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적이다!
아련하게 들리는 고함이 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후방 토굴에 적의 기습입니다! 적 기사 20여 명……!”
병사의 다급한 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보고를 들은 로건은 미소를 지었다.
“20명이라…… 좋군.”
“예?”
보고한 병사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전장으로 눈을 돌린 로건이 크게 고함을 질렀다.
“전군!!”
맥라인 병사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돌격하라!”
로건이 검을 뽑아 들며 적의 성을 가리켰다.
“예?”
후방 기습을 보고한 병사가 로건과 후방을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지만.
“우와아아아!”
반나절 넘게 지루한 대치만 하고 있던 맥라인의 기사들은 그 순간 전방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석궁기마병과 보병이 따르고, 이내 명령을 내린 로건마저 그 질주에 동참했다.
두두두두.
본영이 통째로 전방을 향해 돌진해 버리고 남은 곳.
“이게 뭔…… 에라, 모르겠다.”
기습을 보고했던 병사는 후방과 전방을 번갈아 바라보다 그 역시 전방을 향해 달음질치기 시작했다.
원래부터 세 배는 많았던 맥라인의 병력이 돌진해 오기 시작하자 적들이 난리가 난 것은 당연했다.
“막아! 막으라고!”
성벽 위에서 소리를 질러 대는 적장의 모습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당황하는 적들의 모습.
하지만 성벽 위에서 미친 듯이 장궁의 화살들을 쏟아부어도 돌진하는 맥라인 기사들을 막을 수가 없었다.
타다다다당.
‘고작’ 500여 명의 병력이 ‘무려’ 백 명이 넘는 기사에게 난잡하게 쏘아 내는 화살은 평기사 하나조차 낙마시키지 못했다.
그 광경을 보며 로건이 슬쩍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놈들 기사의 절반이 후방으로 빠졌다. 이 정도면 충분해. 놈들이야 헤인켈이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놈들을 모두 처리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이곳에 발은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다.
로건이 계획한 작전에는 그것이면 충분했다.
– 땅굴을 파 성벽을 무너트리겠습니다. 땅속에서 성벽의 지지대만 무너트리는 것은 그리 대단한 마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클레이튼이 얘기한 대지 마법과 골렘의 조합으로 가능한 땅굴 작전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비프로스의 지원군이 오기 전에 끝내야 하는 토모도 공략전에서는 조금 무리라고 봐야 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계산해도 놈들의 원군이 도착하기 직전에나 성벽을 무너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로건은 아예 이를 대놓고 보여 주며 적 병력을 유인하는 방책으로 쓰기로 했다.
의미도 없는 석궁질로 시선을 가리려는 ‘척’까지 하며.
“만약 유인이 성공하지 않았으면 어쩌시려고 했습니까?”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용맹한 전사 같은 기세가 풍기는 중년의 거한이 보였다.
평상시에 입던 로브보다 병사용 갑옷을 챙겨 입은 지금 모습이 훨씬 잘 어울리는 마법사, 클레이튼이었다.
“그럴 리가 없죠. 몇 배나 되는 병력을 앞둔 초조한 상황에서 성벽이 흔들리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것도 바보죠.”
성벽의 진동. 그것은 오직 클레이튼의 마법으로 인한 허세일 뿐이었다.
그것은 적들을 낚기 위한 미끼였고, 낚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성만 점령하면 돼.’
타오르는 듯한 붉은 눈이 막 성벽에 도착한 아군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쿵.
가장 먼저 도착한 기사들이 성문을 타격했다.
하지만 살짝 부서진 성문의 파편 사이로 거무튀튀한 금속 철창이 보였다.
이중으로 성문을 가로막도록 설계된 철창의 방벽에 기사들은 즉시 발길을 돌렸다.
저것을 뚫느니, 성벽을 무너트리는 것이 오히려 편할 것이다.
기사들 역시 혹시나 해서 찔러 본 것뿐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물러나 로건을 바라보았다.
‘저기. 저기. 저기.’
강화된 감각으로 성벽 너머의 기세를 읽고 적 전력을 파악한 로건이 성벽의 바로 앞에 도착한 기사들을 향해 세 군데의 포인트를 짚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상급기사가 존재하는 위치라는 의미였다.
미리 약속한 대로 기사들은 그곳을 피해 성벽을 밟고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북쪽 성벽으로 적이 돌아 들어간다! 기사 삼십 이상!”
“남쪽 성벽으로 기사 오십!”
성벽 위의 적들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아군 기사들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적 병력의 모습을 훑어보며 로건은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
“이제 최대한 빠르게 점령하기만 하면 됩니다. 도와주십시오.”
“그러려고 제가 여기에 있는 거죠.”
쓴웃음을 지은 클레이튼의 몸속에서 마력이 움직이는 것을 보며 로건은 잠깐 시선을 옆으로 옮겼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휘권까지 온전히 자신에게 넘긴 아버지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아버지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로건이 다시 성벽을 향해 감각을 집중했다.
최상급기사와 최강의 상급기사.
맥라인 최대 전력인 두 사람이 가장 효과적으로 적을 무너트리기 위해, 성벽 위 수비 병력의 틈을 노리기 시작했다.
그런 로건의 시야에 가장 열렬히 날뛰고 있는 두 기사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런…….’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아끼는 이들.
그런데 둘 다 지나치게 적의 이목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전장에서의 활약을 말릴 수도 없는 노릇.
아끼는 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건 옳은 방향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은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도 잘 해내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제 세상을 만난 듯 날뛰는 붉은 머리 남녀를 번갈아 바라보는 로건의 얼굴에는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할 수 있어!’
에일렌은 눈앞에 있는 성벽을 보며 의지를 다졌다.
최근 몇 달간 절벽에서 이가 갈리게 연습해 온 것이 바로 빌어먹을 공성 훈련이었다.
영주나 기사단장, 간혹 로건 공자 같은 안전 대책이 있기는 했지만 높이 자체는 이 성벽보다도 높았다.
거기다 발 디딜 곳 하나 찾기 힘들었던 절벽과는 달리 성벽 곳곳에서 흙이 발판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에일렌은 유독 민감한 감각으로 그 작은 이변이 로건의 근처에 서 있는, 병사용 갑옷을 입은 한 사람의 재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법사. 아마도 그…….’
화살도 잘 닿지 않는 거리에서 이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마탑의 수장이라는 그 험상궂은 중년 마법사뿐일 것이다.
어쩌면 로건 공자나 영주가 선봉에 나서지 않은 것은 저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당장은 그런 시시콜콜한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반드시 공을 세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맥라인의 기사들 중 전공에 가장 목마른 것은 누가 뭐래도 자신일 것이다.
오랫동안 자신에게 따라붙어 온 성별이라는 꼬리표를 떼어 버리고 한 사람의 기사로서 인정받을 기회였으니까.
에일렌은 이를 악물며 누구보다 먼저 거침없이 성벽 위로 뛰어올랐다.
그녀는 고작 몇 번의 발판을 디디고 점프하는 것만으로 순식간에 성벽 위에 다다랐지만, 그녀를 맞이한 것은 적군의 병사들이 쏟아부은 화끈한 기름 벼락이었다.
‘흡!’
무언가 공격이 올 거라고 예상하였기에 간신히 방향을 틀어 기름을 피하자, 이번에는 눈앞에서 검을 휘두르는 기사가 보였다.
성벽을 넘기 위해 허공으로 점프한 상황.
지지대도 없는 상황에서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
다행히 이런 상황도 훈련에서 많이 겪어 봤다.
“합!”
기합과 함께 에일렌의 몸이 허공에 발판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 번 더 치고 나가며 방향을 꺾어 솟아올랐다.
“헛?!”
놀라는 적 기사의 음성이 투구 사이로 새어 나오고, 에일렌은 그 뒤쪽으로 곡예를 하듯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무리한 공중 동작으로 인해 착지가 좋지 않았고.
터어엉.
“윽!”
그 틈에 휘둘러진 적의 검에 투구가 날아가면서 그녀의 긴 머리가 바람결에 나부꼈다.
그리고 그것이 절호의 기회를 만들었다.
“여자?!”
멍청한 얼간이의 검이 멈칫하는 찰나.
그녀의 검이 적의 목을 갈랐다.
촤아악.
“끄으으. 이런 개 같은…….”
솟구쳐 오르는 핏줄기.
욕설 섞인 단말마와 핏발이 선 눈동자가 그녀의 눈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우습게도 에일렌은 그 순간에야 비로소 자신이 진짜 전장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까득.
흔들리는 마음과 순간적으로 가슴속을 비집고 나오는 공포.
에일렌은 그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둘러지는 칼질.
다행히 주변에는 적 병사들뿐이었다.
촤아악!
“으아아악!”
그녀가 딛고 선 성벽 부근을 중심으로 일순간 공터가 만들어지고, 그 자리에 동료 기사들이 연이어 발을 디뎠다.
“훌륭했습니다!”
짧은 감탄사와 함께 그녀의 옆을 지나치는 이는 중급기사, 렉톤.
기사단 내에서 대표적으로 그녀를 고깝게 보던 이였다.
– 근성은 인정하지만, 실전은 또 다르지. 여자가……. 공자님 약혼자니까 우리가 보호해야 하는 거 아냐?
오늘 이후에는 다시 그런 소리를 들을 일은 없을 것 같다.
그 생각 하나가 패닉에 빠질 뻔한 에일렌의 정신을 다잡아 주었다.
“후욱…….”
길게 한숨을 토해 낸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빛을 되찾았다.
‘난 할 수 있어.’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투지를 되찾는 순간, 그녀의 칼은 훈련 때 보다 더욱 격렬하고, 더욱 거칠게 주변의 모든 적을 휩쓸기 시작했다.
우웅.
자신의 검에서 뿜어지는 옅은 주황색의 포스를 보며 로니안은 씨익 웃었다.
출전 직전에 간신히 벽을 넘어 얻은 힘.
– 주인의 동생이니, 힘을 써 봤소이다. 주인 것만큼의 작품은 아니지만, 내 솜씨에 재료 역시 통짜 미스릴이니 웬만한 하급 아티팩트보다는 나을 것이오.
형의 애검 룩스(Lux, 새벽)의 이름을 흉내 낸 자신의 애검 마네(Mane, 아침)가 비로소 그 가치를 뽐낼 순간이 왔다.
‘이젠 내가 한발 앞섰다.’
처음에는 좋은 검술 친구라고만 생각했던 빅토르가 주는 압박감도 이제는 한결 덜어 낼 수 있었다.
그동안 자신이 해 온 노력이 빛을 발하는 느낌에 가슴 가득 자신감이 차올랐다.
그래서 그는 성벽을 향해 서슴없이 돌진할 수 있었다.
“헛, 작은 공자…….”
한발 먼저 출발한 기사보다 오히려 더 빠르게 솟구친 로니안은 자신을 노리고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검 두 자루를 스치듯 피하며 성벽 위에 바로 착지했다.
그리고.
‘물결 가르기.’
꽈아아아앙.
그의 검에서 시작된 네 겹의 주황색 파도가 그의 앞을 막아선 두 기사를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와라!”
아직은 보통의 성년보다 조금 작은 체구.
하지만 이 순간 로니안이 보인 기세는 주변의 모든 이들의 이목을 끌어들이기 충분했다.
“저 녀석……!”
너무 과했다.
언제 중급이 된 건지 그새 경지가 상승한 건 기특했지만, 고작 그 정도로 저리 날뛰는 것은 지나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생각했던 기회가 더욱 빨리 찾아왔다.
상급기사 둘이 로니안 쪽으로 몰리고, 하나는 에일렌과 합류한 기사들을 향해 움직였다.
둘의 위치는 성벽의 양극단.
덕분에 현재 중앙을 지키는 이들 중에는 상급이 없었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로건이 튀어 나갔고. 아버지 역시 성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좀 더 빠르게. 좀 더!’
풍신의 부츠와 귀신 그림자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며 한달음에 성벽에 도착하고, 단 두 번의 도약으로 성벽 위로 날아올랐다.
중급 이하의 기사가 이런 움직임을 막아 낼 수는 없는 노릇.
촤아악.
바람처럼 성벽 위에 내려선 로건이 적 기사 둘의 수급을 단숨에 날려 버렸다.
로건은 마음이 급했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그 미끼가 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적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한껏 기세를 끌어 올리려는데.
“내가 바로 패드릭 맥라인이다!”
그보다 더욱 마음이 급했던 한 사람의 목소리가 멀지 않은 곳에서 터져 나오며 적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아버지의 외침은 성벽 위의 모든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에일렌과 로니안을 노리던 적의 상급기사들이 급격하게 노선을 바꿔 중앙으로 몰려들었다.
그중 둘은 패드릭의 검 위로 2m나 솟구친 선명한 포스블레이드에 놀라, 이내 이어진 일방적인 공세 속에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치기에 바빴다.
반대쪽에서 달려온 상급기사 하나 역시 상황은 좋지 않았다.
우우웅.
‘대지 가르기!’
로건의 검에서 솟구친 거대한 황금빛 검이 달려들던 놈과 주변의 병력을 통째로 썰어 버렸다.
쩌어어어억.
세로로 휘둘렀다면 성벽조차 잘라 버리지 않았을까 싶은 압도적인 일격.
로건의 앞쪽 20m에 달하는 공간이 한순간에 동강이 나 무너져 내린 시체들로 가득 찼다.
그리고 그 순간, 토모도 성의 사기는 완벽하게 바닥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