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네놈들도 처참히 몰락할 것이다! 맥라인!”
악에 받친 목소리로 저주를 퍼붓는 소토 실반의 부인들과 딸들은 소정의 재물을 챙겨 주곤 영지 밖으로 내쫓았다.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온 귀족 여자들이 남편과 아버지를 잃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새롭게 영지에 편입된 실반 성의 영지민들에게 새 지배자의 등장을 알리고, 민심을 가다듬으며 이어질 전쟁을 대비할 뿐.
그런데 실반을 점령한 지 불과 일주일이 지났을 때, 로건이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쪽에서 마법 통신이 들어왔다.
“비프로스 백작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의 통신이었고, 그 내용은 사실상의 경고였다.
물론, 늦어도 너무 늦어 버린 뒤였다.
[실반과 페레타, 맥라인은 싸움을 멈추어라. 서남부의 로드로서 전쟁을 중재하겠다.]“제 놈들이 언제부터 서남부의 로드였다고, 감히!”
패드릭은 얼굴을 붉혀 가며 분노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맥라인의 가신들은 분노한 가주를 달래 가며 백작가의 통신에 답했다.
[실반은 이미 맥라인의 수중에 떨어졌고, 소토 실반 자작은 사망했다. 겁박에 대한 정당한 반격이었으며, 맥라인은 이 이상으로 전쟁을 키울 생각이 없다.]순식간에 끝나 버린 맥라인과 실반의 전쟁 결과를 예상치 못한 탓일까.
백작가의 답변은 며칠 뒤에나 돌아왔다.
[백작가의 사절이 맥라인과 페레타를 방문하여 더는 확전을 하지 않겠다는 응답을 받겠다. 그리고 비프로스 백작가의 뜻을 전하겠다.]“백작가의 뜻?”
“조금 찜찜하긴 합니다만, 실반을 언급하지 않은 걸 보면 우리의 점유권을 인정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뭐, 예상과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로건 네 뜻대로 된 것 같구나.”
“페레타가 여전히 잠잠한 것만 빼고요.”
“지금 상황에서 별일이야 있겠느냐.”
“혹시 테스론 성에…….”
“클레이튼 님이 있으니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버틸 수는 있을 거다.”
“그렇죠. 버틸 수는…….”
실반과의 전쟁은 쉽게 끝났지만, 그것은 맥라인도 뒤를 보지 않고 최대한의 전력을 동원했기 때문이다.
아직은 외부에 보이기 싫은 패 하나를 테스론에 감춰 두고서.
하지만 세 개의 성을 관리, 감독하려면 이전처럼은 곤란했다.
이전의 맥라인과 테스론 두 성을 관리할 때에는 병력 대부분을 테스론에 몰아 두고, 맥라인의 본성을 상징처럼 사용하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사실상 적이라 간주되는 페레타는 둘째치고, 실반을 점령함으로써 비프로스와도 경계를 맞대게 되었으니 그럴 수는 없었다.
“영지의 중심을 맥라인 본성이 아닌 타운으로 옮겨야 합니다. 안 그래도 마탑 옆으로 영주님 일가가 기거하실 저택을 마련해 두었습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몬스터 숲도 죄다 벌목을 했습니다. 맥라인에는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 둬도 큰일이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맥라인 타운을 중심으로 기사단을 주둔시키고, 언제든 테스론과 실반으로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만 해 두면 됩니다. 병사들은 반으로 나눠 주둔시키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래. 좋은 생각이다.”
변화는 불가피했고, 긍정적인 변화였기에 결정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거기다 이번 전쟁에서 얻은 것은 땅뿐만이 아니었다.
“사로잡은 기사들이 75명이라고 했던가?”
“예. 사망 42명 외 도주한 세 명을 제외하고, 모두 실반의 감옥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중급기사도 여덟 명이나 됩니다.”
“허. 우리 기사단 수보다 많군. 확실히 우리가 강해지긴 한 모양이야.”
“물론입니다.”
좀 더 정확히는 소토 실반이 방심한 탓에 일찍 사로잡힌 것이 컸지만, 아무도 그것을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그저 주군의 미소를 따라 웃을 뿐.
“모두 전향하는 방향으로 설득할 수 있겠지?”
“소토 실반에게 특별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겠습니까? 아마 다 가능할 겁니다.”
폭군을 진심으로 섬기는 기사가 과연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 해도 그런 놈은 필요 없었다.
더구나 이제는 예전과 달리 평균 이상의 급여를 지급할 수도 있고, 같은 나라, 같은 왕의 소속이니 명분도 충분했다.
명분과 지위, 그리고 돈까지 모두 유지하면서 더 강한 영주의 밑으로 들어간다는데 싫어할 기사가 있을까.
로건은 이를 마다할 사람은 없으리라고 확신했다.
어쩌면 기사 수를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재능 있는 인재의 선발이 아니라 영지전일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압도적인 전과에 이런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토 실반이 조금만 더 신중하게 움직였다면 희생자가 제법 나왔을 거야. 사로잡은 기사들도 별로 없었을 테고, 적 병사들은 또 다 죽었겠지.’
정규 병사들은 어쩌면 미래에 기사가 될지도 모르는 자원들이자, 기존 영지민들의 가족, 친구, 연인이었다.
절반이 넘는 기사단을 사로잡은 것에 묻혀 간과하고 있지만, 병사들이 천 명 넘게 살아서 항복했다는 것도 고무적이었다.
모든 것이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였다.
‘앞으로는 이렇게 되기 힘들 거야.’
그것이 사람이건 물자건 간에, 전쟁은 있는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 정상이었다.
더구나 앞으로 맥라인을 상대하는 자들은 소토 실반처럼 쉽고 단순하게 대응하지는 않을 터였다.
테스론 한 번은 운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실반 자작령까지 점령한 것은 운으로 보지 않을 테니까.
그에 로건은 승리에 너무 과하게 취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였고.
아버지를 비롯한 주변의 가신들에게도 그 사실을 주지시켰다.
물론 그럼에도 한동안 맥라인 수뇌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한창 좋은 분위기에서 맥라인의 수뇌부가 포로로 잡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관리를 위해 계속 실반에 머무르고 있던 그 시기.
비프로스의 사절이 맥라인 본성이 아닌 실반으로 찾아왔다.
* * *
“백작께서는 맥라인에서 연마다 벌인 전쟁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고 계십니다.”
“나도 유감이로군. 가만히 있는 맥라인을 주변에서 자꾸 건드리니 말이야.”
“……서로 간에 오해가 있을 수 있음은 백작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오해가 더 깊어지기 전에 중재하려 하십니다.”
“중재? 전쟁은 끝났고 맥라인은 더 이상 누군가와 다투길 원하지 않는다. 페레타가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다면 맥라인이 도발할 일은 없다.”
“중재는 실반의 요청이었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긴 했습니다만…….”
“자기들이 시비를 걸고 자기들이 중재 운운하다니, 소토 실반도 낯가죽이 어지간히 두꺼웠군.”
패드릭의 말에 사절을 제외한 대전의 모든 이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데 이어진 사절의 말은, 대전의 분위기를 일순간에 바꾸어 놓았다.
“백작님께서는 이 잦은 다툼과 전쟁의 원인이 그간 비프로스에서 로드의 의무를 등한시하고 지역 통합의 기치를 도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탄하고 계십니다.”
갑자기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지, 모두의 눈에 의문이 떠오를 때.
“이에 다음 달 로저 비프로스 백작님의 쉰 번째 생일을 맞이하여, 백작님께서 서남부 지역의 로드로서 각 가문의 후계자들을 보고자 하십니다. 그 자리에서 서남부의 미래를 논하는…….”
쾅!
“개소리! 후계자를 보내라? 미래를 논해? 맥라인을 비프로스의 휘하라 생각하는가!”
사납게 터져 나온 일갈과 함께 소토 실반이 정성을 들여 만들었을 화려한 팔걸이가 단숨에 박살 나며 막대한 살기가 쏘아졌다.
하지만 사절은 식은땀을 흘리며 비틀거리면서도 패드릭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배, 백작님께서는 참가하기 싫으신 분은 오시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꿀꺽.
긴장했는지 침을 한 번 삼킨 사절은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비프로스는 비프로스를 서남부의 로드로 인정하는 가문만을 도울 것이며, 그에 반하는 이는 함께 미래를 논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흥. 협박을 참 고상하게도 하는군. 하지만 어림없다. 맥라인은 협박에 굴복하지…….”
패드릭의 분노를 그대로 반영하듯, 거대한 기세가 사절을 압박하던 순간.
로건이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한번 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않는, 뭐?”
* * *
“네 뜻을 존중하여 일단 사절을 물리기는 했다. 하지만…….”
패드릭은 대전에서의 마지막 기억을 떠올리며 얼굴을 붉혔다.
– 공자님이 과연 영민하시군요.
그것이 자신을 보고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는 놈이라 비웃는 말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어떤 핑계를 대든 우리가 비프로스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차라리 죽더라도 그건 안 돼!”
우우웅.
의도한 것도 아닐 텐데 거세게 솟구쳐 오른 기세가 그대로 집무실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허락할 수 없다!”
그러나, 하필 상대는 로건이었다.
“지금 뿌려 드릴까요?”
“허…….”
창가 화분의 흙을 한 움큼 움켜쥐며 말하는 로건의 모습에, 분노하던 패드릭은 아들을 황당한 얼굴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디 이야기나 들어 보자꾸나. 무슨 생각인 것이냐?”
가벼운 한숨과 함께 로건의 대답이 이어졌다.
“지금은 무슨 짓을 해도 비프로스를 이기지 못합니다.”
최상급기사 둘, 상급기사 열다섯, 두 개의 기사단에 도합 300명이 넘는 기사들.
다섯 개의 성과 드넓은 비프로스 평야를 보유한 백작가의 공표된 전력 중 일부만 해도 그 정도였다.
그것만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할 전력 차이였다.
“게다가 현재 상황이 언뜻 잘 풀리고 있는 듯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위태위태하기도 합니다.”
거리도 왕국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고, 얻을 것도 없었던 예전의 맥라인과는 전혀 다르다.
테스론과 실반을 연이어 집어삼켜 버린 지금의 맥라인은 분명 비프로스에서도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영지도 맞닿은 마당에 괜한 자존심을 세우려 들었다가는 정말로 짓밟힐 수도 있었다.
‘시간이 필요해.’
실반의 기사단을 병합하고, 향후 페레타까지 압도적으로 복속시킨 후 전력을 재정비할 시간.
그리고 자신이 성장한 경지에 알맞게 신검의 비전 3식을 제대로 익히고, 기사들 역시 성장할 시간이.
아버지 역시 그것을 모르는 바는 아닐 터였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변경백들과는 상황이 달라. 비프로스가 로드로서의 지위를 이용하려 한다면 다른 영지들도 다 반발하게 될 거다.”
4대 전 맥라인의 조상이 패악을 저지를 당시 서남부의 상황은 참 많이도 복잡했다.
비프로스는 반란에 성공했음에도 옛 주군의 핏줄을 없애지 못했고, 왕실은 죄를 저지른 맥라인을 감싸 안아 명맥을 보존케 했다.
그 후에도 비프로스는 다른 지역의 변경백, 로드들과는 달리 서남부의 귀족들에게 복속을 강요하지 못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복잡하게 얽힌 당시의 사정을 전부 아는 사람은 이제 없을 정도였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그러니 아버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 패드릭이 모르는 사이 상황은 조금 변해 있었다.
“비프로스 북쪽의 퍼시발과 루프만은 비프로스에 복종한 지 오래입니다. 제가 수도에 갔을 때 확인한 사실입니다.”
물론 수도가 아니라 전생에 보았던 사실이지만 아버지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뭐?!”
“반발을 한다면 페레타 정도일 텐데, 아시다시피 지금 저희와 상황이…….”
“허, 어떻게 그런…….”
“여기서 우리가 반발한다면 본보기로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언제 그렇게까지……. 내가 참 한심하구나. 원수가 은밀히 숨통을 조여 오고 있었는데 신경도 안 쓰고 있었어.”
털썩 주저앉는 모습을 보니 일순간 기력이 확 빠진 모양새라, 로건은 차분한 어조로 아버지를 다독였다.
“자책하실 필요 없습니다. 저도 수도에서 우연히 듣게 된 사실이니까요.”
“……가문이 힘이 없어서 네가 수모를 겪는구나. 미안하구나, 아들아.”
로건의 뜻을 허락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제 실력 아시지 않습니까. 별일 없을 겁니다. 조상들이 살던 땅이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 보고 오는 셈 치죠.”
‘어차피 반드시 확인해 봐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너무도 씁쓸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에 목구멍까지 넘어온 마지막 말은 그냥 꿀꺽 삼키고 말았다.
* * *
“주인! 적지에 팔려 간다는 말이 참말이오?!”
실반의 대전에서 있었던 일은 역시나 조금 왜곡되어 퍼진 것 같았다.
맥라인 타운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하마르의 얼굴은 작업 중 갑자기 달려온 것인지 땀이 가득했고, 그 땀만큼이나 간절함도 가득 담겨 있었다.
“무슨 헛소리가 퍼지고 있는 거야…….”
“주인이 죽으면! 약속은? 내 자유는?!”
“안 죽어! 그리고 팔려 가는 것도 아니고. 헛소문은 적당히 걸러서 들어라, 좀!”
“주인과 관련한 황당한 소문은 대부분 다 진짜로 한 짓이었잖소!”
“…….”
그리 틀린 말은 아닌지라 로건은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아무튼, 어딜 가든지 간에 이걸 가져가시오.”
“뭐?”
“급한 마음에 검집의 장식은 제대로 마무리 못 했지만, 주인 거요. 쓸 만할 거라 장담하지.”
툭 하니 내민 한 자루의 검을 남겨 두고, 하마르는 그대로 돌아섰다.
“이게 뭐…….”
“꼭 살아 돌아오시오!”
쾅!
하마르는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순식간에 문을 박차고 나가 사라져 버렸다.
“거참. 죽으러 가는 거 아니라니까…….”
황당한 마음에 헛웃음이 나오면서도, 드워프 장인이 놓고 간 검에 자연스레 시선이 향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