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4)
474화루스펠하임에 있던 종군 사제, 아니 정확히는 교황의 명에 따라 치유사라는 이름으로 맥라인에 와 있던 메를린은 전쟁이 끝난 후부터 참회 기도에 들어갔다.
교황의 명이라고는 해도, 사제로서 생명을 해하는 일에 직접 손을 보탰다는 죄악을 반성하기 위해서였다.
교리에 대해 잘 모르는 아둔한 이들은 어둠과 죽음의 신, 아드가의 사제가 왜 전쟁 참여를 반성하냐는 둥 헛소리를 해 댔지만, 굳이 대꾸해 주지 않았다.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이야 아드가의 사제로서는 일상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드가 님의 가르침은 자연스러운 죽음과 편안한 안식이지, 결코 전쟁이 아니거늘.’
무지한 이들은 아드가의 사제라 하면 역병처럼 생각해 피하기 일쑤였다. 어차피 장례를 치를 때엔 다시 찾을 거면서 말이다.
어쨌거나 인간은 결국 죽음 이후를 생각하기 마련이니, 귀족들 사이에선 아드가의 교단이 가장 인기가 있다는 게 우스울 따름이었다.
‘……이런 불경한 생각을. 아드가 님, 참회하옵니다.’
메를린은 다시 작은 신상을 향해 참회의 구배를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의 영혼을 울리는 성스러운 파동이 전해져 왔다.
– 아무리 찾아봐도 그나마 네가 낫구나.
“헉!?”
기겁한 메를린이 꼴사나운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착각인가 싶었지만, 그녀의 눈앞에는 어느샌가 작은 단검이 둥둥 떠 있었다.
윤기 나는 흑색 검신과 수수하지만 고풍스러운 손잡이.
그리고 작은 단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신성력까지.
그것이 말로만 들어 온 아드가의 성물, 소포르(Sopor)라는 것을 그녀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 나의 힘을 받아들여 신의 뜻을 지상에 설파하라, 나의 사도여.
성물을 통해 전해지는 영혼을 울리는 성스러운 떨림에, 메를린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오! 신이시여……!”
사제로서 봉직한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언제나 교리를 따르며 청렴결백하게 살아온 삶.
사제들이 타락했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신이라도 더욱 모범을 보이자는 마음으로 버텨 온 고행 같은 삶이 드디어 보답을 받는 것 같았다.
– 바치겠는가.
어찌 거부할까.
“바치겠습니다!! 나의 주께 제 모든 것을 바칩니다!”
메를린은 열광적으로 외쳐 대며 자신 앞에 도달한 기적을 환영했다.
– 더 이상 고를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구나.
뇌리에 뜻 모를 목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필멸자가 신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야 당연한 일 아닌가.
메를린은 조금의 거부감도 없이 신의 선택을 받아들였다.
그와 동시에 성물에서 뿜어져 나온 성스러운 빛이 그녀의 전신을 감쌌다.
그녀의 얼굴이 환희로 물든 것도 잠시.
“끄어어어억!”
신의 간택을 받는 그 과정이,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무척 다르다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은 후였다.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토해 내던 메를린은 이내 그 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잠시 후.
– 늙고 병든 육체라. 하…….
언제 쓰러졌냐는 듯, 그녀는 기괴한 목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 엉망…….
“엉망이로군. 큼. 아, 아.”
기괴한 음성이 본래의 목소리로 돌아오는 순간.
“그래도 조금은 쓸 만하게 바꿔야지.”
우드드드득.
의미가 불분명한 혼잣말과 함께, 그녀의 육체가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주름이 가득하던 얼굴이 팽팽하게 펴지고, 새하얀 백발은 본래의 윤기 나는 검은색을 되찾았다.
“……이 머리 색 때문에 나에게 귀의했던가.”
메를린, 아니 메를린의 몸을 차지한 아드가는 이 신체의 주인이 가진 과거의 아득한 기억을 훑어보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황족도 아닌 년이…….
– 쯧, 불경하군.
– 악마 아냐!?
쫓기든 선택한 것인 검은 원을 상징으로 삼은 자신의 품 안인 모양이었다.
“뭐, 이렇게라도 쓰였으니 영광으로 알거라.”
그리 말한다 한들 이미 잠식되어 사라진 영혼에게서 대답이 돌아올 리는 없었다.
아드가는 아문다나 아리아의 경우처럼 어이없게 뒤통수를 맞지 않도록 스러진 영혼의 파편마저도 꼭꼭 씹어 삼킨 후에야 온전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주위를 둘러보고는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사방이 꽉 막힌 기도실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이렇게 했는데도 내가 가장 빠른가. 어차피 감수해야 할 손해라면 과감할 줄도 알아야 하거늘…….”
쯧.
자신도 하계의 시간으로 며칠을 망설였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사도는 그리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순간.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앙!
황금빛 빛살이 그녀의 몸을 강타했다.
우르르르르릉.
굉음과 함께 기도실의 일각이 터져 나가고, 불길해 보이는 검은 빛살이 하늘 위로 솟구쳤다.
– 어떤 놈이 감히!
조금 전까지는 분명히 인간이었을진대.
귀청이 떨어져 나갈 듯한 괴성은 둘째 치고, 어느새 허공에 떠오른 사제의 전신엔 검은 비늘이 뒤덮여 있었다.
그 머리 위쪽으로는 마치 사슴의 뿔 같은 것이 돋아나고 있었으니, 이미 그 모습만으로도 인간의 틀을 한참 벗어난 괴물의 형상이었다.
그리고 기도실을 부순 황금빛의 주인, 로건은 놈이 자신의 일격을 견뎌 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입맛을 다셨다.
‘너무 급했다.’
사도의 강림을 느낌과 동시에 제대로 안착하기 전에 죽이고자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신검 비전은 고사하고 힘을 제대로 싣지도 못했다.
그리고 저 괴물이 정확히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지금은, 놈을 한 방에 끝낼 수 있을 만한 비기는 미처 시도해 보기도 전에 차단당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놈을 상대할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니, 대답은 당당하게 나왔다.
“이 몸이시다, 괴물아!”
느껴지는 격은 최소 8클래스, 딱 예상했던 수준이었다.
– 로건 맥라인! 이 재앙의 화신이!
“그런 몰골로 지껄여 봐야 재앙을 부르는 건 네놈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 무엄하다!
“오랜만에 세상에 나오니 현실 감각이 없나 봐. 지금 누구한테 그딴 소리를 하는 거지?”
고오오오오오.
쩌저저저적.
단순한 말싸움 같지만, 검은빛과 황금빛이 충돌하는 지점에선 공간이 부서지는 듯한 기괴한 소음이 울리고 있었다.
서로 상대의 빈틈을 노리는 과정.
느껴지는 기세는 호각이다. 양쪽 다 본격적으로 힘을 끌어 올린 지금, 먼저 빈틈을 보이는 순간 끝이 날 것이다.
강림하자마자 험한 꼴을 당하게 된 사도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본체라면 입김 한 번으로 작살낼 수 있는 필멸자가 감히 자신과 대적하려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보다는 상대의 무력이 예상을 벗어난 탓이 더 컸다.
그가 생각이 없어서 지브릭의 화신이 있는 곳에 사도를 만든 게 아니었다. 기존에 가진 정보에 따르면, 자신의 사도 하나로도 놈을 능히 제압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아리아와 아게론의 정보가 잘못됐다.’
아무리 그들이 서로 경쟁하는 관계라고는 하지만 이 중요한 시점에 거짓 정보를 주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말인즉.
– 그 짧은 시간에 이렇게나 성장했다고?
8클래스급에도 못 미치던 놈이 벌써 그 극에 이르다니, 마법의 전성시대이던 초고대에도 이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던 자는 없었다.
그 지브릭조차도.
거기다 놈은 마법도 아닌 하찮은 생명의 힘을 다루지 않았던가.
‘이거 잘못하면…….’
천년의 적공을 포기하고 강제 강림을 했는데, 그 이상의 손해를 보고 퇴장하게 생겼다.
‘어쩔 수 없다.’
아드가는 그 순간 결심했다.
자존심은 잠시 접어 두고 곧 강림할 동료들과 힘을 모으기로.
하지만.
우우우웅.
파지지지직.
단숨에 공간을 접어 사라지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이 도시 전역이 눈앞에 있는 놈의 의념에 장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봤자 8클래스 정도의 힘으로 어떻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위기감은 곧 분노로 변해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 하찮은 인간 놈이!!
그 솟구치는 기세를 보며, 로건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통한다.’
의지와 권능의 힘으로 마법을 봉쇄한다는 생각이 통한 것이다.
정확히는 거대한 흐름에 불순물을 하나 끼운 것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공간 마법이라는, 그 무엇보다 정교해야 할 톱니바퀴의 회전을 멈추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래. 흔들려라, 사도여.
“그 하찮은 인간 놈에게 죽어 보시지.”
– 감히……!
과연 사도를 죽이면 신들의 본체에는 얼마만 한 타격이 갈까.
‘두 번 다시 억지 강림을 못 하게만 되어도 소원이 없겠다.’
마법을 봉쇄하는 동안에는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신검 비전은 사용하지 못하겠지만, 놈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별문제가 아닐 것이다.
‘과연 내 의지의 힘으로 마법을 어디까지 봉쇄할 수 있을까.’
이 또한 다른 사도를 상대하기 위한 시험이 될 것이다.
8클래스의 마도사와 오러마스터가 맨몸으로 싸우게 되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패 죽여 주마, 사도.’
로건은 즐거운 상상을 하며 검을 들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변수가 생겼다.
“폐, 폐하!?”
“다른 쪽은?”
“괴, 괴물!?”
천지를 떨어 울리는 소음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그리고 그중 대다수는 신전에 거하던 사제들이었다.
동시에 사도의 눈빛이 바뀌었다.
– 신의 적을 참하라!
이내 신성한 파동을 담은 그의 의지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오! 신이시여!”
“어찌 이런!”
“신의 적이라니!? 어디?”
줄줄이 뛰쳐나오는 사제들, 특히나 검은 옷을 입은 사제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 로건 맥라인이 바로……!
콰아아앙!
“컥!”
강력한 존재감을 뽐내던 신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일순간에 여인의 육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이미 루스펠하임 전역을 장악하고 있는 군주의 의념이 한 박자 늦게 사람들의 뇌리에 울려 퍼졌다.
물론, 사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 사제들은 진실된 영혼의 파동을 쫓아라! 거짓된 인간의 속임수에 속지 말라! 성웅이라 불리는 자는 신의 대적자다!
그 외침에 몰려든 사제들, 특히나 검은 법복을 입은 사제들이 복잡한 눈빛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어둠과 죽음의 신 아드가의 사제들은 사도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태 성웅이라 추앙받던 이를 갑작스레 적대하라 이른다.
아무리 사제들이라 한들 바로 명을 따르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저 모습을 보라! 악마의 비늘로 뒤덮인 괴물의 모습을! 사제들은 악마의 유혹에 저항하라!]루스펠하임의, 아니 대륙 동부의 지배자이자 전쟁 영웅의 의념이 그렇게 주장하는 순간 아드가의 사제들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사도는, 아드가는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검은 비늘과 사슴뿔은 아드가의 본체인 블랙드래곤의 특징일 뿐인데 악마로 매도하다니?
하지만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와 동료들이 만들어 낸 경전에 그들의 본체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으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 사제들은 영혼의 지시를 따르라! 로건 맥라인이 신의 적이다!
그저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뿐.
하지만 직속 사제들을 제외하곤, 악마의 형상으로 외치는 고함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어둠과 죽음이라는 불길한 개념을 상징으로 삼은 아드가의 사제는 그 수가 가장 적은 축에 속했다.
결국 진실은.
[신의 사자로서 직접 악마를 징벌하겠다!]이미 전쟁 영웅으로서, 정복자로서 성과를 거둔 인간의 말을 이겨 내지 못했다.
게다가.
꽈아아아아아앙!
“이 세계에서 꺼져라, 괴물!”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의 대적이 쏟아 내는 무력은 사도로서도 버거울 뿐이었다.
– 이 빌어먹을 필멸자 놈이!!!
극도의 분노를 토해 보지만, 인간을 개조한 반룡의 육체로도 오러마스터의 힘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나아가 놈에게 타격을 입힐 만한 대마법은 시도하는 족족 기묘한 술수에 걸려 제대로 발현조차 되지 못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완벽한 수세에 몰린 사도는 이를 갈며 저주를 내뱉을 뿐이었다.
– 네놈, 죽음 이후에 영원토록 고통받을 것을 아느냐!
“웃기지 마라! 네놈들이 진짜 신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론 그조차 냉소와 함께 그어진 황금빛 오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쩌어어어어억.
아드가의 사도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순간.
“아!”
“아악!”
“사도시여.”
아드가의 사제들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머금고 무릎을 꿇었지만, 그에 호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로건은, 그 와중에 자신의 영혼을 압박하는 거대한 존재감을 느꼈다.
[강림하여 낮아진 격 때문에 추태를 보였구나.] [하지만 필멸자, 지브릭의 화신이여. 너는 죽음 이후에 형극의 길을 각오하라.]조금 전까지 발악하던 존재의 근원이 무서운 경고를 남기며 사라졌다.
그러나 로건은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사도를 처리함으로써 그 본체가 얼마나 큰 손상을 입었는지 직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꽤 큰 타격을 받았어.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해.’
사도를 상대할 방법을 증명하고 일부 성과까지 거두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넘치도록 충분한 성과를 얻은 것이다.
다만.
‘다른 곳에 강림한 사도들은 어찌 될지……. 일리아가 걱정되는군.’
그 한 가지가 염려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