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3)
63화두두두두.
“기한이 한 달이라니. 참 느긋한 놈들 아니냐.”
들판을 달리는 기마 부대의 선두에서 시끄러운 말발굽 소리를 뚫고 나온 중후한 목소리가 로건의 귓가를 두드렸다.
“자기들끼리 연합할 시간을 말하는 거겠죠.”
“그렇다 쳐도 좀 길구나. 더구나 페레타는 이상하게 반응이 없고.”
“우리가 실반을 점령할 때쯤에는 페레타도 반응을 할 겁니다. 아니면 전투 중에 연락이 올 수도 있겠죠.”
“그래, 그렇겠지. 그땐 이미 모든 것이 늦었겠지만 말이다.”
슬쩍 뒤를 돌아보는 패드릭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선두를 질주하는 기사들의 용맹한 모습과 그 뒤를 따르는 천여 명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린 무기가 그에게 전쟁 직전에도 미소를 가져다준 것이었다.
여유가 생긴 패드릭은 자연히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에도 관심을 보였다.
“네 노예가 포스유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구나. 그걸 예상하고 데려온 것이더냐?”
“예.”
“기사로 만들려고?”
“돌아가면 그리할 것입니다.”
“허허. 네가 그런 재능까지 볼 줄 알았더냐?”
“운이 좋았지요.”
싱긋 웃으며 뒤를 보자, 기사들 바로 뒤편에서 아직은 병사 복장을 하고 병사들의 가장 앞에서 말을 달리는 빅토르가 보였다.
포스유저가 되었으니 당장이라도 기사로 임명할 수는 있지만, 로건은 그것을 조금 뒤로 미뤘다.
‘아직은 설익은 감이야. 벌써 기사와 부딪치게 만들어서 망가지면 안 되지.’
물론 그런 그의 배려와 관계없이 빅토르의 표정은 조금 불만스러웠다.
녀석의 면전에서 노예 문서를 태워 줬으니 신분상의 불만은 아닐 것이고, 아마도…….
‘싸우고 싶다는 거겠지. 강자와.’
로건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녀석과 싸우게 해 줄 적수는 이미 준비해 놓았다.
지금 맥라인 성에서 열심히 신검 비전을 수련 중인 로니안.
두 천재는 틀림없이 훌륭한 호적수가 될 것이다.
‘나중에는 실컷 싸우게 해 주마. 지금은 참아라, 꼬마야.’
아직 진정한 고비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시기였다.
미래의 가장 훌륭한 무기들은 아직 조심스러운 담금질이 필요한 시기였다.
“이랴!”
“자, 가자! 소토 실반의 엉덩이를 걷어차 주러!”
그러니 아직은, 미래보다는 현재의 주역들을 써먹을 시기였다.
두 명의 맥라인과 73명의 기사, 그리고 1,390명의 병사와 313명의 용병.
도합 1,800에 가까운 기마 부대가 충분한 휴식을 취해 가며 반나절을 달렸을 때.
그들은 성벽 위, 당황한 표정의 실반 병력을 볼 수 있었다.
* * *
– 소토 실반은 나와서 내 칼을 받아라!
쩌렁쩌렁하게 사방을 울리는 목소리는 거의 1km 거리를 격하고 성벽 위의 병사들을 떨게 했다.
“어, 어어. 저거 뭐야?”
“불꽃 깃발?”
“여, 영주님께 보고해!”
병사들이 난리를 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이 아래에서 은빛 갑주를 걸친 기사들이 올라왔다.
하나같이 불꽃 속에 교차된 장검의 문양을 새긴 이들.
그들 중 가장 앞에 서 있던 조금 비대한 중년인이 성벽을 내다보더니 살진 얼굴을 찡그렸다.
“맥라인, 정말 쳐들어오다니……. 이 미친 것들이 감히 날 우습게 봐!”
“주군. 저를 앞세워 주십시오. 제가 패드릭 맥라인을 막아 내겠습니다.”
“박살을 내겠습니다! 실반 기사단 120명은 전부 준비되어 있습니다!”
“병사 2,512명 역시 놈들의 가당찮은 엄포를 들었을 때부터 대기 중입니다.”
최근에 상급기사의 경지에 오른 기사단장의 호언장담과 함께 부하들의 든든한 외침이 뒤를 이었다.
맥라인의 병력이 생각보다 더 많긴 했지만, 그래도 이쪽의 병력이 월등했다.
마법 통신을 받고도 진짜 올 거라곤 생각지 않았는데, 정말 눈앞에 나타나자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캘리안도 상급기사가 되었다. 더는 네가 이 지역 유일한 상급기사가 아니다, 패드릭 맥라인. 감히 주제를 모르고.’
소토 실반은 분노에 부르르 떨다가 이내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안색을 딱딱히 굳혔다.
“……페레타에서는? 아직 답이 없느냐?”
“조용합니다. 아직 내부 조율이 안 된 것 같습니다.”
“주군. 페레타의 원군이 오더라도 한나절은 걸릴 겁니다. 굳이 기다릴 필요가…….”
“아니, 그게 아니야. 맥라인을 쓸어 버리고 난 후에, 페레타가 우리 뒤를 친다면?”
“예?!”
“이상하지 않느냐? 항의 통신을 보낸 직후의 선전포고에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온 맥라인과 조용한 페레타. 캘리안, 자네는 이게 정상이라고 보나?”
“……아니겠군요.”
“그래. 이 자식들 말을 맞춘 거야. 이 개 같은 놈들이!”
물론 증거 같은 건 없었지만, 소토 실반은 자신의 추측을 확신했다.
그렇지 않으면 급변한 이 상황, 두 가문의 황당한 태도가 설명되지 않았으니까.
“이 쓰레기들이 감히…… 으으으.”
그가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부르르 떠는 순간이었다.
– 겁을 먹었느냐! 소토 실반! 계속 그렇게 겁먹은 여우처럼 대가리를 처박고 있어라! 내 친히 네 목을 따 주마!
성 밖에 쩌렁쩌렁 울리는 모욕적인 고함에, 그는 결심을 굳혔다.
“비프로스에 연락을 넣어라. 맥라인을 박살 낸 후, 그 가치 절반에 해당하는 조공을 하겠다고.”
“……예?”
“어떻게든 페레타, 그 쓰레기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란 말이다!”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사단, 병사들 전부 집결시켜라! 맥라인 놈들을 완전히 박살 내 버려! 페레타 놈들이 오기 전에!”
“예!”
아드득.
“감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맥라인을 먹어 치운 다음에는 네 차례다. 맥스 페레타.”
소토의 살기에 찬 시선은 이미 성 밖의 적들이 아닌, 남쪽에 있는 자신의 라이벌을 향해 있었다.
* * *
“병사들의 엄호사격 후에 성안으로 돌진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희 기사들 실력이면…….”
“아니, 아직. 그러다 실반 자작이 도망이라도 가면 곤란해. 기다려.”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기사들이 성벽을 뛰어넘어 난전을 벌이면 성이 망가집니다. 자기네 병력이 우세하다고 생각할 테니. 곧 튀어나올 겁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니…….”
“소토 실반은 제가 좀 아는데, 모욕을 참지 못하는 놈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죠.”
평생 맥라인 영지에서 자란 대공자가 그놈을 어찌 압니까.
헤인켈은 이내 부산히 움직이기 시작한 적 병력을 보며 목구멍까지 솟아오른 그 말을 삼켰다.
잠시 후.
쿠궁.
성문이 열리며 실반의 병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꽃 속에 교차한 장검 문양을 새긴 갑옷을 입은 기사 백 수십 명. 일천이 넘어 보이는 기마병. 그리고 그보다 많은 장창병들.
“정규병력만 대략 3천이라, 대단한데.”
“예상범위 안쪽입니다.”
“물론이지.”
맥라인의 거의 1.5배에 달하는 병력이었지만, 그 병력을 보는 맥라인의 수뇌부 누구도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 수치를 모르는 맥라인은…….
“전군! 돌격!”
적장의 외침이 채 끝나기도 전, 패드릭의 칼에서 붉은 기운이 솟아오르며 서슴없이 전방을 가리켰다.
“우와아아!”
“가자!”
“내가 선두다!”
그러자 자신감 넘치는 맥라인의 병사들이 일제히 말을 몰며 앞으로 돌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저, 저런 무도한…….”
부하가 화를 냈지만, 캘리안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달려오는 놈들을 봐라. 죄다 병사들이야.”
맥라인 놈들은 어찌 된 일인지 기사단을 앞세우지 않고, 오히려 갑옷에 문양도 없는 일반 병사들이 기사단 앞쪽에서 질주해 오고 있었다.
그것도 한군데 뭉치지도 않고 일렬횡대로 쫙 퍼진 채 돌진하는 놈들을 보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사단을 뒤에 두고 병사들이 저런 무식한 돌격이라니.
“오합지졸들이군요.”
“그래. 장비만 그럴듯하군. 확실히 맥라인이 돈을 많이 번 모양이야.”
“밟아 버릴까요?”
“당연하지!”
– 전군 돌격!
오합지졸인 놈들과는 다르게, 실반의 군대는 기사단이 맨 앞에서 돌진하고 일천의 기마병이 그 뒤를 받치는 정석적인 진형을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정석적인 진형이라는 것은 그만큼 효과가 증명된 진형이라는 것.
기사단과 기마병이 적의 중심을 돌파하고 난 뒤, 횡렬로 흩어진 남은 적들은 장창병들이 뭉쳐 쉽게 요리할 수 있을 것이다.
캘리안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전투의 결과가 환히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전투는 그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들어!”
횡렬로 늘어진 오합지졸(?)들의 가운데에서 회색 머리 중년 용병이 고함을 지르자, 맥라인의 병사들은 일제히 간격을 맞추며 석궁을 들었다.
이내 양군의 거리가 300m 안으로 좁혀진 순간.
“쏴!”
파바바바박.
슈슈슈슉.
죽음의 비가 실반 병력에게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히이이잉!
“으아악!”
“뭐, 뭐야!”
“커억!”
챙, 챙!
“화, 화살이다! 전부 뭉쳐라!”
캘리안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지만, 그때는 이미 전열이 무너진 뒤였다.
기사들조차 방심했던 몇 명이 화살의 비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 그 뒤를 따르던 기마병들은 속수무책으로 박살 날 수밖에 없었다.
히이이잉!
“으아아악!”
병력들이 쓰러지고 뒤엉키며 실반 진영이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속도 높여!”
이를 악문 캘리안의 고함에 간격을 좁힌 기사들이 포스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며 달렸다.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실반 기사들의 선두에는 무리해서 말까지 포스로 보호하며 돌진하는 상급기사 캘리안과 실반의 조장들이 있었다.
그런데.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이를 갈던 실반의 기사단이 맥라인의 전열을 앞에 둔 순간.
“산개!”
회색 머리 용병의 외침과 함께 맥라인의 기마병들이 기사단을 피해 좌우로 흩어졌다.
“기사들이 아닌 병사들을 노려라!”
그 얄미운 말에 이를 부드득 갈아 보지만, 캘리안을 비롯한 실반의 기사들은 말을 돌릴 수도 없었다.
적의 기마병들이 좌우로 흩어진 곳을 파고들며 적진의 중심에서부터 맥라인의 기사들이 튀어나오고 있었으니까.
“용기가 있다면 받아 봐라!”
붉은 머리 거한의 자신만만한 외침과 함께 그의 칼끝에서 붉은 검 형태의 포스가 2m 넘게 솟구쳐 올랐다.
‘포스블레이드!’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미처 떠올리기도 전에 캘리안은 본능적으로 말을 버리고 옆으로 뛰어올랐다.
쩌어어억!
촤아아악!
“으아아악!”
3m에 가까워진 붉은빛 칼날이 좌우로 휘둘러지자, 연사 석궁도 굳건히 견뎌 냈던 기사들이 일검에 두셋씩 토막이 나 땅 위를 나뒹굴었다.
“최상급!”
파랗게 질린 실반 기사들의 비명과 함께 70여 명의 기사단이 120명의 기사단을 완벽하게 두 쪽으로 쪼개며 지나갔다.
“적을 섬멸하라!”
패드릭 맥라인의 고함과 함께 맥라인의 기사들이 반전하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곧바로 아직도 반 배 이상 많은 실반 기사들을 향해 서슴없이 달려들어 검을 휘둘렀다.
꽈아아앙!
“큭!”
“이, 이놈들!”
“뒈져라!”
휘둘러지는 검격 하나하나가 강력한 기세를 담아 적들을 압박했다.
흐름을 탄 기세도 있겠지만, 맥라인 기사들의 힘이 실반의 기사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어, 어찌 이런…….”
캘리안은 전장의 한가운데서 넋을 잃은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원래도 힘 좋기로 소문난 맥라인의 기사 핸더슨은 간만의 전장에서 신나게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반년 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힘이 전신에 흘러넘쳤다.
몬스터 숲을 벌목할 때에 곁다리로나마 중급 몬스터도 상대해 봤지만, 아무래도 기사와 겨루는 경험은 남달랐다.
예전의 자신과 동등한 경지의 평기사 둘을 한꺼번에 몰아치는 자신의 실력이라니.
그 짜릿한 흥분이 그의 대검에 점차 힘을 더했다.
확연하게 강해진 자신의 힘, 고양되는 감각.
그 누구라도 베어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기세를 탄 그의 검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그리고 이내.
촤아아악!
“끄아아악!”
적의 비명이 울리는 순간, 핸더슨은 갑자기 자신이 가진 포스가 3할 이상 증대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강해진 포스를 또 3할 이상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 또한.
그는 이것이 바로 선배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감각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다 나와!”
전투 중 중급기사로 성장한 핸더슨이 거센 포효를 지르며 다음 목표를 찾았다.
‘호오. 핸더슨도?’
부하들 몇몇이 전투 중 다음 경지로 성장하는 것을 보며 헤인켈이 웃었다.
‘주군의 그 훈련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어.’
급박해야 할 전투가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을 느낀 것인지, 실반의 기사 하나가 이를 갈며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언제까지 웃고 있나 보자!”
콰아앙!
주변의 평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
아마도 실반 기사단의 조장급이 분명할 중급기사 다섯이 헤인켈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오히려 밀리는 것은 그들이었다.
“이익. 상급기사라니!”
“캘리안 단장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헤인켈은 그 절망 섞인 탄식을 들으며 싱긋 웃었다.
철혈검을 익힌 이후 오랫동안 막혀 있던 중급의 벽을 뚫고 상급의 경지에 올랐기에, 중급기사 다섯 정도야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였다.
오히려.
‘중급기사는 귀하니까.’
어쩌면 자신의 휘하에 들어오게 될지도 모르는 놈들이니 혹여 너무 상하지 않게(?) 살살 다루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와 동시에 헤인켈은 혹시나 위험한 아군이 없나 전장을 둘러보았다.
위협이 될 만한 것은 고작 상급기사 하나.
아군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성을 향해 돌진한 지금, 여차하면 자신이 놈을 처리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이내 적의 상급기사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드는 붉은 머리 청년을 보고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 녀석들만 얌전히 사로잡으면 되겠어.’
이 전쟁은 이겼다.
확신에 찬 미소가 헤인켈의 입가에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