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73)
73화
“그러니까, 이 애가…… 마력의 끈을 보았다고요?”
처음 빅토리아의 이야기를 들은 클레이튼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어른이 괜히 어린 아이 데리고 장난치지 말라는, 좀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개소리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가지 테스트를 거치자, 그 눈빛은 이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제, 제가 키우겠습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재능이!”
전설에 나오는 대마법사도 마나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는 둥.
감응력도 자신이 아는 마법사 중 최고라는 둥.
핏대까지 세워 가며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여자아이라서 안 된다 등의 대답을 예상하던 로건에게는 완전히 의외의 일이었다.
‘그게 그 정도의 재능이었나?’
자신도 가까이서는 보인다고 말하면 얼마나 더 난리가 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로건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어리벙벙한 표정의 소녀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빅토리아. 정말 마법을 배우고 싶니?”
“그, 그게 거인 인형 조종하는 거면, 배우고 싶어요.”
“왜?”
“그게…….”
망설이는 아이의 눈을 보며 로건은 웃는 얼굴로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힘센 인형이 생기면 저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테니까요.”
여전히 스스로 해야 할 일을 찾는 소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안타까우면서도 또 기특해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뜻이라면 좋다. 그럼, 클레이튼 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니요! 저야말로!”
흉악한 인상의 중년의 마법사가 어린 소녀를 보며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썩 그림이 좋지는 않았지만, 결국 서로에게 만족스러운 일이었다.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로건까지도.
‘대마법사의 재능이라…….’
클레이튼의 표현에 과장이 있다고 한들, 보기 드문 재능이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남매가 둘 다 천재라는 건가.’
좀처럼 보기 힘든 특이한 외모의 아이들이 둘 다 특정한 분야에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이렇게 되니 도대체 어떤 핏줄을 이어받은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뭐, 굳이 알 필요는 없지.’
제국 전쟁까지 앞으로 7년.
빅토리아가 어디까지 성장할지는 몰라도 강력한 전력이 하나 더 생긴다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또 하나의 고비를 앞둔 지금, 뜻밖의 좋은 소식 하나가 로건의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 * * 놀란 가족들과 가신들을 진정시키고 로니안과 빅토르 남매의 일을 정리한 뒤에, 로건은 바로 수도 그랑으로 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비프로스에서 치러진 한바탕 연극의 대가는 결국 검공을 찾아가는 길로 이어져야 했으니까.
물론 검공의 부름이 아니더라도 올해 벌어질 가장 중요한 사건의 추이를 알아보기 위해 수도행은 필요했다.
거기에 덧붙여 또 다른 중요한 목적을 위해서도.
늘 그랬듯이 로건은 또 홀로 떠나기를 원했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검공께 예의가 아니다. 최소한의 수행원은 데려가도록 해라.”
확고하게 자리 잡은 후계자로서의 평판도 이 말에는 소용없었다.
덕분에 로건은 원치 않은 혹을 주렁주렁 달고 여행길에 올라야 했다.
“맥라인 기사단 18조 조장 핸더슨입니다. 공자님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충심으로 모시겠습니다.”
핸더슨은 흥분된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크게 소리치며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그의 뒤를 따라 똑같이 예를 표하는 부하 기사 다섯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대공자 직속으로 원행을 함께하게 된 이 현실이 기쁜 것이었다.
‘이 기회를 잡아서 아예 대공자님의 측근으로 남아야 해.’
핸더슨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고작 21살의 나이에 홀로 상급기사를 쳐 죽일 정도의 무력을 갖춘,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경이적인 검술의 천재.
어디 무력적 재능뿐이던가.
한때 망나니라 불리면서도 은인자중하다가, 가문의 위기가 찾아오자 비로소 본연의 빛을 내보인 맥라인의 구세주.
그는 열세에 놓인 전쟁을 압도적 승세로 바꾸고, 황무지를 평야로 바꾸는 기적까지 일구어 낸 세기의 대천재였다.
이번 원행에 자원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료들과 경쟁을 했던가.
덩치가 큰 탓에 눈에 띄어 발탁되었다는 시기 어린 질투도 있었지만, 그만큼 주군께서 자신의 충성심을 알아준 것으로 믿었다.
‘나는 지금 후세에 전설로 남을 사람을 모시고 있는 거야. 그리고 전설은 말할 거야. 그 옆에는 항상 불멸의 기사 핸더슨이 함께 했다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전개된 망상은 끝을 모르고 펼쳐졌다.
하지만 맥라인 영지를 나선 뒤, 반나절이 넘은 침묵 끝에 영웅이 내린 첫 명령은 그의 기대와는 다른 것이었다.
“장작 좀 구해 와.”
‘데리고 온 시종도 있는데 왜 기사들에게.’
핸더슨은 자존심이 상했지만.
– 대공자님의 생각은 범인이 헤아릴 수 없다.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도 다 이유가 있으니 미루어 짐작하지 말고 충심으로 수행하라.
출발하기 전부터 신신당부하던 기사단장의 말을 떠올리며 핸더슨은 다시 의욕을 끌어올렸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일으킨 의욕은 과한 행동력을 불러왔다.
우르르릉.
철혈검을 익힌 중급기사가 최선을 다해 나무에 대고 칼을 휘두르는 것.
그것은 고요한 한밤의 숲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뭐야, 저 미친놈은.”
장작을 모아 오랬더니 숲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다.
수도로 향하는 관도 부근이니만큼 맹수나 몬스터는 적겠지만,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가는 밤에 저렇게 요란을 떨면 좋을 게 단 하나도 없었다.
황당한 시선으로 남은 기사들을 바라보는데.
“엇차. 천막 준비됐지?”
“난 불 피울 준비나 해야겠다.”
“난 저녁 준비.”
조장의 미친 짓을 멍하니 지켜보던 그들은 갑작스레 할 일이 생각나기라도 한 듯 사방으로 흩어지며 딴청을 피웠다.
‘뭐 이런…….’
무력을 기준으로 조장을 뽑은 폐해라고 해야 할까.
그 멍청한 조장 놈이 다 자기 같은 인간들만 부하로 뽑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정상이 하나라도 있다는 것이었다.
“핸더슨 조장이 힘은 좋은데 머리가 안 좋아서요. 제가 잘 조율해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디그롬.”
그나마 안면이 있는 기사의 말에 로건은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중요한 일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로건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힐끔힐끔 그의 눈치만 보고 있는 릭을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얘기 좀 하자.”
“헤헤. 공자님, 뭐 필요하신 것 있으십니까?”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손바닥을 비비며 웃고 있는 꼴을 보니 로건은 부아가 치밀었다.
자연스레 부모님이 지켜볼 때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니가 왜 따라와?”
소수의 기사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비전투 인원은 최대한 배제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 녀석이 부모님께 무슨 말을 했는지 떡하니 일행에 끼어 버린 것이다.
“왜라니요! 당당한 귀족가의 후계자가 맨날 시종도 없이 밖을 돌아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맥라인 가문을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글쎄…… 거지인가보다 생각하겠지.”
“그런 소문 안 돌도록 제가 맥라인 가문의 명예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반드시!”
릭은 나름 결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심이 아니라는 것이 눈에 보였다.
“……너 그랑에 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지?”
“그, 그럴 리가요. 저는 언제나 공자님을 생각하는 충심에서…….”
“흐음. 그 충성스러운 시종이 곧 다쳐서 귀환할 것 같군. 어디 다칠래? 골라 봐.”
그 말에 녀석이 바로 넙죽 엎드렸다.
“꼭 가 보고 싶습니다! 수도!”
“하아……. 야 인마.”
“데려가 줘요! 쫌! 나도 좀 큰 도시로 나가 보자고요!”
“집 떠나면 고생…….”
“이제 하녀들도, 하다못해 메리도 저를 상대도 안 해 준단 말입니다! 똥 냄새가 계속 나는 느낌이라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울분에 찬 릭의 외침에 로건은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니, 그럼 수도에 가고 싶은 이유가…….”
“저도 장가는 가야죠!”
욕망에 불타오르는 눈동자가 거절을 거절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숲속에서 또다시 속을 뒤집는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으라차차!”
우르르릉.
아우우우우우우!
캬아악!
그에 호응하듯 멀리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들.
‘아오. 이 짐 덩어리들…….’
가뜩이나 해야 할 일도 많은데, 벌써 머리가 아파 왔다.
* * * 이번 수도행의 목적은 앞으로 벌어질 일과 관련한 변수가 생길지 알아보는 것과 3왕자를 만나 연을 맺어 두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그 모두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직접적인 신변의 위협은 없을 일들.
‘릭 녀석에게는 전생에 진 빚도 있고.’
그 때문에 로건은 이제 릭과 기사들의 동행에 거부감을 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우와아아! 역시 그랑!”
“대박!”
“저기 저것 좀 봐!”
수도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 호들갑들은 바로 그 생각을 후회하게 해 주었다.
촌놈이라는 티를 있는 대로 다 내는 것은 기본이고.
휘이익~!
“어이, 아가씨. 맥라인의 사나이, 남자 중의 남자. 이 핸더슨 님과…….”
시정잡배나 할 법한 얼토당토않은 개수작은 옵션이었다.
뻐어억.
“어흑. 너 이게 무슨…….”
“미친놈아. 적당히 하자 좀! 발정 났냐!”
로건의 인상이 점점 찌푸려지는 순간, 디그롬이 먼저 나서서 창피한 줄 모르고 나대는 핸더슨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아무래도 한창일 나이에 수련만 하다 기사가 된 놈들이다 보니 발정 난 놈들이 조금…… 죄송합니다.”
디그롬은 그러면서 로건의 눈치를 살폈고.
“아니, 괜찮아.”
예상외로 평온한 반응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그 속내를 알았다면 울상을 지었겠지만.
‘검공가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죽도록 굴려 주마. 엄한 생각은 떠올릴 틈도 없을 정도로.’
이미 일행에게서 후다닥 멀어지는 수도의 이름 모를 처자들의 수가 거의 백 명은 될 것 같았다.
없는 소문도 만들어 내는 것이 수도인데, 이 정도면 무슨 추문이 만들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로건은 당장 거리에서 기사들을 두들겨 패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눌러 가며 빠르게 말을 몰았다.
이 무리에는 존재하지 않는 정상인을 만나기 위해.
그런데.
– 맥라인 특별 상품! 임포릭 대환장 폭탄 세일!!
– 우리 공자님이 미쳤어요! 잘 나가는 사업 접으랍니다!!
– 파이어 세일! 속 타는 상인의 마음만큼 불꽃처럼 시원하게 쏩니다!
정상인……이었어야 할 놈이 이상한 문구가 적힌 팻말들을 등에 메고 광대 복장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야! 자, 귀족들을 타오르게 만든 수도 사교계의 필수품. 오늘만큼은 시원하게! 거기 공자님, 제가 시원하게 쏩니다. 우리 공자님이랑 똑 닮……았……. 하하. 하. 언제 오셨어요?”
까드득.
로건의 손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 * *
“아니 그냥 경쟁자가 많아져서 어쩔 수 없이……. 끄으응.”
“흔들린다. 중심 잡아라.”
로건을 등허리에 올린 채로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는 필립은 억울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경쟁자가 많아졌어도 선발 주자인 임포릭은 시장을 선점한 상태였다.
굳이 접어야 할 필요가 없는 꿀 같은 사업을 정리하라고 하니 자신은 최선의 대책을 찾았을 뿐이었다.
‘이보다 더한 개소리를 들어도 돈만 벌면 된다고 허허 웃던 양반이.’
갑자기 이리 변했을 줄을 자신이 어찌 안단 말인가, 필립은 그게 억울했다.
물론.
“지금은 이미지를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바꾸려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 그게 이유라도 말씀해 주셔야…….”
이 고용주는 항상 똑같았다.
이유는 말해 주지도 않고 항상 자신이 하라는 대로만 하라고 했다.
물론 여태까지는 결과가 좋았으니 할 말은 없지만, 명확한 방향을 모르고 일을 하려니 이런 사단이 생기는 것이다.
‘내 잘못은 아냐! 난 억울하다고!’
필립은 이 잘못된 업무 구조를 고쳐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확실히 말해 둬야 해.’
각오를 굳힌 뒤,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저는…….”
“내가 돈 더 많이 벌게 해 줄 테니까 임포릭 성과급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앞으로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업무 구조 따위가 뭐가 중요할까.
돈이 중요하지.
“그래, 됐다. 일어서. 그리고 알아 두라고 한 거 읊어 봐.”
그 말에 필립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지금부터 꺼낼 이야기는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주제였으니까.
필립은 잠시 생각을 가다듬은 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말씀과는 다르게 왕실에 관련된 나쁜 소식은 없습니다. 다만 왕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왕위 계승권자인 왕자들을 지지하는 각 귀족들의 파벌 싸움이 조금 심해지고 있는데, 최근 국무회의에서…….”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게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