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초인의 제자?”
“열화검(The Flame Sword)의 제자라니.”
“저 촌놈이 땡잡았군.”
여기저기서 부러운 시선을 보내며 웅성거리는 이들과.
“가, 각하. 제게도 무용을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저도 재능이라면 남 못지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질투 어린 소리를 지르는 장정들.
하나같이 쫙 달라붙는 화려한 연미복 안으로 근육이 울룩불룩 티가 나는 것이 기사이거나, 혹은 기사의 실력을 갖춘 귀족으로 보이는 놈들이었다.
하지만.
“너희들 중에 불과 스물 언저리의 나이에 중급기사가 된 자가 있더냐! 아니면 가문의 운명이 걸린 두 번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 전략과 전술이 있더냐?! 무엇보다…….”
백작의 호통과 함께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그런 실력으로도! 가문을 위해 수치를 감내하고 허리를 숙여 가며 수도에서 직접 장사에 나설 용기가 있느냔 말이다! 나는 로건 맥라인의 실력보다 그 행동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마지막 한 마디에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로건을 보는 시선조차도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 말은 왜…….’
터무니없는 과대평가……라기엔 모두 사실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저 말에 호응해 줄 수는 없었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낌새를 비치는 순간 코가 꿰일 것이고, 억지로 거부한다면 비프로스가 쳐들어올 명분을 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건에게는 다행히 든든한 방어막이 있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말씀이지만, 제게는 이미 모시기로 한 스승님이 계십니다.”
“허? 자네 스승이 부친인 패드릭 맥라인 남작이 아니었던가?”
“아닙니다. 다행히 훌륭하신 분과 연이 닿아 스승님으로 모실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찬가지네. 인생의 스승은 많을수록 좋다고 했네. 무술의 스승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자네 스승 또한 왕국의 이름 높은 오러유저 열화검께서 새 스승이 되신다면 반대하지 않을 걸세.”
물론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다.
기사들은 누구나 군주와 스승, 그리고 아버지를 하나같이 여기라는 격언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이 말은 본디 군주를 대하듯 스승을 섬기라는 말이었지만, 두 스승을 섬기지 말라는 금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기사와 마법사들의 문화가 이 점에 있어서만은 비슷했다.
둘 이상의 스승을 섬긴다면 그 비전을 유출하는 것으로 생각해 제자를 참하는 스승도 있는 마당이었다.
백작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으니, 사실 완벽한 억지였다.
“죄송하지만 역시 거절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게 뻔합니다.”
로건의 칼 같은 거절에 백작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고, 덩달아 달아올랐던 좌중의 분위기 역시 급격히 조용해졌다.
하지만 백작은 이내 웃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역시 젊은 피라 그런지 결정도 분명하고 빠르군. 하지만 조만간 열화검께서 본성에 방문하실 예정이니 한 번 정도 가르침을 받아 보는 것이 어떤가. 자네를 비롯한 ‘내 휘하’의 귀족 후계자들에게 전부 기회를 줄 의향이 있네. 뭣하면 자네의 그 스승도 불러도 되네.”
“오…….”
“역시 백작님. 통이 크셔.”
백작은 은근슬쩍 맥라인의 합류를 공식화하며 후계자들의 체류까지 결정지었다.
로건은 그제야 백작의 목적을 확실히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어 맥라인을 엮을 셈이었다.
그 방식이 예속이 되었든 침략이 되었든 간에, 로건 자신이 이곳에 온 순간 맥라인의 선택지는 좁아진 것이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절대 안 된다고 재차 거절을 할 수도 없었다.
‘모욕이니 뭐니 하면서 바로 잡아 가두거나 칼을 겨누겠지.’
처음부터 선택지를 하나만 두고 제안하는 꼴이었다.
‘그나마 대책을 미리 강구해 놔서 다행이군.’
그 수가 너무 늦지 않기를 빌며, 로건은 간단히 고개를 숙였다.
“과분한 말씀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가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하며 한발 물러나자.
“내 제의를 받아 주어 고맙네, 로건 공자.”
백작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맥라인의 결단은 우리 서남부가 다시 하나가 되는 시발점이 될 것이오. 그리고…….”
백작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으로 노련하게 잠시 말을 멈춰 집중을 유도한 뒤,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자리를 마련하기 이전에 이미 여러 이야기가 있었소이다. 오래전부터 친분이 있던 제프 퍼시발 자작과 데릭 루프만 남작은 이미 비프로스의 깃발 아래 하나로 뭉치기로 약조했었소.”
그들 가문의 사람들이야 이미 알고 있었으니 온통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로건조차 미리 알고 있는 마당이었으니 안색이 굳어지는 건 페레타의 일행들뿐이었다.
“내 이 자리에서 그 기꺼운 충심에 보답하는 의미로 그 후계자들에게 적합한 선물을 하사하려 하오.”
짝짝.
박수 소리와 함께 연회장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내 시종이 아닌 십여 명의 기사들이 수레를 가운데 두고 호위하는 듯한 모양새로 연회장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그들이 끌고 들어온 수레에는 비단 천이 깔린 전시대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 투명한 유리 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모두의 시선을 끈 것은 그 유리 상자 안에 있는 물건들이었다.
유려하게 쭉 뻗은 은빛 검날에 영롱한 광채가 번뜩이는 아름다운 장검.
투박한 모양새임에도 넘실거리는 푸른빛이 묘하게 어울리는, 웬만한 성인 남자 키만 한 거대한 워해머.
일반적인 무구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광채가 그들의 정체성을 말해 주었다.
“아티팩트?!”
“저 정도로 마력의 빛깔이 진하다면 최소 3클래스 이상일 텐데…….”
“당연히 그렇겠지. 백작님의 체면이 있는데 최소 수천만 골드짜리 보물일 거야.”
“과연 보물 수집가…….”
아티팩트.
자체적으로 마력을 품었거나 특수한 방법으로 마력을 주입한 소재를 이용하여 반영구적으로 마법적 효과를 발휘하게 만드는 마법 도구.
원소 속성의 서클 마법사들도 아티팩트를 만들어 내긴 하지만, 아무래도 흔히 위자드 학파라고 불리는 클래스 마법사들의 아티팩트가 범용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아티팩트는 보통 인챈트된 마법에 따라 클래스 등급으로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물론 범용성이 높다 한들 그 제작단가가 어마어마하기에 보통 제작을 의뢰한 부호의 특별한 요청에 따라 사용자 맞춤형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용되는 소재 중 그나마 가장 저렴한 것이 미스릴일 정도였으니, 마법사의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비쌀 수밖에 없는 보물이었다.
그렇기에 그 재료를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하여 보통 무구용 아티팩트는 최소 3클래스 이상의 마법을 인챈트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3클래스의 아티팩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보다 두 단계 위의 경지인 5클래스의 마법사가 필요했기에, 가격은 그야말로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걸 그냥 선물로 준다고? 과연…….’
로건은 감탄하면서도 내심 쓴웃음을 지었다.
왕국 3대 부호에 등극한 비프로스의 재력이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옛 조상의 땅을 집어삼키고 발전한 가문이었으니까.
“모두 조용히 하라!”
호통을 치긴 했지만 백작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반응이 만족스러운 것이다.
“라몬 퍼시발. 앞으로 나와라.”
“예!”
호명과 더불어 서른쯤 되어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갈색 머리 사내가 백작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너는 내게 충성을 맹세하겠느냐?”
“예. 퍼시발 가문을 대표하여 로저 비프로스 백작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좋다. 나 로저 비프로스는 그 맹세를 받아들이며 그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이 검을 내린다.”
“충심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램프턴의 검은 3클래스의 아티팩트로, 사용자의 몸에 힘을 더하고 검의 절삭력을 극대화시키는 보물이다. 이것이 너의 검술을 더욱더 날카롭게 만들 것이다. 그것으로 너의 가문을 지키고 비프로스에 봉사하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라몬 퍼시발이 넙죽 엎드리는 것을 보며 미소를 지은 백작이 다시금 목소리를 높였다.
“에릭 루프만, 앞으로 나와라!”
“예! 각하!”
“너는 내게 충성을 맹세하겠느냐?”
“예. 저 역시 루프만 가문을 대표하여 로저 비프로스 백작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좋다. 나 로저 비프로스는 그 맹세를 받아들이며 그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이 워해머를 내린다.”
“충심으로 섬기겠습니다!”
“이 작센의 해머는 역시 3클래스의 아티팩트로, 충격을 몇 배로 증폭시키는 괴력의 무구다. 이것으로 너의 가문과 비프로스의 앞을 가로막는 적을 부수도록 하라!”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한 가문을 이을 후계자들이 마치 기사 서임을 받는 것처럼 백작 아래 무릎을 꿇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그 광경이 로건에게는 크나큰 압박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나는 베풂에 있어 인색하지 않다. 향후 비프로스의 휘하에 함께 하는 가문들은 그에 적합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굳이 그 말을 하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결코 착각은 아닐 것이다.
백작의 노골적인 시선이 심중의 압박을 더하던 그때였다.
“저 정도 물건이면 로건 공자가 가진 검이 더 나은 것 같지 않습니까?”
어느새 곁에 다가온 페레타의 얼간이가 갑자기 초를 쳤다.
로건에게만 하려던 말인 듯 옆에 바짝 다가와 말하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너무 컸다.
“공자님?!”
곁에 있던 놈의 기사가 경악하고.
“너 이 새…… 하아.”
로건의 인상 또한 와락 일그러지는데, 플론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양손을 들어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백작님이 너무 생색을 내시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내가 보기엔 로건 공자의 검이 더 좋아 보이는데.”
계속되는 추태에 수군거리는 소리가 늘어 가고 백작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는데,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인식도 못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정말 뛰어난 인재도 알아보지 못하시는 걸 보니 그럴 수도 있…… 읍! 읍!”
“고, 공자님. 조금 취하셨습니다.”
기사가 뒤늦게 입을 막아 봤지만, 이미 연회장의 분위기는 싸늘해진 뒤였다.
졸지에 묘하게 엮여 버린 로건 역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새끼, 설마 지금 자존심 상한다고 무덤을 파는 거야?’
하마르의 검 룩스에 대한 소문이 백작의 귀에 들어가길 바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드워프의 작품을 얻는 방법은 알고 보면 간단하지만, 욕심 많은 귀족들은 절대 그쪽으로 생각을 전환하지 못했다.
‘나도 직접 본 적이 없다면 생각 못 했을 테니까.’
최악의 경우로 자신이 생각한 수가 먹히지 않아 백작이 억지를 부린다면, 그 단서로 거래를 하거나 시간을 끌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썩을 놈이…….’
웬 천둥벌거숭이가 난입해 판을 뒤엎었다.
“오호. 로건 공자의 검이 그리 뛰어나다는 말인가?”
백작의 눈이 로건의 허리춤으로 고정되었다.
조금 전까지 서남부의 결집과 대의를 운운하던 이의 눈빛이 아니라 누가 봐도 욕심이 가득한, 보물 수집가의 눈이었다.
“……운 좋게 드워프의 작품을 얻었을 뿐입니다.”
“호오? 드워프의 작품이라. 정말 제대로 된 드워프의 작품이라면 그 희귀성만으로도 아티팩트에 견줄 만하지. 노예가 된 드워프들은 조상의 솜씨를 잃어버린 지 오래니까.”
해방만 약속해 주면 당신도 바로 얻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속으로 비웃음이 나왔지만, 당장은 이 순간을 넘기는 것이 먼저였다.
“내가 공자의 검을 좀 볼 수 있겠는가?”
임시로 넘겨주는 순간 다시는 자신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데 손모가지도 걸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
“어리기는 하지만 저도 기사인지라, 제 반려를 함부로 맡기기가 어렵습니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넘길 수 없었다.
– 저급한 아티팩트 무구들보다는 훨씬 나을 거요. 나로서도 처음 만들어 본 명품이니까. 드워프의 혼이 들어간 명품에 관한 소문을 들어 본 적 있소? 내가 다시 만들고 싶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자부심 어린 하마르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드워프의 혼이 들어간 명품.
그 이름에 따라붙곤 하는 거짓말 같은 전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하마르가 그의 체형까지 고려해 맞춤형으로 만들어 준 룩스는 이미 영혼의 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완곡한 거절에도 백작은 포기할 줄 몰랐다.
“검이 그대의 반려라……. 허허. 참 나이답지 않게 옛날 말을 하는군. 좋아, 그렇다면 기사답게 대련으로 보여 주는 것은 어떤가?”
“대련이요?”
“마침 이곳에 내 아티팩트를 받은 이들이 있으니 서로 비교해 보면 되겠군. 라몬 퍼시발, 그대가 중급이던가?”
“예, 백작님. 부족하나마 몇 년 전에 간신히 경지에 닿았습니다.”
겸손한 그의 말과는 달리 서른 즈음에 포스유저 중급이 되었다는 건 절대 느린 게 아니었다.
거기다 방금 하사받은 램프턴의 검을 쥔 라몬의 눈빛엔 자신감이 넘쳤다.
“자! 파티의 여흥으로 이 땅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의 무용을 한번 봅시다!”
짝짝.
백작이 손뼉을 치자 자연스럽게 연회장 가운데가 텅 비워지며 공간이 만들어졌다.
‘허 참. 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상대는 이미 파티복 위에 어디선가 챙겨 온 갑옷을 입고 있었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귀찮은 일에 휘말리게 된 로건의 표정이 일그러져 가는데.
“하지만 그냥 대련만으로는 재미가 없을 터이니 조건을 하나 걸도록 하지.”
백작의 눈빛이 짓궂게 빛나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라몬이 승리한다면 그 드워프의 검을 내가 갖고, 로건 공자가 승리한다면 내가 따로 적합한 아티팩트를 하사하겠네. 어떤가, 라몬?”
“명을 따르겠습니다.”
“어떤가, 로건 공자?”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이렇게 된다면 얘기가 많이 달라졌다.
“저도 좋습니다.”
“역시 호방하군.”
검 잃고 뭐라고 하기 없기다.
“저야말로 백작님의 배포에 감탄했습니다.”
너야말로.
어렵게 돌려서 말하기는 했지만,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한 백작과 로건이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이게 웬 떡이냐.’
플론 때문에 생긴 짜증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로건의 눈에는 이미 눈앞의 얼간이가 공짜 아티팩트로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