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54)
54화기사단의 뒤를 받치는 정예병력, 정규병사들은 달리 말하면 기사수련생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과 영지의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의 역할을 병행하는 이들.
맥라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지에선 성인이 되기 직전의 사내아이들을 상대로 체력을 시험해 그중 일정 기준치를 넘은, 강인한 체력을 가진 이들만을 병사로 받아들여 훈련을 시켰다.
단순한 훈련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강도 높은 훈련으로, 포스유저를 길러 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병사로 뽑힌 이들 중 재능이 있는 이들은 그 과정에서 포스를 각성하고 기사가 되었다.
물론 대부분은 그 길을 포기하고 일반 병사로 남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균적으로 일반 징집병을 월등히 상회하는 전투력을 가진 전력이 되었다.
‘기사가 되기 위한 고된 훈련을 견디려면 체력이 필수다. 그렇게들 생각하니까.’
실제로 기사들의 대다수는 그렇게 뽑혀 십여 년간의 고된 훈련을 이겨 낸 끝에 극적으로 포스를 각성했다.
물론 병사 출신이 아닌, 가문 내에서 어려서부터 수련을 하여 포스를 각성하는 전통 있는 기사 가문이나 귀족 집안의 자제들도 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지만, 특별한 비전이 없다면 포스를 각성할 확률이 엄청나게 증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말 자체가 기존의 이론이 잘못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그런 인식이 없는 때였다.
하지만 이미 이 시기, 제국은 새로운 이론을 가지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었다.
– 체력의 뛰어남과 포스 각성은 별개의 이야기다. 오히려 감각이 더 중요하다.
‘현재는 제국에서도 반발이 클 테지만…….’
제국의 황실 마탑에서 십수 년간 연구하여 알아낸 사실.
기사가 되는 이들보다 더욱 훈련을 잘해 내면서도 포스를 각성하지 못한 이들의 정보를 수집해 추론한 이론.
제국은 그것을 공식적인 견해로 받아들이고 정규병사를 뽑는 과정 자체를 바꾸었다.
그렇게 감각과 반사 신경이 뛰어난 아이들을 위주로 정규병력을 뽑은 결과.
십 년, 아니 이제 9년 뒤 일어날 전쟁에서 제국은 무려 5만에 이르는 압도적인 수의 기사들을 내세워 주변국을 짓밟는다.
그리고 당연히 그 이후에 제국의 기준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실 로니안이나 빅토르만 봐도 체력만 보고 병사를 뽑는 것은 바보짓이란 게 뻔해.’
하지만 이 시기에는 그런 사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천재는 천재라서 다르다고 생각할 뿐.
지평선을 메우며 몰려오는 제국의 기사 군단을 떠올리니 지금도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럼 나도 하면 돼. 가문이 지배하는 영지에서만이라도. 9년이면 재능 있는 녀석들이 기사가 되기엔 충분하겠지.’
그렇기에 과도해 보일 정도로 무기를 구입하고, 정규병사의 확충에 신경을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시작부터 기준을 잘 잡아야 했다.
“지금 정규병사들 상황이 어떻게 되지?”
“지난 전쟁에서 살아남은 502명 중 100명을 제외한 402명이 테스론 성에 총관 벡터 님과 같이 치안 유지 임무로 파견 나가 있습니다.”
“……기사는 전부 맥라인에 있고?”
“주전력인 기사들을 따로 분리할 수는 없다고 하셔서…….”
로건은 코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전향한 기사들 때문이겠지. 쓸데없는 핑계는…….’
전향한 테스론 출신 기사가 무려 32명, 기존 맥라인의 살아남은 기사 41명과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수였다.
아무리 상급기사, 아니 이제 최상급기사인 패드릭 맥라인이 있다 해도 아직은 그들을 따로 움직이게 둘 수는 없었을 것이다.
‘뭐, 차라리 잘 됐어.’
어차피 천 명 이상 되는 정규 병사들의 숙식을 책임질 공간은 맥라인 내에는 없었다.
그래서 뽑는 병사 인원에 제한을 둔 것이기도 했고.
“맥라인 성에서 모집할 훈련생들까지 데리고 테스론으로 간다. 앞으로 테스론을 병사 훈련의 근거지로 삼을 것이다. 맥라인 성에는 최고선임급 병사들 50명만 남기도록. 모든 병사들에게 공지해.”
“……예?”
“여기 기사들만 70명이 넘는데, 병사 많이 필요 없잖아.”
“하, 하지만 그럼 기사님들이 경계 업무를…….”
기사의 수가 병사보다 많아지면 생길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뭐, 기사들이야 아버지가 계속 훈련시킬 테고. 그냥 남은 병사들이 조금 더 고생하라고 해. 지금까지 최고선임들은 편하게 지냈을 거 아냐?”
어차피 맥라인 성의 자랑이라고는 안정적인 치안뿐.
병사들이 좀 빠진다고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터였다.
그 생각에 호응하듯, 내성 안쪽 연무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빅셀이 틀렸다. 처음부터 다시!”
“야 이 개자식…….”
“누가 훈련 중에 입을 털어! 두 배로 다시!”
“으아아악!”
‘기사들에게 문제가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목소리를 들으며 로건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뭐, 나쁠 것 없지.”
* * *
“넌 어디서 왔냐?”
“그러는 너는?”
“몇 살인데 반말이야.”
“지는!”
“뭐 인마?!”
와글와글.
맥라인 성에 마련된 병사 시험 장소는 모집에 지원한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줄 똑바로 서!”
“모두 잡담 그만! 대공자님이 오신다!”
“그만 떠들어! 아우, 이 애새끼들…….”
병사들이 억지로 질서를 유지하려 해 봤지만 천 명 가까이 모여든, 아직은 철없는 소년들을 모조리 통제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나마 로건이 시험장에 들어서자 소년들이 조금씩 진정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소란이 완전히 사그라들지는 않았다.
그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꼭 해야 할 일이니 로건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전에는 어떻게 뽑았지?”
“그냥 일제히 달리게 해서 순서대로 잘랐습니다.”
말 그대로 체력만 보고 뽑는 무식한 선출방식이었다.
게다가 전체 병사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 마흔이 넘어 은퇴하는 병사가 생길 때만 막 성년이 된 이들 중 소수를 데리고 와 뽑았으니 효율적일 리 없었다.
‘방식도 틀렸고, 인원도 적었고. 그러니 좀처럼 기사 수가 늘지를 않지.’
이전의 맥라인에서는 기사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재정적 부담도 커진다는 무시 못 할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기사가 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녀석들은 전부 뽑아서 훈련을 시켜야지.’
근시적으로는 병사 수의 확충이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좀 더 먼 미래를 대비한 기사수련생 선발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정규병력을 늘릴 생각은 없었다.
꼭 소수일 필요는 없지만 지향하는 건 어디까지나 정예 부대였다.
“제대로 뽑아야지.”
“당연한 말씀입니다.”
“시력이 좋은 애들, 귀가 좋은 애들. 반응속도 빠른 애들로 뽑아.”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이 포스유저로 각성할 확률이 높다.
미래에는 상식이지만 아직 이 시기 왕국에서는…….
“……예?”
이런 얼빠진 반응이 나올 뿐이다.
“못 들었어?”
“그, 그럼 일단 달리기를 시킨 후에…….”
“그거 말고! 못 먹고 자란 애들이 다수야. 배고파서 못 뛰는 경우도 감안해야지.”
“하지만 로건 님. 여태 그렇게 병사를 뽑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
당황하는 페란을 대신해 드웨인이 나섰지만 로건은 고개를 저었다.
“이제부턴 이게 기준이 될 거야. 뭐해? 안 움직여?”
“……예. 알겠습니다.”
그날.
힘이나 체력을 시험하는 테스트를 생각하던 지원자들은 황당한 시험을 치러야 했다.
첫 번째 시험.
멀리 보기.
심사관이 글자가 적힌 종이를 들고 서 있으면 지원자는 멀리서부터 다가오다가 그 글자가 보이는 거리에서 멈춰 섰다.
그 거리가 멀면 멀수록 순위가 높은 방식이었다.
“오? 참신하시군요. 역시 공자님!”
드웨인은 감탄했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저는 글자를 모릅니다!”
덕분에 글자가 그림으로 바뀌고.
“새 같기도 하고, 돼지 같기도 하고. 그림이 너무 이상합니다!”
똥손 심사관들 때문에 그림 대신 단순한 기호가 쓰이기도 했지만.
“작대기가 잘 안 보입니다!”
“몇 개냐고! 보이는 거나 말해!”
“공자님이 참 잘 생기셨습니다!”
답이 없는 황당한 놈이 너무 많았다.
“벌써 아부나 하는 놈은 필요 없어. 저 새끼 짤라.”
하지만.
“세 개 반입니다. 하나는 좀 짧은데. 그것까지 치면 네 개인가요?”
이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려 200m 거리에서 손가락 크기 작대기의 수와 길이까지 보는 괴물도 있었다.
두 번째 시험.
멀리 듣기.
드웨인과 루겔이 미리 정해진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면, 마찬가지로 그 말이 들리는 순간 멈춰 서면 되는 시험.
앞선 실험과 똑같이 거리가 멀면 멀수록 순위가 높은 것이었지만, 역시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목소리 크기가 그때그때 달라집니다!”
시험관의 신체 컨트롤 능력 문제와.
“저분의 발음이 이상합니다! 세계인지 새끼인지 모르겠습니다!”
“뭐 이 새끼야?!”
타고난 구강 구조의 문제.
“정답은 참새입니다. 그런데 저기…….”
“뭔데, 말해.”
“방금 저분이 대공자 개자식이라고……. 이것도 시험입니까?”
그리고 인간적인 문제까지.
“드웨인! 대가리 박아!”
“예? 공자님, 안 들립니다!”
“대. 가. 리! 박으라고! 내 손으로 심어 줄까?!”
여러 문제로 시험이 다소 지연되기도 했지만, 100m 거리에서 그 나직한 욕설을 들은 괴물도 발굴해 내었다.
두 가지 시험이 끝났을 때, 로건은 감탄의 휘파람을 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시력과 청력만 시험했다고 해도, 둘 중 하나가 기준치를 한참 넘어서는 녀석이 이렇게나 많다고?’
천 명이 넘게 모인 인원 중, 감각 쪽 재능이 발견된 이들은 무려 250명이 넘었다.
개중에는 정말 괴물 같은 눈이나 귀를 가진 놈들도 있었지만, 이들이 반드시 기사가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감각 능력을 바탕으로 한 기준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불합리한 과거의 기준으로 뽑은 이들 중에서도 분명 기사가 된 이들은 있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이가 포스유저가 되는지는 미래에도 완벽하게 밝혀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테스론 성 쪽 지원자들과 합쳐서 천 명은 맞춰야지.’
그렇게 두 번의 테스트에서 순위를 따져 총 500명을 뽑았다.
나름 뿌듯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어 합격자들을 보니, 유난히 초라해 보이는 이들이 많았다.
아직은 못 먹고 자란 탓인지 지원한 나이에 비해서도 한참 어려 보이고 작은 아이들이 많았지만, 그것은 잘 먹이고 훈련하면 될 일이었다.
‘빅토르처럼……. 물론 그 녀석 수준까지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지금 그가 아는 지식 내에서는 최선을 다했다.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미래에 올 최악의 재난을 막아 낼 힘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빅토르 그 녀석도 한번 보러 가야겠군.’
이제 그 녀석도 본격적으로 바깥에서 활동하게 해야 할 때였다.
* * * 촤악.
허공을 가르는 검은 스스로 보기에도 제대로 힘이 실려 있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힘과 완벽한 자세.
지난 1년, 매일 수백 번씩 반복해 온 왕국 기본 검술은 이제 제법 틀이 잡혔다.
이대로라면 로건 님이 말한 대로 흐트러지지 않은 채 1천 번을 반복하는 것도 곧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작 빅토르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게 된다고 기사가 되는 것은 아니야.’
로건 님은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에게 눈에 보이는 목표를 지정해 준 것뿐이다.
그 사실을 이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또한, 기사가 되기 위해서는 천 번의 검술 시전이 문제가 아니라 포스의 각성을 이뤄야 한다는 것도.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감이 오지 않았다.
하루하루 발전해 나가는 성취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제자리만 끝없이 돌고 있는 듯한 답답함.
발목을 잡아끄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결코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기사가 되어야 해. 반드시!’
오늘도 연무장 저편에서 물통과 수건을 들고 기다리는 동생을 위해서라도.
저택 내의 시종들이 자신과 동생을 보는 질시 어린 시선은 잘 알고 있었다.
노예이면서도 일은커녕 검술만 배우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만큼 자신은 여기서 멈춰 설 수 없었다.
‘로건 님이 언제까지 시간을 주실지 몰라.’
자신은 아무런 대가 없는 도움을 받았다.
미래에 기사가 될 것이라 믿는다고 하지만, 무슨 근거로 노예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겠는가.
로건 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지만, 그가 노예로서 살아온 고난의 세월은 그 은인도 온전히 믿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나를 키워 어딘가에 이용하려는 술수일 수도 있어.’
이를테면…… 검투용 노예라던가.
최악의 기억을 떠올리자 절로 얼굴이 어두워졌다.
노예 시절, 가족을 미끼로 노예들에게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라는 미친 귀족도 보았다.
‘재미를 위해서라고 했던가.’
시선을 흘낏 옆으로 돌리자 환한 얼굴로 자신을 보는 동생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내야 할 내 동생.
자신이 어떤 꼴을 당하게 되더라도 동생만큼은 지켜야 했다.
은인이 무슨 짓을 시키건 살아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돼.’
실력이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끼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빅토르는 조바심이 들었다.
“으아아아압!”
파아앙!
정해진 검술 형식을 벗어나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방법이었다.
자세와 검술을 생각하지 않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두르다 보면 그나마 속이라도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나지막한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검술이 아닌 난잡하고 난폭한 칼질이 멈추고, 빅토르는 자신도 모르게 검을 놓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