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89)
89화쿠궁.
타운의 입구를 지난 짐마차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대로를 움직였다.
몇 대 되지 않는 수레였지만 그 안에 실린 물건의 무게를 말해 주는 듯, 수레를 끄는 말들의 움직임은 역동적이면서도 느렸다.
그 소규모 행렬을 이끄는 이는 맥라인 타운이 초행인지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에 바빴다.
그런 상인의 모습을 지나가던 영지민들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건설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제 막 시장이나 상권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맥라인 타운.
그 소문을 듣고 들락거리기 시작한 상인들의 모습은 보통 저들과 대동소이했다.
발전하는 타운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영지민들에게, 외지인의 저런 반응은 묘한 자부심마저 느끼게 했다.
“이대로 쭉 가시면 영주관이 나옵니다. 물품의 수령지는 그곳이고요.”
“예, 예. 알고 있습니다.”
상인, 잰슨은 병사의 친절한 안내에 연신 굽신거리며 천천히 말을 몰았다.
“호오. 이 촌구석에도 드디어 제대로 된 상권이 하나 생기겠군.”
똑같은 수의 사람이라도 마을 단위로 흩어져 사는 곳과 도시 단위로 뭉쳐져 사는 곳은 소비하는 물건의 질도, 양도 차원이 달랐다.
웬만한 것은 만들어 쓰던 마을의 농민도, 도시에 살게 되면 싸게 공급되는 생필품을 사서 쓰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상권이 발달하기 시작하면 생필품을 넘어 기호품이 팔리기 시작하고, 결국 사치품도 팔리게 되었다.
즉, 상인의 시선에서 보기에 지금 맥라인 타운은 투자에 적격인 시기.
더구나.
‘사람이 이만큼이나 모였는데 무기 구입이 이렇게 적다는 건 치안도 문제없고 평화롭다는 뜻이겠지. 좋아. 아주 좋아.’
행상으로서는 더 바랄 게 없을 정도인지라 잰슨은 물건을 전달한 뒤, 당분간 타운에 머물며 이곳의 수요를 파악해 볼 생각이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무구를 전달한 상인들이 매일같이 타운에 들락거리고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채로.
“또? 또 들어왔다고?!”
“예. 목재 창고를 하나 더 만들어야 할 판입니다.”
“아니, 도대체 왜 이렇게 계속 만들라는 거야? 이미 병사들 공급량은 한참 넘겼는데!”
“궁금해?”
한창 짜증을 부리던 하마르는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름 끼치는 악마의 목소리에 식겁하며 돌아섰다.
“아, 아니 저는 그냥 여유분의 무기를 이렇게까지 만들어 놔야 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말이죠. 일종의 인력과 자재의 낭비가 아닌가 싶은……. 하하.”
“다 쓸 날이 와. 일단 만들어 놔.”
“그럼요. 만들어야죠. 자자, 다들 서둘러. 영지민들이 죄다 석궁 들고 쏠 수 있을 때까지 만들어 보자고.”
하마르 딴에는 농담을 가장해 작은 반항심을 담아 한 말이었지만.
‘그래.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부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실행해야 할 일이었다.
그것까지 염두에 둔 로건은 하나둘 생산되어 창고에 쌓이고 있는 연사 석궁과 탄창을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물자도 제대로 쌓이고 있고.’
각기 다른 명의로, 조금씩 타운으로 몰려드는 물자들.
무구나 목재, 말을 소규모로 실어 온 상인들도 자신의 거래 상대 이름을 모두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꼼수가 얼마나 계속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당장은 아주 효율적으로 보였다.
“필립이 잘해 주고 있어.”
고개를 끄덕이는 로건의 입에서 무심결에 나온 칭찬.
그 칭찬의 대상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맥라인 타운에 도착했다.
“오오.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그럴듯하네.”
“뭘 생각한 거야? 입구에서부터 놀라면 안으로 들어가면 더 놀랄걸?”
필립의 감탄사에 핸더슨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불과 몇 달 사이 부쩍 친해진 필립과 호위 기사들.
짧은 기간 내에 전국을 돌아다닌 빡빡한 일정과 그 도중에 몇 번 있었던 강도단과의 조우가 그들의 사이를 돈독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핸더슨은 조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짜 지금 와도 돼? 돈도 다 안 썼다며?”
“명의를 아무리 바꿔도 이미 너무 많이 샀어. 중개상들이 눈치를 채서 시세가 폭등했는데 지금 사면 호구야, 호구.”
“그래도 공자님이…….”
“에이, 그렇게 멍청하신 분은 아니니 이해해 주시겠지.”
기사들의 걱정에도 필립은 확신을 담아 답했다.
그렇게 유쾌한 기분으로 타운을 구경한 뒤 마침내 영주관에 도착한 그들은 곧 로건과 마주했다.
“왜 벌써…… 아,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는 거지. 수고했어.”
“역시 이해해 주실 줄 알았습니다!”
“뭘 당연한 걸 가지고. 아직은 이 정도면 충분하니까 괜찮아.”
“하하. 역시 공자님! 그럼 성과급 계산은…….”
“해야지. 약속한 대로.”
“감사합니다!”
필립은 헤벌쭉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빠르게 귀환한 표면적인 이유, 시세의 폭등은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엔…….
‘괜히 비싸게 사서 성과급 줄일 필요는 없지.’
이런 욕심도 크게 한몫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된 자금의 3할을 안 썼으니 그만큼을 총 구매 금액에다 더하고…….”
“예?! 로건 님, 잠시만……!”
“내가 최대치로 사라고 했잖아. 최대 효율을 내라고 한 적 없는데?”
“아니, 그래도 그건…….”
“어디 보자, 3할을 더해서 차액을 계산하면……. 오, 그래도 꽤 되네? 성과급으로 일만 이천…… 에이, 기분이다. 그냥 만오천 골드 줄게. 수고했어.”
털썩.
만오천 골드는 분명 무시하지 못할 큰돈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보다 거의 1/20로 줄어든 성과급에 필립이 허망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그 표정이 안쓰러웠는지 로건이 필립을 향해 말을 건넸다.
“우리 일은 단순하게 하자고. 최대한의 효율이 아니라 결과를 냈냐 못 냈느냐로. 알겠지?”
“허으…….”
로건이 무슨 말을 하든 들리기나 할까.
필립의 회색 눈동자는 텅 빈 허공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 그래도 이 정도면 잘했으니 약속한 것과는 별도로 상여금이라도 줄까 했는데…… 표정이 영 별로네. 싫으면 말까?”
“누가! 누가 싫다고 했습니까!”
그 말 한마디에 필립의 얼굴에 생기가 돌아왔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라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변화였다.
필립은 추가된 만 골드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이 초라하다 느꼈다.
‘이런 한심한…….’
그리고 그때, 악마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다음엔 이번보다 훨씬 큰 금액으로 원행을 보낼 생각인데. 성과급도 5% 정도로 높일까 생각 중이고. 기대해도 되겠지?”
“예! 반드시!”
옆에 있던 기사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기세.
필립은 그 어느 때보다 솟구치는 의욕을 느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초라함은 개뿔! 한심하면 어때!
기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난 돈이 좋아!’
필립 클로드, 27세. 전생의 황금충이 자신의 근원적인 욕구에 확실히 눈을 뜨는 순간이었다.
* * *
“오, 필립! 이렇게 직접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군.”
“그러네요, 드웨인 님. 뵙고 싶었습니다.”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어서 좋군. 드웨인, 잠시 행정일 좀 맡겨 봐. 인력 부족하댔지?”
그 말에 드웨인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존 맥라인 영지에 두 개의 성이 더해지고, 새로운 맥라인 타운까지 생겼다.
그에 비해 관리를 맡아야 할 행정관의 수는 몇 늘지 않았다.
테스론이나 실반의 기존 행정관들은 악독한 독재자 밑에서 일하며 영지민을 쥐어짜는 것을 거들던 이들이 많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보조 인력 투입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당연하죠! 그런데 장사랑 행정은 조금 분야가 다릅니다만…….”
“돈 다루는 일이라면 뭐든 자신이 있습니다!”
“……거,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얘가 왜 이러지?
드웨인이 실눈을 뜨고 필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행정 처리가 끝나는 대로 다음 원행을 나가게 해 주겠다.’라는 필립과 로건 사이의 약속을 그가 알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는 어리둥절하면서도 필립을 받아들였다.
“루겔 님. 식량 쪽은 이게 끝인 거죠? 창고 보관은 이렇게 하면 비용도 좀 적게 들고 오래도록 썩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어, 그래? 허허. 고맙네.”
“드웨인 님. 타운 유지 보수 비용이랑 고용인 급여 지급 문제, 여기 이 부분이 조금 잘못된 것 같은데요.”
“그렇군. 허…….”
“페란 님. 무구들은 전부 관리 상태가 좋습니다. 다만 무구 관리용 기름을 카일 쪽이 아니라 칼리아 쪽 영지에 주문하시면 지금의 절반 가격에…….”
“아, 역시 상인이라 그런지 잘 아는군. 조언 고맙네.”
필립은 그야말로 의욕이 넘치게 쌓인 업무들을 해치웠다.
그리고 돈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미미하게라도 성과를 내고 개선점을 찾아냈다.
모두가 그를 보며 감탄하며 칭찬하기 바빴지만, 그때조차 필립은 눈에 불을 켜고 일거리를 찾아 헤맸다.
그런 그의 머릿속은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끼면 아낄수록 내 돈이 늘어난다!’
로건이 성과급을 약속한 것은 단순히 상행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친구 덕분에 일 처리가 훨씬 빨라졌습니다. 여러모로 대단한 친구더군요.”
“그래? 잘됐군.”
“그런데 공자님.”
“음?”
한참 필립을 칭찬하던 드웨인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전에 말씀하신 전쟁. 그거 꼭 해야 하는 겁니까? 이렇게만 해도 우리 영지가…….”
“그만.”
“공자님…….”
“다 얘기해 줄 수는 없지만 이거 하나는 명심해. 앞으로는 꾸준한 발전 같은 건 없어.”
“예?”
“날아오르거나, 정체하다 망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야. 선택지가 둘 뿐이면 다소 위험해도 날아오르는 길을 택해야 하지 않겠어?”
로건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고, 눈빛은 진중했다.
“……말려도 안 들으시겠지요?”
“어.”
“그렇다면 전력으로 응원하겠습니다.”
“……태도가 너무 빨리 바뀌는 거 아니야?”
“제가 공자님을 믿지 않으면 누가 믿겠습니까!”
“많아. 믿을 사람.”
“…….”
할 말을 잃은 듯한 드웨인의 모습에 로건이 씨익 웃었다.
“농담이야. 고마워, 믿어 줘서.”
* * * 맥라인 타운은 이제 막 첫 수확의 결실을 거두어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였다.
더구나 외부에서 찾아드는 상행이나 방문객도 날이 갈수록 늘어 가니, 타운 주민들은 영지의 부흥을 피부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겨울바람이 조금씩 더 싸늘해지기 시작할 무렵.
병사나 기사, 그리고 그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점점 치열해지는 병력의 훈련이 점차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기 시작할 시기.
영주를 비롯한 맥라인의 수뇌부에서 아무런 공식적인 언급이 없었음에도.
영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막연한 불안감을 담은 소문이 영지민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그때, 집무실에는 각 분야의 관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기사단은 새 훈련에 완벽히 적응했습니다.”
“병과별 훈련도 마무리 중입니다. 이제는 실전에 투입되어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재정 정리도 끝났습니다. 적어도 내년 이맘때까진 돈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생각했던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들은 로건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똑똑.
“로건입니다.”
“들어오너라.”
끼이익.
“무슨 일이냐?”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음? 그래. 말해 보거라.”
“전쟁을 준비해야 합니다.”
“…….”
“…….”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인 말에 방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비프로스가 쳐들어온다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우리가 전쟁을 일으키자는 말이냐?”
“예.”
“하면 기사단 훈련도 그렇고, 최근 네가 헤인켈과 카이를 독촉한 이유가 단순히 영지 전력 강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습니다.”
“허어…….”
패드릭은 한동안 말을 잃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한참 후에야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왜?”
“이대로 있으면 영지가 망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맥라인.
내외부에서 보는 그런 시선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패드릭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