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8)
48화
“합!”
기합과 함께 퍼진 샛노란 빛과 함께 갱도 안에서 간헐적으로 떨리던 미약한 진동마저 멎었다.
“좋아. 갱도는 내가 지탱하겠다. 골렘을 써라.”
클레이튼의 말에 뒤에 서 있던 제자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서더니, 제각기 품속에서 주먹만 한 푸른빛 수정을 꺼내 들었다.
‘마정석!’
로건이 그것을 보며 눈을 빛낼 때.
부릅뜬 눈으로 주문을 암송하던 이들이 무너진 암석 더미를 향해 일제히 마정석을 던졌다.
그그그그.
귀를 긁는 소음과 함께 눈앞에 보이던 암석 더미의 상당 부분이 2m가 넘는 돌 거인 열 개체로 다시 태어났다.
“오오!”
“과연 마법!”
숨죽여 지켜보던 인부들의 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건 역시 비슷한 마음으로 마법사들을 지켜보았다.
‘골렘을 만들어 내는 것만으로도 몇 미터 분량의 암석 더미를 치웠어.’
게다가.
“사람들이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서둘러!”
“예!”
클레이튼의 지시에 제자들이 우렁차게 대답한 순간.
돌 거인, 골렘들이 암석 더미를 연달아 들어내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쿵. 쿵.
그그그극.
돌 거인은 움직이는 속도도 인부들보다 훨씬 빨랐고, 사람 몸만 한 바위를 쉽게 들어 올릴 정도의 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골렘들이 2차 붕괴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괴력을 발휘하니, 자연히 작업은 인간 인부 수십이 투입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었다.
‘오……!’
전생에서 전장의 마법사만 보아 온 로건으로서는 골렘 학파 마법사들의 유용성에 새삼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감탄에 호응하듯 골렘들은 무서운 속도로 무너진 암석 더미를 치워 냈고, 로건은 불과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생존자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 살았다!”
“이반! 포마로프!”
“로벨, 살아 있었군!”
생존자들이 환호와 함께 다른 인부들을 끌어안을 때.
로건 역시 쓰러진 하마르의 상태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타박상과 경미한 내상 정도다. 그냥 놀라서 기절한 거군. 다행이야.’
가장 중요한 걱정이 사라지자 새삼 눈앞의 광경이 놀랍게 다가왔다.
작지 않은 규모의 광산 붕괴 사고가 발생 다섯 시간 만에 완전히 해결된 것이다.
그것도 그중 세 시간 이상이 로건에게 보고가 들어가고, 클레이튼과 마법사들이 지원을 위해 광산으로 오는 과정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실제 작업 시간은 두 시간도 되지 않았다.
“확실히…… 대단해.”
암석을 들어내는 작업이 끝나자 피해자를 부축하여 이동하는 골렘을 보며 로건은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갖고 싶다.’
아마도 대지의 마법사인 만큼, 다른 이들은 몰라도 클레이튼은 이것이 금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처음 대지를 고정하는 마법을 사용했을 때 클레이튼이 순간 흠칫하며 로건과 눈을 마주쳤고, 그 순간 로건은 클레이튼이 이 광산의 정체를 알아챘다는 것을 깨달았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피고용인이 자신의 비밀까지 알고 있다.
그것을 무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완전히 아군으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마탑의 장로를 어떻게…….’
당장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클레이튼이 비밀을 지켜 주길 바랄 수밖에.
로건이 그렇게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고민을 하고 있는데.
“로건 공자. 혹시 영지에 마탑 하나 필요 없으시오?”
“……예?!”
살벌한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클레이튼이 예상외의 말을 던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한참 고민하던 주제의 당사자가 오히려 먼저 다가오자, 로건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슬슬 독립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서 말입니다. 지금 탑주와의 사이도 보셨다시피 좋지 않구요. 그리고 로건 님, 아니 이 영지는 작은 마탑 하나 키울 만한 여력은 충분한 것 같으니까요.”
주변을 둘러보는 클레이튼의 눈에서 욕심과 희망이 느껴졌다.
‘마탑을 소유한다?’
영지에 따로 마탑을 보유하고 있는 영지는 왕국에도 몇 되지 않았다.
얼핏 생각하기엔 마탑이 있으면 영지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도, 실상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보통은 전쟁이 아니면 잘 나서지도 않는 데다 평상시에는 돈 먹는 하마나 다름없는 것이 마법사들의 모임, 마탑이니까.
그래서 마법사가 꼭 필요할 때가 오면 다른 마탑에 의뢰나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당장 내년에 전쟁을 앞둔 지금이라면?
‘무조건 이득이지.’
댐 공사 현장에서 클레이튼이 보여 준 거대 골렘이 떠올랐다.
전투에는 어울리지 않겠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그건 기사를 상대할 때나 그렇다는 거고.
그런 괴물을 전쟁에 활용할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었다.
‘마정석이 있으면 훨씬 강해진다고 했었지, 아마?’
슬쩍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탈진하고 놀란 피해자들을 양손에 하나씩 끌어안고 나르는 골렘들이 보였다.
로건은 그 모습을 보며 그들을 전쟁에 활용할 여러 방안을 생각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답이 정해져 있는 문제였다.
“얼마나 어떻게 지원해 드릴까요? 아니, 뭐가 필요하시죠?”
로건은 먼저 말을 꺼낸 클레이튼이 오히려 당황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 * * 성에서 깨어난 하마르의 솔직한 고백으로 광산 사고의 이유는 금세 밝혀졌다.
“붕괴 스크롤을 쓰다가 잠깐 졸았다고?”
“……그렇소이다. 요새 좀 무리를 하다 보니.”
하마르는 누워 있는 상태에서도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돌렸지만, 로건은 그를 탓할 수 없었다.
그를 무리하게 만든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오. 공사는 곧 다시 진행할 수 있으니.”
“굳이 신경 쓰지 말고 한 일주일 푹 쉬어. 아니다. 다 나을 때까지 아예 푹…….”
“이 정도면 하루면 털고 일어…… 예?”
“뭐?”
서로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주종의 시선이 어색하게 교차하고.
“지금…… 쉬라고?”
“지금…… 안 쉬어도 괜찮다고?”
“쉬, 쉴 거요! 절대 쉬고 말겠소!”
혹여나 다른 말이 나올까, 하마르는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로건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돌아섰다.
그런 주인의 뒷모습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드워프는 한 손을 제 머리 옆에서 빙빙 돌리고 있었다.
로건이 하마르를 뒤로 한 채 방문을 닫고 나오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클레이튼이 보였다.
그는 사제도 신전도 없는 촌구석 영지에 몇 되지 않은 치유사가 사고에 휘말린 인부들을 돌보느라 바쁠 때, 대지의 마법으로 하마르를 치료해 주었다.
비록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원기를 북돋아 주는 수준이었지만, 로건은 그런 그를 보며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하마르와 인부들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 진심 어린 인사에 클레이튼의 살벌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가 맺혔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니 당연한 도리지요. 그리 감사받을 만한 일은 아닙니다.”
“겸양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충분히 훌륭한 일을 하셨습니다. 인사뿐만 아니라 대가 또한 충분히 치르겠습니다.”
“하하. 괜찮습니다. 이 정도로 뭘 그리…….”
“돈 없으시잖아요.”
“큽!”
덕담의 와중에 갑자기 뼈를 얻어맞은 클레이튼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학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골렘 마법은 쓸 때마다 돈이 왕창 들고.”
한 대.
“전투 효용성을 따지기도 어려울 정도로 가성비가 떨어지니 토벌 의뢰는 어렵고.”
두 대.
“아티팩트를 생산할 수 있는 계열도 아니니, 결국 언제나 적자일 뿐이라.”
세 대.
“결국 이런 대규모 공사 지원이 특기가 되어서 대지의 마탑에서 자꾸 밖으로 빙빙 돌린다죠.”
연이어진 로건의 가감 없는 직언이 클레이튼의 폐부를 때렸다.
“고, 공자? 갑자기 왜 그런 말을…….”
그 원망 어린 눈빛을 보며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래서 마탑 얘기를 하신 것 아닙니까?”
“크흐흠. 그거야 그렇지만…….”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클레이튼은 확실히 솔직하고 좋은 사람 같았다.
로건은 자연스레 번지는 미소를 굳이 참지 않았다.
“그럼 다시 한번 확실히 묻겠습니다. 그 말은 클레이튼 님을 비롯한 제자분들이 우리 영지에 정착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입니다.”
“음, 말씀드렸다시피 저야 환영입니다. 다만 대지의 마탑과 분란 없이 이별하실 수 있을지가 조금 걸리는군요.”
“그거야 그 개…… 아니 탑주도 좋다고 반길 겁니다. 절대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클레이튼의 대답은 단호했고, 로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남아 있었다.
“그럼 지원은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하하하. 저야 대지의 마탑에서 받은 대우보다만 좋으면 괜찮습니다.”
“그거야 물론 맞춰 드려야죠. 혹시 더 바라시는 것은 없습니까?”
바라마지 않던 이들의 영입 제안이었다.
로건은 얼마든지 주머니를 풀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저는 로건 님의 인품과 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만 알아서 챙겨 주십시오.”
“……예?”
당사자도 이해할 수 없는 극찬.
어리둥절한 로건과 웃는 클레이튼의 모습이 훈훈한 대화의 마지막이었다.
* * *
“도대체 언제부터 몰래 광산을 개발하고 계셨던 겁니까! 저도 모르게! 거기 인부들도 그게 무슨 광산인지 모르던데요?!”
드웨인이 눈에 불을 켠 채 로건의 앞을 막아섰다.
주요 인부들은 테스론 성에서 구했고 본가에는 알리지도 않았다.
모르는 게 나을 거라 생각해 일부러 알리지 않았지만.
“아!”
로건이 미처 몰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손바닥을 탁하고 쳤다.
“미안. 깜박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럴 수도 있지. 바빴잖아.”
“끄으응. 좋아요, 좋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확인해 주시죠. 도대체 무슨 광산인데 그렇게까지 하신 겁니까? 매장량은 많대요? 철? 구리?”
이를 부드득 가는 드웨인의 모습을 보니 왜인지 장난기가 들었다.
“왜 그 정도일 거로 생각해? 더 써 봐.”
“으으으. 공자님, 저는 재무 담당자로서 영지의 미래를 위해 수입을 점검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장난치지 말고 그냥 말해 주십시오.”
“은광이나 금광일 수도 있잖아. 혹시 모르지. 다이아몬드나 미스릴일 수도.”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우리 주제에!”
‘하……. 우리가 뭐 어때서, 인마!’
로건은 순간 욱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표정을 감추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지.”
“에이, 장난하지 마십시오. ……진짜요? 설마 이 저주받은 가문에……”
자괴감에 절어 있는 행정관을 보니 조금 더 장난을 치고 싶었다.
“사실 구리 광산이야. 한 3년 채굴할 수 있으려나?”
“끄으으으. 그럴 줄 알았어! 그럴 줄 알았다고! 젠장, 예상 수익은요?”
“1년에 1억 골드 정도?”
“……예? 아, 1년에 1만 골드. 아니 그럴 거면 뭐 하러 개발하십니까!”
“1만 아니고 1억. 1억 골드라고.”
“하. 자꾸 장난치실 겁니까! 무슨 구리 광산이…….”
“금광이야. 미안.”
“…….”
로건이 잔뜩 기대하며 반응을 살피는데, 드웨인은 예상과 달리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왜 그렇게 봐. 이번엔 정말이야.”
“……정말요?”
“그래.”
“정말로 정말이요?!”
“그렇다니까.”
“정말, 정말, 정말입니까?”
“아, 그렇다고!”
결국 로건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드웨인은 서서히 그것이 현실임을 받아들였다.
“……허으으.”
“드웨인?”
“우와아아아아아아악!”
“윽!”
넋이 나간 것 같던 드웨인이 갑자기 괴성을 질렀다.
“공자님! 정말 거짓말 아니죠? 거짓말이면 저 그냥 칼 물고 팍 죽을 겁니다! 진짜로 금광이란 말이죠?”
“그래. 그렇…….”
“우와아아아아! 살았다! 조상님 만세! 맥라인 만세!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저주받은 가문에 이런 경사가!”
‘멋대로 저주 내리지 말라니까.’
하지만 드웨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 보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자님, 절 받으십시오! 아니, 두 번 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던가. 아무렴 어떻습니까. 절 받으십시오!”
생난리를 치며 기뻐하는 드웨인의 모습에 덩달아 기뻐진 로건은 흐뭇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좀 일찍 말해 줄 걸 그랬나.’
자기 돈도 아닌 가문의 재정이 좋아진다는 말에 저리도 기뻐하는 가신이라니.
가문의 대공자로서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조금 걸리는 것은 있었다.
‘금광이 있는 위치가 내 사유지라는 건 기억하고 있겠지? 가문이 아니라 내 건데.’
그리고 자신은 절대 수익의 전부를 가문에 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 다시는 없는 예산 쥐어짜려 머리 뽑지 않아도 된다! 카이로스 지원금 따위! 개나 줘라! 이 개 같은 놈들아! 우와아아아악! 세상을 굽어보시는 9대신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겠습니다!”
좀처럼 찾지 않던 신까지 찾아 대며 소리를 지르는 행정관을 보니 차마 입을 열기가 힘들었다.
‘뭐, 나중에 말하자. 저리 좋아하는데.’
로건의 미소와 함께 복잡하고도 다난한 하루가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