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Chapter (99)
99화
“이제 그 기묘한 화살도 더는 날아오지 않습니다.”
“기만책일 확률은?”
“없습니다. 만에 하나 기만책이라 해도 실제로 얼마 남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 사방이 막혔으니 어디로 도망도 못 가겠고, 이제 식량도 떨어졌을 테고. 가만 놔둬도 알아서 자멸하겠네. 그렇지?”
“그렇습니다. 일주일, 아니 삼사일 안에 스스로 튀어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흐음. 우리는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지친 놈들을 족치기만 하면 되고 말이야.”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하지만 이미 충분히 분노를 참은 로저 비프로스는 그 며칠을 더 참아 줄 생각이 없었다.
“이빨에 발톱까지 빠진 생쥐를 잡는데, 더 기다릴 필요는 없겠지. 플란츠!”
“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투지 넘치는 목소리.
지난 며칠간 간만 보고 후퇴하는 공격으로 스트레스가 쌓인 것은 맥라인 진영뿐만이 아니었다.
“감히 내 땅을 침범한 쥐새끼들이다. 내 친히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살기 넘치는 선언과 함께.
“총공격이다. 맥라인 부자의 목을 내 앞에 대령해!”
“예!”
토모도 성이 다시 한번 요동쳤다.
“전부 몰려오고 있습니다! 사방에 적군입니다!”
비명에 가까운 병사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방에서 밀려오는 적군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작정하고 모든 병력을 쏟아붓는 적들의 공세를 보는 로건의 눈가가 씰룩였다.
‘버텨야 한다. 어떻게든 버텨야 해!’
변수가 생겼지만, 어쨌거나 믿을 것은 전생의 기억뿐이라 차라리 적군이 조금 더 시간을 끌길 바랐던 로건으로서는 안타까울 뿐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냥 죽어 줄 수는 없었다.
“최대한 대기. 가장 가까이 왔을 때 일제히 퍼붓는다.”
“예!”
나직한 대답과 더불어 지시가 사방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하루 전부터는 일부러 연사 석궁을 쏘지 않았다.
마지막 반격을 위한 힘 정도는 남겨 두려고 한 것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지.’
지시를 내린 로건의 눈은 사방으로 흩어져 있는 적 기사들의 기세를 가늠하기 바빴다.
아슬란이나 플란츠, 그리고 상급기사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
하지만 역시나 이 수많은 군세 속에서 작정하고 숨은 놈들을 찾아내기란 버거웠다.
그나마 가장 눈에 띄던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아슬란이 그 갑옷을 버린 걸까? 아니면 정말 이탈?’
하지만 며칠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최상급기사에 관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 끝장을 내 주마! 전군 총공격!
마법으로 증폭된 로저 비프로스의 음성과 함께 적군이 부딪혀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쏴라!”
파바바박!
“으아악!”
마지막 남은 연사 석궁의 탄창은 최소한의 가치를 발휘했다.
마법사들의 방해는 여전했지만 그 방해가 기사단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까닭에, 처음부터 그 뒤의 기마병과 보병들을 노린 최후의 사격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전세가 변하지는 않았지만.
“죽…….”
쩌어억!
막 성벽 위로 솟구친 기사의 머리를 단번에 쪼개 버린 로건의 시선이 빠르게 다음 희생양을 찾았다.
촤아아악!
“으아악!”
“화살 다 쐈으면 창이라도 들어! 적의 검이라도 들어 찔러!”
로건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며 올라오는 적 기사들을 최우선으로 처리했다.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사방을 훑으며 움직이는데.
“문 나이트다! 막아!”
남쪽 성벽.
중급기사들만 있는 곳으로 꼴 보기 싫은 놈이 나타났다.
하지만 로건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맥라인! 목을 따 주마!”
“비프로스의 뜻이다!”
“죽어!”
무려 상급기사만 다섯, 비프로스의 남아 있는 상급기사 대부분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최상급기사 하나보다 더한 전력이었다.
다른 쪽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어차피 플란츠를 맡기로 한 사람이 있었으니.
“최대한 버텨라!”
로건은 이를 악물고 뻔한 소리를 내뱉으며 황금빛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 주마!”
플란츠가 살기 넘치는 검을 매섭게 휘둘렀다.
그의 애검 글라치에스(Glacies)에서 쏟아진 냉기가 채찍 같은 은빛 포스블레이드에 파괴력을 더했다.
3m가 넘는 은빛 채찍이 불규칙하게 휘둘러지자, 그에 휩쓸린 병력들은 영문도 모르고 얼어붙은 채 잘려 나갔다.
그렇게 플란츠가 남쪽 성벽을 초토화시키고 있을 때, 그의 앞으로 붉은빛 검이 날아들었다.
“어딜!”
콰아아앙!
“흥. 어설픈 놈이…….”
몇 번이고 격돌하며 한 수 아래임을 확인한 적, 패드릭 맥라인의 등장에 플란츠는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의 손에 들린 익숙한 검의 모습을 보는 순간 플란츠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 검……!”
“멋진 검이지. 벨로치타스라고 적혀 있더군.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보자.”
패드릭은 아들이 전해 준 아티팩트를 다시 한번 단단히 움켜쥐며 포스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 저랑은 잘 맞지 않더군요.
어찌 아들의 말이 배려임을 모를까.
경지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최상급기사를 이겨 낸 아들과는 달리, 그는 확실히 동급의 플란츠보다 자신이 부족함을 체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아티팩트라면 눈앞의 한 놈 정도는 박살 낼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불리한 정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패드릭은 아티팩트의 힘을 잔뜩 끌어올리며 전력을 다해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로건은 자신이 생각해도 정말 잘 싸우고 있었다.
동급인 상급기사 다섯의 파상 공세를 막아 내는 것도 모자라, 무려 그중 한 명을 격살하기까지 했다.
다만 기습적으로 사용해 효과를 보았던 금속 가르기의 일격이 더 이상 통하지 않았고, 기력 소모가 큰 신검 비전을 쓸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저 귀신 그림자와 풍신의 부츠의 힘을 최대한 발휘하며 남은 네 기사의 공격을 버텨 내는 것이 한계.
로건의 안색이 점점 굳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를 공격하는 상급기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괴물 같은…….”
“어찌 저 나이에!”
“이 자리에서 반드시 죽여야 한다!”
적의 말 따위는 무시한 채, 로건은 숨 쉴 틈도 없이 몰아치는 공격 속에서 오직 마지막 반전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현저하게 밀리고 있는 아군 병력 군세의 대부분이 자신의 주변으로 모이고, 이제 성벽 위로는 적 기사뿐만 아니라 적 병사까지 하나둘 올라서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 하지만 로건의 눈동자는 아직 희망의 빛을 놓지 않고 있었다.
“크악!”
등을 맞대고 항전하던 동료가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로니안은 그 순간 반전하여 의기양양한 적의 얼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커흑!”
그리고 곧바로 다시 자신의 옆을 노리는 검격을 감지하고는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이런 쥐새끼 같은!”
“칭찬 고맙다.”
스각.
답례로 허벅지에 칼질을 한 방 먹여주었더니 적이 더욱 길길이 날뛰었다.
적의 그런 멍청한 짓을 참고삼아, 로니안은 더욱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침착하게 주변에 보이는 적의 빈틈 하나하나에 딱 적당한 힘으로 검을 쑤셔 넣었다.
본인은 같은 자리에서 최소한으로 움직이되 앞, 뒤, 옆, 방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곳에 눈이 달린 것처럼 사방을 들쑤시며 검을 휘둘렀다.
로니안의 모습은 그야말로 난전에서 보일 수 있는 최상의 움직임 그 자체.
‘버티면 이긴다. 형님이 버티면 이긴다고 했어. 무조건 죽을 각오로 버텨 낸다!’
그 자신은 모르는 전생의 미래, 철벽의 요새라는 이명을 얻었던 오러유저의 재능이 자신도 모르게 개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있는 동쪽 성벽뿐만 아니라, 모든 곳의 전황이 맥라인에게 불리하게 흐르고 있었다.
‘좀 더! 좀 더! 좀 더!’
빅토르는 육체의 피로를 잊은 듯,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더욱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가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 바로 앞에서 온 힘을 다해 감당하기 힘든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주군을 돕고 싶었지만,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그 움직임을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다만 주군이 불리하다는 것만은 대충 봐도 느낄 수 있었다.
‘안 돼!’
주군이 죽는 순간, 다시금 미아가 될 동생이 떠올랐다.
자신은 몰라도 동생은 아직 보호가 필요했다.
언제나 끼고돌며 자립심을 깎아내리는 자신처럼 못난 오빠가 아니라, 이 가문과 주군의 보호가.
‘절대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주군.’
그래서 빅토르는 진심으로 갈망했다.
저 싸움에 끼어들 수 있는 힘을, 주군을 도울 수 있는 힘을 얻기를.
‘좀 더, 좀 더 빠르게!’
다행히 그에게는 그 무리한 소망을 이루어 낼 만한 재능이 있었다.
난전을 거듭하고 있는 사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의 몸은 조금씩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결국.
퍼엉!
머릿속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감각과 함께, 빅토르는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놈들의 허점도, 주군을 몰아치던 놈들의 움직임도 조금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빅토르는 그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미처 생각하지 않은 채, 곧바로 주군의 싸움에 끼어들었다.
‘한 놈 정도는 가능해!’
한 놈만 자신이 떼어 낼 수 있어도, 주군은 기회를 잡을 것이다.
적어도 주군을 괴롭히고 있는 저놈들은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새 피어오른 회색빛 포스가 빅토르의 검을 따라 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타아!”
보란 듯이 기합을 지르며 상급기사의 뒤를 치는 움직임.
기습으로서는 아주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시선을 끌기 위함이라면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치열하게 로건과 싸우고 있던 비프로스의 상급기사, 파르욘의 감각이 일순간 뒤로 쏠렸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의 상황을 깨달았다.
‘이런 개 같은.’
보통 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하수 놈이 하필 자신이 공격당하고 있을 때 정확하게 뒤를 노렸다.
놈에게는 평생에 한 번 있을 운이요, 자신에게는 반대로 최악의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촤아아악.
짜릿한 통증과 함께 목을 훑고 지나가는 황금빛 검이 느껴지고, 동시에 그의 몸에서 급격하게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런 재수 없는…….’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겁 없이 끼어든 애송이가 일방적으로 몰리는 광경이었다.
‘좋았어, 빅토르!’
생각지도 못한 도움으로 상급기사 하나를 더 처치했다.
싸움이 한결 쉬워질 것 같았지만, 그 순간부터 집요하게 빅토르를 노리는 적들의 검에 이내 로건의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빅토르! 뒤로 빠져!”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고집을 피우는 녀석.
하지만 어차피 이 이상 전투를 유지할 수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아군은 중앙으로 몰려서 서로 등을 기대고 억지로 방벽을 형성하여 간신히 버티고만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마지막 수를 써야 할 때였다.
이를 악문 로건이 적들을 향해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일순간 생긴 틈을 타서 포스를 담아 외쳤다.
“전군 후퇴하라!”
성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
그나마 정신적인 여유가 남아 있던 맥라인 병력이 로건의 말을 받아 여기저기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후퇴하라! 병사들이 먼저다!”
“기사들이 적들을 막아라!”
뒤늦게 성벽에 올라온 비프로스 군을 황당하게 만드는 목소리들이 연신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기사가 병사를 위해 희생한다고?’
‘무슨 짓거리야?’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비프로스의 기사 중에서는 대놓고 헛웃음을 짓는 이들도 보였다.
하지만 맥라인의 기사들은 정말로 최소한의 방벽만을 형성하여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을 사수하면서, 병사들을 성벽 아래로 내려보내고 있었다.
‘도대체 뭔 헛짓거리지?’
비프로스 기사들의 머릿속에 비슷한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적들의 바보짓은 아군의 이득일 뿐이라, 성벽 밖에서 기다리는 주군이 들으라는 듯 그들은 더욱 기세를 올려 소리쳤다.
“적들이 후퇴한다!”
“뿌리를 뽑아라!”
견고한 방어 태세는 달리 말하면 완벽한 수세일 뿐이었다.
비프로스의 기사들이 대열을 이루며 뭉쳐 있는 맥라인의 기사들을 더욱 거칠게 몰아붙였다.
그리고 그 순간.
‘좋아!’
죽은 병사들을 제외한 병사들의 대부분이 내성으로 뛰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로건이 마지막 신호를 보냈다.
“끝장을 보자!”
그 말과 함께 높이 치켜든 검 위로 거세게 솟구치는 황금빛 거인의 검.
로건이 그 검을 그대로 아래로 내리그었다.
“어림없다!”
“어딜!”
필살의 일격이라고 하기에는 사전 자세가 너무 컸다.
로건을 상대하던 상급기사들은 모조리 그 궤도를 피해 비켜섰다.
덕분에 짧은 순간이지만, 로건에게 가해지던 집중포화에 틈이 생겨났고.
그때를 노린 로건이 거인의 검을 거둠과 동시에 빅토르의 덜미를 잡고 성벽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뭐, 뭐야?”
대지 가르기를 이용한 허세는 그저 신호였을 뿐.
그 직후 성벽을 타고 흐르는 짙은 마나의 유동과 함께.
우르르르르릉.
거짓말처럼 토모도 성의 성벽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