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7)
477화루스펠하임에 일어난 이변, 사도와의 충돌은 별다른 소란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드가의 사제들 일부가 큰 충격을 받은 듯 기절하기는 했지만, 별달리 화제가 되진 않았다.
또한, 공식적으로는 로건이 악마를 물리친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 아드가의 사도가 결전 중에 검은 비늘과 뿔이 돋아난 섬뜩한 모습으로 변한 게 여론 형성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역시 로건 폐하!”
“내가 그 광경 직접 봤잖아!”
“나도, 나도!”
“대체 어땠길래?”
성웅, 로건 폐하께서 악마를 물리치셨다.
과장된 소문이 퍼져 나가면서 다시금 로건의 위상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로건의 안색은 어둡기만 했다. 일리아로부터 최악의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한 달, 그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그렇군요.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성국의 출병까지 예상되는 기간은 고작 한 달. 하지만 노비엔스에서 루스펠하임까지 군대가 진격하는 데엔 또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단장들이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성국에 더 이상 초인은 없다. 하지만, 그 병력과 여론은 무시하기 어려워.’
일리아가 어떻게든 소문을 단속해 본다고 했지만, 사도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사제만 천 명이 넘는다고 하였다. 이래서야 소문이 퍼지는 건 시간문제다.
나아가, 설령 소문이 퍼지지 않는다 한들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성전을 공표하는 순간, 나는 대륙의 공적이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맥라인의 병력은 온전히 자신의 지시를 따를 것인가.
무엇보다 그렇게 되면 과연 자신은…….
‘그 힘’을 쓰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람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힘을.”
사도와의 결전은 의지의 힘에 대한 활용도를 대폭 높여 주었다.
차원 벽이 얇고 마나가 지금보다는 훨씬 풍부하던 고대, 승천한 9대신들이 어찌 신앙을 퍼트렸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한 번의 결전으로 자신이 좀 더 성장했음을 대번에 체감했을 정도로.
그러니 고민의 시간은 짧았다.
우드득.
꽉 움켜쥔 주먹이 로건의 각오를 대변했다.
“최악의 상황에선 써야겠지.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얼마 전 스스로 한계를 그어 버리지 않은 게 새삼 다행이었다.
그리고 도의적인 책임감에서 빠져나올 방법도 있긴 있었다.
“한 달 안에 사도를 모두 찾아서 없애 버리면…….”
아드가의 경우로 보건대, 사도를 박살 내면 신들은 최소 수백 년은 현세에 간섭하지 못하게 되는 듯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들이 강제 강림으로 무언가 손해를 봤다 하니, 그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몰랐다.
사도들이 현재 대륙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문제긴 하나, 그들이 강림한 목적을 뻔히 알고 있는 만큼 대략적인 위치 정도는 추론할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이 카셀 마탑과 먼저 충돌할까, 아니면 성국의 뒤에서 나를 노릴까.’
아직은 모든 게 막연하기만 한 상황에 로건이 입술을 질끈 깨무는데, 뒤에서 데미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회군 일정은 어떻게…….”
“회군은 미룬다.”
“예?”
“……점령지의 안전을 위해 두 달 더 머무를 것이다.”
“두 달이나요? 왜 그렇게까지……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그래.”
무의식적으로 ‘그 힘’을 써 버린 로건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신들의 대적자.
그에 관한 말은 그 누구에게도 쉽게 할 수 없었다. 9대신의 신앙은 대륙인의 사상 근간에 자리 잡은 진리였으니까.
‘빌어먹을.’
복잡한 마음을 달래고자 하니 생각나는 것은 오직 수련뿐이었다.
촤아아악.
연무장 전체를 장악하는 황금빛 기류는 이제 그의 의지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였다.
검을 들지 않아도, 심지어는 팔조차 움직이지 않아도 머릿속에 떠올린 그대로 그려 낸 듯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다.
바로 의지의 힘이 강해짐에 따라 로건이 얻게 된 재주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런 놀라운 성취에도 로건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질 않았다.
‘9대신과 지브릭 카셀에 얽힌 내 비밀을…….’
아내에게 말하면 알아줄까?
스승에게 말하면 알아줄까?
아니면 동생에게?
과연 그 누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웃어 줄 수 있을까.
아무리 마음의 검을 휘둘러 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끝없이 이어지던 고민은, 문득 한 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난 정말 비밀이 많은 놈이구나.’
굳이 신의 일이 아니더라도.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한 근본적인 원인, 자신이 회귀한 사실조차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그저 자신의 말을 따르면 된다고, 거의 우격다짐으로 가문을 이끌다 위기에 봉착했던 게 대체 몇 번인가.
언젠간 말을 해야지. 언젠간 사실을 밝혀야지.
그렇게 수백 번을 홀로 다짐하면서도 결국 털어놓지 못한 비밀.
한데 이제 와서…….
피식.
“……왜 그랬을까.”
사방을 유영하던 황금빛 오러가 가라앉은 순간, 문득 담담하게 뱉어 낸 독백이 마음을 울렸다.
내 사람, 내 가문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리고 결국 성공했다. 아직 마지막 고비가 남았지만 말이다.
그 모든 게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따라와 준 덕분이었다.
종종, 아니 솔직히 매번 억지를 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를…….
‘항상 믿어 주었다.’
그런 그들에게 이제라도 숨겨 온 진실을 고백한다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신을 적대한다고요? 이 배교자!’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럴 만한 사람은 없을 듯했다.
– 믿습니다, 폐하.
– 형님을 믿어야지요.
– 그럼, 내 아들인데.
– 목숨으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과분한 신뢰를 보여 주는, 과분한 충성을 바치는.
그리고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든든해지는 사람들.
그들이 주는 믿음의 범위라면, 신앙을 덮고도 남을 것이라는 확신마저 들었다.
그런데 난…….
“왜 고민하고 있었을까?”
그 혼잣말에 대한 답은 곧바로 떠올랐다.
부끄러웠다.
과거의 허물을 털어놓기가, 실수를 고백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그것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죽어라 노력해 온 만큼 그 전생을 잊어버리고 싶었다.
“……바보같이.”
지난 과오를 여태 감추기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오히려 그게 더 부끄러워졌다.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전생의 그 한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해 올 수 있었다는 것을.
그랬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겁먹었던 거야. 한심하게.”
모든 것을 이뤘다고 생각하던 차에, 어쩌면 그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 있는 재앙이 나타났다.
그러자 이룬 것들을 잃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언제는 홀로 헤쳐 왔던가?
언제는 나 혼자 전쟁을 벌였던가?
이제 와서 혼자 고민할 이유가 과연 있는가?
“……없지.”
스릉.
번민을 털어 낸 검이 검집에 들어서는 순간, 로건은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연무장을 나섰다.
그리고 당장 부를 수 있는 ‘가족’들을 전부 불러 모았다.
* * *
“무슨 일이십니까, 폐하?”
아버지와 동생, 아내, 스승, 그리고 빅토르와 빅토리아 남매.
언제나처럼 아내 옆에 딱 달라붙어 온 티르.
거기에 갑작스러운 명령 변경에 수척해진 데미안과, 소집 명령에 어리둥절하기만 한 루터와 위켄, 그리고 부르델까지.
“폐하, 왜 저까지 부르셨습니까……?”
오랜만에 직접 대면한 헤인켈까지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집무실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 로건은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어떤 한심한 놈의 후회가 그날…… 시작되었지요.”
그렇게 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여기까지가 현 상황입니다.”
마침내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
집무실에 모인 모두는 한동안 침묵에 잠겼다.
‘그래……. 그리 쉽게 납득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
로건의 낯빛이 조금 흐려지는데, 허탈한 웃음과 함께 검공이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군요.”
모두의 시선을 받은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믿지 않을 수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많은 것이 설명되니까요.”
“……!”
그 말에 놀란 로건이 검공을 바라본 순간.
“……확실히 네가 어느 날 갑자기 확 변했기는 했지.”
“예, 저도 이제 생각해 보니 대공자님의 변화가 갑작스럽긴 했죠.”
아버지와 헤인켈 역시 황당한 표정이긴 했지만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와, 그럼 당신 아니면 난 내전에서 죽었다는 거네요? 새삼 남편 잘 골랐다는 확신이 드네요.”
“귀족 학살자라니……. 그런 끔찍한 이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습니다. 리아도 있고요.”
“……오빠, 그럼 난 폐하께 또 감사드려야 하나?”
이어서 아내와 빅토르 남매의 호응도 더해지던 찰나.
데미안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전 안 믿습니다.”
모두의 놀란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는 순간.
“제가 어딜 봐서 사악한 두뇌(Evil Brain)입니까? 저처럼 착한 사람이 어딨다고. 그리고 독립군이라뇨? 저 그렇게 애국심 넘치는 사람 아닙니다.”
그 뻔뻔한 너스레에 방 안에 웃음소리가 퍼졌다.
그 상황에서, 루터와 위켄이 유쾌한 목소리를 더했다.
“신이요? 사도요? 저는 평상시에도 신전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감히 맥라인을 적대한다면, 그게 누구든 제가 이 망치로 대가리를 깨 줄 겁니다.”
“기사의 충정은 오직 군주에게만 향합니다. 신심은 그 충심 뒤에 있지요.”
“야, 인마! 니가 그렇게 멋지게 말하면 내가 뭐가…….”
“나라를 말아먹은 죄인이 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진짜 멋있는 건 혼자 다…… 흠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폐하.”
늘 그랬듯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이 이내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취했다.
그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부르델.
“……저만 별 차이 못 느끼나요. 제국 장군이나 맥라인 장군이나, 저한텐 그게 그거…… 하하. 어쨌건 계약은 지킬 겁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폐하.”
그마저도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때, 결연한 눈빛으로 로건을 바라보던 덩치 큰 청년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어려운 결심 하셨습니다, 형님. 그리고 그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알지도 못하는 전생 같은 건 생각도 안 하렵니다. 지금은 형님만 볼 겁니다.”
로니안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사도든 검은 뱀이든, 쳐들어오는 족족 베어 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믿습니다, 형님! 다시 같이 싸워 보자고요!”
– 컹컹!
그 옆에서 티르까지 우렁차게 짖는 순간, 로건은 그야말로 코끝이 찡한 감동을 느꼈다.
‘사도건 뭐건,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모조리 극복한다. 할 수 있어.’
그렇게 오랜 짐을 내려놓은 로건은 그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연무장.
파아아아앙.
‘좋아.’
마음이 가벼워진 덕인지, 몸도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좋은 고양감이 느껴졌다.
바라던 것보다 더욱 큰 믿음으로 화답해 준 마음들이 고마워서.
그리고 너무나도 즐거워서, 한순간 모든 근심이 잊혀질 정도였다.
그렇게 자유롭게 춤추던 그의 검은, 어느 순간 황금빛을 넘어 그야말로 태양과 같은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로건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또 다른 영역에 들어선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
영혼과 공간의 권능을 넘어, 인과의 흐름까지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
그 흐름을 비틀어, 자신의 의지만으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미약하게, 감으로 사용하던 권능이 점차 완전히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의지의 힘이 이런 거였구나.’
순수하게 감탄하던 로건이 마침내 그 권능의 자락을 확고히 움켜쥐려던 그 순간.
“전하노라, 지브릭 카셀의 화신으로 정해진 자여.”
갑자기 공간을 가르고 나타난 늙은 사제의 모습이 그 몰입을 깨고 말았다.
“이, 이런……!?”
하지만 분노하는 로건의 모습에도 아랑곳없이 노사제는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지브릭 카셀의 잔당을 정리하라. 그리하면 우리의 칼이 너를 향하지 않을지니. 너는 진정한 성웅으로서 만인의 추앙을 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놈들의 좌표를 전하겠다.”
퍼어어엉.
푸화학!
노사제는 그 말을 끝으로 전신이 터져 나갔다.
그리고 이내, 산산이 조각난 몸에서 떨어져 나온 피와 살점들이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지도 모양을 형성했다.
로건 역시 이미 알고 있는 지역의 좌표를.
“흐, 이것들이…….”
신이라는 놈들이 이토록 치졸하단 말인가.
자신의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뒤에 숨어서 수작을 부릴 정도로.
‘잠깐, 왜 굳이……?’
로건은 잠시 머리를 싸맨 끝에 금세 해답을 도출해 냈다.
이미 하나가 자신에게 당했으니, 괜히 모습을 드러내 손해를 당하고 싶진 않은 모양이었다.
나머지 여섯이 모두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자신을 이길 수 있을 텐데도.
“작구나. 정말 그릇이 작은 놈들이었어.”
솔깃한 제안이기는 했으나, 로건은 이미 일리아를 통해 전해 들은게 있었다.
바로 버림받은 자들, 즉 자신이 바꾼 역사에 태어난 아이들을 놈들이 어찌 처리하는지를.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는 수작을 부리다니?
‘뒤통수를 치겠다, 이건가.’
신계에서 자기들끼리 수천 년을 놀다 보니 지능이 바닥까지 떨어진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감히 인간 주제에 신의 제안을 거절하진 못할 거라는 오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용해 줘야지.’
전설의 한 조각.
9대신의 추악한 단면이 로건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