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8)
8화 ‘이 새끼가…… 칭찬을 해 줘도 지랄이냐.’
속으로 이를 간 드웨인은 간신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본론은 지금부터였기에 고작 한마디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
“요즘처럼 가문이 어려울 때 300만 골드의 거금은 그야말로 가뭄 속에 단비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공자님의 기지 덕분에 가문이 크게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참 잘했다. 그러니 이제 그 돈 내놔라…… 라는 말을 돌려 말하며 어른의 미소를 지어 보지만.
“가문이 왜 한숨을 돌려? 내 돈인데? 어제 아버지 말 못 들었어?”
철없는 애새끼의 한 마디가 드웨인의 정신을 또다시 아찔하게 만들었다.
‘설마설마했는데, 진짜?’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드웨인은 애써 표정을 관리했다. 맥라인 재무행정관 20년 세월은 비굴한 표정이 일상인 자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살살 구슬려야 해. 살살…….’
하지만 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부하들이 난장을 피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됩니다, 공자님!”
“그 큰돈을 혼자 쓰시겠다고요?!”
“벼락 맞을 소리입니다!”
망나니의 안색이 싸늘하게 굳어진 건 순식간이었다.
“뭣들 하는 거야!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다들 썩 나가!”
로건보다 더 굳어진 안색의 드웨인이 먼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믿었던 아군의 역습에 관리들이 똥 씹은 얼굴이 되었지만, 이내 그들은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패잔병 같은 표정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드웨인 님, 식량 사정부터.’
‘아니 성벽 관리요.’
‘병사들 장비를…….’
각자의 희망을 담은 눈빛이 최후의 보루인 드웨인에게 향했다.
‘최선을 다해 보마.’
홀로 남은 드웨인은 결연한 눈빛으로 그들을 배웅하며 방문을 걸어 잠갔다.
“하하하. 공자님, 부하들이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 친구들이 원래 저렇게 개념이 없는 친구들이 아닌데 가문 사정이 급하다 보니…… 하하.”
“가문 사정이 그렇게 안 좋아?”
‘좋았어!’
생각 없는 부하들이지만 그래도 의외의 결과를 남겼다.
드웨인은 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참으며 조금 슬픈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쿠퍼스 뱅크에 빚진 돈이 300만 골드에 달합니다. 1년에 이자만 해도…….”
“15만 골드고.”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어제 쿠퍼스에서 들었지. 300만 골드 입금하고 말이야.”
망나니의 손에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입금 증서를 보며 드웨인이 다시 한번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말이 쉬워지겠습니다. 이자 만기 상환일도 돌아오는데, 그 돈만 갚아도 앞으로 수년간 가문 사정이…….”
“지금 수확기잖아? 이자 상환 정도야 가능할 텐데? 만기야 자동 연장일 테고.”
‘……왜 이렇게 잘 알지? 가주도 잘 모르는 은행 일을…….’
드웨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재빨리 정신을 붙잡았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하하. 영지 운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나가는 돈도 있고, 저희가 언제나 자금 사정이 빠듯하다 보니까 말이죠. 조금만 도와주시면…….”
드웨인의 요구 사항은 자신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300만 골드를 몽땅 털어먹으려던 처음의 계획보다 한참 낮아져 있었다.
“나보고 영지 운영비를 보태 달라?”
“예! 바로 그렇습니다!”
설득이 먹혔다!
드웨인이 내적인 환호성을 지르려는 찰나.
“미안하지만 안 돼.”
담담한 목소리가 천국까지 상승했던 기분을 다시 나락으로 끌어내렸다.
“아니, 왜요?!”
드웨인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바로 쏘아지는 망나니 공자의 살벌한 눈빛에 살짝 간이 쪼그라들었지만, 그는 가문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300만 골드의 거금이 의미도 없이 허공에 뿌려지는 미래는 막아야 했다.
“예? 왜, 왜 그러십니까? 저는 공자님이 영지를 위해서 가주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나서신 줄 알았는데요?!”
“그래, 맞아.”
“거봐요. 맞…… 예?”
“나는 이 돈을 가문을 위해 쓸 거야. 하지만 당장의 운영비 따위는 절대 아니야. 좀 더 멀리 봐야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지만, 그 말이 당장 속이 터질 것 같은 행정관의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니가 뭘 안다고 어찌하겠다는 거야! 그냥 나한테 맡기라고!’
드웨인은 목구멍까지 솟구치는 진심을 꾹 눌러 앉히고 숨을 골랐다.
“멀리……요?”
“내가 지금 영지 운영비를 보태서 빚을 해결했다 치자. 그럼 영지 사정이 얼마나 바뀌지?”
“그야…… 예산이 넉넉해지면서 최소 몇 년 이상 자금 운용이 편해지겠죠. 숨통이 트이는 겁니다.”
피식.
로건은 자신의 예상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드웨인의 답변에 실소를 흘렸다.
“그럼 그 뒤에는?”
“……예?”
“다시 빚을 지게 되잖아. 아니야? 우리가 특산물이 있어, 뭐가 있어. 악순환이지.”
“크음. 그, 그게…….”
“나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하는 거야. 그러니 이 돈은 내 계획대로 쓰겠어.”
‘어, 어. 이게 내가 알던 대공자가 맞나? 그 망나니가?’
대공자가 이런 면이 있었던가. 차분한 눈빛으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해 오니 드웨인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인해야 했다.
“크흐음. 그, 가, 가문을 위해서 어찌 쓰실 건지. 제가 좀 계획을 들어도 되겠습니까?”
드웨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최대한 좋게 에둘러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아니. 몰라도 돼.”
울컥.
그 한 마디에 드웨인의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랐다.
가문을 위해서는 개뿔. 이 새끼는 지금 자신을 놀리는 거다. 틀림없다.
“야 이…….”
드웨인이 이성을 잃고 분노를 터트리려는데.
“모든 것은 결과로 보여 줄 테니까.”
흔들리지 않는 붉은 눈동자가 드웨인으로 하여금 가느다란 이성의 끈을 다시 붙잡게 했다.
“……어떻게든 살릴 거야. 반드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에게 하는 말이 아닌 듯한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지만, 더없이 깊게 가라앉은 로건의 눈빛은 그 간절함이 엿보이는 듯했다.
‘뭐지……?’
당장 이번 달 예산이 쪼들리는 자신보다도 훨씬 더 간절해 보이는 눈빛.
‘왜?’
무엇이 욕을 먹어 가면서까지 떼돈을 번 대공자를 다급해 보이게 하는 것일까.
‘달라…….’
영지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할 때의 눈빛도 그렇고, 마치 그가 알던 로건이 아닌 것 같았다.
복잡한 표정의 드웨인을 보며 로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돈을 뜯어내려고 찾아오기는 했지만 드웨인은 누구나 인정하는 맥라인 가문의 충신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말이 많다는 것에 다시금 막막함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괜히 그런 감정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 일을 드웨인에게 맡기자. 돈도 조금 주고…….’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는 즉흥적이지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말이 되어 나왔다.
“아. 그런 방향에서 드웨인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 가문을 위해.”
“……무슨 부탁 말씀입니까?”
“부탁을 들어주면, 나도 가문 운영비를 조금 내어 줄 수 있지.”
꿀꺽.
“말씀해 보십시오.”
“가문의 이름으로 용병들을 좀 모아 주었으면 해.”
“……용병들을 말입니까?”
“그래. 음…… 굳이 A급일 필요는 없어. 몸값이 너무 비싸니 그냥 말을 탈 수 있는 용병으로. 아, C급 정도면 좋겠네. 말을 탈 수 있는 C급 용병 300명 이상. 알아들었지?”
구체적인 내용과 숫자에 드웨인의 표정이 확 변했다.
“C급 용병을 삼백이나 말입니까?”
용병은 전쟁 등의 급한 일에 무력을 충당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수급하는 화살받이들을 말했다.
E, D급의 용병은 심부름꾼으로나 쓰이는 수준으로, 전쟁에서는 그야말로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다.
그러나 C급부터는 엄연히 한 사람의 몫을 하는 진짜 용병으로 취급받는다.
훈련받은 병사와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는 무력과 경험이 있다고 평가되는 이들.
거기다 전문적으로 칼밥을 먹고 사는 인생들이기에 보통 거칠고 통제하기 힘든 성격인 자가 많았다.
그런 이들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300명 이상이 모여 있다면, 맥라인 남작가로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니 드웨인은 사유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공자님이 용병들이 왜 필요하십니까? 그것도 그렇게나 많이?”
여기서 가문의 병력을 차출할 권한이 없으니 내가 마음대로 부릴 무력 부대가 필요하다는 진심을 말할 수는 없었다.
‘허가해 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미리 생각해 둔 그럴싸한 다른 핑계를 댔다.
“몬스터 사냥을 해 볼까 해.”
“예?”
“내 실전 경험도 기를 겸. 영지의 치안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
“……진심입니까?”
당연히 뻥이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지. 일단 용병을 모은 뒤에…….’
로건의 속마음과는 달리 표정은 뻔뻔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의뢰를 해 봤자 수백 명을 모으긴 힘들잖아. 가능하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릴 테고. 그러니 드웨인이 가문의 이름으로 모아 줬으면 해.”
그것이 시간을 확실히 단축하는 방안이었다.
“확실히 그거야 그렇습니다만…….”
논리는 확실했지만 드웨인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병이라고는 하지만 영지 내부에 다른 무력 집단을 들이는 일이었으니까.
어떤 이유에서든 영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깊은 고민에 빠진 드웨인과는 다르게 로건의 표정은 느긋했다.
‘거부하지는 못해.’
돈도 주고, 영지에 도움이 되는 일도 하겠다는데, 재정 지원을 받아 내러 온 양반이 거절할 리가 없다.
‘아버지가 거부하면 설득이라도 하겠지.’
그러니 지금 고민하는 것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그럼 얼마를 주실 겁니까?”
사실상의 승낙에 로건이 미소 지었다.
“10만 골드 줄게.”
“고작…….”
“싫으면 말던가.”
로건의 단호한 태도에 드웨인은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을 느꼈다.
“……만약 가주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돈도 돌려받아야겠지.”
“공자님의 가문입니다.”
“아버지의 가문이고, 쓰는 건 내 돈이지.”
로건과 드웨인의 시선이 치열하게 부딪치는 것도 잠시.
만성적인 예산 부족에 쪼들리는 행정관이 먼저 고개를 숙였고, 그것으로 거래는 성사되었다.
* * * 로건은 드웨인에게 10만 골드라는 거금을 넘긴 뒤, 바로 영지를 나설 준비를 했다.
수련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번엔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길어도 한 달. 그 정도면 충분할 거야.’
그에게는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고 꼭 필요한 일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공자님, 정말 떠나시게요?”
“그래.”
“아니. 도대체 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굳이 하나만 뽑자면…… 돈 벌러?”
“돈은 많이 생기지 않았습니까!”
“훨씬 많이 필요해.”
“그게 무슨…….”
릭은 황당해했지만 로건은 진심이었다.
당장 1년 뒤에는 영지전이 벌어지고, 10년 뒤에는 제국 전쟁이 발발한다.
그 소용돌이 안에서 가문을 지키고 살아남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깊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강력한 병력. 즉, 압도적인 힘이다.
그리고 그 힘을 얻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돈이었다.
병사의 수를 늘리든, 기사의 수를 늘리든. 장비를 갖추든, 식량을 비축하든 간에 모든 것에 돈이 들었다.
그랬기에 로건은 돈이 필요했다.
지금 수중에 있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이.
‘영지전은 몰라도 제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얼마의 돈이 필요할지 짐작도 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금 자금을 만들어 낼 근간을 세우기 위해 영지를 나서려는 것이었다.
“영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라고 해도 릭의 말대로 문제가 있었다.
로건은 아직 성년식도 치르지 않은 어린 몸이었다.
더구나 이런저런 이유로 가문의 눈총을 받는 마당에 여행이나 떠나겠다고 하면 절대 좋은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릭의 말은 타당했고, 로건 역시 그것을 인정했다.
“그렇겠지.”
“그렇…… 예?”
“그래서 몰래 나갈 생각이야.”
“예에?!”
역사의 흐름에 변화가 없다면, 영지전까지 9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가문 내부의 변화를 포기했다면 외부에서 변화를 끌고 와야 했다.
‘다행히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아.’
왜 파혼 사건이 지나서야 그런 생각을 떠올렸는지 이상할 정도로.
로건은 이 시기에 가문에서 일어난 일보다는 외부에서 일어난 일을 훨씬 잘 알고 있었다.
‘쫓겨나서 왕국을 전전하던 때니까.’
그리고 아직은 그만 알고 있는 정보들의 이용 가치는 무궁무진했다.
그것을 활용한다면 지금 그의 손에 있는 290만 골드의 가치는 극대화될 것이다.
‘물론 당장은 영지전을 위한 준비를 해야지. 그러니 되도록 빨리…….’
외부에서 전력을 늘릴 수 있는 방도를 찾아서 돌아와야 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그의 생각을 이해할 리는 없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세요! 이 시점에 가출이라니! 가주님이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실지…….”
대표적으로 눈앞에서 울상이 되어 있는 릭이 그랬다.
주인이 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생각이 든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금 사고를 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제 가문 내의 사고를 넘어서서 가출까지 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난 어쩌라고!’
그래서 그는 바닥에 드러누웠다.
“가시려면 저도 데려가세요. 아니면 절대! 절대로 못 갑니다!”
로건이 사고를 치면 뒷감당은 그가 해야 했다.
그는 가뜩이나 시끌벅적한 판국에 주인의 가출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로건은 그의 시종과는 마음이 다른 듯했다.
“편지를 남겨 두마. 너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을 거야.”
“그거야 도련님 생각이죠!”
“……아버지한테 직접 쓸 건데?”
“무, 무슨 말을 쓰시게요. 더 화나시게 만드는 건 아니고요?”
“물론이지!”
로건의 가출을 용인해 주는 것이 가주라면 얘기가 좀 다르긴 했다.
하지만 다음 날.
“바득바득 우겨서 돈까지 뜯어낸 놈이 뭐라?!”
릭은 가주의 번뜩이는 살기를 고스란히 받고 오줌을 지려야만 했다.
파혼으로 인해 상심이 큰 바, 바람 좀 쐬고 돌아오겠습니다.
로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