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57)
57화석 달 후.
“벌써 새해인가…….”
“시간이 참 빠르네요, 로건 님. 처음 뵀을 때 이후로 벌써 두 해가 지났습니다.”
“그래. 벌써 그렇게 되었네.”
겨울이 한창때에 이르자 다시금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아직 식량 배급이 계속되고 있는 시기.
과거와 달리 여유가 생긴 영지민들이 새해맞이 잔치도 한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였다.
하지만 테스론 성 외곽에서는 그런 분위기와 상관없이 여전히 땀을 흘리는 병사들이 있었다.
“하나!”
“하!”
“둘!”
“하!”
철제 갑옷을 입고 10㎞를 뛴 다음 바로 이어진 고강도의 검술 훈련에, 병사들은 칼바람이 부는 겨울에도 구슬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더 이상 탈락자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어느 정도 체력과 근성을 모두 갖춘 녀석들만 남았습니다.”
“그런 것 같군.”
훈련 기간 90일.
훈련 시작 인원 1,000명.
낙오 12명.
사망 1명.
기초 훈련 통과 987명.
정규 병사 502명을 제외하고도 기사 외 병력이 용병대까지 총 1,300여 명에 이른다.
애초에 계획했던 수보다 많은 수가 훈련을 통과했으니, 로건은 만족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본 훈련은 얼추 완료된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석궁 제작도 꽤 진척되었습니다. 아직 병사들에게 전부 석궁을 돌릴 정도는 아니지만 400개나 새로 들어왔습니다.”
“그래. 하마르가 애를 썼군.”
휴가에서 복귀하자마자 마을 공사 지휘와 동시에 석궁을 찍어 내고 있는 하마르를 떠올리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마주칠 때마다 거의 눈빛으로 저주를 뿜어내는 것 같았지만, 적어도 올 겨울에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빡빡하게 굴릴 생각이었다.
어쨌건 그 덕분에 계획했던 기초 전력이 얼추 갖춰졌다.
그러면.
“이제 실전을 치러도 되겠군.”
“……실전이요?”
“두고 보면 알아. 기대해.”
무표정한 카이의 얼굴에 불안감이 감돌았지만, 로건은 희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 * *
“타운의 목재 공급을 위해 몬스터 숲을 밀어 버리자…… 이것도 네 생각이냐?”
“어차피 슬슬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날 때도 되었습니다. 언제 몬스터가 뛰쳐나올지 모르는 숲인데 이참에 밀어 버리시죠.”
“가문의 선조들이 수백 년간 방치했던 몬스터 숲이 쉽게 벌목이 될 거로 생각한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지금은 충분한 병력이 있으니까요. 물론 기사들도 동원했을 때 이야기지만요.”
로건은 이미 남쪽 숲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여러 번 시험해 본 연사석궁을 믿고 있었다.
몬스터 숲의 정벌은 최하급의 몬스터들은 숫자가 몇이 되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패드릭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흠. 그래, 산맥 밑의 숲 정도라면 문제없겠지. 기사들도 슬슬 실전 훈련이 필요할 테니까.”
“오? 그럼 철혈검의 전수는…….”
“다들 기본 정도는 몸에 붙였다. 하지만 숙련에는 역시 실전이지.”
“그럼요. 실력 증진에는 역시 실전이죠.”
영지의 최고 권력자 부자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잡는 순간.
맥라인 휘하 병력들의 개고생이 그들도 모르는 새에 예정되었다.
* * *
“모두 준비되었나?!”
“예!”
전혀 포스유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나같이 초췌한 얼굴들.
하지만 그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환한 웃음과 함께 기사들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차라리 실전이 마음이 편하다.’
지난 몇 달간의 검술 훈련을 빙자한 극한의 갈굼으로 얼굴이 반쪽이 된 기사들.
이 순간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하지만.
“몬스터 숲이라 해 봤자 하급 몬스터들이 대다수다. 생채기라도 나면 나와 개인 대련 3일이다. 알겠나!”
패드릭의 호통 한 번에 소란스럽던 기사들의 대열에 순간적으로 정적이 찾아왔다.
“……뭐?”
“무슨 어처구니없는…….”
“이런 미친…….”
한두 사람이 고개를 숙인 채 내뱉기 시작한 아주 작은 목소리의 욕설.
하지만 그 욕설들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터져 나오는 순간, 연병장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시장통처럼 변했고.
패드릭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다시금 정적이 찾아들었다.
“오호라. 고작 하급 몬스터들을 상대로도 다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우리 맥라인의 기사들이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되나?”
다행히 이 말에 낚이는 멍청한 기사는 없었다.
몬스터의 수준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례 없는 대규모 토벌을 진행하며 살갗도 다치지 말라니.
스치는 나뭇가지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용맹하게 돌진하기는커녕 몸을 사려야 할 판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 나간 군주는 말도 안 되는 요구 사항을 하나 더 덧붙였다.
“일렬횡대로 서서 구령과 함께 검으로 나무를 벤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튀어나오는 몬스터들을 정리한다. 철혈검을 최대한 활용하고, 절대 물러서지 말고 자리를 지켜라!”
“허…….”
“아주 우릴 죽이시려고…….”
“혹시라도 몬스터들이 빠져나가면 어떻게 합니까?”
하급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몬스터들은 보통 전투 본능이 살아 있었다.
압도적인 수의 집단이 아니라면 결코 기사들에게 덤비려 하지 않을 것이고, 한꺼번에 많은 몬스터들이 달려들게 되면 분명 놓치는 개체가 생길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쫓으면 미리 말한 일렬횡대의 대열이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상황을 전반적으로 고려한 적합한 질문이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내버려 두어라.”
“예?”
“우리 뒤에 기본 훈련을 끝낸 병사들을 배치할 것이다. 그들의 훈련 성과도 시험해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 말은 기사단의 이번 임무는 사실상 벌목꾼이라는 말이었다.
미묘하게 자존심이 상한 기사들이었지만, 반론은 없었다.
지난 두 달간의 훈련을 버텨 내는 동안 그들은 영주의 의무를 내려놓은 최상급기사가 어디까지 무식해질 수 있는지 온몸으로 경험했다.
기사들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과거의 한조차 묻어 버리고 똘똘 뭉쳐 주군의 광기에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나서서 반론하는 행위는 주군과의 일대일 대련 훈련이라는 악몽으로 이어질 뿐이었다.
“자, 다들 자리를 잡아라! 내가 뒤를 받치겠다!”
기사들에게는 그 말이 제대로 안 하면 내가 뒤통수를 치겠다는 말로 들렸다.
순식간에 장착한 투구의 바이저 안에서 기사들의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
* * *
“기사들 뒤편으로 몬스터들이 도망쳐 올 것이다. 단 하나도 놓치지 마라.”
“예!”
“1차로 석궁. 지나치게 가까이 접근하는 놈들은 대기조들이 나서서 상대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병사들의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순히 훈련 이후 첫 실전이라는 긴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로건이 이 실전 훈련에 앞서, 이 훈련에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을 기사 수련생으로 뽑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두 눈이 의욕으로 불타올랐지만. 정작 로건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역시…… 훈련 때부터 느꼈던 게 착각이 아닌 것 같군. 시험이 의미가 없을지도…….’
평소 눈여겨본 녀석들이 그사이 조금씩 더 발전해 있었다.
병사들의 훈련을 참관하며 로건은 특이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었다.
빅토르를 위시한 소수의 병사들에게서 미세한 변화를 느낀 것이다.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씩이나마 포스가 쌓이고 있는 듯한 느낌.
포스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미세한 이능의 조각, 아니 향기 정도일 뿐이었지만, 분명히 구별되는 느낌이 있었다.
그들 중 다수가 감각에 비중을 둔 테스트에서 뽑힌 이들이었고, 일부는 기존 병사들, 그리고 소수이지만 체력만 보고 뽑은 이들 중에도 있었다.
그것은 로건으로서도 생소한 경험이었다.
포스코어가 조금씩 힘을 더해 가며 감각 역시 그만큼 증폭된 까닭일 것이다.
이는 작은 차이였지만 엄청난 발견이었다.
‘굳이 이런 테스트 없이도 포스유저가 될 가능성이 큰 녀석들을 뽑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느껴진 그 차이에 주목할수록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앞으로 그의 감각이 더 성장하고, 이 병사들의 성취도를 지켜보며 공통된 이유를 찾아 표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어쩌면 미래의 제국조차 명확히 발견하지 못했던 ‘포스의 재능’이라는 것을 완벽히 규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떤 마법으로도 명확히 알아내지 못한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야말로 역사를 바꿀 대사건이 될 것이었다.
‘그러니 내 느낌이 착각이 아닌지 정확히 증명해 볼 필요도 있다.’
이번 몬스터 숲 토벌은 실전 훈련일 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한 정보 수집이기도 했다.
그리고 재능이 있건 말건 실전에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할 녀석들은 필요 없었다.
그런 생각에 로건은 눈에 띄었던 병사들만 뽑아서 석궁이 아닌 검을 들게 해 두었다.
좀 더 가까이에서 적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미에서는 석궁이 아직 400여 기밖에 보급되지 않은 게 오히려 잘된 걸지도.’
그가 눈여겨본 병사 150여 명에, 그 외에 무술 훈련에서 두각을 나타낸 병사 150명.
로건은 이들이 지금 보여 줄 차이 역시 또 하나의 정보가 되어 미래를 대비하게 해 줄 것이라 기대했다.
로건이 눈을 빛내며 그들의 기색을 하나하나 살피던 그때.
“시작한다!”
“합!”
숲의 가장 가장자리에 도열한 기사들의 입에서 동시에 기합이 터져 나왔다.
쩌저저적.
그러자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정확히 73그루의 나무가 일제히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기사의 수준에 따라 미세한 차이는 있었지만, 평균 두세 번의 칼질에 하마르가 토목 건설용으로 쓸 수 있다고 장담한 남부 산맥의 철목들이 쓰러진 것이다.
그것도 오랫동안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탓에 하나같이 사람 몸통만 한 굵기의 나무들이었다.
이것은 과거의 맥라인 기사들에게는 확실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와아아아!”
“이, 이게 되네…….”
지켜보던 병사들도 감탄했지만, 정작 그 놀라운 일을 해 낸 기사들 사이에서 더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두 달간 지독하게 갈굼을 당하며 익혀 낸 강격 위주의 중급 검술, 철혈검의 위력을 새삼 체감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패드릭은 미미한 미소와 함께 지체하지 않고 외쳤다.
“우로 이동! 다시 횡렬 전개!”
맥라인 성 남쪽으로 반나절 거리.
가로 길이만 1㎞는 될 듯한 숲이 가장자리부터 서서히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벌써 작업을 시작한 지도 세 시간이 넘어갔다.
나무가 넘어가면서 울리는 굉음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병사들이 하나둘 하품을 하기 시작할 때.
2m쯤 되는 골렘 아홉 개체와 3m는 넘을 듯한 골렘 한 개체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기사들이 쓰러트린 나무를 들어 옮겼다.
골렘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숲속에서 요란스럽게 울려 퍼지는 짐승과 몬스터들의 울음소리에 움츠러들지도 않았고, 동작은 둔할지언정 강력한 힘으로 나무들을 손쉽게 뒤로 운반했다.
그 광경을 보며 로건이 클레이튼과 그의 제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린 순간.
취아아아악!
기분 나쁜 거친 숨소리와 함께 검은 뿔이 달린, 일반 사람의 반만 한 덩치의 인간형 괴물들이 숲에서 쏟아져 나왔다.
“고블린이다!”
기사들의 고함과 함께 지루했던 분위기가 일변했다.
숲속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하급 몬스터들.
인간보다 작지만 그만큼 빠르고, 단검이나 독침 등 작은 무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몬스터들이었다.
하지만…….
“기껏 처음 나온 게.”
촤아악!
“고블린이냐!”
서걱.
“재미없게!”
스각.
“케에엑!”
가장 먼저 튀어나온 고블린들은 선두의 기사들에게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키에에엑!”
하지만 숲 안쪽에서부터 재차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동시에, 기사들에게 접근하지 않고 좌우로 빠져나와 동서로 흩어지는 고블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대! 석궁!”
“하!”
“도망가는 놈들을 쓸어 버린다! 좌우로 날개 진형!”
지금은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해 흩어지는 고블린들도 내버려 두면 다시 저들끼리 뭉칠 것이다.
그리고 터전을 잃어버린 고블린 무리가 뭉치게 되면 일반인들에게는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다행히 이미 예상한 일이었기에 병사들의 반응은 빨랐다.
두두두두.
12인 1조, 총 100조로 나뉜 병사들이 좌우로 산개하며 고블린들을 쫓았다.
그리고.
“쏴!”
조장의 개별 지시하에 서슴없이 사격을 개시했다.
파바바박.
석궁에서 쏘아진 볼트들이 빛살이 되어 쏟아졌다.
그러자 말보다 빠르지 못하고, 화살을 견딜 만큼 단단한 가죽이 없는 나약한 하급 몬스터들은 별다른 반항도 못 하고 학살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고블린들 가운데서도 유난히 덩치가 크고 붉은 피부의 고블린 하나가 병사들의 집중사격에 당해 쓰러졌다.
“홉고블린을 잡았다! 도망친 몬스터는 내버려 둬! 다시 본진으로!”
고블린은 무리의 대장인 홉고블린이 없다면 무리로 뭉칠 수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 병사들은 미리 교육받은 대로 흩어지는 고블린들을 두고 다시금 본래의 진형으로 귀환했다.
“와하하하! 봤어?”
“내가 두 마리나 죽였어!”
“난 셋!”
“별거 아니잖아, 이거! 내가 이런 것들을 왜 무서워했지?”
상기된 얼굴로 서로의 전과를 비교하며 소감을 늘어놓는 병사들.
대부분 처음 전투를 치르는 신입 병사들이었다.
고블린의 출현은 거듭된 훈련에 지루해하던 병사들에게 오히려 활력을 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캬오오오오!”
고블린과는 전혀 다른 섬뜩한 울음소리가 울리자 그들의 낯빛이 돌처럼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