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기다렸던 클레이튼에 관한 연락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건에게 급히 보고할 만한 연락은 맞았다.
“성국에서?”
“예. 성녀가, 교황이 직접 지급으로 통신을 했습니다. 그것도 헤이먼 경과 같이 연락을 받아 주셨으면 한다면서…….”
“헤이먼 경과?”
“예.”
지급으로 하먼까지 호출할 정도면 절대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급히 통신실로 향한 로건은, 그 앞에서 마주친 하먼의 무거운 표정을 보곤 그 추측이 맞을 것임을 더욱 확신했다.
“무슨 일인 겁니까? 이 시점에 지급 통신이라니요?”
“짐작이 가는 것은 있습니다만, 일단 성하의 말씀을 들어 보시지요.”
그렇게 말을 하는 하먼의 목소리 또한 전에 들어 본 바 없이 무겁기만 했다. 목에 걸린 성물 리첸티아를 붙잡고 있는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낌새가 영 심상치 않았다.
‘설마 또 신전에서 무슨 일이라도…….’
로건은 굳은 얼굴로 통신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성녀와 인사를 나누자마자 듣게 된 이야기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곳에 성기사단의 정예들을 파견했습니다. 부단장 셋을 포함한 수위기사급 위주로 200명을요. 그런데 돌입한다는 신호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런 보고가 없습니다.]“그 말씀은…….”
[외부에 있던 연락원들이 산맥 내부에서 큰 폭음이 들렸다는 것만 전해 왔습니다. 신전 내부에서는 아마도 그들이 전멸했을 확률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허……. 이런…….”
로건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성녀에게 정보를 알려 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했다. 카셀 마탑주를 비롯한 마탑의 정예들은 제국군과 함께할 거라는 합리적 예상이 있었으니, 설령 루이사의 제보가 거짓이라 한들 성국의 힘이라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카셀 마탑의 전력이 전쟁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도 그 사실을 성국에 전달하지 않았다.
‘내 실책이다.’
그곳에 카셀 마탑주와 그들의 정예가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면, 성국의 정예가 몰살당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로건의 안색이 어두워지는데, 더욱 암담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들이 함정에 빠졌다고 보는 것이 맞겠지요. 추기경들이 정보의 출처를 밝히라는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제 잘못입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 제가 드린 정보라고 알려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쉽게 말씀하실 일이 아닙니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으니까요.]더 심각한?
이 상황에서?
로건의 미간이 절로 좁혀지는 가운데 수정구 속 일리아의 시선이 이번에는 그의 옆에 있는 하먼에게로 향했다.
[하먼 경, 최근 리첸티아를 통해 이상을 느낀 적이……. 하, 역시 경도 그랬군요. 아니길 바랐는데…….]“성하께서도…….”
성녀와 하먼은 통신구 너머로 상대를 마주한 것만으로 무언가를 확인한 것 같았다.
그 사유를 알 수 없는 로건이야 고개를 갸웃하는데.
“폐하, 아무래도 신들이 뭔가 수작을 부릴 것 같습니다.”
[신들이 현세에 직접 간섭할 생각 같습니다. 최악의 상황이지요.]두 사람의 입에서 굉장히 불길한 말이 튀어나왔다.
“……예!?”
[부단장들이 동굴로 진입하겠다는 말을 남긴 그날, 성물을 통해 신들의 의지를 느꼈습니다. 무언가 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하계에 간섭해야겠다는 의지를요.]“설마…….”
성기사단이 전멸했다는 이유만으로 신들이 나선다?
성국의 역사에 그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었는데?
로건으로선 쉬이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성녀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저와 리첸티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아마도 성물을 이용해 사도를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우웅.
목에 걸린 리첸티아를 거세게 움켜쥐는 하먼의 모습을 로건은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그 추측이 전부 사실이라 해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나머지 성물 중 다섯 개는 하먼 경께서 숨겼다고 하셨으니.”
하지만 그 말을 들은 하먼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게론의 성물 아우룸(Aurum)이 제 눈앞에서 허공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제가 쳐 놓은 결계가 깨어져 나간 것도 느껴졌습니다.”
“그럼…….”
“예. 아마 다른 성물들도 이미 ‘희생자’를 찾아 움직인 듯합니다.”
[맥라인 신전과 카론 신전에 있던 성물 역시 사라졌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하먼의 말에 성녀까지 부언하며 증거를 보탰다.
“하……. 그럼 확실하겠군요.”
[예. 성물들이 사라진 것은 사도화 이외의 문제로 생각하긴 어렵습니다.]물론 아직 남은 의문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했다면 진작 그리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왜 이제 와서 그러는 거죠?”
[이번 일로 인해 신들이 큰 손해를 감수한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다만 그 손해가 무엇인지는, 저희로서도 알 도리가 없지만요.]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 이럴까.
로건은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모든 것이 다 잘 풀리고 있는 줄 알았더니, 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일리아 때를 생각해 보면, 갑자기 8클래스급 강자 일곱 명이 생겨난다는 뜻과 같았다.
그것도 자신을 죽이려 하는 강자들이.
그렇다면…….
“어떤 사제가 사도가 될지 알아낼 방법은 없습니까? 그걸 미리 알 수 있다면 제가…….”
죽여 버리겠다.
이 자리에 생략된 뒷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이는 없었다.
[음…….]일리아는 잠시간 고민하더니 어두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거의 확실합니다만, 나머지 다섯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현 교단은 지위와 성력이 비례하는 경우가 적으니까요.]“두 사람이라면……, 오스틴 전 교황님과 자일 사제님이군요.”
[예. 그 두 분은 이미 제가 따로 폐관 수행을 ‘권해’ 드렸습니다. 의문은 표하셨지만, 일단은 기꺼이 창문도 없는 면벽 수행장에 들어가셨지요. 제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은 챙기고 있습니다.]불쑥 끼어든 하먼의 목소리에 일리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보탰다.
그에 로건이 의아한 시선을 던지자, 하먼이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지난번 빅토르 경과 중앙 신전에 들어갔을 때, 사도가 선택했던 분들입니다. 오스틴 전 교황님은 영혼 잠식의 증세까지 보이셨지요.”
“아, 빅토르에게 들었던 것 같습니다.”
손목을 잘라 냈다고 했던가.
로건은 침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예비 사도라는 거군요.”
“예. 하지만 그 또한 임시 조치에 불과합니다.”
[그 두 분은 어찌어찌 막는다 한들 다른 곳에서 사도가 강림하고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 저나 하먼 경은 끝장입니다.]“으음.”
[성웅이라는 폐하의 지위 역시 철폐되겠지요. 성국의 전력 또한 이미 망해 가는 제국보다는 맥라인으로 향할 테고요.]이어지는 일리아의 말은 지극히 현실적이었기에 더욱 암담했다.
‘산 넘어 산이라니…….’
하지만 이내 다른 의문이 들었다. 그 시기에 대한 의문만큼은 여전히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들이 무슨 페널티를 지느냐보다는 가불가의 문제.
애초에 이런 일이 막무가내로 가능했다면, 굳이 지금까지 끌 필요가 있었을까.
“왜 하먼 경을 장악하는 데 실패했을 때, 그때 하지 않았을까요?”
“……확실히 아리아가 무언가 망설이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만.”
[……그때는 그 손해를 감수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해진 거고요. 그들 기준으로.]“그렇지요. 저를 죽여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일을 이렇게까지 벌이진 않았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이번 일로 신들이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겠지요.”
성녀의 말에 동조한 로건이 마른 입술에 침을 발랐다. 말을 이어 가다 보니 점차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럼 지금은요? 그때와 뭐가 달라졌지요?”
“전쟁……이 아닐까요?”
하먼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 로건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맥라인이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게, 과연 그들에게 큰일일까요?”
[……그건 아니겠죠. 신들이 그런 전쟁 결과 따위에 신경 쓸 것 같지는 않습니다.]“아……. 하긴, 아리아 역시 인간 세상의 세력 판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요. 그럼 왜 하필 지금일까요?”
하먼이 말을 보태자 일리아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 말씀은…….]“성기사단이 전멸한…… 아니 소식이 끊긴 그 동굴, 거기서 일어난 일이 신들을 자극한 것이 아닐까요?”
[……역사에는 성기사단의 정예뿐만 아니라 전체가 전멸당한 일도 몇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사도가 강림하지는 않았고요.]“예. 그 또한 신들이 인간의 세력 구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 상대가 카셀 마탑이니까요. 잘 아시는 대로, 9대 신들이 가장 경계하고 있는 지브릭 카셀을 부활시키려고 하는.”
로건의 그 말에 일리아와 하먼의 얼굴이 경직되었다.
[……단순한 함정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단순한 함정으로는 신성 오러를 쓰는 초인 셋을 죽이진 못하겠지요.”
[그렇다면……]“카셀 마탑이 그곳에서 무언가 일을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신들이 성기사들을 통해 그것을 봤다면, 그로 인해 신들이 무리수를 둔 것이라 생각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요?”
[……으음,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어쩌면, 아니 높은 확률로 이번에 강림하는 사도들의 목적은 그저 저를 죽이는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로건의 말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시지요. 그리고 제가 일단 노비엔스로 가겠습니다.”
“폐하!?”
[폐하께서 직접이요?]“사도가 그대로 카셀 마탑과 싸우려 한다면 최상이겠지만, 혹시나 성국을 움직이려 한다면 노비엔스로 올 테니까요.”
정말 그리된다면 먼저 찾아내 죽이겠다는 뜻.
일곱 혹은 다섯 모두라면 모를까 하나씩이라면, 아니 둘이라도 지금은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로건의 말에 담긴 속뜻을 읽어 낸 두 ‘배교자’의 안색이 흐려졌다.
[그래도 지금 맥라인의 군주께서 자리를 비울 상황이……]“본국으로 회군하는 사람은 대역이면 충분합니다. 혹시, 희생될 사제가 걱정돼서 그러시는 겁니까?”
[……부인하지 않겠습니다.]“신들에게 먹혀 사도가 된 자는 구원의 여지가 없습니다. 두 분 같은 상황이 다시 생기기란 사실상 불가능하지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알겠습니다. 폐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마음을 굳힌 듯 결연한 표정을 짓는 성녀의 모습을 끝으로, 통신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어딘지 모를 회선에서 강제로 연결된 통신. 거기서 전해진 소식 하나가 로건의 행로를 바꾸었다.
[골렘 마스터의 육신은 우리가 데리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직접 이곳에 오신다면 온전히 돌려 드리지요.]“허, 일국의 왕이 고작 신하 하나 때문에 함정인 게 뻔한 곳에 제 발로 찾아갈 것 같나?”
[자기 사람을 매우 아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국 공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골렘 마스터를 버리시겠다는 겁니까?]그야말로 싸구려 도발이었지만, 로건은 오히려 속으로 웃었다.
‘이거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브로 얼굴을 가린 통신구 속 마도사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나더러 너희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 달라?”
말을 하는 이도, 듣는 이도 그저 핑계라는 것을 알고 있는 헛소리.
하지만 대화는 잘 짜인 연극처럼 부드럽게 이어졌다.
[예, 한 달 정도면 됩니다. 덧붙이자면, 오러마스터의 극에 이른 폐하께서 고작 저희를 두려워하실 리는 없겠지요. 물론, 원하신다면 부하들을 데리고 오셔도 됩니다.]겁나면 오지 말든가.
아직 전후 처리도 다 끝나지 않은 지금의 맥라인이 군대를 동원할 수는 없다.
그 사실을 알고 하는 도발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속셈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말에 굳이 응해 줄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클레이튼을 버릴 생각 따위는 없어.’
로건의 미간이 절로 좁혀지던 그때.
“응?”
루스펠하임 전역을 사정권에 두는 로건의 감각에 이상한, 하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파동이 잡혔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리는 또 하나의 적.
‘하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시기가 너무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처리하지 않을 수도 없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지.”
쾅.
[하! 저희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시나 보군요. 그렇다면 그게 아니라…… 폐하? 로건 왕! 진짜 간 거야!? 지금 뭐 하는……!!?]로건이 사라진 자리.
통신구 속 마도사만이 공허한 울분을 토해 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