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4)
64화챙! 까앙!
콰아앙!
“이, 이 빌어먹을 것들이!”
캘리안은 자신을 상대로도 좀처럼 뚫리지 않는 기사 셋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가 간신히 도달한 상급의 경지는 중급기사와 같은 포스로도 낼 수 있는 출력 자체가 달랐다.
중급기사 셋 정도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기사 셋을 처리하기는커녕 완벽하게 막혀서 부하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지는 장면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이건 말도 안 돼!”
콰아아앙!
캘리안이 순간적으로 포스의 출력을 높이며 강격으로 일순간 기사 셋을 밀쳐 내는데.
그 사이로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 황금빛 검 하나가 끼어들었다.
“내게 맡기고 동료들을 도와!”
황금빛 포스로 빛나는 검을 캘리안에게 겨눈 채 외치는 붉은 머리의 말에, 그를 상대하던 세 명의 기사는 두말없이 물러났다.
최초의 접전에서 캘리안 자신도 모르게 몸을 피하게 했던 거한과 지나치게 닮은 놈의 모습.
그 어린놈을 보는 순간 캘리안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맥라인의 자식놈이냐!”
접전이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패색이 짙어진 아군.
이 녀석을 사로잡으면 아군이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라도 벌 수 있을 것이다.
캘리안은 이를 악물고 붉은 포스로 휘감긴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콰아아앙!
주르르륵.
“큭!”
“상급기사가 뭐 이래. 좀 더 힘을 내 봐!”
분명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세는 잘해야 중급.
그런데 부딪치는 순간 밀려나는 것은 오히려 그였다.
“이 애송이가!”
운으로 득수한 주제에 감히!
위기감에 더해 자존심까지 무너진 캘리안이 직전의 결심을 잊고 살기를 뿜어 대기 시작했다.
‘좋아. 잘됐어.’
살기를 뿜는 캘리안을 보며 로건은 미소를 지었다.
온전한 적의 상급기사라니.
‘내 벽을 깨기에 딱 적당한 상대야.’
로건은 신검 비전의 2식, 단금참(斷金斬)을 완성하며 포스유저 상급의 벽을 두드렸다.
하지만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던 그 벽은 몇 달째 건재했다.
그 너머가 보일 듯 말 듯 한 기분에 애가 타는 시기.
같은 철혈검을 익힌 헤인켈이나 아버지가 아닌, 다른 영지의 상급기사는 깨달음을 얻기에 아주 적합한 상대였다.
전장도 아군이 승기를 잡아 가는 상황이었으니, 신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와라!”
꽈아아아앙!
요령도 기술도 없는 정면충돌과 함께 결투가 시작되었다.
“큭!”
“흡!”
주르르륵.
붉은빛과 황금빛이 충돌하고, 그 충격으로 인해 밀려나는 거리는 서로 비슷했다.
하지만 그 비슷하다는 것만으로도 캘리안이 당황하기에는 충분했다.
‘상급기사와 비슷한 힘을 가진 중급기사라고?’
아니, 그럴 리가 없다.
포스가 만들어 낸 능력 증폭률은 경지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그러니 이것은 아마도 자신이 방심한 탓일 터였다.
“더는 봐주지 않겠다. 애송이!”
“지랄은…….”
챙!
스각.
쾅! 꽝!
검격이 몇 번을 교차하며 서로의 갑옷과 살갗을 스치고.
거센 충돌 끝에 또다시 비슷하게 밀려나자, 그제야 분노로 불타오르던 캘리안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로건은 상대의 변화된 모습이 더없이 반가웠다.
“이제야 제대로 하겠군.”
“빌어먹을…….”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캘리안은 인정하기로 했다.
놈은 힘과 속도, 그 어떤 면에서도 상급기사인 자신에 밀리지 않았다.
‘어떻게 저 나이에……. 괴물 자식.’
하지만, 힘과 속도는 어찌 따라잡아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캘리안은 내면의 분노와 질투심을 억누르고 냉정하게 검을 들었다.
감정에 휩쓸려 자칫 서둘렀다간 되레 자신이 위험해질 것을 자각한 것이다.
까득.
“지금부터는 조금 다를 거다.”
낮은 음성과 함께 그의 붉은빛 검이 휘둘러지고, 동시에 ‘두 자루’의 검이 로건의 상하를 동시에 노리고 들어왔다.
선명한 붉은 색 검들은 로건의 감각으로도 일순간에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아래!’
검을 휘두르는 손은 하반신을 확실히 노리고 있었고, 위의 검격은 그저 붉은 검만 두둥실 떠 있었다.
로건이 하반신의 검격을 막으려 움직이던 찰나.
‘아냐, 너무 쉬운 속임수다!’
별안간 드는 생각에 로건은 황급히 검을 움직여 아래위로 그어 올렸다.
쩌정.
쾅!
스각.
대응이 조금 늦었던 탓에 엄연히 실체를 가지고 있던 상단의 붉은 검에 로건의 목덜미가 살짝 베였다.
“흠. 운이 좋군.”
“……신기한 재주야.”
두 개의 검이 모두 실체라니.
진심으로 놀라는 로건의 모습에 캘리안은 살기 어린 웃음으로 답했다.
“그 신기한 재주, 죽기 직전까지 잘 감상해 보도록.”
스팟.
촤아악.
이번에 나타난 붉은 검은 무려 세 자루.
왼쪽 어깨를 대각선으로 갈라 오는 검과 다리를 횡으로 베어 오는 검. 거기에 더해진 찌르기까지.
반격의 여지가 없는 전방위 공격에 로건은 속절없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근데, 나도 비슷하게 쓸 만한 수법은 알고 있지.”
우우웅.
황금빛 검이 빛나는 순간, 기묘한 기세가 퍼지며 로건의 전신을 난도질할 것 같던 세 줄기 검격이 묘하게 느려졌다.
미세하게 방향이 엇나가는 붉은 검들.
빈틈을 보고 그 사이로 뛰어든 로건이 검을 휘두르려 했지만.
“큽! 웃기지 마라!”
캘리안의 기합과 함께 붉은 검이 빛을 더하며 다섯 개로 늘어났다.
“읏!”
중압검의 기세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두 자루의 검.
로건은 이를 피해 황급히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한 번 물러선 걸음은 이내 점점 더 빨라졌고.
일방적으로 전세를 몰아붙이게 된 켈리안은 끝없이 달려들며 검을 휘둘렀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다섯 개의 붉은 검은 마치 다섯 명에게 협공을 당하는 듯한 위기감이 들게 했지만, 로건은 침착하게 반격했다.
중압검으로 검들을 묶고, 빈틈을 노리며 밀리는 와중에도 간간이 반격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에 상처가 하나둘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결국 승기를 잡은 캘리안이 본래의 목적도 잊고 살기 어린 기합을 내뱉었다.
“뒈져라!”
그 순간, 눈을 빛낸 로건이 금방이라도 자신을 넝마로 만들 듯한 그 붉은 검의 검격 사이로 뛰어들었다.
“타아!”
꽈아아아아앙!
“큭!”
“크흡!”
다시금 벌어진 큰 충돌.
하지만 이번에 더 크게 밀려난 것은 일방적으로 로건을 밀어붙이던 캘리안이었다.
놈을 쭉 밀어낸 로건은 허벅지와 팔뚝 등에 자잘한 검상을 입고 피를 흘리면서도 씨익 웃고 있었다.
‘찾았다.’
중압검으로 다섯 개의 검을 모두 묶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한두 개만 묶으면 다소의 피해는 있더라도 놈의 빈틈을 만들 수 있었다.
“하나하나의 힘이 너무 약하네. 이게 전부면 너무 싱거운데.”
단순히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놈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기 위한 전투였다.
그래서 비장의 수도 쓰고 있지 않은 마당에 로건은 놈이 좀 더 힘을 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로건의 도발은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뿌득.
“전신을 난도질해 주마.”
“그 전에 네 목이 떨어질 거 같은데.”
극한까지 끌어올린 살기로 인해 눈까지 빨개진 캘리안의 모습에, 로건은 웃으며 달려들었다.
챙! 쾅! 콰앙!
스각.
로건의 몸에 자잘한 자상 십수 개가 생기면, 캘리안의 몸에는 제법 큰 상처가 하나 생기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캘리안의 비기, 산검(散劍)으로도 채 흘려 내지 못한 로건의 일격이 캘리안의 옆구리를 갈랐다.
쩌억.
“커, 커흑.”
캘리안은 비틀거리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눈으로 로건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의 이 일격은 분명 눈으로 보았음에도 막지 못했다.
다섯 개의 검을 교차해 막아 보려 했지만, 한순간에 적의 속도와 힘이 그것을 아득히 능가해 버렸을 뿐.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서, 설마…….”
“고맙다. 어울려 줘서.”
로건은 심장에 맥동하는 ‘세 개’의 코어를 느끼며 활짝 웃었다.
최초의 코어를 중심으로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도는 두 개의 코어는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포스를 여덟 배로 증폭시켜 온몸에 힘을 불어넣었다.
수십 개의 자상으로 흘린 피 때문에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지던 육체가 활력을 되찾았다.
이제는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이 고마운 놈에게 마지막 선물을 줄 차례였다.
‘가능한 한 화려하게.’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적을 절망하게 만들 수 있도록.
그 의지에 따라 움직인 코어가 그의 검에서 거대한 황금빛 광채가 되어 솟구쳐 올랐다.
“끝이다.”
신검 비전 1식 물결 가르기(波浪斬).
무려 여덟 겹의 황금빛 파도가 전방의 7~8m의 공간을 통째로 휩쓸었다.
콰아아아앙!
갑옷째 으스러져 핏빛 모래가 되어 흩날리는 캘리안.
그 충격적인 장면에 주변의 이목이 쏠리는 순간.
“내가 적장을 잡았다!”
로건이 사방을 뒤흔드는 커다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바로 그때.
– 소토 실반을 잡았다! 무릎을 꿇고 무기를 버리는 자는 살려 주겠다! 모두 항복하라!
그보다 더 큰 아버지의 고함이 성벽을 넘어 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내용이 주는 충격은 로건에게 집중되었던 이목을 단숨에 흩어 버렸다.
“언제 저기까지 가셨대…….”
피 칠갑을 한 채로, 로건이 멋쩍게 웃었다.
* * * 선전포고 반나절 만에 벌어진 전투는 단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끝났다.
게다가 그 결과마저 너무나도 일방적인, 맥라인의 압도적 승리였다.
실반 남작령 기사 캘리안 외 42명 사망. 병사 1,223명 사망.
맥라인 기사 파메스 외 5명 사망. 병사 0명 사망.
소문으로 전해 들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전과.
도망치던 소토 실반이 호위 기사들을 잃고 금세 패드릭에게 잡힌 것이 컸다.
실반 자작이 잡히고 그의 목에 검이 겨눠진 순간, 마지막까지 저항하려던 소수의 기사까지 모두 항복했다.
실반 성의 내성에서 대전을 점령하고 있는 맥라인 기사들의 얼굴 만면에 웃음이 가득한 이유였다.
– 우리가 승리했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발전하는 영지를 보며 차오르던 자부심이 현실로 이어졌다.
희생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의 표정에 여유와 웃음이 가득한 것은 당연했다.
반대로 모든 무장을 해제당하고 평상복 차림으로 대전에 무릎 꿇려진 소토 실반과 그 가족들, 실반 자작령 기사들의 기분은 완전히 바닥이었지만.
정복자들이 그런 점까지 신경 써 줄 이유는 없었다.
“소토 실반. 너에게 기회를 주겠다.”
원주인을 대신하여 상석에 앉은 패드릭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리자, 반나절 만에 십 년은 늙어 버린 듯한 소토 실반이 초췌한 안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네가 저지른 죄를 사죄하고, 최소한의 재물을 챙겨서 식구들과 함께 이 영지를 떠나라.”
누리던 모든 것이 무너지고 굴욕적으로 무릎까지 꿇은 마당에 사과까지 하라니.
누구라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 이리도 무도한 선전포고와 무단 점령은 왕실에서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소토의 발악은 지켜보는 이들에겐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이미 테스론과의 영지전에서 증명됐듯, 왕실은 이 시골 변두리엔 조금의 관심도 없을 것이다.
반역이나 그에 준하는 대사건이 아니라면 신경도 쓰지 않을 터.
하지만 그것을 공식 석상에서 입에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패드릭은 피식 웃으며 패배자를 내려다보았다.
“너는 정당한 명분을 가진 맥라인을 모욕하고 협박했다. 나는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적합한 행동을 취한 것뿐이니. 왕실에서도 트집을 잡진 못할 것이다.”
“왕실은 그렇다 쳐도 서남부의 로드이신 비프로스 백작께서 용납하지 않을 것이오! 더구나 맥라인이라면!”
그 말에는 패드릭도 안색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과거 맥라인 백작가가 몰락한 가장 큰 원인이 당시 맥라인 백작의 실정이라면, 그것을 이용해 맥라인을 거꾸러트리고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당시 맥라인의 가신이었던 비프로스였다.
현 비프로스 평야는 구 맥라인 평야였으며, 그 비옥한 영토는 비프로스를 자연스레 서남부 지역의 로드(Lord)로 만들었다.
물론 과거 왕실의 중재와 얻을 것 없는 척박한 맥라인의 땅 덕분에, 비프로스는 맥라인 가문에겐 휘하의 예를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맥라인의 입장에서는 그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주는 기회를 마다하고 죽겠다는 뜻이겠지?”
패드릭의 음성에 자연스럽게 살기가 실렸고.
“나, 난…….”
소토는 분노로 가득 차 토해 낸 말이 자신의 목줄을 잡았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고 사색이 되었지만.
“살…….”
촤아악!
미처 뭐라고 변명을 내뱉기도 전에 그 목은 핏물과 함께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악!”
“아빠!”
“여보!”
무릎 꿇려 있던 소토의 가족들, 세 명의 부인과 다섯 딸이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굴복 대신 명예로운 죽음을 택한 자작의 선택을 존중하여 최대한 고통 없이 끝을 냈습니다.”
검에서 핏물을 털어 낸 로건이 무덤덤한 얼굴로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잘했다.”
이미 이야기가 된 일이었기에, 패드릭의 표정도 담담했다.
피해 없는 승리를 위해 소토를 사로잡았고, 남은 기사들의 미련을 끝내기 위해 놈을 죽였다.
설령 폭군으로 유명한 소토에게 진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기사가 있었다 하더라도 전향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
‘처음부터 살겠다 엎드렸으면 조금 귀찮았을 텐데. 잘 됐어.’
어떻게 나오건 놈의 최후는 정해져 있었다.
그저 겉으로나마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은 이 일이 밖으로 퍼져 나가며 만들 소문 때문이었다.
바꿔 말해, 다른 귀족들에게 시빗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특히.
‘비프로스…….’
아직은 맥라인 가문이 감당할 수 없는 적이었다.
지금은 미래의 도약을 위해 잠시나마 움츠려야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