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8)
478화
“온다고? 별다른 조건도 없이?”
“예. 골렘마스터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첫 번째 통신에선 무시하는 것 같더니, 두 번째에선…….”
“협박도 안 했는데?”
“예.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마 탑주님의 책략이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노인의 눈썹이 찡그려졌다.
책략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일 만한 게 아니었다. 그저 영혼이 소실된 반 시체를 미끼로, 로건 맥라인의 심기를 건드려 본 것에 불과했다.
‘불응하면 맥라인의 점령지에 무차별 테러를 가하려고 했는데…….’
맥라인령으로 선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땅에서 대마도사급의 테러범이 설친다면, 열이 받아서라도 쫓아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그런데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응했다니?
화신 놈이 자기 사람을 아낀다는 말은 들었지만, 설마 뻔한 함정에 제 발로 걸어 들어올 줄이야.
‘겁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있어서?’
오러마스터, 그것도 신인의 경지를 넘보는 수준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잘됐다는 생각보단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철저히 살펴라. 특히 맥라인군의 움직임은 놓쳐선 안 된다!”
“예!”
전란의 와중에 희생된 생명과 영혼의 힘이 이미 이 ‘성지’에 가득하니, 수준 이하의 병력을 끌고 와 봤자 제물이 될 뿐이다.
그러나 전쟁의 신, 오러마스터가 지휘하는 대병력이라면 또 모르니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맥라인이든 성국이든, 군대가 움직일 기미가 보이면 곧장 맥라인 전역에 테러를 가하겠다 전해라. 그리하면 적어도 군단을 이끌고 오지는 못할 터이니.”
“예, 알겠습니다.”
“……드디어, 그때가 온다.”
물론 이 모든 건 로건 맥라인을 의식의 때에 맞춰 잡아 둘 수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지만.
‘그 정도야 충분히 가능하지.’
완벽하다 못해 넘치게 준비된 신체(神體)와 제물.
예상보다 훨씬 많이 모인 제단의 에너지.
그리고 그 에너지를 통제하고 다룰 두 개의 성물, 지고의 팔찌와 지배자의 법관까지.
그 모든 것이 노인에게 끝없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다만.
‘신들이 움직인다면…….’
최초에 그분의 대업을 망쳤던 신의 화신들, 사도가 강림한다면 꽤 골치가 아플 터였다.
하지만 예언에 따르면 시간이 지날수록 사도의 강림은 더 어려워질 것이고, 마지막 사도의 출현 시기도 이미 3백 년이 넘어간다.
무엇보다 자신이 신전을 농락할 때조차도 사도가 나타나진 않았다.
그 말인즉.
‘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성군단을 움직이는 것이 고작. 그 정도야 두렵지 않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제단, 더할 나위 없는 신체(神體)와 의식의 시작을 알릴 산 제물들을 보며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온 신경이 의식에 쏠린 나머지, 세상의 정보 수집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 * *
– 이제는 맥라인의 시대다.
성국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모르는 일반인들은 작금의 시대를 그렇게 평가했다. 황제가 실종되고 제국의 영토가 여러 갈래로 쪼개지면서, 자연히 대륙 최강국의 지위가 제국을 패퇴시킨 맥라인으로 옮겨진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 대다수는, 전쟁이 끝났음에도 루스펠하임을 떠나지 않는 맥라인군에게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 설마 정복 전쟁을 계속 이어 가려나?
막연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추측뿐이었다.
자연스레 세간의 시선은 맥라인군의, 로건 맥라인의 거취로 모여들었다.
물론.
– 고생한 병사들에게 휴식을 명하고 있습니다. 왕도 가끔 정원에서 모습을 보일 뿐 휴식 중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들의 불안을 해소해 줄 만한 정보는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렵, 그 뜨거운 관심의 주인공은 제국 북서부에 자리한 어느 산맥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제 온다고는 말한 적 없지. 굳이 놈들의 시기에 맞춰서 올 필요는 없으니까.’
후읍.
가볍게 들이켠 숨과 함께 확장되는 감각이 주변의 어둠을 뚫고 사방의 모든 것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카셀 마탑의 전령이 말한, 그리고 루이사가 전달했던 그 장소는 이제 그리 멀지 않았다.
그리고 반경 수 킬로미터를 가뿐하게 범위 안에 넣는 감각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카셀 마탑의 마법사나 마검사들의 위치를 샅샅이 파악해 냈다.
어떤 마나나 포스의 파동 없이도.
나아가 로건은 멀리서 자신을 지켜보는 꽤 강력한 여섯 사도의 존재도 인식할 수 있었다.
‘작정하고 뒤통수를 치겠다는 거지.’
대역을 세워 다른 이들은 속일 수 있을지 몰라도, 사도들까지 속이는 것은 확실히 무리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가 사도들의 능력을 확실히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착각마저도.
‘내 감각의 범위가 자신들보다 좁으리라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네놈들은 이미 내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다.’
물론 신들이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인지 능력이란 영혼의 격과도 통용되니, 아무리 사도의 몸에 갇혀 능력이 제한된 신이라도 보통의 8클래스보다야 월등할 테니까.
다만 로건은, 최근 마음속 마지막 짐까지 내려놓으며 신인의 경지에 반쯤 발을 들여놓은 몸이었다. 온전한 신이 아니라 사도 두셋 정도는 거뜬히 감당해 낼 자신이 있었다.
물론, 그 이상을 상대하는 건 버거울 테니 굳이 여기까지 온 것이지만 말이다.
‘아직까지는 다 괜찮아.’
안도의 숨을 내쉰 로건은 자신이 아는 모든 정보를 이곳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에게 전달했다.
신인의 경지에 살짝 발을 걸친 그의 감각 범위 안에도 겨우 들어올 만큼 먼 곳에 있는 아군들에게.
[내가 돌입한 후 한 시간 뒤에 지시한 대로 움직여라. 오늘 카셀 마탑의 뿌리를 뽑는다.]이내 머릿속에 전해지는 든든한 대답을 뒤로 한 채, 로건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보인다.’
단순히 카셀 마탑의 부하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변에 깔린 마법의 흔적이나 기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리하는 영혼들의 생각까지도 고스란히 읽히고 있었다.
그 덕에 이미 한계를 몇 번이고 뛰어넘은 귀신 그림자의 운신법은, 로건이 진짜 귀신처럼 움직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루이사의 정보는 틀리지 않았다. 이 정도면 확실히 본거지라 봐도 무방해.’
왜 은신처 안이 아니라 바깥에 이렇게 많은 병력이 나와 있는지가 의아했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거라면 그 역시 납득이 갔다.
로건은 사방에 흩어진 병력의 눈을 피해 놈들의 은신처, 동굴 입구로 다가갔다.
자신이야 이렇게 은밀하게 움직이지만, 과연 사도들도 그럴까?
‘자신보다 한참 못한 이들을 피해 몸을 숨기면 신이 아니지.’
하먼과 일리아에게 들었던 신들의 성격을 떠올린 로건은 피식 웃으면서 ‘귀신’이 되어 동굴 안으로 스며들었다.
설령 사도들도 자신처럼 몸을 숨겨서 들어온다 한들 크게 상관은 없었다. 어떻게든 충돌을 유도할 생각이었으니까.
무너진 동굴과 그 안쪽에 깔린 인식 저해 마법은 로건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가 거침없이 동굴의 안쪽으로 나아가는 순간.
– 꽈아아아아앙!
– 버러지들이!
– 꺼져라.
예상했던 대로, 동굴 밖에서부터 요란한 폭음과 괴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역시.’
로건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대놓고 소란을 피워 준다면 생각해 둔 작전을 쓰기가 더 수월할 터였다. 사도들이 인간의 육신에 갇혀 있는 이상, 마탑의 병력을 상대하면서 자신에게 온전히 신경을 쓰기란 어려울 테니까.
로건은 어느새 황금빛 오러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애검 룩스를 높이 쳐들었다가 전면을 향해 가볍게 찔러 넣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움직임은, 실로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우우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콰!
황금빛 광선이 물결치듯 쏟아지며 전방의 공간을 길게 관통했다.
신인의 경지에 반쯤 발을 들여놓고 나서야 가능해진 재주.
신검 비전의 두 가지 식, 파도 가르기와 금속 가르기의 융합.
그 결과물이 복잡하게 얽힌 통로들을 지나 더 넓은 공간에 다다르는 순간.
– 왔느냐!!!
로건의 몸이 흔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음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그의 몸이 두 개로 갈라진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중 하나는 강렬한 존재감을 뿌리며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고, 다른 하나는 그 자리에서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그 직후.
[동굴 안쪽이다.] [이놈 성격이 이렇게 급했었나.] [놈을 쫓는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지.] [돌입한다.]뒤이어 나타난 사도들이 한 줄기 빛살로 변해 동굴 안쪽으로 사라졌다.
‘역시, 눈치 못 챘군.’
반으로 접힌 공간, 그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로건은 이동하는 사도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스로의 영혼에 손을 대 한계를 만들어 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오러마스터 극한에 다다른 상태에서 상승을 위한 욕망을 내려놓는 순간, 또 다른 길이 보였다.
정확히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길을 찾아낸 것이었다.
공간과 영혼을 가르는 권능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흔적만을 지우는 길을.
스스로의 영혼에 상처를 낼 궁리까지 한 오러마스터이기에 떠올릴 수 있었던 방법.
그것은 이내 귀신 그림자의 잔영과 합쳐져, 유사 이래 존재한 적 없었던 극한의 기만술을 탄생시켰다. 신의 본체라면 몰라도, ‘고작’ 8클래스의 수준이라면 결코 알아챌 수 없는 수준의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전투 시에는 써먹지 못할 잔재주지만, 이럴 땐 그 어느 기술보다도 톡톡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재밌군.’
로건은 그렇게 존재감을 지운 채 그대로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속도는 확연히 느려질 수밖에 없었지만, 천천히 동굴 안쪽으로 향하는 그의 표정은 느긋하기만 했다.
– 거짓된 신의 종들아!
– 어림없다!
– 지브릭의 대사제, 뿌리를 뽑아 주마!
– 화신은!?
– 이놈부터 잡아!
콰아아아아앙!
애초에 의도했던 대로, 두 적들이 싸우는 소리가 마치 감미로운 음악처럼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동굴 속 광장, 그곳에 펼쳐진 광경은 로건의 마음을 더욱 흡족하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 이 빌어먹을!!”
노인은 눈앞의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로건 맥라인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는 이미 들었다.
그리고 놈이 어떻게 숨어든다고 해도, 이 의식의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그 존재가 자신에게 발각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거기까지만 이루어지면 의식은 시작되고, 그분이 강림한다.
그 평생을 바친 대업이 이뤄지기 직전이었다.
그랬기에 처음 카셀의 마력을 분쇄하는 황금빛이 쏟아졌을 때는 오히려 환호성을 질렀다. 그 뒤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빌어먹을 것들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도들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음을.
생각지도 못한 최악의 존재들이 눈앞에 나타나자, 좀처럼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생각의 회로가 멈춰 버린 것이다.
“사도!!”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노인의 몸에서 짙은 회색의 마력이 솟구치며 지고의 팔찌와 지배의 법관이 활성화되었다. 그와 동시에 제단에 모인 마력이 그에게 일순간 경지를 뛰어넘는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악마로 화한 탑주는 그분의 주적들을 향해 거센 분노를 쏟아 냈다.
– 거짓된 신의 종들아, 사라져라!
사도들이 예상외의 상황에 혼란스러워하는 순간, 검붉은 불길이 그들을 휘감았다.
물론.
“어림없다!”
제각각 푸르고, 희고, 붉고, 노랗고, 검은 각양각색의 빛을 뿜어낸 사도들은 그 공격을 가볍게 뿌리쳤다.
그러고는 일제히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놈은?”
“화신은 어디 갔지?”
“우리가 속았다고!?”
제각기 불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도들은 눈앞의 악마, 탑주는 철저히 무시할 뿐이었다.
그 기막힌 광경에 헛웃음을 흘리던 탑주가 이내 한층 흉악한 기세를 피워 올렸다.
– ……신이시여. 용서하소서.
이내 기괴한 음성과 함께 제단의 존재감이 살짝 줄어들더니, 악마로 변한 탑주의 체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이런.”
“놈의 일은 나중이다.”
“우선 지브릭의 대사제부터 죽인다.”
아이온의 사도, 푸른 빛을 뿜어내던 사내의 목소리를 끝으로 찬란하고 성스러운 빛들과 검붉은 불꽃이 어지럽게 얽혀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