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49)
49화일주일 뒤, 하마르는 바로 병상에서 일어났다.
“늦어진 만큼 최선을 다해 복구해 보겠습니다.”
정말 푹 쉬었는지 다치기 전보다 안색이 눈에 띄게 좋아진 하마르는 로건이 놀랄 정도로 빠르게 공사 일정을 해치워 나갔다.
자연히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풀려갔다.
로건의 예상보다도 훨씬 빠르게.
“뭐? 벌써?”
“예. 이미 말씀하신 터널이라는 것을 개통하고 루터 강까지 수로를 연결했습니다. 이미 수문에 물이 가득 차기 직전입니다.
“허……. 석 달 만에…….”
여섯 달을 생각했던 공사가 고작 석 달 만에 끝났다.
너무나도 반가운 이야기에 그 길로 달려가서 수문 안쪽에 넘실거리는 물을 직접 확인한 로건은 감탄을 감출 수가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루터 강의 수위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수량 조절을 위해 터널을 파 내려간 깊이만큼만…….”
“우와. 이게 진짜 되네.”
“……뭐?”
로건의 입에서 진심이 느껴지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드워프는 충격에 뒷덜미를 잡아야 했다.
“주, 주인. 지금 뭐라고 했, 하셨소?!”
“음?”
“더 큰 거. 그 뭐냐, 더 큰 댐이라는 것도 인간이 만든 걸 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근데 뭐? 이게 진짜 되네?!”
로건은 정말 미래에서 보긴 했지만 그걸 증명할 수는 없었고.
“잘됐으면 됐지. 뭐가 문제야?”
그저 환한 웃음으로 응대할 뿐이었다.
그 웃음을 본 하마르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허으? 너, 너 그거 뻥이지! 그거 때문에 내가 뒈질 뻔, 흐어……. 야!! 오늘 너 죽고 나 죽자! 놔! 놓으라고, 마법사 양반! 오늘 아주 끝장을……. 읍!”
“하하. 그래도 이런 공사를 해 본 것도 귀중한 경험 아니겠소, 하마르 공. 인간의 힘으로 산에 구멍을 뚫고 물을 끌어들이다니. 차라리 산을 갈아엎어 버리는 게 더 현실성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하마르만큼 초췌한 인상의 클레이튼은 바둥거리는 드워프를 붙잡고 로건을 보며 웃었다.
그에 로건 역시 통쾌한 웃음으로 호응해 주었다.
“하하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클레이튼 님.”
“읍! 읍!”
“그래, 하마르. 자네 수고한 거야 당연히 알지. 잘했네.”
“읍! 읍! 읍!”
“그래, 그래. 나도 알아. 네가 1등 공신이지.”
로건은 드워프와 대지 마법사의 합은 대규모 공사에서 최고의 조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솔직히 실패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기는커녕 예상 기간을 절반 이상 단축했다.
회귀한 이후 추진한 일 중 완벽한 확신이 없었던 건 이 공사뿐이었다.
그랬던 게 이토록 성공적으로 해결되었으니 모든 것이 긍정적인 흐름을 탄 것처럼 느껴져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때, 마법사 같지 않은 억센 손아귀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하마르가 불퉁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 ‘그건’ 언제 하실라우? 예상대로라면 뭐 겨울 전에만 해도 상관은 없을 것 같은데.”
“제자들이 돕고 있으니 수로 작업은 며칠 내로 끝날 겁니다.”
“그럼 미룰 필요 있나? 고생한 인부들 다 불러 모아. 다들 봐야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냈는지.”
이미 이 공사에 투입된 인부만 8천에 가까웠다.
모두가 건장한 성인 남자들, 다시 말해 차후 전쟁에서 그의 뒤를 받쳐 줄 재원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자신감과 애향심을 심어 주는 것.
그것이 로건이 이 공사를 통해 의도한 또 하나의 목적이었다.
* * * 사흘 뒤.
개수로 작업이 모두 끝나는 순간, 인부들은 로건의 지시에 따라 산등성이에 올랐다.
“이게 뭔 소리야? 물? 저기 물이 있다고?”
“내가 봤어. 안에 물이 넘실거리긴 해.”
“그럼 정말 우리가 수로를 판 거야?”
“에이. 그래도 저 넓은 땅에 다 들어갈 물은 아니겠지.”
웅성웅성.
수문의 바로 위, 야산의 구릉에서 아래를 살피는 수천의 사람들.
그들은 자신들이 일궈 놓은, 개수로가 촘촘히 뻗어 있는 황무지를 보며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욱 표정이 좋지 않은 이들은 얼떨결에 불려 온 영지의 행정관들이었다.
이 땅이 변화하는 것을 직접 보고 행정에 반영하라는 로건의 의지 때문이었다.
하지만 관리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것 참. 말 그대로 장대한 삽질이구만.”
식량담당관 대머리 루겔 하이스는 황무지에 그려진 수로를 보며 혀를 끌끌 찼고.
“이 인원으로 남쪽 성벽 보수나 하시지, 이번 겨울에 당장 몬스터 웨이브가 올지도 모르는데.”
성벽담당관 배불뚝이 루펜은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 주기로 불규칙적하게 일어나는 재난을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까지…….”
“나도 모르지.”
공사의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다른 관리들 역시 부정적인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의외로 가장 앞장서서 공사를 반대했던 드웨인은 기대에 찬 눈으로 산 아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순히 한 번 물을 뿌리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야. 루터 강과 직통으로 연결되어 있어.’
저 수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건, 토지 관리만 잘해 준다면 눈 아래 보이는 저 거대한 황무지 전체가 정말로 평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소리였다.
과한 바람일 것이라는 이성과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가 섞여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그렇게 다양한 이들이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산 아래를 주시하고 있는데, 로건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옆을 돌아보았다.
“클레이튼 님. 시작하시죠.”
“기껏 인부들로도 수문을 조절할 수 있게 만들었는데. 꼭 이렇게 해야겠소? 거참…….”
공사를 진행하면서 투덜이가 되어 버린 하마르가 딴지를 걸었지만, 클레이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르르릉.
그와 동시에, 산 아래 들판에서 거대한 골렘이 일어섰다.
“우와아악!”
“저, 저게 뭐야!”
“으어억! 깜짝 놀랐…… 크흠. 마, 많이 본 마법이군.”
헛숨을 삼킨 관리들은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을 정도로 놀랐지만, 이내 자신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뻘쭘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문을 열어라!”
클레이튼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골렘이 쿵쾅거리며 수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러고는 거대한 석벽처럼 보이는 수문을 그대로 들어 올리기 위해 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그그그그.
거센 진동이 산등성이까지 전해지자, 모두의 눈에 긴장감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가만히 있지?”
“뭐야?”
몇 번의 진동이 이어졌지만, 수문엔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의문에 찬 시선이 땀을 뻘뻘 흘리는 마법사에게 향했다.
로브가 아니면 마법사라는 것을 믿기 힘들 만큼 살벌한 인상의 마법사가 그 시선을 받으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므 흐는 그으? 증는흐?(뭐 하는 거야? 장난해?)”
클레이튼이 무표정한 얼굴 그대로 복화술처럼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하게 내뱉은 말에, 드워프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분명 열라고 말해 놨는데? 이, 이게 어떻게…….”
사실 골렘의 힘자랑은 말 그대로 보여 주기일 뿐.
실상은 100여 명의 인부가 모여 도르래를 돌려 수문을 열게 되어 있었다.
수문의 무게가 클레이튼의 골렘으로도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무게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로건의 계획에 없는 일이었다.
“으그 으뜨케 든 그으?(이게 어떻게 된 거야?)”
로건 역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여 여유 있는 표정을 유지한 채, 살벌한 눈빛으로 복화술을 썼다.
“죄, 죄송합니다. 뭐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하마르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내려가서 확인해 보지 않는 이상, 당장의 해결책은 없었다.
그 순간 로건은 체면을 차리는 것을 포기한 채 인상을 구기며 외쳤다.
“클레이튼 님. 부수세요.”
“……예?”
“수문이야 다시 만들면 됩니다. 부숴요!”
기껏 준비한 계획을 이대로 무산시킬 순 없었다.
지금 이 순간 로건의 체면은 단순한 체면이 아니었다.
앞으로 영지민들과 관료들이 그를 신뢰할 근거가 되어 줄 것이었다.
그것을 망치는 것보다는 수문을 부수는 게 나았다.
물론, 이후에 고생하게 될 장본인인 하마르의 안색은 창백해졌지만.
“예. 알겠습니다.”
클레이튼의 응답은 즉각적이었다.
저 거대한 수문을 들어 올리는 것은 불가능해도 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쾅!
콰앙!
꽈아앙!
거인 골렘의 연속된 타격에 수문에 쩌저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고.
꽈아아아앙!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과 함께 수문이 무너졌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수문이 부서지며 튀어 오른 거대한 돌 조각들을 그대로 묻어 버리는 거대한 물줄기가 황무지를 향해 쏟아져 내렸다.
수문을 부순 클레이튼의 골렘조차 속절없이 휩쓸려 내려갈 정도로 거대한 물줄기에 모두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황무지의 입구를 흠뻑 적시고 개수로를 따라 흐르기 시작한 강물은 한참이 지나도록 그 기세가 줄어들지 않았다.
마침내 물줄기의 흐름이 조금 잦아들 때 즈음.
영지민들 사이에서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아!”
“무, 물이다. 물이야! 정말 물이다! 와하하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 넓은 땅을 정말 우리가…….”
“그래! 우리가 해냈다고, 해냈어! 우하하하하!”
환희에 들뜬 목소리들이 이제 신(新) 맥라인 평야로 불리게 될 너른 들판을 가득 채웠다.
* * * 로건 역시 황무지에 흐르는 물을 보며 환호성을 지른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니, 미래에 닥칠 위기를 알고 있기에 더욱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내전 기간에 식량 문제도 해결이 될 거야.’
내전이 벌어지는 순간 식량 가격은 끝없이 치솟아 오르게 된다.
그러니 사전에 식량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였다.
미리 식량을 사재기하는 것도 어느 수준을 넘게 되면 쓸데없는 주목을 받게 될 테니까.
맥라인에서 식량을 왕창 사 모았다던데?
그럼 그놈들부터…….
최악의 경우 이런 식으로 내전 발발 전 우선 목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서는 생산이 가능한 평야의 개간은 그 걱정을 단번에 날려 주는 최고의 성과였다.
‘물론 이것도 소문이 나면 곤란하겠지만.’
1년이란 시간은 찾아오는 손님도 없는 이 척박한 영지의 소문이 왕국 전체에 퍼지기에는 지나치게 짧은 기간이었다.
‘게다가 개간도 서두를 필요는 없으니 내년 봄 농사부터 시작하면 될 거야. 그 전에…….’
로건이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차후의 계획을 정리하고 있는데, 눈물을 글썽이는 거한이 갑자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우왁? 드, 드웨인?!”
“공자님!! 제가, 제가 정말 잘못 생각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괘, 괜찮아. 나중에는 드웨인도 나서 줬잖아.”
“흐읍. 그래도 좀 더 일찍 협조했으면…….”
“괜찮다니까, 정말. 덩치도 큰 사람이 왜 이렇게 눈물이 많아.”
드웨인이 유난을 떨기는 했지만, 얼싸안고 환호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조금씩이나마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리고 그 감격의 순간이 어느 정도 잦아들었을 때.
‘지금이다.’
후읍.
로건은 포스까지 동원하여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새로운 맥라인 평야는 원하는 누구나 개간할 수 있게 만들겠다!”
모인 사람 모두의, 특히나 인부들의 시선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개간하는 범위만큼 소작을 주고, 세금은 단 3할만 받겠다! 이는 나 로건 맥라인의 이름으로 공언한다!”
드넓은 황야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에 대한 답은 어마어마한 환호성으로 돌아왔다.
“우와아아아아! 공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질러 놨으니, 이제 가신들도 반대 못 할 거야.’
아직은 감격에 취해 있는 가신들을 보며 로건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수많은 감격과 환호성 속에서 오직 한 사람, 아니 한 드워프만이 좌절하고 있었다.
“수문…… 다시 만들려면 대체 며, 며칠이나…….”
“걱정하지 마시게, 드워프 친구. 내가 또 도와줄 테니. 한 번 해 봤으니 더 빨리 되겠지.”
몇 달 전부터 친해진 인간 친구의 위로도 드워프의 깊은 실망은 달랠 수 없었다.
하지만.
“수문이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일주일은 쉬어. 그리고 나서 광산 공사 마무리 짓자고. 그 후에 장기 휴가. 알겠지?”
약간은 들뜬 기색의 로건이 휴가를 언급하자 울상이던 하마르의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럼, 당연하지.”
“우하하하하! 감사, 감사합니다. 주인!”
하마르는 그제야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기쁨의 행렬에 동참했다.
‘그 후에는 또 할 일이 태산이다. 지금이라도 웃어 둬.’
휴식 없는 노역을 반년이나 시켜 놓고도 감사 인사를 받아 낸 악덕 주인은 음흉한 속내를 감추며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