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2)
62화로건을 비롯한 맥라인의 지휘부가 빤히 쳐다보는 가운데.
사절들은 오만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외쳤다.
“저희 페레타는 도망친 영지민의 송환과 더불어 재발 방지를 위한 대가로 페레타 영지에 인접한 테스론 평야와 개척한 황무지 남서부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저희 실반은 테스론 성의 지배권과 새로 개척한 황무지 북서부에 대한 양도를 요구합니다.”
로건의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았다.
여유로운 표정의 사절들은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한 성을 통째로 내놓고, 거기서 개척한 땅도 절반은 내놔라.
협박이나 다름없는, 사실상 그냥 싸우자는 말이었다.
‘어떻습니까?’
로건이 자신의 예상이 맞지 않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작게 한숨을 내쉰 패드릭은 곧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신호는 단상 아래의 헤인켈 단장에게 곧바로 이어졌다.
표정을 굳힌 헤인켈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실반과 페레타는 지금 맥라인과 전쟁을 하자는 것인가?”
“저런 미친!”
“감히!”
“정신 나간 것들이 여기가 어디라고!”
동시에 대전 앞에 늘어선 기사들 30명이 일제히 반발하며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중에는 성급히 검을 빼 든 기사도 있었기에 대전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벌해졌다.
사절들은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내 더 당당하게 나왔다.
“사절을 이리 겁박하는 법은 없습니다, 영주님! 정말 전쟁을 하고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면 기사들을 물려 주셨으면 합니다.”
“전쟁을 건 것은 그쪽이지. 싸움을 걸어 오는데 어찌 마다할까. 맥라인은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 달리 패드릭의 태도는 더욱더 당당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사절들의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맥라인은 풀 한 포기조차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정말 파멸을 원하시는 겁니까?”
“이리 강경하게 나오면 저희가 양보할 거라는 착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요? 남작님?”
비릿하게 웃음 짓는 실반의 콧수염과 페레타의 여우 같은 놈.
사절단의 대표인 두 사람의 말투가 좀 더 노골적인 협박조로 바뀌었다.
그 뒤에 선 기사들 역시 살짝 눈이 커졌을 뿐 여전히 여유로웠다.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입지가 유리하다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럼 슬슬 그 바닥을 무너트려 볼까.’
놈들의 표정이 어찌 변할지 생각하자 로건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맺혔다.
“폭정을 피해 도망친 유민들이 어찌 거래의 대상이 될까. 아버지, 이들은 고귀한 푸른 피의 의무를 잊었습니다. 굳이 협상할 필요도 없습니다.”
챙!
단호한 말과 함께 그가 한 발 나서는 순간, 맥라인의 기사들이 모조리 검을 뽑았다.
그제야 사절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지, 진짜 전쟁을 하겠다고?”
“미친 거 아냐? 너희들 다 죽고 싶어?!”
버럭 소리를 질러 봤지만 맞은 편 맥라인 기사들의 얼굴에는 오히려 비웃음만 떠올랐다.
그 모습에, 사절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나뉘었다.
“이, 이것들이…….”
“다, 당신들 정말 미쳤어? 저, 전쟁이야! 이러면 전쟁이라고! 맥라인이 남아날 것 같아?!”
페레타의 여우는 안색을 굳히며 말을 아끼는 데 반해, 실반의 콧수염은 발악하듯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로건이 기다렸다는 듯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스릉.
“오호? 미쳤냐니. 간덩이가 부었구나. 감히 이 땅의 군주에게 손가락질에다 폭언을 해? 너야말로 제정신이냐?”
“아, 아니. 그건 당신들이…….”
로건은 굳이 더 말을 듣지 않고 점점 앞으로 나섰다.
“마, 막아!”
더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는 살기에, 사절들의 뒤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호위 기사들이 전면으로 뛰어나왔다.
하지만 로건이 더 빨랐다.
스각.
“커, 커흑!”
호위 기사 중 하나가 피가 솟구치는 목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순간.
퓨숙.
스각.
촤아악!
번개처럼 이어진 로건의 칼춤은 사절단 모두를 공포로 얼어붙게 했다.
털썩.
“커어억.”
“끄헉!”
“이, 이런 비겁…….”
고작 호흡 한 번 내쉴 시간에 일제히 쓰러지는 호위 기사들.
경악으로 물든 사절단들이 비난과 분노가 담긴 눈빛을 보냈지만.
“남의 땅에서 칼을 뽑았으면 죽을 각오는 했어야지.”
로건은 담담한 태도로 또 칼을 들 뿐이었다.
“나, 난 사절……!”
촤아악!
“끄, 끄윽.”
털썩.
실반의 콧수염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는 순간.
페레타의 여우는 곧바로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맥라인의 뜻. 저희 군주께 남김없이 전하겠습니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약간은 떨리는 어조였지만 모두의 귀에 들릴 만큼 또렷한 목소리였다.
“……똑똑하네.”
바닥에 엎드린 채 고개도 들지 못하는 리할트의 앞에서 로건은 웃으며 돌아섰다.
적의 일행을 포함한 모두가 보는 앞.
핑계가 있는 죽음은 명분이 되지만, 엎드려 비는 자를 베었다가는 비난만 받을 뿐이었다.
더구나 이미 처음 목표한 바는 이루었다.
‘실반 녀석이 멍청해서 다행이야.’
그리 생각하며 아버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패드릭이 모두를 향해 외쳤다.
“맥라인의 기사들은 전쟁을 준비하라! 우리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근엄한 목소리가 대전을 울리고, 기사들이 검을 들어 복창했다.
* * *
“……정말 우리를 상대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쫓겨나던 페레타의 여우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그에 로건은 씨익 웃어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맥라인에선 두 자작령을 향해 마법 통신을 넣었다.
[사절로 온 이들의 심각한 무례와 폭언에 심한 유감을 표하며…….]긴 미사여구가 들어간 긴 문장이었지만 간단히 줄여서 요약하자면.
– 사절들이 와서 헛짓거릴 하다 죽었다. 우리 기분 나쁘다. 이 무례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치를 거냐?
……라고 따지는 통신이었다.
그리고 답변을 기다린다는 통신의 마지막 말과는 달리, 맥라인 기사단 전원은 그 즉시 테스론 성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맥라인과 테스론을 잇는 길을 따라 맥라인 타운의 중심을 가로지른 70여 기의 기마는 들판을 거침없이 질주했다.
그 행렬의 가장 앞쪽, 위맹한 인상의 붉은 머리 중년인은 자신의 옆에 나란히 달리는 아들을 보며 물었다.
“이렇게까지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느냐? 놈들이야 모르고 있지만 지금 우리의 전력은 자작령 하나쯤은 쉽게 밟아 버릴 수 있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
들판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 사이에서도 그 음성은 또렷이 로건의 귀에 박혔다.
기사들을 소집하고 병사들이 훈련 중인 테스론 성을 향해 질주 명령을 내릴 때까지도 로건을 믿고 궁금증을 참아 온 패드릭의 말문이 그제야 터진 것이다.
“그래서 더 서둘러야 합니다.”
“어째서지?”
로건은 자작령들에 통신을 보낼 때부터 이미 계획이 서 있었다.
실반, 페레타 양쪽 모두 항의는 하겠지만 더 격하게 나올 곳은 뻔했다.
“분명히 사절이 죽은 실반에서 먼저 개소리를 할 겁니다. 그러니…… 그것을 구실로 삼아야 합니다.”
“먼저 선전포고를 하자?”
“예. 그 말이 나온 즉시, 최대한 빨리 실반을 점령해야 합니다. 강력한 무력을 보여 줄수록 이런 어쭙잖은 도발이 없어질 테니까요.”
실반 성은 맥라인 성보다 발달한 테스론 성보다도 두 배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두 개의 성을 가진 페레타 자작령이 부럽지 않을 거성.
그 안에 있는 병력은 단순히 숫자로만 보자면 맥라인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런 실반 성을 단숨에 점령하겠다는 로건의 말을 듣고 있는 패드릭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일리가 있는 소리다. 괜히 전쟁을 길게 끌 필요는 없지.”
“예. 굳이 징집병을 동원할 필요도 없습니다. 정규병력만으로 실반 성을 빠르게 점령한다면 맥스 페레타 자작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욕심이 많은 만큼 신중한 자니까요.”
맥스 페레타는 욕심이 많아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고, 때문에 결정도, 실행도 늦었다.
로건은 전생의 인연으로 알고 있는 그 사실을 굳이 부언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왕래도 없는 맥스 페레타의 성정을 네가 어찌 아느냐고 되묻지 않았다.
그저 당장 그에게, 맥라인 영지에게 필요한 요점만 되짚었을 뿐.
“실반을 얼마나 빠르게 함락시키냐가 관건이겠구나.”
“예!”
대화를 나눈 이들은 물론, 주변에서 듣고 있던 모든 이들 중에서 그것이 무리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넘치는 자신감만큼, 맥라인 기사단의 질주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 * * 맥라인 기사단이 테스론 성에 도착했을 때.
누구보다 긴장한 것은 당연히 테스론 성 정규 훈련 과정 도중, 느닷없이 전투 대기 명령을 받았던 정규 병사들일 것이다.
하지만.
“맥라인 본성 근무 100명을 제외한 정규 병사 1,389명. 용병대 313명. 지시를 받고 전원 대기 중입니다.”
보고하는 카이의 표정은 긴장보다는 오히려 조금 흥분된 기색이 역력했다.
“……수고했다. 병사들 무장 상태는?”
“갑옷과 창검, 연사 석궁과 기마까지 전부 보급되어 있습니다. 어디의 어느 병사들과 겨루어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자신감 넘치는 카이의 모습에, 로건 역시 든든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다. 다음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푹 쉬도록 해.”
작년 영지전의 판을 뒤집어 버린 석궁기병대가 다섯 배로 뻥튀기가 된 셈이었다.
이런 병력에 철혈검을 익혀 경지가 상승한 아버지와 기사들까지 있으니, 자신감이 붙는 것이 당연했다.
‘실반과 페레타. 어느 쪽이건 한쪽은 쉽게 깰 수 있어.’
물론 둘 다 상대해도 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그리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었다.
단순히 전쟁에서 생길 피해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반과 페레타를 모두 병합하면 가문의 성이 다섯 개가 된다. 그럼 사실상 변경백들의 영지와 버금가는 영토가 돼.’
물론 영토가 늘어난다고 무조건 작위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되는 순간 1왕자 쪽과 2왕자 쪽 세력 모두가 맥라인을 끌어들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지금은 그 파벌들의 시선을 끌어선 안 되었다.
로건은 결국 3왕자를 왕으로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반드시 해낸다.’
전생에 왕이 되었던 1왕자는 결국 맥라인을 이용만 하다 버렸다.
놈이 집권 후 몇 년 내내 벌인 숙청의 나날들로 날아간 국력까지 생각하지 않더라도 1왕자를 왕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2왕자 역시 1왕자와 평이 별로 다르지 않은 자.
원래는 패배할 진영에 가담해서 억지로 왕을 만들 만한 보람이 없는 자였다.
결국, 남은 선택은 3왕자뿐이었다.
3왕자이지만 정실인 왕비의 자식이었고, 형들과 나이 차이가 꽤 나지만 뛰어난 재목으로서, 왕이 차기 왕으로 염두에 두고 있었던 왕자.
하지만 그 왕이 기반을 다져 놓기도 전에 급사하는 바람에 찬밥 신세가 된 비운의 왕자.
내전에서 승리해 그를 왕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것도 최대한 왕국의 피해를 줄이면서 말이야.’
분명 힘든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은 실반까지 점령하여 성 세 개, 조금 큰 자작령 수준의 영토만 유지하면 충분했다.
로건은 현재 중앙의 가장 큰 파벌들이 내전 전까지만이라도 이곳 서남부의 시골에 신경 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애써 이렇게 전쟁의 명분까지 만들려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가다듬으며 머리를 굴리는데.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고개를 들자 아직도 방을 나서지 않은 카이가 보였다.
로건은 그 복잡미묘해 보이는 표정이 궁금해서라도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음? 좋은 소식이라니?”
“빅토르가 포스유저가 되었습니다. 공자님께 직접 보고하겠다고 아까부터 대기 중입니다.”
“허?! 드디어!”
“불러들일까요?”
“당연하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자 카이가 작은 한숨과 함께 방문을 열었다.
그의 복잡한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을 신경 써 줄 정신이 없었다.
열린 문 바로 앞에 조금 상기된 기색의 빅토르가 서 있었으니까.
“로건 님. 저…….”
“긴말 필요 없고, 보여 봐라.”
“……예!”
적청의 오드아이가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순간 녀석의 전신에서 희미한 회색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자신의 황금빛 포스 못지않게 특이한 색의 포스.
하지만 그것은 전생의 귀족학살자 빅토르의 상징과도 같은 포스이기도 했다.
“하. 하하. 정말이구나. 고작 2년 만에…….”
한낱 노예에서 오러유저가 되었던 빛나는 재능은 현생에도 변함이 없었다.
빅토르의 성장은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는 신호처럼 느껴져 로건은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 * * 테스론에 도착한 이틀 뒤, 생각보다 소식이 늦어 이상하게 여길 때쯤.
드디어 실반 영지에서 기다렸던 통신이 들어왔다.
[정당한 항의를 묵살하고 무력으로 겁박한 무도한 행사에 적극적이고 크나큰 유감을 표하며…….]맥라인이 보냈던 통신처럼 역시 미사여구와 의례적 표현이 잔뜩 들어간 긴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 실반과 페레타 연합을 상대하기 싫으면 도망간 영지민을 내놓고 배상금 천만 골드씩을 상환하라. 덤으로 테스론 평야도 내놔라. 기한은 한 달 주겠다.
……라는 경고, 아니 협박이었다.
맥라인은 그들과 달리 시간을 끌지 않고 곧장 확고한 답을 내주었다.
[항의의 정당성에 의문도 있거니와, 그대들의 사절이 본 영지에서 보여 준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었…….]이 역시 자질구레한 겉치레를 모두 벗겨 내고 속내를 해석하자면.
– 개소리 말고 싸우자!
그 직후, 테스론 성에서 서북쪽을 향해 1,800에 가까운 대규모 기마 부대가 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