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Side story (3)
외전 3화. 패드릭 맥라인
*전생
“떠나라! 너는 이제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
울부짖는 큰아들을 보는 패드릭의 눈빛은 냉엄하기만 했다.
‘어쩔 수 없다.’
그라고 어찌 마음이 아프지 않겠는가.
이제는 세상을 떠난 전 부인, 그 첫사랑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이거늘.
아비로서도 가슴 한쪽을 도려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들은 이미 지은 죄가 컸고.
‘……미안하다.’
그는 아들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맥라인의 영주였으니까.
하지만.
“경고하건대, 로건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마라. 녀석은 이제부터 맥라인이 아니다!”
냉엄하게 돌아선 그때부터 마음 한쪽이 썩어 들어 가기 시작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 *
전쟁이 일어났다.
아들을 추방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벌어진 일.
가장 선두에 서서 분연히 맞서 싸웠다.
하지만 아들을 내보낸 후 심리적 충격에 수련을 게을리한 탓일까.
분명히 한 수 아래인 적의 상급 기사와 휘하 기사 몇의 협공에 맥없이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선두의 그가 쓰러진 순간 돌파 전술은 의미를 잃었고, 역부족이던 맥라인의 병력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가문이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다는 것 하나.
하지만 그나마도 자력이 아니었으니.
“아버지께서 손을 써 주셨어요. 가문의 명맥은 보존시켜 주시겠답니다. 하지만 손해가 막심하다고 더 이상 도움을 주지 않으시겠대요. 여보. 우리 이제 어떻게 해요? 예? 으흐흐흑.”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그의 곁에서 아내가 울음을 터트렸다.
로건과 대립각을 세울 때에는 그리 독하게만 보였던 부인이거늘.
‘생각해 보면 여린 사람이었지.’
자신을 포함한 주변의 모든 것이 망가진 다음에서야 회한이 들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모래성이었다면, 왜 그리 아들을 엄하게 대했을까.
왜 은연중에 아들 간의 경쟁을 부추겼을까.
왜 그토록 강한 가문, 강한 후계자를 원했을까.
‘고작 남작 주제에…….’
쥐꼬리만 한 영지, 보잘것없는 가문이 무엇이 그리 중요하다고 가족의 화목까지 해치며 자식들을 키우려 했을까.
새삼 스스로가 한심해서 그냥 그대로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로니안, 로니안이 다 자랄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 반드시.’
모든 것이 무너진 상황에서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다.
누가 봐도 천재인 둘째 아들이 장성하여 가문을 물려받을 때까지.
그때까지 이 쓸모없는 목숨을 어떻게든 이어 갈 생각이었다.
다행히도 로니안은 기대 이상으로 잘 커 주었다.
그란디아를 좀 먹는 내전에서도 간신히 중립을 지키며, 아니 양측 모두에게 무시당한 덕에 가문을 지키는 데도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긴 내전이 이어지던 어느 날, 로니안이 기적을 일구어 냈다.
– 대륙 최연소 오러유저!
– 그란디아의 자랑!
장성한 로니안은 테스론을 박살 내고 옛 땅, 아니 그 이상을 회복했다.
그리고 예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금광까지 차지했다.
이제 가문의 부흥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내전이 끝나는가 싶더니, 직후에 제국전쟁이 일어났다.
지평선을 메울 듯이 진군해 오는 엄청난 수의 기사들.
일개 병사가 기사를 죽일 수도 있다는 연사석궁 부대.
도무지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후퇴해야 합니다, 아버지!”
“……나는 여기서 죽겠다. 가문의 마지막은 가주가 지켜야지.”
“아버지!”
“하지만 너는 아니다, 로니안. 수도로 가라. 너만 살아남으면 우리 가문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안 됩니다, 아버지! 같이 가셔야 해요!”
“나는 네게 짐일 뿐이다. 그러니 떠나라, 로니안.”
“나도 남겠어요, 여보. 마지막은 함께해야죠.”
“어머니!?”
예상치 못한 목소리가 끼어들어 결심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부인의 눈동자를 보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못난 내가 아내 복은 넘치는구나. 미안하구려, 부인.’
대놓고 약한 말을 하기에는 쌓아 올린 못난 세월이 너무 길었다.
하지만 아들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럼 저도 남겠습니다! 가문과 함께 옥쇄하겠습니다!”
“그건 안 돼!”
“그럼 두 분 다 저와 함께 가시지요. 아니면 저도 여기서 같이 죽겠습니다!”
“로니안!”
아내까지 거들었지만, 아들놈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못난 놈!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고……!”
“잘 알기에 이러는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게 가족 아닙니까! 예?! 그러니 같이 후퇴하자는 말입니다. 제발!”
절실한 표정 이전에, 그 말이 가슴을 푹 찔렀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가족이라…….’
어린 아들도 아는 진리를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
“흐, 흐흐. 흐.”
큰아들을 추방할 때도 흘리지 않은 눈물이 이제 와 흐를 것 같아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잘못된 것을 깨달았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그래. 가족이 가장 중요하지.”
최대한 담담히 말했는데, 목소리가 떨리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또 이 상황에 체면이나 생각하는 자신이 우스웠다.
“그러니 넌 가거라. 로건이 돌아왔을 때 맞이해 줄 가족은 있어야지.”
“……예?”
멍해지는 아들의 얼굴.
“혀, 형님을……요?”
자랑스러운 아들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며, 그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나 하마.”
“……예?”
“형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모두가 엄하게 키운다며 너희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내 탓이니까. 그리해 줄 수 있겠느냐?”
대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도 뜻은 알 수 있었다.
‘원래 사이가 좋았던 녀석들이었으니.’
그리고 그 순간,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라! 어서 가라니까!”
아들이 무어라 소리를 친 거 같지만, 그 이상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히 망가질 대로 망가진 몸의 생명을 불태우고 나니 제국의 기사 십수 명은 길동무로 삼을 수 있었다.
“끄으윽.”
“지독한 늙은이. 이제 그만 죽어라.”
비참하게 쓰러지던 순간.
심장에 단검을 꽂고 자결하는 부인의 모습이 그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평생을 바쳐 일궈 낸 가문이 무너지고 생명조차 끊어지는 순간.
눈앞에 떠오르는 것은 가문에 대한 애착보다 모질게 쫓아낸 큰아들의 얼굴뿐이었다.
‘미안하구나. 로건…….’
혹시나 아들이 돌아온다면 그 얼굴이라도 담을 수 있을까.
그는 눈을 부릅뜬 채로 최후를 맞이했다.
*현생
“으음…….”
흐릿해진 눈을 뜨니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간밤에 악몽을 꾼 것 같았으나,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굉장히 중요한 꿈 같았는데…….
“이거야 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걸까.’
창밖에서 지저귀는 새소리와 따스한 햇살이 새로운 하루가 왔음을 알려 주었지만, 이미 긴 세월에 익숙해진 노구는 새로운 하루를 다시 시작할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갈 때가 됐어.’
한평생을 여한 없이 살았다.
평생을 바랐던 가문의 부흥은 이미 기대치를 한껏 초과했으니.
맥라인 제국.
고대에도 거의 없었던, 전 인류를 통치하는 최대의 제국이 이젠 그의 가문이었다.
그리고 어려서는 말썽만 피우던 큰아들이 그 황제가 되어, 이제는 현인신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세상에 군림하고 있었다.
그 제국이 성립된 지 벌써 20년 차.
자신은 황제의 아버지로서 더할 나위 없는 영광과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며 말년을 맞이했다.
‘더 바라면 욕심이지.’
과도하게 잘 커 준 아들들 덕택에 분에 넘치는 호강을 했다.
얼마 전 먼저 떠나보낸 부인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이대로 먼 길을 떠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버지.”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익숙하고도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로건이냐?”
반가운 마음에도 목소리는 한 박자 늦게 나왔다.
눈도 흐릿한 것이, 그토록 보고 싶던 아들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았다.
‘안타깝구나.’
새삼 정말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과 아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다는 생각이 교차하며 복잡한 상념을 만드는 순간.
다시금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 접니다, 아버지.”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 그 따스함이 고마웠다.
“……바쁠 텐데 어쩐 일로 왔느냐?”
오랜만에 느껴지는 아들의 체온을 느끼며 느릿느릿 말을 이어 가는데, 아들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여한은 없으세요?”
“……으음.”
무슨 말일까 싶었지만, 생각해 보니 아들은 신인이라.
번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지금 아들이 찾아온 것이 내가 죽을 날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더 살 수 있는 게냐?”
“원하신다면 수명을 좀 더 늘려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말에 직전까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던 생각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되었다. 더 살아 무엇 하겠느냐.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네 덕분에.”
“정말이십니까?”
그 반문에 패드릭은 씩 하고 웃음을 보였다.
비록 힘이 없는 탓에 희미한 미소로 보일 것은 알았지만.
“메리안도, 그리고 네 어미인 레이나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만나서 할 이야기가 많다. 특히 네 어미한테.”
나오는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의외였을까.
잠시간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이내.
“……어머니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아들 잘 컸다고.”
애써 담담한 척하는 물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모른 척하며, 패드릭은 더욱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오냐. 자랑할 것만 한가득이야. 그 사람도 좋아하겠지. 흘흘.”
기왕이면 호탕하게 웃으며 삶을 마치고 싶었는데, 힘이 빠진 늙은이 웃음소리만 나와서 속이 상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속 썩여서 정말 죄송했습니다.”
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이렇게 슬프게 하는 걸까.
‘관둬라, 이놈아. 실없게 옛날 일은……!’
그렇게 말하려는 순간.
“어…….”
다시 간밤에 꾼 꿈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기억 사이로, 또 전에 들은바 있던 아들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전생이라 했던가.
‘그럼 그 꿈이…….’
당혹스러운 마음과 혼란스러운 마음이 섞여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탓인지 흐릿했던 눈도 조금 밝아졌다.
그러자 이십 년 전과 똑같은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신인답지 않게 울먹이는 모습도.
“……아서라. 황제 체면에 눈물이라니. 누가 볼까 겁난다, 이 녀석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돌아온 힘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또렷한 시야와 말투가 이 순간에는 진심으로 기뻤다.
패드릭은 최대한 활짝 웃으며 아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야말로 미안하구나. 그때는 나도 너무 어리석었어.”
“아닙니다. 다 제가 잘못한 것인데요. 평생을 사죄드려도…….”
“아니, 아니야. 전생의 나도 죽는 날까지 후회했다. 그래서는 안 됐었다고, 애초에 너를 그렇게 절망하게 두면 안 됐었다고, 아비로서 실격이라고.”
“……아버지?”
눈을 크게 뜨는 아들의 눈물을 닦아 주며, 패드릭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미소를 지었다.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고는 하나, 더없이 잘 커 준 아들의 마지막 남은 마음의 짐마저 덜어 주고 싶었다.
“평생을 바쳤던 가문이 무너지는 것보다 너를 보지 못하고 죽는 것이 더 힘들었었다. 그러니 이 생은 너무나도 행복하구나. 나도 미안하다, 로건. 미안했다, 이 애비가 정말…….”
끝까지 웃으려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괜찮았다.
그것이 회한을 털어 내는 기쁨의 눈물이라는 것을 아들도 알 테니까.
‘이것으로 됐다.’
전생의 못난 애비가, 마지막에는 제대로 사과를 한 것이다.
“……고맙다, 로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거짓말처럼 온몸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자랑스러운 아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겪을 긴 잠을 위한 자장가로 들렸다.
이번에는 정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다행이었다.
* * *
[맥라인 제국 인물전>• 패드릭 맥라인
현인신 로건 맥라인 황제의 아버지.
제국 성립 후 대공의 직위를 받았지만, 고향인 맥라인 영지의 장원에서 말년을 향유하며 조용히 지냈다.
두 아들 중 하나는 신인이요, 하나는 오러마스터로 역사에 남을 자식들을 두었으나 그에 관한 자세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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