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Side story (4)
외전 4화. 메리안 카이로스
*전생
“떠나라! 너는 이제부터 내 자식이 아니다.”
“아버지! 정말 제가 한 짓이 아닙니다. 리이나 저년이……!”
“시끄럽다! 언제까지 변명이나 할 셈이냐!!”
대전의 소란을 지켜보는 메리안의 눈동자는 차가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능력은 없는 주제에 질투심만 강해서 동생을 모략하고 약까지 쓴 쓰레기.
결국 제 약혼자에게까지 해선 안 될 짓을 저지른 대공자, 로건 맥라인의 마지막을 보고 있으니 속이 다 후련했다.
“드디어 우리 가문의 우환이 떨어져 나가는구나.”
자연스레 미소가 나오는데.
왜인지 곁에 있는 아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로니안?”
“……아, 예. 어머니.”
딴생각을 하고 있었음이 분명한 어설픈 대답에 자연스레 눈살이 찌푸려졌다.
“설마 아직도 대공자를 걱정하는 거니?”
“……아니, 아니에요.”
대답은 그렇게 하는데, 표정은 영 미덥지 않았다.
자연스레 옛 생각이 떠올랐다.
– 이 녀석들! 말썽 좀 피우지 말라고 했지!
– 어머니, 죄송해요.
– 씨! 형아 잘못 아닌데, 내가 놀자고 했어요!
– 으으으. 이 말썽꾸러기들.
어쩌면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착각했던 아주 옛날의 일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정신 차려라, 로니안. 대공자는 자기 죗값을 받은 것뿐이야.”
“……예.”
“그래. 이제 네가 맥라인의 후계자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아들의 얼굴이 더 흐려지는 것이 보였지만, 메리안은 굳이 말을 보태지 않았다.
아직은 어린 탓에, 여린 마음 탓에 그런 것일 테니.
넘치는 재능을 가진 아들의 유일한 단점.
이럴 때일수록 어미인 자신이 아들을 마음을 다잡아 줘야 했다.
“항상 노력하고 몸가짐을 바로 하거라. 쫓겨난 대공자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가문의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해. 할 수 있지, 로니안?”
“……예, 어머니.”
어두운 표정이 마음에 걸렸지만, 여기서 보듬어 줄 수는 없었다.
이제는 어린아이가 아니라 후계자가 되어야 할 아들이니까.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가문의 우환거리를 없앴는데 왜인지 그 이후부터 쇠약해져 가는 남편과 시종일관 우울해하는 아들을 몇 달째 보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네 아버지도 기력이 없으신데 너까지 왜 그러니? 대체 왜!?”
“……죄송합니다, 어머니.”
아들의 잘못이 아니건만, 답답한 마음에 탓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평온한 나날 속의 마음고생마저도 그리워지는 사건이 생겨났다.
바로 영지전.
– 내 외손자가 후계자인 가문인데 도와야지. 걱정 말거라.
아버지의 호언장담에 안심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쿨럭!
“미, 미안하오. 부인.”
“……그런 말씀 마세요.”
큰 부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만 건진 남편이 그대로 자리보전을 하고, 작은 영지가 절반만 남았다.
뒤늦게 참전한 친가의 병력이 아니었다면 그나마도 보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거기다.
– ……상급기사가 그것밖에 되지 않다니, 실망이구나. 더 이상의 지원은 기대 말거라.
더 이상 손해 보기 싫다는 듯 지원을 끊어 버리겠단 아버지의 말에 그녀는 바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여보, 이제 우리 어떻게 해요? 예? 으흐흐흑.”
맥라인의 재정만으로는 남은 반쪽의 영지만도 건사하기 어려웠다.
몰락은 시간문제로만 보였다. 아니, 이미 맥라인은 몰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죽으란 법은 없던 것일까.
“……어머니. 제가 있습니다.”
가문의 우환이 겹친 뒤에야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아들이 날 서린 눈빛으로 검을 들었다.
저러다 몸이 상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본 나날들이 쌓여 가는데, 아들의 재능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을 훨씬 초월하는 듯했다.
15살의 나이에 포스를 각성,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무려 오러까지 각성하는 기염을 토해 냈다.
“대륙 최연소 오러유저, 로니안 맥라인!”
“맥라인의, 아니 그란디아의 자랑!!!”
암울하기만 했던 가문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하만 테스론 자작의 목입니다, 어머니.”
“그, 그래. 장하다! 장하다, 내 아들!”
살벌한 눈빛의 아들이 가문을 주저앉힌 적의 목을 들고 왔다.
끔찍했지만, 또 자랑스럽기도 했다.
그때부터 가문은 다시 성세를 찾기 시작했다.
아들이 조치를 취한 것인지 그때부터 남편도 조금씩 몸이 좋아지더니, 다시금 활동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좋아지고 있었지만, 남편도 아들도 여전히 많은 웃음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제 너의 시대가 오지 않았더냐. 무슨 걱정이 있는 것이냐?”
“……아닙니다, 어머니.”
“있다면 이 어미한테 말해 보거라. 걱정이 되어서 그래.”
“괜찮습니다, 어머니. 저도 어리광 부릴 나이는 지났으니까요.”
아들의 희미한 웃음, 아니 웃음이라고 할 수도 없는 그 씁쓸한 표정을 보니 말문이 막혔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답답한 마음에 가슴만 치고 있을 때.
더 큰 재앙이 일어났다.
그란디아 내전.
나라에 망조가 들기 시작했지만, 중립을 택하며 신중을 기하는 것으로 가문은 그 재앙을 넘어섰다.
하지만 두 번째 재앙만큼은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제국이 전쟁을 일으켜 국경이 무너지고, 금세 맥라인에도 적군이 들이닥쳤다.
성세를 구가하던 가문의 병력도 압도적인 제국의 군세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피하셔야 합니다!!”
“여보, 가요. 빨리!”
남편을 잡아끌었다.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이제야 좀 화목하게,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전 꾸었던 꿈을 이룰 기반이 갖춰져 가고 있었는데.
‘아…….’
그 순간, 문득 스쳐 지나가는 기억에 그녀의 걸음이 멈추었다.
“어머니?”
한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찍 부인과 사별한 변방의 남작에게 시집을 왔을 때.
남편이 될 사람보다 그녀를 반겨 주던 아이가 있었다.
– 이분이 제 어머니가 되시는 거예요? 와아!
– 어머니! 이쁘세요! 히히!
장난기 어린 표정의 활기찬 아이.
굳은 표정으로 가문의 부흥에 집착하는 남편보다, 그 아이가 그녀를 웃게 만들어 주었었다.
가문에 애착을 갖게 만들어 주었었다.
그리고 아들이 태어났을 때.
– 우리 아가는 나보다 형이 더 좋은가 보네.
– 헤헤. 어머니, 동생은 제가 평생 지켜 줄게요. 신께 맹세해요!
– 그래, 로건. 동생을 잘 부탁해.
그녀가 그렸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에는 그 아이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 그제야 뒤늦게 떠올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정말 그 모든 것이 온전히, 삐뚤어진 로건의 탓이었을까?
자신은 과연 그 아이와 로니안을 차별하지 않았을까?
긴 시간 쌓여 온 답답함의 원인을 찾아낸 것 같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았다.
“……나는 여기서 죽겠다. 가문의 마지막은 가주가 지켜야지. 하지만 너는 아니다, 로니안! 가라!”
“아버지!”
“여보!?”
“로건이 돌아왔을 때 맞이해 줄 가족은 있어야지. 가라! 어서 가라니까!”
남편의 그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가슴을 찔렀다.
그에 표정이 확 바뀌는 아들의 모습에 깨달음이 있었다.
‘다들 그 아이를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래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이제야 알 것 같았지만 돌이킬 방법이 없었다.
“……나도 남겠어요, 여보. 마지막은 함께해야죠.”
“어머니!?”
“당신!?”
당황해하는 아들과 남편을 향해 억지로 미소를 보여 주며 남편의 팔을 잡았다.
“당신 여기 있으면…….”
“혼자 가서 뭐 하겠어요. 함께해요.”
“……그럽시다. 미안하오, 부인.”
“아니에요. 저야말로…….”
말이 똑바로 나오지가 않았다.
가족의 행복을 망친 이유가 온전히 로건에게만 잊지 않음을 이제야 알았지만,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다.
무어라 할 말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다행히 자신은 설명하지 못하는 그 마음을 남편이 대신 말해 주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있다.”
“예?”
“형을 너무 미워하지 말거라. 모두가 엄하게 키운다며 너희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내 탓이니까. 그리해 줄 수 있겠느냐?”
“아버지!”
아니, 내 탓이기도 해요.
그 말은 끝내 입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 초토하시켜!”
“제국에 저항하는 자는 참살이다!”
“본보기를 보여라!”
제국의 병력이 그녀의 모든 것이었던 가문을 부수고.
“지독한 늙은이!”
남편마저 쓰러지는 것을 보며.
메리안은 스스로의 심장에 칼을 꽂았다.
칼에 찔린 심장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요, 여보.’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모진 새엄마, 엄격한 엄마가 아니라 따뜻한 엄마가 되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녀는 진심으로 바랐다.
*현생
“자식에게 존대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앞으로는 예전처럼 다시!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어머니!”
가슴속에 맺힌 한이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누가 먼저인지 모를 꼬여 버린 실타래를 한참 어린 ‘아들’이 먼저 풀어 주었다.
‘어미가 되어서 부끄럽게. 내가 속이 좁았어.’
자연히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너무 변해 버린 큰아들에 대한 서운함이 공격성으로 나타났고, 그것이 이상한 집착으로 번졌다는 것을 그제야 자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진짜 원했던 것은…….’
진짜 가족.
화목한 가정뿐이었으니까.
메리안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떠오르고, 그로부터 수많은 날이 지나갔다.
아들‘들’은 여전히 바빴고, 간혹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며 그녀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 걱정이 무색하게 언제나 승승장구했다.
“천상에 계신 아홉신께 비나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신들에게 아들들의 무사 귀환을 비는 것뿐이었다.
“남편 걱정은 안 하는 거요, 부인? 섭섭한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농담이오, 농담. 하하하.”
전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가족은 더 화목해졌다.
“돌아왔습니다, 어머니.”
“저 왔어요, 어머니!”
전쟁이 끝나면 항상 먼저 달려와 무사 귀환을 알려 주는 아들들.
물론 얼굴을 자주 보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말년은 평안했다.
도중에 큰아들을 노리는 적이 아홉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기도하는 대상이 창조신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 * *
“저는 참 운이 좋네요.”
문득 눈을 뜬 아침, 메리안은 주름이 가득한 자신의 손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간밤에 긴 꿈을 꾸었다.
‘그건…… 뭐였을까.’
기억나지 않지만, 괴로웠었다는 것만은 똑똑히 기억났다.
우습게도 삶의 끝에 다다른 것을 깨달은 아침에 더욱 행복감이 느껴질 정도로.
남작가의 안주인에서, 이제는 신황제의 어머니로.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신분이었음에도 지나가는 세월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끝이 다가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편을 잘 만나서?”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으면서도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남편이 억지로 웃음을 보이며 그렇게 말을 걸었다.
슬퍼하지 말아 달라고 그리 말했거늘 이리 티를 내다니.
“여전히 당신은 농담이 서툴러요.”
“……미안하오.”
“또 그런다.”
재미없는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생각해 보면 자신 역시 농담을 못 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 이제는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도 남편이지만 다른 보고 싶은 이들도 있었다.
“아이들은요?”
“밖에 있어요, 불러오겠소.”
남편이 그리 말하며 주춤주춤 일어서려는데, 그 순간 방문이 열렸다.
“어머니!”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할머니!”
“할마마!”
“아서, 그런 말 할머니가 싫어하신다고 했지?”
“이잉. 아라쪄요, 할무니!”
두 아들과 며느리들, 그리고 손주들.
보는 순간 절로 환한 웃음이 나왔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조금 더 빠르게 끝이 다가왔다.
안타까웠다.
‘맞이해야 하는데. 웃어 줘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아 기쁘고도 슬픈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원하신다면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큰아들’이 무거운 눈으로 전하는 목소리에 순간 혹했지만, 사람의 운명에 간섭하는 것에 대해 아들이 짊어져야 할 패널티를 알고 있는데 어찌 욕심을 부릴까.
‘전생에 그렇게 후회를 해 놓…… 아……!’
그 순간 ‘모든 것’이 생각났다.
큰아들이 말해 주었던 전생의 이야기.
반신반의했던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이게……!?’
잠시간 기력이 조금 돌아왔다.
하고 싶은 말은 한가득이었지만.
“괜찮다. 행복했어. 고맙구나.”
나오는 말은 그 세 마디가 고작이었다.
그리고 흔들리는 큰아들의 눈빛을 피해 그 옆으로 팔을 벌렸다.
“어머니.”
“로니안.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알지?”
“……예”키는 산만큼 커서는 어릴 때처럼 여리기만 한 둘째 아들을 꼭 안아 주고는 옆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곧 성년이 될 붉은 머리 푸른 눈의 손녀, 아루엘.
아직은 어리기만 한 붉은 머리 붉은 눈의 손자, 아서.
슬픈 눈의 손녀와 초롱초롱하기만 한 손자의 모습이 대비되며 그녀에게 웃음을 안겨 주었다.
“내 새끼들. 할미가 좀 안아 보자.”
“할머니!”
“할무니! 히히.”
울먹이는 아루엘도, 이것이 마지막인 줄 모르고 웃고 있는 아서도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다행이야. 참 다행이다…….’
그 따뜻한 행복 속에서, 메리안은 웃으며 자신의 끝을 맞이했다.
* * *
[맥라인 제국 인물전>• 메리안 카이로스
맥라인 대공 부인. 아들 둘을 신인과 오러마스터로 키워 낸 이 시대의 진정한 어머니.
신황제가 어릴 적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으나, 후에 행보를 보면 모두가 헛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패드릭 맥라인 역시 세상을 떠났다. 이후 함께 신황제의 친모, 레이나 루미너스의 묘에 합장되었다.
‘영원의 황녀’ 아루엘 맥라인의 유년 시절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당사자가 직접 기록을 남겼으나, 그 밖에 그녀의 말년에 대해 전해지는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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