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72)
72화
“흐압!”
기합과 함께 검 끝에서 일반적인 붉은빛 포스와는 조금 다른, 타오르는 불꽃 같은 주황색 포스가 두 겹의 파도를 만들어 내며 전면으로 쏟아졌다.
파도의 범위는 고작 2m 남짓.
하지만.
콰과광!
철목으로 만들어 둔 훈련용 허수아비 세 개가 가루가 되어 흩날릴 정도로, 위력은 압도적이었다.
하악. 하악.
하지만 그 광경을 만들어 낸 당사자, 로니안 맥라인의 눈빛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로니안은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호흡을 조절하며 다시 검을 들었다.
그의 뇌리에는 형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히 울리고 있었다.
– 이번 전쟁은 쉽게 끝날 거야. 굳이 너까지 갈 필요 없다. 넌 아직 실력을 길러야 할 때야. 시절이 수상하니 절대 방심하지 말고 수련 열심히 해.
그 말 때문에 지난 전쟁에는 발도 담글 수 없었다.
명색이 포스유저에 이 놀라운 비전까지 터득했는데도 말이다.
‘언제까지 형님이 어린애 취급하게 둘 순 없어. 나도 맥라인이야. 가문을 지키는 칼이라고.’
엊그제 흙투성이에 초라한 몰골로 가문에 돌아온 형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졸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했지만,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은 듣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로니안 역시 구체적인 이유는 짐작하지 못해도, 그 근본적인 이유는 깨닫고 있었다.
‘아직 우리 가문이 힘이 없어서…….’
질끈 깨문 입술에서 미약하게 피 맛이 느껴졌다.
정작 형님은 잘하고 있다고 했지만, 조급함이 느껴졌다.
바로 그때, 계속 속으로 되뇌던 목소리가 바로 뒤쪽에서 들려왔다.
“열심히 하는구나, 로니안. 잠깐 쉬어라, 오늘부터 같이 수련할 녀석을 소개해 주마.”
“형님?!”
뒤를 돌아보자 웃는 얼굴의 형이 있었고, 그 옆에는 어색한 얼굴로 불꽃 문양이 새겨진 기사 갑옷을 더듬고 있는 소년이 서 있었다.
푸른 머리에 붉고 푸른 오드아이.
맥라인의 적발적안보다도 독특한 외모였기에, 절로 눈이 갈 수밖에 없었다.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동안 포스를 수습하고 적응하는 시간을 보냈다. 너랑 동갑이니 서로 좋은 자극이 될 거야.”
형이 툭 하고 등을 밀자, 녀석이 어색한 얼굴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신입 기, 기사. 빅토르입니다.”
스스로 뱉은 말도 어색한지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녀석.
나이가 동갑이라더니 체구도 자신과 비슷했다.
아직은 16살 또래보다도 조금 작게 느껴지는 키까지.
‘그런데 포스유저라고?’
자기 자신이 얼마나 규격 외의 재능인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과 같은 나이에 포스유저라니, 게다가 저 특이한 외모라면 아마…….
“형님께서 재능을 보고 데려왔다는 노…… 녀석입니까?”
“그래. 노예’였’지. 약속대로 면천시켜 주었고 기사 서임까지 했으니, 적합한 자격으로 대해 주거라.”
“물론입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수련이라 하시면…….”
“대련이지. 다른 게 있겠느냐.”
침착하던 로니안도 그 말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괜히 혼자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수준의 평기사들은 검술에서 너무 차이가 났고, 포스로 강화된 중급기사들도 출력의 차이를 검술의 차로 메꾸고 승리할 수 있는 게 자신이었다.
덕분에 기사들 검술이 망가진다고 홀로 수련을 하는 것이 아닌가.
눈앞의 녀석이 단순히 포스에 재능이 있어서 각성한 것이 아니라 검술의 재능 역시 그 못지않은 것이라면…….
그 의문에 응답하듯 형님이 웃으며 제안했다.
“일단 가볍게 한번 겨뤄 보겠느냐?”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한 녀석은 지쳤고, 한 녀석은 아직 미숙하니 지금이 딱 좋은 승부가 될 것 같다. 심각한 상황이 오면 내가 막을 테니 마음껏 날뛰어 보거라. 자, 시작!”
형의 말이 끝나는 순간,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던 상대의 눈에 투지가 깃들었다.
이내 녀석의 이질적인 회색빛 포스를 보는 순간, 자신의 손에도 절로 힘이 들어갔다.
쿵.
자신의 바로 앞에서 상대의 오른발이 강하게 땅을 밟는 순간, 한껏 젖혀진 그의 몸 뒤쪽에서 목검이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중급기사의 특성인 무기 강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지만, 회색빛이 넘실거리는 목검은 기세만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상대방을 박살 내 버리겠다는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참격은 이제는 맥라인 기사들의 비전이 된 한 검술의 오의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철혈검!’
미숙하다더니, 이게 어딜 봐서 미숙이라는 건지.
촤아아악!
살짝 숙인 머리 위로 돌풍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대로 돌려주마’
비슷한 형태의 참격이 상대의 허리춤을 향해 쏟아졌다.
전력을 다한 참격이 빗나가고 들어온 반격.
속절없이 무너지거나, 최선으로 생각해도 간신히 막아 내고 물러설 것이라 예상했는데.
‘어?’
훌쩍 뛰어오른 상대의 몸이 허공에서 회전하며 공세를 피하더니, 그 기세를 살려 그대로 검을 내리찍었다.
‘공중?!’
전투 중에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행위는 전신의 빈틈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바보짓이었다.
보통의 기사들은 절대 하지 않는 짓이지만, 이 경우는 그 타이밍이 너무 시기적절했다.
‘익!’
혼신의 힘을 다해 일격을 피하고 다시 검을 날렸다.
파아앙!
쾅!
하늘 위로 튀어 오른 하나의 목검.
쿵. 쿵.
“끄응.”
충돌의 반동으로 억지로 물러선 두 걸음과 저릿한 손아귀의 통증이 생소하게만 느껴졌다.
하물며 더 크게 튕겨 나간 상대는 오히려 그 반동을 이용해 놓쳤던 본인의 목검을 잡아채기까지 했다.
‘그것까지 고려했다고?’
녀석의 약간 창백해진 안색이 보였지만 그리 기쁘지는 않았다.
고작 몇 수의 교환이었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으니까.
“너…… 괴물이구나.”
“푸하하. 야 인마! 누가 누구 보고.”
무심결에 나온 감탄사에 지켜보던 형님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말을 뱉고 보니 자신이 기사들에게 종종 듣는 말이라 뻘쭘한 마음에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지만, 기꺼운 마음이 더 컸다.
‘제대로 해 보자.’
또래이면서 비슷한 경지에서 수 싸움이 가능한 상대라니.
검술을 배우면서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호승심이 심장을 간질간질하게 했다.
그것은 상대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씨익 웃은 녀석이 또 한 번 먼저 자신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그 호전적인 모습 역시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조바심에 답답했던 마음이 싹 날아가는 느낌이었으니까.
로니안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역시 상대 못지않게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쾅!
스각!
쿵. 쾅! 퍽!
“아이 씨. 주먹을!”
“어쩌라고!”
“……어디 두고 보자 인마!”
뻐어억.
“역시…….”
로건은 두 녀석의 대련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두 천재의 만남은 초면부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았다.
빅토르는 지난 몇 주간 완벽하게 몸에 붙였던 철혈검을 자신의 스타일로 변주해 가고 있었고.
고정된 검식 안에서도 기사들을 농락하던 로니안의 검술은 점차 틀을 깨고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폭하고 자유로운 검과 절제되고 정교한 검이 서로의 장점을 흡수해 조금씩, 하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또한, 투지가 강해지는 만큼 녀석들의 포스도 미세하게나마 점차 변화하는 것이 그의 감각에는 또렷이 잡혔다.
‘미래의 오러유저들이 생각보다 빠르게 가문의 주전력이 될 수도 있겠어.’
저 두 녀석과 로건 자신.
그리고 이 순간에도 저들 못지않게 구르고 있을 기사 수련생들과 앞으로 좀 더 정확해진 판별 기준으로 계속 충원할 병사들.
전생의 역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제국 전쟁까지 앞으로 8년이 남았다.
하지만 어쩌면 5, 6년 안쪽에 미래의 칼들이 완성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지금 로건이 가진 고민은 오직 하나였다.
‘빅토르에게 신검의 비전을 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아버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기존 기사들은 익히려 해도 익힐 수 없는 것이 신검의 비전이었다.
하지만 빅토르는, 로니안과 대등하거나 뛰어넘을지도 모를 재능을 가지고 있는 저 녀석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녀석을 완전히 믿을 수 있을까…….’
결국엔 조금씩 밀리기 시작한 빅토르를 보며 로건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 * *
“쟤야?”
“응. 쟤가 그…….”
빅토리아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타운의 관청으로 가는 길에 자신을 향해 수군거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별것 아닌 일이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그 목소리의 대부분은 부러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오빠가 그 노예에서 기사가 됐다는…….”
“그런데 왜 시녀 일을 계속하는 거야?”
“몰라. 은혜를 갚고 싶다나?”
물론, 부러움의 시선 속에 다소간의 오해도 섞여 있는 듯했다.
‘……아니야.’
자신과 오빠의 삶을 바꿔 준 고마운 주인, 아니 로건 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야 차고 넘쳤다.
하지만 오빠가 기사가 되어 함께 살 집을 얻고, 노예 시절에는 상상도 못 했던 월봉을 받기 시작했음에도 빅토리아가 시녀 일을 계속하기로 한 것은 단순히 감사의 마음 때문만은 아니었다.
‘더는…… 오빠한테 짐이 되면 안 돼.’
빅토리아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오빠에게 업힌 채로 미친 듯이 산속을 달려 도망치던 때를.
쫓아오는 무서운 아저씨들을 피해 숨어 살며 사냥이나 구걸을 통해 먹을 것을 구해 오던 오빠를.
비록 자신이 어렸다지만, 오빠도 자신보다 겨우 네 살 많을 뿐이었다.
그런 오빠가 자신 때문에 항상 피를 흘리고, 상처를 달고 살았다.
밤새 시름시름 앓는 오빠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할까 봐 마음을 졸인 것만 몇 번이던가.
견디다 못해 노예 사냥꾼들에게 그냥 잡혔을 때도 오히려 이제는 다친 오빠를 안 봐도 될 것이라는 생각에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였다.
물론 그것은 어리숙한 자신의 착각이었지만, 다행히 로건 님을 만나 오빠는 희망을 찾았다.
더 이상 약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에게 매여 살지 않아도 빛나는 미래가 보장되어 있었다.
빅토리아가 아는 기사는 그런 것이었으니까.
‘나도 이제 열세 살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해.’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자신이 울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바보 오빠는 또 모든 것을 팽개치고 달려 올 테니까.
지난번처럼 사고를 쳐 감옥에 갈 수도 있다.
오빠는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신분이었다.
‘나도 이 성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거야. 그래서 오빠가 없더라도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그래야 오빠가 마음 놓고 할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빅토리아는 오늘도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미안하구나. 이젠 안 되겠다. 아무래도 기사님 동생이라 다른 애들이 불편해하는구나. 너무 어린 나이기도 하고…….”
시녀장 아주머니의 말이 빅토리아의 여린 가슴을 무너트렸다.
‘난…… 난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인가 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참았던 눈물이 결국 넘쳐흘렀다.
우는 모습을 누구에게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소매로 눈물을 닦고 하늘을 보았지만, 눈물은 쉽게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기다 빅토리아의 키가 너무 작다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아직도 열 살 즈음으로 오해받는 소녀의 키는 이 성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 중 하나인 붉은 머리 청년의 허리에도 오지 않았다.
그랬기에 하늘을 향해 있던 그녀의 눈물을 잔뜩 머금은 적청의 오드아이는 하필 딱 붉은 눈동자 한 쌍과 마주치고 말았다.
“빅토리아? 무슨 일이지?”
“아, 아니에요. 로건 님. 그냥 눈에 먼지가 들어가서.”
슥슥.
재빠르게 눈물을 닦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통하지 않을 변명이었다.
“또 누가 괴롭히더냐?”
“아니에요!”
“아니면 불편한 점이라도…….”
“절대! 절대로 아니에요!”
“흐음. 그래, 빅토르에게 말해 놓으마. 혹시나 문제가 있거든…….”
“아, 아니! 안 돼요! 오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그 간절한 목소리가 그냥 지나치려던 대공자의 발걸음을 붙잡고 말았다.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야. 뭐, 그럴 필요도 없고.’
빅토리아의 사정을 들은 로건은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
소녀의 발상은 기특했지만, 또 쓸데없는 자책이기도 했다.
인간관계, 특히 정서적인 관계는 결코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주는 것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빅토르 역시 빅토리아가 있었기에 험난한 삶 속에서 생을 이어 나갈 의지를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아직은 어린 빅토리아가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고 단정 내리기엔 너무 어린 나이야.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찾아보자. 이것저것 배우다 보면 언젠가는 네 오빠에게도, 너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럴……까요?”
“물론이지!”
지금은 이렇게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러면 저기 노란 끈으로 흙 인형 움직이는 것도 배울 수 있을까요? 저도 저런 힘센 인형이 있다면…….”
“……뭐?”
빅토리아가 가리키는 곳에는 클레이튼의 수제자 그릭이 골렘을 다루며 공사에 한창이었다.
완공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시행착오가 많아 수정할 곳도 많은 맥라인 타운이기에 저런 모습은 일상적이었지만.
노란 끈?
“노란 끈이 보인다고? 골렘, 아니 저 흙 인형이랑 저 아저씨랑 이어진?”
“예!”
……그게 보이는 거였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