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92)
92화 ‘과연 어떨까.’
로건이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마법 시전을 준비 중인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투입된 인원은 현 골렘 마탑 소속 중에서 아직 어린 빅토리아를 제외한 전원.
클레이튼과 그 수제자라고 할 수 있는 그릭, 에난, 트루스를 포함한 열 명의 제자들이 품속에서 각기 다른 크기의 푸른 수정을 꺼내 들었다.
자연의 마나가 뭉쳐서 만들어진 희귀한 광물, 마정석이었다.
마정석을 손에 든 그들이 일제히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들의 심장에서 움직이는 마나 서클이 주변의 기운을 요동치게 만드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곧이어 클레이튼의 손에 들린 원가 10만 골드짜리 상급 마정석 열 개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르르릉.
동시에 체고만 5m에 이르는 거대한 흙 인형, 골렘 10개체가 지면을 무너트리며 솟아났다,
“우와아아!”
맥라인에서는 이미 유명한 클레이튼의 골렘이지만, 기사나 병사 중에서는 처음 보는 이들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전 댐 공사 때 클레이튼의 거대 골렘을 보았던 사람들은 그때보다 훨씬 작은 골렘들을 보며 의아해했다.
‘그때 그 거대 골렘은 안 쓰는 건가?’
더구나 이번 골렘들은 덩치에 비해 팔이 유난히 크고, 손 대신 뭉뚝하고 납작한 형태의 커다란 삽 같은 형상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지켜보던 로건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렸다.
‘단지 골렘을 생성하는 것만으로 10m 반경의 구덩이가 생겼다.’
클레이튼이 호언장담한 일이 쉽게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
그리고 바로 그 뒤를 이어 그릭이 만들어 낸 골렘을 필두로 2~3m의 골렘 11개체가 연달아 생성되며 구덩이가 더욱 넓어지는 것을 보며 확신을 얻었다.
로건의 만족스러운 끄덕임과 동시에 골렘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어어?!”
“뭐, 뭐 하는 거야?”
“삽질……?”
적진을 향해 돌진할 것이라는 대다수의 짐작과는 전혀 다르게, 골렘들은 삽 형태의 커다란 손으로 미친 듯이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저게 뭐 하는 거야?”
당황하는 맥라인 병사들의 가장 앞에서 골렘 마탑의 마법사들은 연달아 마나를 끌어 올렸다.
비싼 마정석으로 골렘을 유지하는 동안 그들은 또 다른 마법으로 골렘들의 ‘작업’을 도와야 했으니까.
“타아!”
벌써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클레이튼의 기합을 시작으로.
우우웅.
우르르릉.
마법사들의 마나가 뿜어질 때마다 마법이 닿은 지반이 무른 두부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적의 성에서 500m는 떨어진 거리.
화살로는 도저히 닿지 않는 곳에서 골렘과 마법사들이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자, 어떻게 반응할 테냐?’
성벽 위에 웅크린 적들을 바라보는 로건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마법사?!”
수비대장인 제롬이 병사들보다 먼저 변화를 알아차렸다.
난잡하게 날아오는 작은 화살 따위로 상급기사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었으니까.
“저놈들이 마법사도 있었어?”
적의 헛지랄 같은 공격에 잠시 안심됐던 가슴이 다시 두근거렸다.
마법사라면, 그것도 다수의 마법사라면 충분히 전장에 변수를 가져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어진 마법사들의 행동은 잔뜩 긴장했던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땅굴?”
비슷한 시기에 마법사들을 확인한 제릭 역시 비슷한 표정으로 제롬과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빠르게 의견을 교환했다.
“저 거리에서 지하로 땅을 파겠다? 뭐 하는 거지, 저놈들?”
“그러게. 아무리 마법이라도 하루 이틀로는 무리일 텐데.”
“그럼 대체 왜 저러는 거야?”
“글쎄, 저 흙 인형들이 좀 걸리긴 하는데…….”
형제는 불안한 눈빛을 주고받았지만, 이내 동시에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우리가 성문을 열고 나설 상황은 아니야.”
“음. 우리야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두 형제는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며 애써 변수를 무시했다.
하지만 몇 시간이 흘러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또 기울어 갈 때까지 적군의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자, 불안감이 점차 강해졌다.
처음 등장했던 마법사들과 골렘들은 이미 자신들이 판 땅굴 안으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거기다.
“이제는 활도 안 쏘는데?”
“무슨 생각이지 저놈들?”
“내버려 둬. 시간을 끌겠다면 우리야 좋지.”
제롬은 불안한 마음이 티 나지 않도록 애써 감추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
우르르릉.
“우왁!”
“뭐, 뭐야?!”
“성벽이 흔들렸…….”
강렬한 진동과 함께 병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온 순간, 막연했던 불안감이 현실로 다가오고 말았다.
“성벽이?!”
“이게 무슨 일이야!”
소란스러워지는 병사들을 보며 제롬이 동생을 향해 소리쳤다.
“성벽이 무너질 가능성은?!”
“설마, 에이. 말도 안 돼.”
“지금 흔들리는 거 못 느꼈어?”
“……그래도 우리가 나서서는 안 돼. 본대가 올 때까지 버티는 게 우선이야.”
“그러다 성벽이 무너지면? 저놈들이 왜 지금까지 공격을 안 하고 있겠어! 무슨 생각이 있는 거야!”
예상치 못했던 한 번의 흔들림이 형제의 의견을 갈라놓았다.
그리고.
“소수정예만 동원해서 마법사들을 치자. 저놈들 몰래!”
더 불안한 쪽인 제롬이 토모도 성의 수비대장이었다.
“기사들만 보내자고. 남쪽 숲을 우회해서 최대한 안 들키게. 혹시나 조금이라도 찜찜하면 그냥 돌아오는 거야. 알았지?”
“……그래. 한번 찔러나 보자.”
결국, 형제는 기다리는 것을 포기하고 무언가 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토모도 성.
서쪽 성벽은 맥라인 전력인 수상한 마법사들의 움직임으로 긴장감이 넘쳤지만,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다른 쪽 성벽에는 최소한의 병사들만이 혹시나 모를 사태를 대비해 경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 남쪽 성벽은 경계 병력이 그나마 좀 더 배치된 곳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서쪽으로 쏠린 그때, 남쪽 성문이 열리더니 일단의 기마병들이 밖으로 나왔다.
“경계는?”
“이상 없습니다.”
“적군의 흔적도 없습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제릭을 필두로 20명의 기사가 일제히 말을 달렸다.
방향은 남쪽, 고작 20기의 기마가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서쪽 성벽 너머까지 들릴 리는 없었다.
제릭을 비롯한 기습조 기사 20명은 빠르게 남쪽 숲으로 접어들었다.
‘적의 후방 근처까지는 숲속으로 이동할 수 있어.’
물론 적 진영과 숲의 끝은 제법 거리가 있었지만, 성보다는 훨씬 가까웠다.
‘빠르게 치고 빠진다.’
계획대로 적의 마법사만 급습한 뒤 빠르게 후퇴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했다.
마법사가 근거리 전투에서 기사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었으니.
적들이 접근을 멈춘 사이 미리 정찰한 바에 따르면, 후방 쪽에는 경계 병력도 얼마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대비되어 있다고 해도, 적 기사들이 움직이기 이전에 성으로 퇴각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었다.
숲속을 달려 도착한 적의 후방에서 넓게 파인 땅굴의 입구를 보았을 때, 제릭은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기사 다섯. 충분해.’
땅굴의 입구를 지키는 병력도 그다지 많지 않았고, 심지어 숲 쪽을 경계하고 있지도 않았다.
그때, 기습조에 같이 온 상급기사 게일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제릭, 잠깐. 함정 아닐까? 경계 병력이 너무 적어.”
게일의 말은 확실히 일리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바뀌는 것은 없었다.
“함정이면 다시 돌아가게?”
“그래도…….”
“낌새가 이상하면 바로 튀는 거야. 하지만 그전에는 전력으로 들이박는다.”
굳이 적 기사단 대부분이 본대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그들이 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방심보다는 필사적인 각오가 필요한 때였으니까.
“가자.”
동료의 가벼운 반발을 무마한 제릭이 돌진을 명하는 순간.
사사삭.
우거진 풀숲이 연이어 흔들리며 기습조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기합이나 소리를 지르는 멍청한 짓을 하는 이는 없었지만.
두두두두.
돌진하는 스무 기의 기마는 금세 적의 이목을 끌었다.
다만 의외였던 것은.
“적이다!”
“뒤쪽! 기습이다!”
적들이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대응할 생각도 없이 곧바로 땅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사실이었다.
스무 명 대 다섯 명이라는 숫자의 차이를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이 제릭을 찜찜하게 만들었다.
‘함정…….’
아니, 아니다. 적군 기사들의 위치는 이미 확인했어.
혹시 차이가 나더라도 이곳 후방까지 제 때에 올 수 있는 기사는 소수뿐일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지금 발을 빼기에는 늦었다.
제릭은 이를 악물며 다리에 힘을 더했다.
“더 빨리!”
그의 고함과 함께 비프로스 기사들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그 가장 앞에서 땅굴을 향해 돌진하던 제릭은 땅굴 속 흐릿한 어둠 속에서 무언가 쏘아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칫!”
최대한의 속도로 돌진하고 있었기에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위협이었지만,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타다다당!
오히려 감각만으로 날아드는 물체들을 쳐 내며 그대로 돌진했다.
‘화살?’
정확히는 개전 초기에 성벽을 두드리던 그 이상한 석궁용 쿼렐이었다.
그것들이 생각보다 무서운 힘을 싣고 전면에서 연달아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프로스에서도 최강자급에 속하는 상급기사.
포스를 한껏 끌어올리자 그의 갑옷은 파고들려던 쿼렐을 튕겨 보내고, 전진하는 검은 전방을 가로지르며 접근하는 모든 화살을 쳐 냈다.
다만 아무리 포스를 끌어올리더라도 말까지 보호할 수는 없었다.
히이이잉!
털썩.
“빌어먹을!”
말이 쓰러지는 순간 돌진은 멈출 수밖에 없었지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서는 그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모든 동료가 그와 같은 능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푸륵!
히이이잉!
“악!”
말뿐만 아니라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동료들의 입에서도 비명이 터져 나왔다.
쏟아지는 쿼렐을 막아내느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갑옷에서 울리는 진동으로 위력을 파악해보면 아무래도 포스로 갑옷을 강화하지 못하는 평기사는 이 쿼렐의 소나기를 온전히 버텨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전진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이런 공격을 한다는 것은 이곳에 그들을 상대할 만한 기사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반드시 잡고 간다.’
토굴의 어둠에 눈이 익자 차츰 보이는 실루엣들, 연신 석궁을 쏘아 대는 300여 명의 병사와 그 뒤에 숨은 로브 차림의 마법사들을 확인한 제릭이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놈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지척까지 다가온 데다가 기습조 기사들과 마법사들 사이에 끼인 병사들이 휘말릴 수 있기에 마법사들은 별 대응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함부로 마법을 날렸다가는 자칫 무너질 수도 있는 토굴 안이라는 점 또한 그들이 섣불리 움직일 수 없게 하리라.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만 저들을 처리하고 돌아가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의 눈앞으로 불쑥 쇳덩이가 튀어나왔다.
콰앙!
다행히 반사적으로 내뻗은 검이 그대로 그것을 가격했고.
“컥!”
숨통이 막히는 소리와 함께 묵직한 덩어리가 뒤로 나뒹구는 것이 보였다.
석궁을 쏘아 대는 놈들 앞에 웅크리고 있던 놈들.
자기 몸만 한 쇠 방패를 들었던 놈 하나가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
“비켜!”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석궁들 대다수가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어 자신을 겨누는 것이 느껴졌다.
제릭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끼며 필사적으로 포스를 끌어올려 갑옷을 강화했다.
타다다다당!
쿵. 쿵.
“이익!”
검으로 쳐 내기에는 너무 많은 수의 쿼렐이 그의 갑옷을 강타했다.
포스로 강화하지 않았다면 순식간에 벌집이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상급기사라도 뒤로 밀려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공격이 계속된다면 그 역시 안전을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모두 쓸어 버려!”
한발 늦게 같은 상급기사 게일이 그와 함께 최전방에 나서며 놈들의 공격을 분산시켰고.
그 뒤를 따른 부하 기사들이 좌우로 흩어져 놈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며 앞으로 내달렸다.
말은 잃었지만, 기사는 단거리에서만큼은 말보다 빠를 수 있었다.
콰아앙!
“아악!”
석궁병 앞에서 겁도 없이 기사에게 방패를 들이민 놈들이 일제히 나가떨어지고.
그 틈에 다시 쏟아진 쿼렐의 비가 동료들을 물러나게 했지만 제릭은 확신했다.
몇 번의 공방만 지나면 놈들을 무너트리고 마법사들의 목을 베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몇 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어스 월(Earth wall)!”
“스웜프(Swamp)!”
뒤에 늘어서 있던 마법사들의 외침과 함께 쓰러진 병사들의 자리에 흙의 벽이 세워지고, 자신들이 딛고 있던 땅이 늪처럼 변하며 발이 푹푹 빠져들었다.
“뭐, 뭐야 이 마법은!”
거리만 좁히고 적군 병사들을 사이에 두면 대응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마법사들의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제릭이 당황하는 사이.
“말은 다 처리했고. 자, 이제 우리와 놀아 보자고.”
여유로운 음성과 함께, 갈색 머리에 흰머리가 많이 섞인 중년의 기사가 사라졌던 다섯 기사와 함께 그들의 퇴로를 가로막았다.
‘상급기사!’
제릭은 한눈에 그 중년인이 자신과 같은 경지에 오른 강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사의 수는 한참 부족하지만, 저들이 발목을 잡고 저 이상한 석궁이 뒤를 노린다면.
‘여기서 고립될 수도 있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재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기습은 실패였다.
전력을 최대한 보존해 성으로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 전군 돌격하라!
토굴의 밖, 멀리서 그의 표정을 일그러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