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56)
56화
“어, 어이. 후우우. 너.”
“음?”
“쿨럭. 후으읍. 노예 주제에. 후욱. 나대지 말라고.”
“뭐?”
“아무리 공자님이 아끼신다고 해도. 후우우. 노예는 주제를. 후으읍. 알아야지.”
거구의 덩치가 당장이라도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얼굴로 빅토르에게 시비를 걸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덩치를 바라보던 빅토르는 이내 카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뻐어어억!
빅토르의 주먹이 덩치의 배에 박혔다.
“……아으. 꺼으으.”
단숨에 반으로 접힌 덩치가 간신히 신음만 흘리는데.
“악취 나는 아가리 닥쳐라, 덩어리. 안 그러면 다음번에는 허리를 반대로 접어 버릴 테니까.”
나직한 목소리가 주변에 또렷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빅토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는 순간, 일제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훈련병들의 모습에 로건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이 한 번의 짧은 사건으로 인해 확신할 수 있었다.
빅토르를 데려온 두 번째 이유도…….
‘무난하겠군.’
로건이 본격적으로 가문의 전력을 키워 내기 시작한 지금.
빅토르는 그 전력을 휘어잡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패였다.
“마음껏 먹어라. 다음 훈련에 지장만 없으면 된다.”
지독한 훈련이 끝난 다음 눈앞에 차려진 수북한 음식들.
질 좋은 고급 요리는 없었지만, 기본적인 빵과 수프는 넘치도록 쌓여 있었다.
“우와아아아!”
“최고다!”
“수, 수프 안에 고기도 있어!”
빈민 출신이 대부분인 훈련병들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는 식단이었다.
그들은 대량의 수프 안에 아주 조금 들어 있는 고기조차 신기해했다.
훈련병들은 배급된 나무 식기 위에 저마다 산처럼 쌓은 빵과 수프를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첫 번째 훈련으로 쌓인 스트레스는 이 순간 사라지고 없었다.
거기다.
“많이…… 드세요.”
꾸벅.
식사를 배급하는 시종들 사이, 열 살이 될까 말까 해 보이는 조그마한 푸른 머리 여자아이가 돌아다니며 치명적인 귀여움을 발산한 순간.
“크윽. 처, 천사인가.”
“귀, 귀여워!”
“눈 좀 봐! 신기할 정도로 예뻐.”
다수의 훈련병은 지친 마음에 따스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며 병사가 되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게 되었다.
물론 아이의 실제 나이는 열 살보다 많았지만,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어린아이라 무척이나 귀여웠다.
“귀, 귀여워. 깨물어 주고 싶다.”
“볼살 찔러 보고 싶어.”
“난 뽀뽀해 주고 싶어.”
개중에는 좀 과한 애정 표현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쾅!
“눈 돌려. 파내 버리기 전에.”
아이와 똑같은 푸른 머리와 적청의 오드아이를 가진 소년의 살벌한 협박에 차마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병사들의 훈련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 * * 훈련병의 독기를 확인하고 근성을 테스트하는 훈련이 계속되었다.
줄과 열을 맞추는 단순한 제식 훈련도 무려 열두 시간 동안 계속되자 그 어떤 것보다 지독한 훈련이 되었고.
그 단순하지만 지독한 훈련들이 극한의 인내력 테스트가 되어 병사들을 괴롭혔다.
하지만 현 맥라인의 사정상, 병사로 지원한 대다수가 먹고살기 힘든 가정에서 자란 이들.
그들에게 이곳은 따뜻한 잠자리와 충분한 음식이 제공되는 것만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좀처럼 훈련에서 낙오하는 이들이 없었다.
“힘든가?”
“아닙니다!”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 집에 가서 푹 쉬어.”
“아닙니다!”
“자세가 마음에 든다. 그럼 다시 두 바퀴!”
“…….”
“대답 안 하나!”
“예!”
악 소리가 절로 나는 훈련에도 눈에 독기가 가득한 훈련병들.
곧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는 허약한 녀석들조차 이를 악물고 훈련을 완주했다.
기초 체력 훈련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제 훈련병들의 기본 체력은 다져진 것 같습니다.”
“벌써?”
“잘 먹고 잘 재우고, 말씀하신 대로 매일 샤워를 비롯한 위생 관리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호사스러운 훈련을 받는데 빨리 발전하는 게 당연하지요.”
만족스러운 카이의 보고에 로건이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 일으키는 놈들은 없고?”
“슬슬 훈련에 익숙해지고 있으니, 그런 놈이 있다면 튀어나오겠지요.”
“그래. 이쯤 돼서 한 놈쯤 튀어나와 주면 괜찮을 텐데.”
“본보기로 말씀이시죠?”
“그래. 그래야 앞으로 편할 거 아냐.”
“그렇긴 합니다.”
극한의 훈련을 고안해 낸 두 사람이 마주 웃었다.
로건과 카이의 바람대로 훈련병 중에도 문제가 되는 놈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은 그들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 * * 흔히 쓰는 표현 중에 개념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소양이 부족하다는 관용어로 쓰이지만, 실제로 정말 기본적인 개념조차 없는 이는 많지 않았다.
다만 그 개념이라는 게 사람마다 다르고 사는 곳마다도 달랐기에, 어디서는 정상인 사람이 다른 지역이나 환경에선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다수가 ‘죄’라고 생각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정말로 개념이 없는 소수의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이들을 미친놈이나 악인, 혹은 변태, 쓰레기 등의 멸칭으로 표현했다.
맥라인 성 근처 남부산맥에 가까운 마을에서 온 코웰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코웰의 가장 큰 문제는 어린 여자아이에게 성적 흥분을 느끼는 변태라는 것이었다. 훈련병 모집에 지원한 것도 그 변태성 때문에 마을에서 쫓겨날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에겐 열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빅토리아도 여자아이가 아닌, 그냥 ‘여자’였다.
더구나 이곳에는 그동안 그를 두들겨 패서 말렸던 아버지도, 마을 어른들도 없었다.
“어린 애잖아?”
“‘여자’애지.”
“미친! 그 애, 저 괴물 동생이라는 거 몰라?”
“잘되면 서로 좋은 거지 뭘. 그리고 괴물이라고 해 봤자 저 말라깽이가 뭐 어쩌겠어? 내 덩치 안 보여?”
“너 정말 미쳤구나…….”
친구의 말을 피식 웃어넘긴 코웰은 몇 주간 생각만 해 왔던 행동을 실행에 옮겼다.
“누, 누구세요?”
“오빠랑 저기 가서 좋은 거 하지 않을래?”
덩치 큰 거한이 길을 막고 이상한 소리를 내뱉은 순간, 빅토리아는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이내 겁을 내면 더 세게 나오는 것이 이런 놈들이라는 경험을 떠올리며 애써 강하게 나왔다.
“예? 무, 무슨 소리예요. 갑자기?”
“별거 아냐. 서로 이것저것 챙겨 주는 친구가 되자는 거야.”
“……필요 없어요. 절 챙겨 주는 건 우리 오빠로 충분해요.”
“아아. 빅토르? 알지. 하지만 오빠가 한 명 더 있어도 좋지 않겠어?”
“싫어요. 저는 우리 오빠 하나만 있으면 돼요! 이만 비켜 주세요!”
조금 겁은 먹었지만 또랑또랑한 목소리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 강경한 태도가 자기 딴에는 지고지순한 마음을 고백했다고 생각한 변태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뭐라…….”
“비켜 주시라고요, 아저씨!”
이어진 빅토리아의 외침이 변태의 이성을 끊어 버렸다.
“아저씨?! 이게!”
짜악.
“악!”
“이, 이런. 미안. 그러니까 오빠 말 들었어야지.”
어린아이에게 따귀를 날려 놓고 헛소리를 늘어놓는 코웰.
그가 정말 미안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갔지만, 이미 녀석은 빅토리아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시, 싫어!”
겁에 질린 빅토리아가 앉은 채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정상적인 사람에게는 동정심과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들 모습이었지만.
꿀꺽.
이성을 잃은 변태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흥분시키는 모습에 불과했다.
“그, 그래. 그렇게 얌전히 있어. 옳지…….”
찌익.
그때, 아이의 옷자락이 찢기는 소리가 들렸다.
잔뜩 흥분해 있던 변태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더욱 위험한 기색으로 번들거리는 순간이었다.
“이 개 같은 새끼가!”
뻐어억!
“커억!”
거센 고함과 함께 날아든 강렬한 충격이 코웰의 거대한 덩치를 날려 버렸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힌 코웰이 채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죽어! 이 새끼야!”
뻐억! 빠악! 우드득.
“감히 내 동생을! 감히!”
“꺼, 꺼억. 그, 그만…….”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거품을 물고 애원하는 코웰.
하지만 그 모습이 빅토르의 분노를 막지는 못했다.
“지랄! 그냥 뒈져!”
붉고 푸른 눈동자에 서린 분노가 간신히 진정되었을 때, 코웰의 육체는 사람의 형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뒤였다.
* * *
“뭐라고?!”
처음 빅토르의 소식을 들은 로건은 무척 놀랐다.
드디어 귀족 학살자의 면모가 튀어나온 것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고 보니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쓰읍. 빅토리아는? 괜찮고?”
“예. 좀 놀라기는 했지만 건강 상태는 괜찮습니다.”
“빅토르는?”
“일단 감옥에 가둬 두었습니다만…….”
“거참…… 이런 문제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지.”
그 말에 벡터 역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코웰이 지은 죄는 확실합니다만, 빅토르는 놈을 아예 죽였습니다. 무엇보다 현 신분상 코웰은 양민, 빅토르는 노예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관습에 따르면…….”
“아니. 그건 문제가 안 되고.”
“예?”
“뭐.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인 것 같군. 일단 녀석한테 가 보자고.”
로건의 웃음에 벡터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 * * 테스론 성의 지하 감옥.
그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 죄질이 나쁜 중범죄자들만 가두어 놓는 곳에 손발에 족쇄를 찬 빅토르가 있었다.
끼이익.
문이 열리는 소음을 들었는지, 어렴풋한 횃불 사이로 이쪽을 바라보는 빅토르가 보였다.
저벅저벅.
횃불 이상으로 불타오르던 눈빛은 로건이 천천히 다가섬에 따라 점차 흔들렸고, 바로 앞에 서는 순간 땅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로건 님.”
“후회하느냐?”
“절대! 절대 아닙니다.”
“그럼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거지?”
그 말에 잠시 멈칫하던 빅토르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로건 님의 병사를 함부로 죽였습니다. 그것에 대한 사죄입니다.”
“그래? 흐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만. 내 생각에 넌 후회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놈은 리아를…….”
“네 동생을 굳이 여기까지 데려온 것을 말이다.”
“예?”
“모르겠느냐? 네 고집이 동생을 망칠 뻔했다.”
“……!”
“무작정 끼고 돌며 보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하, 하지만……!”
로건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번쩍 고개를 드는 빅토르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사람을 아끼는 것에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 무턱대고 옆에 두고 보호하려는 것은 가장 하책에 불과하다. 그건 애정이 아니라 그냥 집착이지.”
“하지만 제가 항상 옆에 있어 줬다면 빅토리아는 그런 개자식과 마주칠 일도 없었을 겁니다!”
“그럼 넌 하루 24시간을 내내 빅토리아와 함께할 건가? 훈련할 때도? 전쟁에 나설 때도?”
“그, 그건…….”
“예상치 못한 위험은 어느 곳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아,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과 날카로운 병장기가 득실한 병사훈련소라면 조금은 예상할 수 있을 것도 같군.”
“……!”
“굳이 위험할 수도 있는 곳까지 데려와서 지켜 주려 애쓰는 것보단 애초에 데려오지 않는 게 더 안전하다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빅토리아를 데려오는 것을 허락한 것은 네가 그 사실을 깨달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물론 로건 역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기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빅토르는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내 말, 이해하겠느냐?”
“…….”
한동안 침묵하던 빅토르는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지.’
미래의 오러유저는 이 사건만으로도 동생에 대한 과보호에서 약간은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로건은 웃으며 마주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좋다. 나와라.”
“로건 님!”
놀라 소리를 지르는 벡터를 무시하고 로건은 간수에게 받은 열쇠를 꺼내 철창을 열었다.
끼익.
철커덩.
잔뜩 긴장한 기색의 빅토르. 그 족쇄까지 손수 풀어 준 로건은 주춤거리는 녀석을 일으켜 세웠다.
“사람을 죽인 것은 분명 죄지만, 오늘 일은 잘했다.”
“예?”
“다만, 다음번에는 내 허락을 받고 하도록. 내 기사가 되어야 할 녀석이 쓰레기만도 못한 변태 새끼 때문에 인생 발목 잡히지 말라는 말이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늘졌던 빅토르의 안색이 다시금 환해졌다.
하지만 그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던 벡터는 다소 황당한 얼굴로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로건 님. 지배자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하신 건 로건 님이잖습니까.”
“그랬지.”
그것도 불과 며칠 전에 한 말이었다.
“노예가 양민을 죽인 사건입니다. 이렇게 멋대로 결정하시면…….”
“빅토르는 내 소유의 노예잖아. 그럼 내 물건이지. 내가 내 물건으로 흉악범 하나를 죽인 거야. 그럼 어떻게 되지?”
“그거야…… 그렇군요.”
벡터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빅토르가 놀란 눈으로 다시 로건을 바라보았다.
“그래. 빅토르는 내 뜻에 따라 놈을 죽인 거다. 녀석의 머리에 죄목을 붙여 성문에 내걸어라. 특히 병사들에게 주의를 시키도록.”
“……알겠습니다.”
로건이 느릿한 걸음으로 감옥을 나서자, 벡터와 빅토르가 뒤를 따랐다.
가장 뒤에서 로건의 등을 바라보는 빅토르의 눈빛은 복잡하게 물들어 있었다.
* * * 코웰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병사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그 여파는 채 한 시간도 가지 않았다.
코웰이 ‘병영의 천사’에게 몹쓸 짓을 하려다 맞아 죽었다는 죄명이 알려지자 상황이 오히려 반전된 것이다.
“망할 자식. 우리 천사를 감히!”
“잘 죽었어! 안 죽었으면 내가 죽였다!”
“네가?”
“왜? 못할 것 같아?”
“아니, 우리가 죽였을 거라고 인마!”
더구나 적잖이 충격을 받은 빅토리아가 두문불출하는 상황이 계속되자, 이미 죽은 코웰에 대한 욕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황이었다.
“리아. 괜찮니? 오빠 들어가도 될까?”
– ……미, 미안.
‘젠장!’
문밖으로 전해지는 동생의 힘없는 음성에 빅토르는 다시금 속으로 욕설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며칠 전 일이 떠오르는 것인지 동생은 자신과의 만남도 거부하고 있었다.
‘그 개새끼를 너무 쉽게 죽였어.’
쾅!
“아, 리아. 미안해. 오빠가 잘못해서 벽에 부딪쳤어.”
– …….
무심결에 후려친 벽에다 대고 사과하고 있는 꼴이라니.
대체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울화만 계속 쌓이고 있었다.
“그럼 쉬어.”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자신이 없어 빅토르는 이내 돌아섰다.
어린 나이지만 부모의 죽음과 노예로서의 삶,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남매는 서로를 의지하며 모진 생을 이어 왔다.
이제야 간신히 모든 것이 잘 풀리나 싶었더니,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만약 자신이 그곳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했다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야.’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 사내들만 득실한 병사훈련소에 여자애를 데려가겠다고?
– 무작정 끼고 돌며 보호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야.
최근 몇 년간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의 말이 다시 떠오르며, 무척 아프게 가슴을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