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적절한 휴식은 개뿔. 역시 사람은 쥐어짜야 해.”
“예? 갑자기 왜 그렇게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까?”
결재된 서류를 챙기던 드웨인이 식겁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아냐. 황당한 일이 있어서.”
로건이 배신감을 곱씹을수록, 공방에 있는 한 드워프의 일상은 점점 고달파졌다.
석궁 제작에 사소한 변수가 생기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발전은 더욱 빨라졌다.
눈 밑에 진 그늘이 진해지다 못해 눈두덩이 전체가 거뭇거뭇하게 변해 버린 하마르는 몇 주 만에 모든 병사의 석궁을 만들어 냈으니까.
덕분에 병사들의 훈련은 더욱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1만 가구의 거주 시설이 완성된 맥라인 타운에 두 성의 영지민들이 계획대로 입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우와아아! 엄마! 이게 우리 집이야?!”
“우와아! 크다! 우리 정말 여기 살아?”
“그, 그래. 그런가 보구나. 어떻게 이런…….”
젖먹이 아기를 앞뒤로 달고 있는 아낙네가 아이들의 말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목조로 된 이층집.
한 층의 넓이가 20평이 될까 말까 한 작은 크기에 주변 집과 바로 근거리까지 붙어 있는 어색한 배치는 중요하지 않았다.
한평생을 살아온 구멍 난 초가집에 비하면 대궐이나 마찬가지인 집이었으니까.
“이번 겨울은 어찌 나나 싶었는데. 정말, 정말 다행이야.”
그녀의 얼굴에 흘러내린 눈물은 벼랑 끝에 몰렸던 이가 한 줄기 빛을 맞이하며 흘린, 안도의 눈물이었다.
“근데 엄마…….”
“흐흡. 으응? 왜 아가?”
“아빠가 우리 집 찾아올 수 있을까?”
“……그래. 우리 안나가 엄마 말 잘 듣고, 잘 먹고 잘 크고 있으면 아빠도 무사히 찾아오실 거야.”
“진짜? 진짜지?”
“그래.”
네 살 여동생과 엄마의 대화.
이제는 죽음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12살 첫째는 괜히 하늘을 보며 눈을 가렸다.
그 모습을 보고 만 아이의 엄마는 다시금 시린 가슴을 움켜잡았다.
몇 달 전까지는 죽은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나, 그 생각뿐이었는데.
‘식량도 주고, 이렇게 집도 주고. 경작할 땅도 주신다니…….’
이제는 살아갈 희망이 생겼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할 저 먼 곳에 있는 귀족들에게 그녀는 연신 고개를 숙였다.
괜한 전쟁을 일으킨 귀족들을 원망하던 마음도 조금은 희석되는 것 같았다.
이주한 이들은 기존의 두 성에서 비교적 어려웠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던 터라 모두가 새로운 정착지에 만족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다 전달되진 않았지만, 그 작은 목소리들이 타운 전체에 울려 퍼지며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고마워하는 당사자 역시 그 분위기를 확연히 느끼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니 활기가 도는 것 같군요. 보기 좋습니다.”
클레이튼의 말에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더 커져야 합니다. 아직은 집을 지을 만한 공간이 더 보이는군요.”
맥라인 타운은 앞으로도 더 성장해 나갈 영지의 중심이 될 것이다.
로건은 마탑의 꼭대기에서 타운을 내려다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제 마을 건설도 끝났고, 석궁도 이달 말이면 약속한 물량은 완성될 겁니다.”
“그래. 잘했어.”
“…….”
“뭐야, 왜 안 나가?”
“그게, 저…….”
“아, 맞다. 이거 줘야지.”
쿵.
우물쭈물하는 하마르의 앞에 로건은 거대한 은빛 금속으로 된 괴를 내려놓았다.
“이, 이게 다 뭡니까?”
“뭐긴, 미스릴이지. 기사들 무기 좀 만들어 줘.”
“…….”
“왜? 희귀 금속 다루는 게 드워프들 낭만 아니야?”
“으으음…… 낭만…….”
“왜, 아니야?”
“아, 아닙니다. 휴…… 낭만 맞지요.”
“그렇지? 역시! 그럼 휴가를 마음껏 즐기도록 해. 6개월이면 되겠지?”
“예? 휴가요? 거기다 6개월?!”
“엄청 길게 줬는데, 싫어?”
“시, 싫을 리가요! 절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즐겁게 미스릴 가공도 하면서 제대로 된 낭만을 만끽해 봐. 얼마나 훌륭한 무기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을게.”
“……예? 무기……요?”
“이야, 좋겠다. 미스릴과 함께하는 낭만적인 휴가. 여섯 달이면 80개는 충분하겠지?”
“하…… 이 씨…….”
“뭐?”
“아, 아닙니다.”
고개를 숙인 드워프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가오는 봄.
도약을 위한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 * *
“개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땅 넓이에 비해 인력이 부족한 게 단점이라면 단점입니다.”
“그거야 상관없지 않나?”
“그렇지요. 올해 소출은 정말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식량담당관, 루겔 하이스의 대머리가 봄 햇살을 받아 환한 미소와 함께 반짝였다.
그의 미소는 현재 맥라인의 분위기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었다.
“다른 지역에까지 저희 평야와 타운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있을 정도니까요.”
“뭐라고?”
가볍게 지나가는 말로 던진 이야기에 로건이 생각보다 관심을 보이자, 루겔은 조금 의아해하며 설명을 덧붙였다.
“……어제, 십수 명의 유민들이 타운을 찾아왔습니다. 꼴을 보아하니 화전민 출신 같았는데, 저희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상단에서 소문을 들었답니다.”
“흠. 생각보다 빠르군.”
“예. 아무래도 유민들이다 보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냥 찾아와 본 듯싶습니다.”
이 시대, 평민들의 대부분은 나라와 영지에 속해 각자의 일을 통해 얻은 수입으로 세금을 바치면서 살아갔다.
하지만 모든 지배자가 현명할 수 없듯이, 모든 영지가 살 만한 곳은 아니었다.
폭정을 일삼는 영주가 있거나 전쟁이 일어난 곳에서는 살기 힘들어진 영지민들이 영지를 떠나 산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많았고.
산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도 한계에 부딪히거나 다른 지배자에게 들킬 경우, 다시 먹고살 곳을 찾아서 기약없이 떠도는 유랑민이 되었다.
아직 외부에 공표한 적도 없는데 큰 평야가 생겼다는 소문만 듣고도 찾아올 정도면 그중에서도 상황이 심각한 이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점차 늘어난다면…….
“흐…….”
“왜, 왜 그렇게 무섭게 웃으십니까?”
로건의 옆에 서 있던 드웨인이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흠칫 몸을 떨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신경 꺼. 아무튼 그 유민들은 다 받아들였지?”
“……예.”
땅이 남아도는 이상, 유민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주의점은?”
“간단한 영지법은 주지시켰고, 분란을 일으키면 추방된다는 것도 확실히 해 뒀습니다. 앞으로 찾아오는 유민들도 그렇게 처리할 생각입니다.”
“좋아. 잘했어.”
“뭔가 불안한데…….”
로건은 드웨인의 중얼거림을 무시하며 그저 미소 지을 뿐이었다.
맥라인에서 유민들도 받아들인다는 소문은 왕국 서남부 지역의 화전민들과 소작농들 사이에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더 지나 초여름이 다가왔을 때는 이미 타운에 정착한 유민의 수만 거의 5천에 이르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주변 영지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 * *
“맥라인 영지가?”
“예. 맥라인 성 서쪽의 황무지를 개간했다고 합니다.”
“허. 그 거친 땅을?”
부하의 보고에 맥스 페레타 자작은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년에 테스론이 괜히 전쟁을 일으켰다가 오히려 맥라인에게 패해서 거꾸로 잡아먹혔을 때도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패드릭 맥라인은 다른 것은 몰라도 무력적인 측면에서만큼은 무시할 수 없는 강자였으니까.
거기다 불모지인 맥라인 성에서 오십이 넘는 기사단을 운용할 정도로 정신 나간 인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먹을 것도 없는 영지에 하만 테스론이 괜한 무리수를 뒀다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게 개간이 가능한 땅이었던가?”
“저도 그게 신기해서 알아봤더니, 산에 구멍을 뚫어 루터 강의 강물을 끌어들였다고 합니다.”
“……산에 구멍을 뚫었다? 허허. 그런 미친 짓을 해서 황무지를 개간했다고?”
“예. 사람을 보내서 알아보니 사실로 확인이 됐습니다.”
“허허허.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어찌했는지는 둘째 치고, 그런 공사를 할 돈이 있었던가? 맥라인에?”
“테스론에 여윳돈이 많았다는 소문도 있고, 거기 대공자가 무슨 장사를 해서 돈을 벌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그 외에 금광이 터졌다는 말도 있고,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졌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맥스 페레타가 손을 내저어 부하의 말을 중단시켰다.
“허무맹랑한 소문들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없지. 드러난 사실만 보자고. 황무지 개간은 확실하다는 거지?”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개간된 땅이 얼마나 될 것 같은가? 우리와 비교해서.”
“……적어도 세 배 이상은 될 것이라 예상됩니다.”
“흐음. 근본이 황무지라 다소 소출량이 적을 걸 고려해 봐도 우리의 곱절은 되겠군.”
“그렇습니다.”
테스론보다도 두 배는 넓은 평야를 가진 페레타 자작령의 소출량보다 무려 두 배가 많다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수준의 생산량이었다.
“대단하군…….”
옆 영지가 하루아침에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
이를 보고 박수를 보내며 응원만 한다면 진정한 귀족이라 할 수 없다.
적어도 그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랬다.
“흐음. 그냥 놔둘 수는 없겠는데…… 명분, 만들 수 있겠나?”
“굳이 명분을 만들어 낼 필요도 없습니다. 마침, 놈들이 만든다는 개척 마을로 도망친 영지민들이 있습니다. 그놈들을 붙잡는다는 구실로 들어가면 될 듯합니다.”
페라타 자작의 질문에 부하 리할트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오, 우리 영지민? 내 재산이? 그럼 당당하게 따질 수 있겠군. 대가로 뭘 요구하는 게 좋을까?”
“원하시는 대로 그 땅이나, 아니면 인접한 테스론의 평야도 좋겠지요. 다만 문제가…….”
리할트는 말끝을 흐렸지만 남작은 그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쯧. 그래. 혼자 먹기엔 위험할 수도 있다, 이거지?”
맥스 페레타는 혀를 찼지만 그리 걱정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페레타 자작령의 군세는 맥라인에 짓밟힌 테스론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기사의 수도 120명이 넘고, 정규 병사는 2천에 가까웠다.
또한, 상주인구가 4만에 가까운 성만 두 곳이나 되었다.
테스론 성과 인접한 평야에, 식량을 비롯한 기타 제반 사항까지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토 실반. 그놈이 걸린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뒤통수를 맞으면 아플 테니까요.”
“아픈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맥스 페레타는 혀를 끌끌 차며 북쪽에 있는 라이벌을 떠올렸다.
같은 작위를 가진 놈은 성이 하나뿐이었지만, 그 성에 모인 병력은 자신의 두 성에 포진한 병력을 합친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심지어 이제는 맥라인의 영지가 된 테스론과 영지를 맞대고 있다는 점까지 비슷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방해가 되는 앙숙이었다.
“젠장, 곤란하게 됐군. 아무리 내가 상급기사가 됐어도 패드릭을 이기긴 무리겠지?”
“윽!”
자작이 갑작스레 뿜어낸 기세에 리할트는 안색이 창백해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예. 패드릭 맥라인은 이미 20년 전에 상급기사가 되었습니다. 자작님께서 직접 막기에는 무리일 겁니다. 홀로 맥라인을 치려면 꽤 피를 보셔야 할 겁니다. 그 사이에 실반 쪽에서 뒤를 노리면…….”
“그래, 내 생각도 같다. 확실히 마음에 들어, 네 녀석.”
“황공하옵니다.”
얼핏 들으면 군주를 무시한다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맥스 페레타는 욕심만 많은 것이 아니라 신중하기도 했다.
맥라인이 아무리 성이 하나 늘었다 해도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이미 상처 난 전력을 메꾸기에는 부족할 것이라 믿고 있었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도 대비하고 싶었다.
“실반 자작령에 연락을 넣어. 거기도 우리 못지않게 세율이 높잖아. 분명히 거기서도 꽤 도망쳤을 거야. 안 그래?”
“물론이지요. 무지렁이들 생각이야 다 뻔하니까요.”
페레타와 실반 둘 다 7할에 달하는, 왕국 영지들 가운데 최고 수준의 세율을 부과하고 있는 영지들이었다.
놈들을 끌어들인다면 맥라인을 손쉽게 집어삼킬 수 있을 것이다.
‘자작령 둘의 연합이다. 맥라인은 전부 뺏기던가, 대부분을 뺏기던가를 선택해야 할 것이야.’
맥스 페레타는 벌써 꿀이 흐르는 땅을 차지한 기분이었다.
“당장 세율 낮다고 기어들어 가 봐야 결국 개간한 다음에는 왕창 올릴 것이 뻔한데. 쯧쯧, 한심한 무지렁이들. 한 치 앞밖에 못 봐.”
“그게 평민들의 한계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우리가 지배자지. 뭐, 좋아. 실행해.”
“예!”
“나눠 먹는 거야 아깝지만, 어쩔 수 없지.”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설사 맥라인이 멀쩡하다 한들, 아니 과거보다 더 강해졌다 한들 두 영지의 연합은 절대 막을 수 없었다.
맥라인의 급격한 부흥은 먹기 좋게 차려진 밥상에 불과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