었다면, 분명 피를 봤을 겁니다. 그런데 기사들은커녕 병사 중에서도 죽은 이가 없습니다.”
“그 말은…….”
“아마 협상의 여지를 남긴 거겠죠. 저희가 무작정 적의를 갖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아마도 범인은 우리, 혹은 빅토리아 님에게 곧 접촉해 올 것입니다. 요구할 게 있을 테니까요.”
반 시체나 다름없는 마도사의 육신을 가져갈 만한 다른 동기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데미안의 추측은 설득력이 있었다.
“문제라면, 이 시점에 클레이튼 공을 납치해서 맥라인에 무언가를 요구할 만큼 겁 없는 자들은 몇 없다는 겁니다.”
“제국 아니면 카셀 마탑이겠지요.”
검공과 로니안의 의견도 타당했다. 제국을 물리친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 사기 등등한 맥라인 왕국을 도발할 자들이 또 누가 있겠는가.
“그럼 피를 안 본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협박성 요구가 아니라 협정이나 계약 같은 걸 원하나 보지. 정벌 유예나 공적 철회 같은, 말하자면 좋게 봐 달라는 쪽을.”
루터와 위켄 역시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자, 검공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폐하, 만약 점령지에서 물러나라는 요구 같은 것이면…….”
“절대 들어줘서는 안 됩니다.”
검공이 빅토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말끝을 흐렸지만, 갑자기 끼어든 데미안의 목소리는 단호하기만 했다.
그에 빅토리아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로건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이건 그리 멍청하진 않으니 비중이 기운 거래를 요구할 일은 없을 거야. 불가침 조약이나 전쟁 배상금 조정 같은 거겠지.”
그에 루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애초에 폐하께선 그 이상의 무엇을 할 생각도 없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외부에서는 모르지, 멍청아.”
“……싸울래?”
“……넌 분위기 파악 좀 해라.”
루터의 반문이 바로 옆에서 차단당하는 익숙한 광경에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였으면 좋겠는데…….”
로건이 팔걸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자 빅토리아가 로건의 앞으로 나섰다.
“……폐하. 범인이 누구든, 다소 무리한 요구를 해 오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끌어 주십시오. 그럼 제가 어떻게든 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하는 빅토리아는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어떻게든 해 본다라…… 후우.’
그에 로건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빅토리아의 어깨를 잡으며 그녀와 눈을 맞추었다.
“네가 책임질 일이 아니야, 리아. 온전히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설령 놈들이 네게 은밀히 접근해 오더라도 내가 해결할 것이다. 클레이튼 공에게는 나도 신세를 많이 졌어. 당연히 구해야 한다. 반드시.”
확인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로건의 장담은 그저 허세처럼 들릴 법도 했다.
하지만 빅토리아의 고개는 쉽게도 끄덕여졌다.
“예. 폐하의 말씀이라면 믿어야지요.”
흥분한 기색을 단숨에 가라앉힌 그녀의 모습에 로건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나를 이렇게까지 믿고 있었다니, 고맙구나.’
미안한 마음만큼, 자신을 향한 굳건한 신뢰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 믿어 줘. 내가 어떻게든 해결할 테니.”
로건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확고한 의지를 담아 말하며 빅토리아를 안심시켰다.
“예.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니 그리되겠지요.”
대답하는 그녀의 눈빛에서 과한 확신이 느껴지는 것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로건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일어섰다.
그런데.
“그럼 굳이 더 논의할 필요는 없겠군요.”
“그럼요. 폐하께서 해결하실 테니까요.”
“그럼 회의는 이쯤에서 마칠까요?”
어째 주변의 반응이 이상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로건이 순간 인상을 찌푸리자,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폐하께서 알아서 하신다면서요?”
“그럼 되는 거 아닙니까?”
“폐하께서 직접 나서실 건데 당연히 해결되겠죠.”
신하들 가운데서 나름대로 똑똑하다는 데미안부터 헛소리를 시작하더니, 이내 대전에 모인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황당한 광경에 로건의 얼굴이 멍해지는데, 다행히 그중 두 사람이 다른 행동을 보였다.
“……잠깐, 다들 지금 왜 그러는 건가?”
“여보, 지금 당신 말에 이상한 힘이 담겨…… 끙, 있어요.”
영혼의 힘을 조금이나마 다룰 줄 아는 스승과, 자신을 항상 옆에서 봐 온 아내만이 이변을 감지한 것이었다.
“이게 무슨…… 잠깐.”
뭔가를 눈치챈 듯 인상을 찡그린 로건이 이내 스스로의 영혼을 관조하기 시작했다.
오러마스터의 한계에 다다라 이제는 그 벽 너머를 넘보는 영혼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의 성질은, 영혼의 근간에 자리한 염원의 힘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로건은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의지의 힘.’
다른 영혼들이 남긴 공통된 사념, 즉 염원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가 가진 힘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확고한 의지를 담아 하는 말은…….
“부서져라.”
콰지직.
실체가 되어 이뤄진다.
로건은 멍한 눈으로 조금 전까지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가 산산조각난 광경을 바라보았다.
포스를 운용한 게 아니었다. 그저 의자가 부서지길 바라며 말을 했을 뿐이었다.
이건 마치…….
‘마법!?’
놀랍기보단 어처구니가 없었다. 단순히 새로운 힘이 생겼다는 측면에선 기뻐할 만한 일이었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심각한 부작용이 있을 것이 뻔했다.
“데미안.”
“예, 폐하.”
“나한테 욕해 봐. 최대한 강하게.”
데미안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었다.
“야, 이 씨X 새꺄! 뭐든 네 맘대로 할 거면 나한테 의논은 왜 하냐!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이 똘……! 읍, 읍!?”
난데없는 불경에 놀란 검공이 황급히 데미안의 입을 틀어막은 순간, 주변의 다른 초인들이 그제야 이상함을 깨닫고 놀란 눈으로 그들의 군주를 바라보았다.
“폐, 폐하, 이게 대체?”
“데미안이 왜 저런…….”
“그러고 보니까, 방금 우리는 왜 대책 마련도 안 하고 그냥 가려고 했지?”
“그거야 폐하께서 알아서…… 헉!?”
군주의 변화를 눈치챈 듯 연달아 탄성을 터트리는 초인들.
“왜, 왜요? 난 폐하께서 시킨 대로 한 건데?”
그 와중에 데미안은 여전히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로건은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클레이튼의 일에 대한 대처는 일단 보류되었다.
원칙에 따라 수사를 지시하긴 했지만, 카일 성의 기사들이 무언가 성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납치범에게 모종의 목적이 있을 거라는 가정만을 남긴 채, 혹여나 빅토리아나 그 사형제들에게 따로 연락이 온다면 바로 알리라고 당부해 두었다.
그리고 로건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명상에 잠겼다. 지금으로선 느닷없이 생겨난 고민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경지의 상승은 당연히 기쁘지만, 상황이 이래서야…….’
오러마스터로서 최초로 신인의 경지에 오를 가능성이 보이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그 원인도 몇 번의 실험 끝에 쉽게 파악이 되었다.
‘내 영혼의 격이 오름에 따라, 자연스레 세상의 질서까지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마치 마법처럼. 그런데…….’
그 힘에 오러마스터의 전장 지배가 더해지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다. 전장 지배에 속한 바 있던 다른 이들의 영혼이, 자신의 말이라면 아무리 이상한 명령도 그대로 시행하게 된 것이다.
군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특성이지만.
“……이쯤 되면 인간으로 보기 힘들지 않은가.”
입가에 허탈한 미소가 맴돌았다.
모든 이가 자신의 말에 따른다. 아무런 이견이나 반항 없이.
이 상황에서 지배욕에 사로잡혀 기뻐한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일 것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꼭두각시들 사이에서 홀로 인간인 것보다는 인간다운 인간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살아가길 바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발전을 포기할 것인가?
모르긴 몰라도, 로건은 이 상태에서 어떤 계기만 생긴다면 바로 신인의 경지에 닿을 수 있다는 걸 직감했다.
그런데 그것이 별로 기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버티던 스승님과 아내조차 제 말이라면 인형처럼 따르게 되리란 것 또한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어쩐다…….’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고민이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
‘포기할까?’
더 위로 오르는 길을 포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당장 자신의 영혼에 아주 작은 상처 하나만 내면, 그리고 스스로 회복을 바라지 않으면 된다. 그리하면 자신의 격은 이대로 정체되겠지만, 대신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뛰어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겐 더없는 유혹이기도 했다.
그 승격의 법열(法悅)을 포기한다?
기사건 마법사건, 하다못해 수준이 낮은 이능력자라도 한번 법열의 기쁨을 맛보면 그 쾌감을 잊지 못해 평생을 갈구하기 마련이다.
설령 자신이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일지라도.
어떤 기쁨도, 어떤 마약도 그 쾌감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역사 속 수많은 위인들이 그들의 삶으로 증명해 왔다.
고대의 신인 지브릭 카셀 또한 차원 너머로 사라진 신들을 따라잡기 위해, 지상에 홀로 남은 신인으로서의 영광까지 포기한 채 도박을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로건은 이내 결론을 내렸다.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피식.
괜한 걱정에 붙잡힌 자신을 깨달으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처절한 후회 속에서 기적 같은 기회를 붙잡아 회귀하지 않았던가.
당시의 목적은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고 가족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쩌다 보니 그 가족을 지칭하는 울타리가 점점 넓어졌고, 결국에는 나라까지 뒤엎어 그 왕국을 이끌고 제국을 타파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가슴속 한을 넘치게 풀 수 있었고, 바라던 것도 모두 이뤘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뒤처리일 뿐이었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나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내 가족들 곁에서.”
로건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가족. 그래, 그것이면 충분하다.
신인?
아끼는 사람들 곁에서 인간답게 살 수 없다면, 그런 거창한 경지 따위 필요 없다.
어쩌면 고대의 검신부터 이어진 오러마스터 중 몇몇은 이 사실을 알기에 스스로 한계를 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 분명 그런 이도 있었겠지.’
로건은 그런 확신 속에서 길을 정했다. 그리고 스스로의 영혼을 날카롭게 벼려 심상 속에 칼 한 자루를 구현했다.
‘아주 작은 생채기면 된다. 위험할 것도 없어.’
마지막까지 미처 떨치지 못한 욕망들을 애써 치워 내며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 폐하! 연락이, 통신이 왔습니다!
문밖에서 그 명정한 상태를 깨트리는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