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은 스승님 때문에 참고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거나 아주 작은 핑곗거리만 있어도 로저 비프로스는 참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우리는 힘을 기를 수 있지. 아직은 비프로스보다 부족하다. 네가 한 말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가 로저 비프로스라면 우리가 성장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주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겠지요.”
“……그래. 그렇겠지.”
내전이 벌어질 미래를 모르더라도, 비프로스와의 갈등을 인식하고 있다면 이것은 당연한 예상.
하지만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다소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지.’
사람이란 자기 일에 대해 본능적으로 희망 섞인 기대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지능과도, 사회적 위치와도 상관이 없는 관점의 문제였다.
매번 전쟁을 생각하고 있는 로건이 특이한 것뿐.
“……생각해 둔 계획이 있으니까 말을 하는 거겠지.”
“예.”
로건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일리 있는 계획이다. 그런데 그 후가 더 문제일 텐데, 어찌할 생각이냐.”
“버티면 됩니다.”
“뭐?”
“자세한 사항은 지금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 하지만 믿어 주십시오.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럴듯한 로건의 계획에 조금이나마 펴지는 듯했던 패드릭의 얼굴이 다시금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가장 위험한 일에 대한 대책을 못 들었는데? 그런데도 일단 전쟁을 하자? 그냥 너를 믿어 달라?”
“예.”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으면 미친놈이라 생각하고 상종도 안 했을 것이다. 아니, 그 자리에서 목을 따 버렸을지도 모르겠군.”
그 살벌한 어조에도 로건은 미동도 없는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깊은 한숨을 내쉰 패드릭은 이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믿어야지. 너를 안 믿으면 누굴 믿겠느냐. 해 보자꾸나. 하지만 이 계획은 소수만이 공유한다. 끝까지.”
“당연히 그래야지요.”
특별히 절묘한 계략이라서가 아니었다.
그저 아군의 정신력과 사기 보호를 위해, 부자는 이 대책 없어 보이는 전술을 전쟁 직전까지 숨기기로 했다.
“그럼 시기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느냐?”
“이제 멀지 않았습니다. 다음 보름달이 뜨는 날, 그날 시작해야 합니다.”
패드릭은 아들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아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날짜를 받아놓은 것처럼 보였다.
“……고작 20일 정도 남았구나. 그런데 꼭 그날이어야 할 이유가 있느냐?”
“예.”
“아까 말한 계획과도 관련이 있는 거고?”
“예.”
“그래. 그럼 준비해야지. 좀 촉박하더라도 병력이야 다 준비가 끝났을 테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내가 할 말이다. 내 안일한 생각을 깨 줘서 고맙구나.”
위험한 미래에 대한 논의가 끝남과 동시에 부자의 대화도 끝났고.
“내일 가신회의를 소집하겠다. 준비하고 있거라.”
“예.”
다시금 전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날.
맥라인 영주의 명으로 가신들이 전부 영주관으로 모였다.
타운 내에 새로 지어진 영주관은 맥라인 성에 있던 대전보다 작기는 했지만, 고작 4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이기에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예스럽고 고풍스러운 그때의 대전에 비해 화려한 맛은 없지만, 철목으로 지어져 단출하지만 깔끔한 공간은 대화를 나누기에는 더 편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옛 맥라인 성 시절부터 함께 했던 여덟 명의 행정관들과 스물네 명의 수위기사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전체 소집이라…….”
“이거 정말 무슨 일이 있는가 봅니다.”
“큰일이 아니어야 할 텐데요.”
최근 영지에 퍼지고 있는 근거 없는 소문은 슬슬 온갖 형태로 살이 붙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영주님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겨울에 예전보다 더한 공사를 시작한다.
세금이 예전만큼 올라갈 것이다.
맥라인 휘하에서 생전 처음 따뜻한 겨울을 준비하던 영지민의 입장에서는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영지민 대다수가 가장 걱정하는 소문은 이것이었다.
곧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제야 막 자리를 잡고 살 만해진 상황.
맥라인의 그 누구도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바라지 않았다.
하나, 행정관들은 몰라도 기사들은 점점 가혹해지는 훈련의 분위기상으로 이미 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 영주가 본론을 꺼냈을 때 그리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올겨울, 페레타와 전쟁을 시작하겠다.”
물론 드웨인을 제외한 행정관들은 거의 날벼락을 맞은 표정이었다.
“저, 전쟁이요?!”
“말도 안 됩니다! 이 시기에 전쟁이라니!”
“아니, 누가 선전포고를 해 온 것도 아니고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킨다고요?!”
루겔 하이스가 벗겨진 정수리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펄쩍 뛰고.
“어, 어쩐지 무구가 자꾸 들어오더라.”
페란 도일이 투실투실한 볼살을 떨며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나마 예상을 하고 있던 기사들이 차분하게 반론을 꺼내 들었다.
“페레타를 치더라도 비프로스가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맞습니다. 뒤에 있을 비프로스를 고려해야 합니다. 아직 저희 영지의 저력으로는 비프로스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저희도 동맹군이 있거나 비프로스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패드릭은 미동도 없이 옆에 서 있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눈빛을 읽은 로건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가문의 의지는 결정되었다. 이것은 통보다. 여러분을 불러모은 것은 의견을 나누고자 함이 아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더불어 퍼지는 위압적인 기세가 가신들의 말문을 막았다.
“이 자리는 곧 있을 전쟁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 여러분은 전쟁을 위한 방도를 말하라. 반론은 듣지 않겠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닥치고 따르라’라는 말이었다.
가문회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폭거였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반대의 뜻을 표하지 못했다.
맥라인의 상하 관계는 다른 귀족 가문에 비해 상당히 엄격한 편이었으니까.
‘그게 이럴 때는 좋지.’
로건이 그렇게 생각하며 작게 미소 지었다.
강경한 분위기로 일단 찍어 누른 뒤에, 준비한 멘트로 억지로나마 명분을 받아들이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대공자님 생각인가 본데?”
“음. 그렇다면 뭐…….”
“또 무슨 계획이 있으시겠지.”
“그냥 움직이실 분은 아니지.”
분위기가 경직되기는커녕 되레 훈훈해지며 신뢰에 찬 시선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로건이 예상외의 상황에 살짝 당황하는데.
뒤에서 상황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는 아버지의 선언이 이어졌다.
“그대들 생각대로 이번 전쟁은 로건의 생각이다. 당연히 대공자의 주도하에 치러질 것이다. 할 말 있나?”
로건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없습니다!”
“따르겠습니다!”
“명하십시오!”
쏟아지는 목소리들.
대전에 들어설 때만 해도 불안해 보이던 표정들이 어느새 대부분 싹 지워져 있었다.
‘이렇게 쉽게?’
어이가 없어 그저 멍한 표정만 짓고 있는 로건의 귓가에 패드릭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떠냐 로건?”
“예?”
“이게 네가 해 온 일의 결과다. 뿌듯하지 않느냐?”
그 말에 로건은 다시금 가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돌아보았다.
아직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이던 헤인켈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언젠가부터 제 말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던 드웨인은 어울리지도 않는 윙크와 함께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대머리 루겔도, 뚱보 페란도, 모르는 사이 홀쭉해진 루펜도.
핸더슨을 위시한 수위기사들까지.
모두 신뢰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공자님 생각이라면야.”
“믿습니다, 공자님.”
“다시 한번 기적을 보여 주십시오.”
로건은 잠시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가슴이 저릿한 기분에 쉽게 다른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간신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진심을 끌어내어, 의지를 담아, 이뤄 내고자 하는 바를 선언했다.
“물론! 이번에도 확실한 결과로 보여 주겠다!”
“오……!”
“나를 믿어라! 이번 전쟁으로 맥라인은 또 한 번 크게 날아오를 것이다!”
로건의 선언이 가신들의 얼굴을 들뜨게 만들고.
“모두들 전쟁을 준비하라!”
영주의 확언이 터지는 순간.
“명을 따르겠습니다!”
쩌렁쩌렁한 외침이 한목소리로 터져 나오며 좁은 대전을 무너트릴 듯 우렁차게 울렸다.
* * * 달이 높게 솟아오른 밤.
늘 그렇듯 자신의 방 안에서 명상을 하던 로건은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아 조용히 자세를 풀고 일어섰다.
창밖으로 보이는 은은한 달빛과 별빛들이 평화롭고 고요하게 맥라인 타운을 비추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들.
그 한없이 평화로운 광경이 괜히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대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성장만 해도 가문을 유지하는 데엔 문제가 없지 않을까?’
이미 수없이 검토하고 다짐한 뒤인데도 불안감이 또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만큼 이번 전쟁은 위험 부담이 컸다.
뭐 하나라도 잘못 어긋나는 순간 가문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러니 온갖 걱정이 생기는 것도 당연했다.
로건은 수도 없이 살펴봤던 회귀 직후 써 놓은 기록들을 다시금 꺼내 살펴보았다.
잊지 말아야 할 일들, 그리고 현재로서는 가장 중요한 날.
왕이 죽은 날의 기록을.
몇 번이나 다시 검토한 데다가 기억하기도 쉬운 날이었기에, 수십 년이나 지났지만 틀릴 것 같지도 않았다.
‘올해의 마지막 날.’
그날 왕의 부고가 전해질 것이다.
그런데도 불안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만약 테스론과의 영지전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이유로 시기가 어긋나 버린다면? 아니면 내가 혹시나 정말 날짜를 잘못 기억하고 있었다면 어쩌지? 준비가 부족한 것은 아닐까?’
낮에 가신들이 보여 준 절대적인 신뢰를 혹여나 배신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불안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커져 갔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결론은 자명했다.
‘해야만 한다.’
까드득.
이 기회를 살려 날아오르지 못하면, 아무리 빨리 성장해도 제국 전쟁이 벌어질 8년 뒤에 변경백 정도의 영향력조차 발휘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야 이 나라와 같이 망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문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포기하고, 나라를 포기하고, 저 증오스러운 제국으로 단체 이주라도 할 생각이 아니라면.
“무조건 해내야 해!”
로건은 일부러 소리 내어 다짐하며 스멀스멀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쫓아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시야를 가득 메운 저 차가운 달빛이 약한 마음을 도려내 주길 바라며, 로건은 그렇게 한참 동안을 하늘을 보며 서 있었다.
그로부터 2주 뒤.
해의 마지막을 3일 앞둔 연말.
“출진한다!”
로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맥라인의 군대가 움직였다.
기사 152명.
병사 총원 2,532명. (기사 수련생 포함 석궁기마병 1,000명. 보병 1,532명) 실반에서 전향한 기사와 병사들까지 총동원한.
최소한의 치안 유지 병력을 제외한 맥라인의 전 병력이 서쪽을 향해 말을 달렸다.
말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보병들마저 동료들의 등 뒤에 한둘씩 올라타 있었다.
그럼에도 군량은 거의 싣지 않은, 최대한의 무기와 장비만 챙긴 군대의 질주.
지난 실반 영지의 전투 때보다 규모만 커졌을 뿐 같은 모습.
최단기간 내에 전쟁을 끝내겠다는 각오를 보여 주는 질주였다.
그리고 페레타 영지에 전해진 선전포고.
– 6개월 전 모욕에 대한 죄를 묻겠다.
잠시나마 평화롭던 왕국 서남부에 다시금 풍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페레타 영지는 갑작스러운 맥라인의 선전포고로 뒤집혔다.
“비프로스에 전해! 맥라인 놈들이 미쳤다고!”
맥스 페레타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소리를 질렀다.
“플렌 성은 그냥 내어 주고 본성에 모든 병력을 집중시켜! 어떻게든 비프로스가 올 때까지 버틴다!”
실반이 허무하게 무너진 이래, 맥스 페레타는 그 전투를 수도 없이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맥라인의 첫 공격이 자신이 아닌 실반이었다는 것이 그야말로 천운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당시 자신을 말렸던 사절, 리할트를 이전보다 훨씬 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맥라인이 비프로스의 경고를 무시하고 진격해 오는 지금, 페레타는 그 모든 행운이 그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심지어 맥라인이 보다 가까운 페레타의 두 번째 성인 플렌 성을 무시하고 본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는 순간, 그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잃어버렸다.
“징집병! 징집병들도 끌어모아! 그 빌어먹을 악마의 화살이라도 소모하게 만들어!”
잔인한 영주의 말에 따라 페레타 본성 근처의 모든 마을 주민이 강제로 소집되었다.
그야말로 노소를 가리지 않은 무차별 징집.
무기를 들어 올릴 수만 있는 남자라면 모조리 징발하여 성으로 끌어들였다.
맥라인의 진격이 불러온 비상사태에 페레타 성 전체가 공포에 질려 벌벌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