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79)
479화화신을 만들어 낸 신은, 사도의 몸에 강림한 신은 어떤 느낌일까.
사도들의 반응이 지나치게 어리석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에서 이어진 생각이었다.
그것을 물었을 때, 일리아와 하먼은 곧바로 대답을 내어놓았다.
– 아주 작은, 개미만 한 인형에 의식을 억지로 동기화하는 기분일 겁니다. 감각도, 힘도 그 크기에 맞춰서 제한된 채로요.
– 그 안에서 개미들과 아웅다웅하는 것이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사람과 똑같다.’
신들도 마음이 급해지면 판단력이 저하된다.
그 사실을 눈앞의 사도들이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냥 처리한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것이었다. 없애 버려!”
“사라져라, 지브릭의 잔재여!”
자신의 속임수에 당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이 보이는 반응은 예상한 그대로였다.
– 애초에 폐하를 속이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 그토록 허술한 겁니다.
– 말 그대로 ‘따르면 좋고, 아니면 말고.’ 정도의 생각이겠지요.
– 그들에겐 당연히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의 과정이 바뀌는 것뿐일 테니까요.
‘결과는 정해져 있기에 과정에 연연하지 않는다…….’
결국 자신들의 뜻대로 되리란 확신이 있기에 이런 일도 가능한 것일 터였다.
다만 예상외였던 것은 카셀 마탑주의 선전이었다.
거대한 악마의 형상으로 변한 것도 놀라웠지만, 분명 사도 하나하나에 못 미치는 경지임에도 혼자서 그들 전부를 상대하고 있었다.
‘저 마법진…….’
광활한 광장 바닥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 마법진이 아마도 그 힘의 근원인 듯했다.
– 배덕자들이여, 너희들은 절대 그분의 강림을 막지 못한다!
발악하듯 토해 내는 악마의 고함과 함께 검붉은 불꽃이 기세를 더해 갔다.
어울리지 않는 면류관과 은색의 팔찌가 한순간 번뜩이며 힘을 더하는 순간 사도들이 일제히 튕겨 나갔다. 분명 위력적인 마법이긴 했으나 8클래스급의 사도 여섯을 동시에 물리칠 만한 힘은 아니었는데도.
‘이상한데?’
그 과정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로건은 그 이유를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몸을 사린다, 사도들이. ……어이가 없군.’
어떻게 신들의 실체는 알면 알게 될수록 더욱더 실망하게 되는 것일까.
사도들은 적극적으로 마탑주를 압박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공격이 조금이라도 제게 집중되는 것 같다 싶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로 빠져 힘을 아꼈다.
여섯 사도 모두, 누구 하나 예외 없이.
마탑주가 부족한 힘으로라도 팽팽한 접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었다.
물론 그 불편한 대치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심하군. 이러는 동안에도 신성은 소모된다.”
“네가 먼저 손해를 감수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아이온.”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 같이 하지. 공평하게 1할이면 되겠지?”
“동의한다.”
“나 역시.”
“좋아, 간다.”
기괴한 목소리들이 폭음을 뚫고 울려 퍼지는 순간, 가장 먼저 말을 꺼낸 사도부터 모습이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전신을 뒤덮는 푸른 비늘과 등 뒤에 돋아난 날개. 도마뱀의 형상으로 변한 머리 위로는 4개의 뿔이 생겨났고, 평범하던 체격은 순식간에 두 배로 커져 법복을 찢고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드러냈다.
전설 속 용인족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그보다는 조금 더 비대한 느낌.
뒤이어 그 옆에 있던 사도도 비슷한 형상의 괴물로 변했다. 차이가 있다면 푸른 비늘 대신 금색 비늘이 돋아났다는 것 정도였다.
이어서 다른 사도들 역시 일제히 모습을 바꿨다.
전형적인 드워프의 형상에서 그대로 거대화된 사도와 커다란 엘프의 형상을 한 사도, 그리고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붉은 피부의 오크가 된 사도.
마지막으로, 먼저 비늘이 돋아난 다른 둘에 비해 그야말로 날렵한 인상과 훨씬 큰 날개를 가진, 진짜 용인족의 형태로 변한 사도까지.
여섯 사도는 순식간에 인간의 형태를 벗고 본신의 일부를 드러냈다. 그사이 사방을 감싼 검붉은 불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 저마다 각양각색의 빛을 뿌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8클래스의 한계에서 살짝 벗어난 건가.’
저 상태의 사도라면, 지금의 자신이라도 하나 이상을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변신한 사도들의 육체, 즉 그들을 현세에 머무르게 하는 근원이 서서히 붕괴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
‘잘해야 일주일이나 버틸까. 여태 변신을 안 한 이유가 있었어.’
로건은 엄청난 긴장감 속에서 조용히 숨을 죽이며 전황을 지켜보았다.
– 이, 이럴 수가!
거대한 악마도 그 압박감에 몸서리를 치던 그 순간.
충돌하던 거대한 기운과 폭음이 사라진 공간 뒤로, 장작더미처럼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지만, 하나같이 질 좋은 옷을 입은 것이 어딘가의 귀족들 같았다.
그중에서도 로건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쪽 구석에 끼어 있는 익숙한 얼굴들이었다.
금발의 잘생긴 중년인과 그 옆에 쓰러진 흑발의 여인, 그리고 흉터투성이의 장년인.
‘……클레이튼, 루이사.’
금발 사내, 동익왕은 몰라도 그 두 사람은 그냥 외면할 수 없었다.
지금의 맥라인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큰 공헌을 해 준 클레이튼은 당연히 구해야만 한다.
그리고 루이사 역시.
– 저 또한 기사입니다. 그게 뭐든, 절대 아닙니다. 저는 가족이, 우리 가문이, 왕국이 먼저입니다.
그녀를 본 순간 동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오는 목소리와는 다른, 그 영혼이 말하던 진심 또한 머리를 스쳤다.
– 구하고 싶습니다.
동생의 그 간절한 바람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둘 다 구한다.’
로건은 각오를 다지며 입술을 깨물었다.
어리석은 짓일지도 몰랐다.
공간을 갈라 존재감을 죽이는 이 수법은 최근에 개발한 편법으로, 아직 그 지속 시간을 시험해 보지 못했다. 중간에 모습이 드러나 버리면 최악의 상황이 닥쳐 올 것이다.
게다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가능성도 있었다. 악마로 변한 마탑주는 결국 사도들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고, 육체의 붕괴를 감수하고 본신을 드러낸 사도들은 짧으면 일주일, 길어야 보름을 넘기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야 할 테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저 두 사람이 희생된다면, 다른 ‘가족’들을 볼 면목이 없게 된다.
리아도, 동생도.
설령 모른 척한다 한들 스스로의 양심은 속일 수 없을 테니까.
‘움직인다.’
여태까진 걸리지 않았으니, 지금은 그저 시도해 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놈들이 다시 충돌하는 때를 노린다.’
로건이 눈을 빛내는 순간, 사도들이 마탑주를 향해 돌진했다.
이내 검붉은 불꽃과 각양각색의 빛들이 다시금 거세게 충돌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이전과는 판이했다.
– 크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악마의 두꺼운 팔이 잘려 나가더니, 순식간에 검은 연기로 변해 사라졌다.
이대로라면 생각보다 빨리 결판이 날 것이다.
로건이 조급해진 마음을 안고 은밀히 움직인 그 순간.
“거기 있었구나.”
푸른 용인(龍人)의 노란 눈이 일순간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지브릭의 후예여.”
콰지직.
공간을 절단한 권능이 힘없이 깨어져 나가고, 로건의 모습이 드러났다.
“감히 신을 기만하다니.”
“어리석은 인간이여.”
“대가를 치러라!”
사도 중 오크와 엘프, 그리고 드워프가 그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엄중한 분노를 쏟아 냈다.
동시에, 오른팔을 잃고 비명을 지르던 악마가 환호성을 터트렸다.
– 로건 맥라인! 크하하하! 제물이 제 발로 찾아왔구나!
쿵.
번쩍.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악마가 발을 구르자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터져 나오며 장내를 폭풍처럼 휩쓸더니, 일순간 사도와 로건의 전신을 압박하며 그들의 움직임을 막았다.
‘윽!?’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법진의 범위에도 들어가지 않았던 노력이 무용해지는 느낌.
사도들 역시 눈이 살짝 커진 것이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공간과 영혼의 권능을 완전히 틀어막는 속박의 힘.
그것도 8클래스를 반쯤 초월한 존재 일곱을 동시에 묶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엄청난 위업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 그분이 오신다!!! 우하하하하하!!
쩌저저저적.
부스스스스.
검은 연기로 변해 스러져 가는 악마의 입에서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온몸이 으스러지고 있으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울까.
악마, 탑주의 육체는 결국 은색의 면류관과 팔찌만을 허공에 둥둥 띄워 놓은 채 사라지고 말았다.
마침내 검은 연기까지 모두 흩어진 순간, 가려져 있던 공간에서 왼팔이 잘린 장년인의 육체가 허공으로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찬란한 황금빛 갑옷을 입은 사내는 로건에겐 이제 지긋지긋한 인물이었다.
‘황제!?’
탑주가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던 이유가 저자 때문일까?
대체 황제가 왜 저기에?
온몸을 속박하는 강렬한 힘과 비례해 의문도 커져만 가는데.
은색의 면류관과 팔찌가 각각 황제의 머리와 오른팔에 끼워졌다.
– 드디어……!
순간, 낯설지만 분명히 들어 본 적 있는 목소리가 로건의 귓가를 강타했다.
그리고 그 정체는 사도들의 입을 통해 먼저 밝혀졌다.
“지브릭!”
우우우우웅.
다시금 각양각색의 에너지가 사도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지만, 카셀 마탑주가 만들어 놓은 강력한 속박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빨리 처리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누가 이 사슬을 끊고 나서라!”
‘누가 나서라?’
마치 누구라도 나서기만 하면 당장이라도 속박을 끊어 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나 정작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사도들의 뒤쪽으로, 그보다 더욱 시선을 사로잡는 광경이 보였다.
스스스슥.
마법진의 중심부, 황제의 뒤쪽에 쌓여 있던 귀족들의 몸이 갑자기 급속도로 말라 가기 시작했다.
‘이런!?’
이능력이 없는 자들이 먼저 생명력을 뺏기는 것 같았기에 당장 클레이튼과 루이사가 위험하진 않을 듯했지만, 로건으로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 제물과 화신이 바뀌었구나, 어리석은 후예여. 하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지브릭 카셀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더니, 황제의 머리에 있던 면류관이 불쑥 튕겨 나와 로건에게로 날아들었다.
면류관이 로건의 머리에 완전히 씌워진 순간.
–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익숙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을 함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누군가의 생애가 빠르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건은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을 또다시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마음도 급했다.
그래서 속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브릭 카셀!!’
– 그것이 내 인생의 전환……. 후예여, 어찌 나를 알지? 분명 회귀 전에는 몰랐을 텐데.
그 말만으로도 로건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쪼개진 지브릭 카셀의 영혼은, 전생은 기억할지언정 성검 바리타스를 통해 자신을 만났던 것은 알지 못한다.
그 영혼의 일부를 자신이 소멸시켰다는 것 또한.
‘마도성자. 9대신에게 배반당하고 남겨진 동료. 그리고 내 선조. 내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나?’
– 내 역사가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가……. 뭐, 아무래도 좋다. 신인의 경지에 닿기 직전의 후예라니, 선조로서 심히 흡족하구나. 회귀에 들인 힘이 아깝지 않을 만큼.
– 내 신성을 취하고, 이 땅의 진정한 신으로 거듭나거라. 그것이 내 마지막 바람…….
‘헛소리 말고, 그냥…….’
– 응?
“꺼져라!!”
육성으로 터져 나온 고함과 함께 로건의 영혼 속에서 솟구친 황금빛이 불청객의 영혼을 일순간에 밀어붙였다.
– 이, 이게 무슨!?
지브릭 카셀의 영혼을 소멸시키고자 하는 염원의 힘.
이전에는 그 원리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회귀는 너의 힘에 의한 것이 아니다, 지브릭 카셀. 네놈과 네놈의 후예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염원에서 기인한 것이지.’
로건이 가진 염원의 힘이 유독 지브릭 카셀의 영혼에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 웃기지 마라! 그런 하찮은 것들이…….
‘그렇지 않았다면, 신위조차 온전히 손에 넣지 못한 너의 힘으로 어찌 시간을 돌렸을까.’
– 말도 안 되는 소리!
‘자랑스러운 업적을 가진, 하지만 그보다 더 부끄러운 선조여.’
번쩍.
“이제는 사라져라.”
콰지직.
나직이 뱉어 낸 한마디와 함께 로건의 머리에 씌워졌던 은색 면류관이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
– 감히!!!!!!
동굴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괴성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황제의 오른팔에 걸려 있던 은색의 팔찌가 엄청난 광채를 뿜어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