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6)
66화 120cm 내외의 길이, 일반적인 롱소드 치고는 조금 길고 넓은, 대검에 가까운 형태.
투박한 가죽 검집에 싸여 있었지만, 겉으로 보이는 은빛 손잡이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한 손잡이 끝 폼멜, 날 받침대인 크로스 가드의 모양만으로도 인상적인 느낌을 주는 검이었다.
스르릉.
그리고 그 검을 뽑아 든 순간.
“와…….”
로건의 입에서는 외마디의 감탄사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은빛으로 넓고 길게 뻗은 칼날은 한 뼘 길이의 크로스 가드, 그리고 불꽃 모양의 폼멜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거기다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완벽한 균형감까지.
단순히 검이 잘 만들어졌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했다.
이것은 마치…….
“나를 위한 검.”
길이와 넓이, 칼날의 모양과 느낌까지 자신과 딱 들어맞았다.
마치 또 하나의 팔이 생긴 듯한 환상적인 일체감.
“이럴 수가…….”
촤아악.
가볍게 손목의 스냅만을 이용해 검을 휘둘러 보자,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착 감기는 손맛이 너무나 산뜻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5㎏은 되어야 정상일 것 같은 겉모습에 비해 무게는 그 삼 분의 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순수한 미스릴 검…….”
우웅.
가볍게 운용해 본 포스 역시 평상시보다 밝은 광채로 검을 물들였다.
그 밝은 광채 속에서 로건은 최근 유난히 자신을 뚫어지라 살피던 드워프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말 대단해. 고맙다, 하마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의 작품과도 같은 검이었다.
새삼 계약한 드워프의 실력에 놀라며 검을 수납하는데.
툭.
검집 사이에 끼워져 있던 쪽지가 뒤늦게 바닥에 떨어졌다.
기사들 무기 다 만들고 나면 반년은 쉴 거요. 정말 최선을 다할 거니까! 물론 주인 것만은 못하겠지만.
로건이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린 그 날.
로건은 온종일 검을 휘두르며 새로운 파트너와의 춤을 즐겼다.
* * * 실반을 점령하고 맥라인 영지로 병합한 지 2주가 지났다.
충신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것이 진리라면 포로가 되었던 실반의 기사들은 죄다 간신일 것이다.
그들 모두가 2주 만에 주인을 바꾸고 전향하기로 했으니까.
물론, 영지전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문제가 생길지 모릅니다. 폭군을 섬기던 기사들이니 온전한 이들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그거야 당연한 일이지.”
“예?”
“테스론 출신들은 뭐 달랐겠느냐. 죽도록 굴리다 보면 애먼 짓은 생각도 못 한다.”
“……그렇군요.”
자신의 걱정을 일축하는 아버지의 대답에 로건은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혼자 가도 괜찮겠느냐?”
“말 그대로 적지입니다. 시종이나 기사들을 데려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구요. 차라리 혼자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나올 자신이 있습니다.”
전생에서 평기사 수준의 실력으로도 20년간 제국군을 피해 도망을 다녔던 경력자의 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통하지 않았다.
“한 손이 두 손 못 당하는 법이다. 하다못해 중급기사들이라도…….”
“우리 기사단 다 데려가도 지금은 못 이깁니다. 혼자가 편합니다.”
“시종이라도 데려가거라. 귀족이 품위 없이…….”
“품위 찾다가 데려간 애들 다 죽습니다.”
“네 계획대로라면 그럴 일 없지 않겠느냐. 무슨 사고를 칠 생각이 아니라면…… 너, 설마…….”
“다녀오겠습니다!”
“로건? 로건!!”
두두두두.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를 뒤에 두고 로건은 빠르게 말을 달렸다.
‘굳이 사고를 칠 생각은 없지만…… 아마도 치게 되겠지.’
차마 꺼내지 못한 변명을 속으로 주워 삼키며, 그는 연신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로건이 출발한 실반 성에서부터 실반 영지를 가로지르는 데에는 도보로 이틀.
그 영지의 경계선에서 다시 비프로스 영지의 중심, 비프로스 성까지 가는 길은 도보로 사흘 거리였다.
하지만 이미 상급기사의 경지에 오른 로건이 포스를 동원해 말을 강화하여 달릴 경우, 그 5일 거리는 하루 미만의 거리로 줄어들었다.
그것도 말의 체력을 안배해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서 간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래도 로건은 5일의 시간을 두고 실반 성을 떠났다.
비프로스 성에 일찌감치 들어가기보다는 그 주변의 성과 마을, 영지민들의 상태를 직접 눈으로 보고 앞으로 싸워야 할 잠정적인 적, 비프로스의 상태를 간접적으로 확인해 보고자 하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로건의 예상이나 바람과는 달랐다.
– 영주님이요? 좋으신 분이죠. 예? 저야 물론 직접 뵌 적은 없습니다만, 일단 세금이 낮으니까요. 하하.
혹시나 쓸데없이 붙잡혀서 시간을 지체할까 다른 성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4일간 머무른 각기 다른 마을들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비프로스가 실반이나 페레타처럼 악정을 펼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세력을 규합하고 늘리는 와중에도 착취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로건으로서는 자연히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는데.
마침내 도착한 비프로스 성 외성 동문, 가장 먼저 보이는 깃발 하나가 그의 인상을 더욱 찌푸리게 했다.
불꽃 위를 날고 있는 독수리의 깃발.
‘페레타…….’
아무래도 시간을 딱 맞춰서 아슬아슬하게 도착한 것은 자신만이 아닌 것 같았다.
“저건 누구야?”
“……불꽃 문양?”
“맥라인?!”
그가 접근하는 순간, 페레타 일행들 사이에서도 소란이 일었다.
얼핏 보이는 기사의 수만 해도 20명이 넘어가는 전력에 병사 역시 백 명은 되어 보였고, 시종의 수도 50명이 넘어 보였다.
거기다 가장 앞에 있는 화려한 마차는 그 크기가 거의 작은 집만 했다.
무슨 생각으로 저런 마차와 병력을 동원한 건지, 로건에게는 모든 것이 어이없게만 보였다.
‘뭐 하자는 거지?’
싸우기에는 적은 병력, 호위라고 하기에는 과한 병력이었다.
자신처럼 혼자 온 것이 차라리 경각심을 없앤다는 측면에서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방들은 오히려 반대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혼자?”
“미친 거 아냐? 호위 하나 없다고?”
“역시 실반을 점령할 때 무리를 한 거야.”
“조금 일찍, 도착하기 전에 만났으면 슥…… 아쉽군.”
기사들이 제 딴에는 소곤거린다고 소리를 낮춰 쑥덕댔지만, 로건의 귀에는 그것이 고스란히 들렸다.
로건은 이내 피식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조금 일찍 만났으면? 나도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는 진심으로 아쉬운 마음에 절로 혀를 찼다.
놈들의 일행에는 중급기사 세 명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저 정도로는 자신을 막을 수 없었다.
‘운도 좋은 놈들이야.’
비프로스 때문에 가문이 살고, 이 절묘한 타이밍의 조우 때문에 그 후계자도 살았다.
아무래도 페레타가 몰락 직전에 남은 운을 몰아 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반년, 아니 이제 5개월만 기다려라.’
심중의 살기를 숨기며 가까이 접근하자, 페레타의 병력이 일제히 그 앞을 막아서며 창을 뽑아 들었다.
병사들의 얼굴에 긴장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어진 로건이 헛웃음을 짓던 그때.
“맥라인의 공자님이십니까? 이쪽으로 따로 모시겠습니다.”
불꽃 속에 타오르는 장미 문양을 새긴 기사들이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음. 로건 맥라인입니다. 저들과 같이 들어가야 하는 겁니까?”
로건이 신분패를 들어 문양을 보이자, 기사는 재차 고개를 숙이며 양해를 구했다.
“두 후계자분을 안내하실 분이 곧 오실 겁니다. 기별을 넣었으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안내하실 분이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페레타 쪽에서 신경이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뭐야? 저러고 왔다고? 저런 꼴 사나운 놈이랑 내가 동급으로 취급받아야 해?”
“공자님!”
“아, 알았다고. 좀스럽긴, 이 거리에서 들릴 리 없잖아. 쯧. 귀찮아지네. 백작가의 중재만 아니었어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하고 있어야 할 놈이.”
‘허? 뭐라고?’
화려한 마차 쪽에서 현실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듯한 황당한 소릴 지껄이던 목소리의 주인공이 병사들 사이를 헤치고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스러운 문양이 섞인 연미복을 입은, 금발에 푸른 눈이 인상적인 청년이 가식적으로 웃으며 로건에게 악수를 청했다.
“플론 페레타입니다. 리할트에게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단숨에 기사 여섯을 참하셨다고.”
순간 긴장하던 비프로스의 기사들이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을 보며 로건은 청년을 훑어보았다.
제법 단련을 한 흔적이 보이는 몸매가 연미복 위로도 느껴졌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임에도 느껴지는 기세는 포스유저가 분명했다.
아까 들린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만 생각하면 호응해 주고 싶지도 않았지만, 지금은 더 큰 적의 진영이었다.
여기서 괜한 행동을 해서 튀어 보일 필요는 없었다.
“반갑습니다. 로건 맥라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마주 손을 잡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어려 보이는군요. 소문이 좀 과한 게 아닌가 싶네요. 하하.”
꽈악.
헛소리와 함께 손을 잡자마자 힘을 잔뜩 주는 유치한 수작이 들어왔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그냥 무시하려던 로건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이 정도 얼간이라면 왠지 그의 생각대로 반응해 줄 것 같았다.
‘뭐, 좀 놀아 줘 볼까.’
우드득.
마주 잡은 손에서 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났다.
오른손이 순식간에 새파래진 플론이 이를 악물었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
“아. 이런, 죄송합니다. 힘겨루기를 하자고 하시는 건 줄 알았는데…….”
능청을 떤 로건은 놀리는 것도 이쯤이면 되었다 싶어 손을 놓아 주었다.
정상적인 놈이라면 여기서 부족함을 알고 물러서겠지만.
챙!
“비, 비겁하다!”
놈은 예상대로 헛소리와 함께 칼을 뽑았다.
‘걸려들었어!’
놈이 명분을 주었으니 이제는 단숨에 목을 베도 되었다.
물론 그럴 필요까진 없었다.
무능한 적군은 유능한 아군보다 나으니, 놈은 그냥 살아 있는 것이 도움이었다.
그러니.
스각.
그냥 녀석의 검을 단숨에 잘라 버리고 목에 칼을 가져다 대는 것으로 그쳤다.
자신의 허리에서 놈의 목까지 이어진 은빛의 선은 스스로 보기에도 완벽했다.
석양빛을 받아 반짝이는 자신의 새로운 검 역시도.
“책임질 수 없는 말이나 계속 지껄이고, 한 영지의 후계자씩이나 되어서 왜 이렇게 주제를 모르지?”
낮아진 로건의 음성에 놈의 안색이 더욱 파리해졌다.
급히 사이를 가로막으려던 비프로스의 기사들이 안색을 굳히며 멈춰 섰지만.
놈의 뒤쪽에 있던 페레타의 기사들은 오히려 앞으로 나섰다.
“놈! 감히 공자님을!”
“쳐라!”
앞뒤 못 가리는 것은 상사나 부하나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비프로스의 영지에서 사사로운 다툼은 금…… 에?”
비프로스의 기사들이 다급하게 그들을 가로막기도 전.
스가가각.
로건의 검이 가장 먼저 튀어나온 기사들 셋의 검을 거의 동시에 갈라 버렸다.
투둑.
멍하니 반쪽이 된 검을 바라보는 기사들과 소란을 듣고 점차 모여든 비프로스 영지민들.
그 가운데서 로건은 될수록 느릿하게 검을 거둬들였다.
일부러 포스는 쓰지 않고 순수한 검의 힘만으로 적의 검을 동강 내 버렸다.
하마르가 만든 검. 고대어로 희망, 새벽빛 등을 의미하는 룩스(lux)라 이름 붙인 그 검은 그럴 만한 힘이 있었으니까.
‘기사라면 다 알아볼 거야.’
힐트(Hilt : 손잡이)가 깨끗한 것만 보아도 이것이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검이라는 것까지 파악해 낼 것이다.
스릉.
로건의 의도대로 하마르가 최선을 다해 정련해 낸 미스릴 검은 검집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모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아티팩트는 아닌데.”
“그래. 마력은 안 느껴져. 하지만…….”
분명, 엄청난 보물이다.
서로 시선을 마주치는 기사들뿐만 아니라, 검을 본 모두의 뇌리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대단한 검이군요.”
“예. 그렇죠.”
“어디서 구하신 검인지 여쭤봐도 실례가 아닐까요? 평범한 검은 아닌 듯한…….”
“실례입니다.”
“…….”
탐욕에 찬 시선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어투로 가볍게 차단했다.
보물을 보이되, 정보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
궁금증은 더욱더 말을 키울 것이고,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보물 수집가라는 별명을 가진 어떤 백작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백작이 별명에 걸맞은 눈을 가지고 있다면 이 검의 출처 때문이라도 함부로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보일 생각은 없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아.’
이미 준비해 놓은 수가 통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도 생각해야 했다.
이번 일은 일종의 보험인 셈이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로건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그때.
“……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의 상기된 목소리와 함께, 열린 외성문 사이로 특이한 외모의 인물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