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Side story (7)
외전 7화. 하마르 마이스터
*전생
“크하하하. 내가 말이야. 그때 오크 열 놈을 베고…….”
“지X! 너 꽁지 빠져라 도망가던 거 내가 다 봤다. 이놈아!”
“웃기시네! 내가 이미 꽁지 빠진 니 엉덩이를 보며 뛰고 있었거든!?”
“푸하하하. X신들…….”
시끌벅적한 펍.
그 구석에서 홀로 고개를 숙인 채 거품이 빠진 맥주를 바라보며 연신 한숨을 내쉬는 ‘붉은 머리’ 젊은이.
‘서른도 안 된 거 같은데.’
하마르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지 멀쩡한 인간이, 그것도 어린놈이 왜 저리 죽을상을 하고 있단 말인가.
‘용병 같은데…….’
이곳 실반 영지의 주인, 악덕 영주에게 한쪽 손목이 잘린 노예인 자신도 이렇게 맥주 한잔으로 시름을 달래고 있건만.
자유로운 용병이, 젊은 놈이 왜 저럴까.
술도 한 잔 들어갔겠다, 괜스레 꼰대질을 하고 싶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리 청승인가. 보기 안 좋게.”
용병들이 주로 이용하는 펍.
합석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붉은 머리 젊은 놈은 대답 없이 그를 흘깃 보고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썩어 버린 듯한 붉은 눈동자가 다시 한번 신경이 쓰였다.
“후회인가 아니면 미련인가? 에잉, 젊은 놈 눈이 그래서야. 이 바닥에서 그 나이까지 버틴 게 용하네.”
피식.
“상관 마시오, 노인장.”
그 퉁명스러운 말만으로도 하마르는 저 젊은이가 마음에 들었다.
드워프라고 대뜸 하대하지 않는 것만 해도 어디인가.
하지만 붉은 머리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꿀꺽꿀꺽.
놈은 김이 다 빠진 맥주를 단숨에 들이켠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아온 시간이 시간인 만큼, 저 죽은 눈을 한 어린놈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 마디를 더 해 줬다.
“망설여질 때는 일단 저지르고 보는 게 나아. 경험상 그게 후회를 덜 하더라고.”
그 말에 자신을 돌아본 녀석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일단 저지르고 본 일 때문에 후회하는 중이요.”
분노한 듯한 붉은 눈, 그 눈을 다시 보고 있자니 얼핏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영지 근처에 붉은 눈 붉은 머리의 귀족 집안이 있다던가.
방계일까?
“고향에 가는 길인가?”
“상관 말라고 하는 말…….”
“보통 성공하지 못하고 귀향하는 놈들이 그런 표정을 짓더라고.”
“…….”
“가족들이 반겨 주지 않을까 걱정되나?”
붉은 눈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정곡을 찌른 듯했다.
역시.
“그렇다면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확언해 줄 수 있네.”
“…….”
“칼 밥 먹는 놈은 사지 멀쩡히 살아만 돌아와도 반겨 주는 게 가족이야. 오히려 소식이 없는 게, 너무 늦게 돌아가는 게 잘못하는 거지.”
“……죄짓고 부모에게 쫓겨난 몸이오.”
“오, 그럼 더 빨리 가야지.”
“당신이 뭘 안다고…….”
“자식을 쫓아낸 부모는 얼마나 속이 썩었을까. 더 늦기 전에 얼른 돌아가.”
순간적으로 녀석이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하마르는 크게 흔들리는 녀석의 눈동자를 보며 확언하듯 말했다.
“부모라는 게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부모이기 이전에 사람이거든. 너무 늦으면 못 볼 수도 있어. 더구나 인간은 수명도 짧으면서 말이야.”
“……알고 있소.”
“알고 있으면 뭘 망설…….”
“그러려고 가는 길이오.”
나직이 나오는 한숨이 하마르의 말을 막았다.
“크, 크흠.”
“아무튼 말씀 고맙소이다, 노인장. 술값이나 하시오.”
탁.
금화 하나를 탁자에 놓고 돌아서는 놈.
하지만 자신의 충고 때문에 녀석의 발걸음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다면 착각일까.
하마르는 금화를 기분 좋게 주워 들었다.
말이 금화지 인간들의 화폐 제도 개혁으로 금 함량은 겉껍질뿐인 동전이지만, 적어도 맥주 몇 잔 값은 할 테니까.
적어도 죠셉이 자신을 찾으러 올 때까지 술은 실컷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행운을 비네. 젊은이.”
하지만 그 직후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제국이 이 나라를 침략했다는 소식이 나라와 영지를 뒤흔들었고, 하마르는 금세 그 붉은 머리 청년과의 일을 잊고 말았다.
* * *
‘지금이 기회다.’
끼릭. 끽.
하마르는 잘린 손목에 단 쇠갈고리를 분리한 후, 구석에 숨겨 놓은 가방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이내 그의 몸에 맞춰진 작은 석궁을 보고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 뭐!? 기껏 비싼 돈 주고 사 왔더니 인간 장인 수준? 썅, 저 드워프 새끼 손목 잘라! 아, 아니다. 그래도 오른손은 남기고 왼손만 잘라. 들인 돈이 있는데 잡일이라도 시켜야지. 하씨, 똥 밟았네.
노예 시장에서 만났던 인간 영주, 소토 실반 자작.
과거에는 테스론, 후에는 그란디아의 마검이라 불리는 로니안 맥라인에게 굴복하여 비굴한 인생을 산 귀족이지만, 놈이 자신의 영지에서 저지른 만행은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놈이 대피하는 행렬에 ‘재산 목록’으로 자신도 끼어 있다는 것이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이제 놈과 얽히며 생긴 악연을 정리할 때였다.
‘오늘로 끝낸다.’
끼릭.
그는 자신의 팔에 끼워진 무기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제국군의 신무기, 연사 석궁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자신만의 연사 석궁.
왼팔이 잘린 자신에게 부착할 수 있게 만들어진, 가방의 수많은 ‘탄창’을 자동 장전하여 쏘아 낼 수 있게 만든 무기였다.
‘물론 진짜 강한 기사한테는 안 통하겠지만.’
비교적 강한 기사들은 국가에 징발되었고, 병사들은 이미 야반도주한 지 오래.
이제 소토 실반의 곁에 남아있는 것은, 오랜 세뇌 탓에 반항할 생각도 못 하는 종들과 그와 재산을 나누어 가지기로 약속한 하급 기사 몇뿐이었다.
종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말릴 리는 없으니, 무기나 갑옷에 마나를 씌울 줄 모르는 하급 기사 몇 정도는 이 특제 연사 석궁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끼릭.
달칵.
“하마르님, 그거 뭡니까? 설마…….”
한 마차에 타고 있던 인간.
자신의 기술을 배우며 똑같이 영주의 재산 취급을 받던 장인, 죠셉이 놀라 크게 눈을 떴지만.
“쉿. 자네도 저 악덕 영주 밑에서 평생 노예로 살고 싶은 건 아니잖나.”
그 한마디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바라 마지않던 기회가 왔다.
덜컹.
끼기긱.
“레도! 무슨 일이냐!”
“마차의 바퀴가 빠졌습니다. 비가 와서 길이……!”
“빌어먹을! 기사님들한테 부탁해!”
피난을 가겠다면서도 바리바리 짐을 싸 들고 가는 어리석음이 만들어 낸 결과.
‘하늘이 나를 돕는군.’
하마르는 그것을 비웃으며 기사들이 나서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
드르륵.
파바바바박.
일순간 왼팔에서 쏘아진 작은 볼트가 마차를 들어 올리는 한 기사를 향해 날아갔다.
“끄아아악!”
일순간 반항하지 못한 기사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뭐, 뭐야!”
“습격이다!”
이내 영주의 마차를 호위하던 나머지 기사들 셋이 쓰러진 기사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의 눈이 뒤의 짐마차, 즉 자신을 향하는 순간.
하마르는 그동안 쌓아 왔던 억울함과 한을 모조리 쏟아 내듯 고함을 질렀다.
“뒈져라!”
뒤이어 쏟아지는 연사 석궁의 세례.
파바바바박.
타다다당!
“뭐, 뭐야!”
기사 둘은 본능적인 반응으로 볼트를 튕겨 냈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아악!”
“에릭!”
“드워프다!”
“미친……!”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두 기사가 순식간에 짐마차를 향해 접근했다.
포스유저답게 그 속도는 일반인이 하마르가 전혀 반응하지 못할 정도.
하지만 하마르는 그것을 예상하고 미리 다음 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바로 다가오는 그들이 아닌 정면의 귀족이 탄 마차를 향해 쏘아지는 볼트들.
기사들은 본능적으로 공격을 막기 위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끄으윽!”
“라만!”
정면에서 몸을 던져 볼트의 세례를 막아 낸 또 하나의 기사가 쓰러졌다.
하나 남은 기사가 분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그 역시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허벅지에 제대로 꽂힌 볼트 하나.
‘운이 좋았다.’
그것이 극도로 긴장한 하마르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제야.
“무슨 일이냐!?”
마차 문을 열어젖히며 신경질적으로 소리치는 소토 실반이 보였다.
하마르는 그를 놓치지 않았다.
“놈!”
파바바박.
“끄아아악!”
“네놈!”
왼손을 잘라 낸 원수가 비참하게 쓰러지는 순간, 허벅지를 다친 기사가 쩔뚝이면서도 빠르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파바바박.
타다다당.
“끄윽.”
다시금 쏘아진 볼트의 세례에 간신히 급소만을 보호하며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이내 검을 쥔 손에서마저 힘이 빠지고 나자.
“끄으윽.”
그의 가슴에도 볼트가 틀어박혔다.
그리고 그 순간, 마차 안에서 뛰어나오는 귀부인들이 보였다.
“아빠!”
“여보!”
원수의 가족들이 보였지만, 하마르는 굳이 그들에게까지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서려는데.
“저 천한 드워프 놈이 감히!”
“뭐 하느냐! 저놈을 잡아 꿇려!”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멍청이들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파바바박.
“꺄악!”
“어, 엄마!”
일순간 그들의 발치와 치마 사이로 날아든 볼트들이 그들의 입을 닥치게 만들었다.
‘멍청한 인간들.’
하마르는 굳이 직접적인 원한이 없는 여자들까지 죽이고 싶지 않았기에 정말 그대로 돌아섰다.
잔혹한 인간들의 본성은 지난 세월 지겹게도 지켜봐 왔다. 아무런 무기도 없는 저 귀족 여자들의 남은 삶은 어쩌면 여기서 죽는 것보다 못할 테니 굳이 더 손을 쓸 필요는 없었다.
“하마르 님! 정말 그냥 가실 겁니까!?”
죠셉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지만, 하마르는 멀쩡한 손을 흔들어 주고는 바로 돌아섰다.
죠셉 저놈은 그나마 착해 보였지만, 이미 쓰러진 여자나 재물이 실린 마차를 향해 슬금슬금 움직이는 시종들이 보였다.
‘이제 인간이라면 정말 넌덜머리가 난다.’
전시라고는 하지만 드워프인 그가 이 인간의 땅에서 갈 곳은 없었다.
아니, 인간들이 흔적이 있는 곳에는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하나뿐.
‘남부 산맥…….’
선조들이 떠났다는 먼 길을 뒤쫓아 위험을 감수하는 길뿐이었다.
높은 확률로, 아니 아마도 확실하게 죽게 되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살아서 선조들이 이주한 땅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그나마 이곳이 남부 산맥과 가까워서 다행이군.”
하마르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남쪽으로 천천히 발길을 옮겼다.
– 이것이 자살과 무에 다를까.
가슴속에서 들리는 진실의 소리를 애써 외면한 채로.
*현생
껌뻑, 껌뻑.
“개꿈을…….”
하도 황당한 꿈을 꾸었더니 실소가 나왔다.
‘내가 팔을 잃고, 심지어 죽을 때는 남부 산맥 괴물에게 잡아먹혀?’
어흐흐.
몸을 한차례 떤 뒤 정신을 차리려 눈을 비비는데, 흐릿해진 시야는 좀처럼 깨끗해지지가 않았다.
‘확실히 갈 때가 됐군.’
이제 나이가 250살쯤 되었을까.
옛 선조들에 비하면 장수했다 말하기 어렵지만, 현시대 드워프들에 비하면 참 오래도 살았다 싶다.
그것도 말년은 참 편안하게 말이다.
“끄응차.”
특별히 할 일은 없었지만, 늘 하던 것처럼 공방을 둘러볼 생각으로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살찐 몸뚱이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연신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작작 좀 먹지. 이게 공이지 사람 몸인가?”
갑자기 재수 없는, 하지만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일으켜지는 몸은 덤.
뿌연 눈을 몇 번 깜빡이니 흐릿하게나마 붉은 머리와 익숙한 얼굴 윤곽이 보였다.
“주인?”
“아직도 그리 부르는가. 약속한 20년은 이미 두 배도 더 지났는데.”
“흐흐. 웬일이오? 여기 타렌까지.”
“왜긴, 자네 보러 왔지.”
“호, 제국의 반석을 다진다는 작업이 이제 다 끝나가는가 보오.”
“그렇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는 음성에 하마르는 문득 집히는 것이 있었다.
이상한 꿈, 유독 흐릿한 시야, 말을 듣지 않는 몸뚱이.
그리고 갑자기 찾아온 주인.
긴 세월을 살아온 이의 직감으로 바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이 내 마지막인가 보구려. 흘흘.”
그리 뱉어 내자 더욱 실감이 났지만, 이상하게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맥주 좀 적당히 마시고 운동도 좀 하라니까.”
옆에서 위로 대신 타박을 하는 이 싸가지 없는 주인 덕분일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 말을 다 털어놓으려면 며칠의 시간도 부족할 듯했다.
결국.
“……덕분에 꽤 괜찮게 살다 가오.”
그 모든 마음을 담아 나온 말은 이 한 문장뿐이었다.
그러자.
“……나도 고마웠네. 현생도, 전생도. 다.”
생각지도 못하게 물기 어린 음성이 들려왔다.
“전생은 무슨.”
그 말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애써 툴툴거리는데.
“자네가 펍에서 그리 말해 주지 않았다면 나는 끝내 망설이다가 내 동생의 최후도 못 볼 뻔했어. 그랬다면 악에 받쳐 사는 게 아니라 그냥 무너졌을지도 몰라.”
일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잠시 후에야 조금 전 꾼 꿈이 생각이 났다.
“아! 그럼 그 청년이……?”
정신이 갑자기 명료해지고, 흐릿하던 눈도 초점이 잡혔다.
깨끗해진 시야에, 수십 년 전과 똑같은, 그리고 또 전생에 펍에서 본 청년과 비슷한 얼굴을 한 젊은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그래. 나도 최근에나 기억이 났어.”
“허…… 허허허. 허허.”
헛웃음만 나왔다.
주인의 회귀 이야기야 오래전에 들었지만, 그 전의 생에서도 자신과 연관이 있었을 줄은 꿈에서도 짐작하지 못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유쾌했다.
“푸하하하. 우린 정말 오래된 인연인가 봅니다.”
“그래. 그랬지.”
웃는 주인의 얼굴을 보는 순간, 하마르는 명료해진 정신과 시야가 다시 조금씩 흐려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쉬웠지만, 또 아쉽지 않았다.
“나도 고마웠소, 주인. 덕분에 말년에 편하게 뒹굴뒹굴하다 가오.”
“술 좀 적게 먹고 운동도 좀 했으면 더 오래 살았을 것 아닌가. 그럼 내 얼굴도 자주 봤을 테고.”
“에이, 사내끼리 얼굴 자주 봐서 뭐 하게? 이 정도면 징글징글하게 봤잖소.”
“크흐흐흐.”
얼마 남지 않은 시간, 그들은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가 잘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고, 서운했던 일을 풀어놓으면서도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다 웃음이 그쳤을 때.
하마르는 이야기 중간중간 조금씩 신체의 일부분이 투명해지는 듯한 주인의 모습을 보며 살짝 염려 어린 표정을 지었다.
생의 끝이 가져다준 초능력일까.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고마웠소이다, 주인. 그리고 힘내시오. 아직 이 세상은 주인을 필요로 하니까.”
“……그렇지 않게 만들어 가고 있네. 그리고 이제 거의 끝났지.”
“그럼 주인은?”
그에 주인은 싱긋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웃음은 슬퍼 보이기도 하고, 속이 시원해 보이기도 해서 그 기분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떠나는 것을 보고 가시려는 것이오?”
끄덕.
“힘들지 않소이까?”
“괜찮네.”
“……먼저 가서 기다리겠소이다, 주인.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하마르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그대로 눈을 감았지만, 그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어려 있었다.
마치 대답을 들은 것처럼.
그리고.
– 대장인 하마르 공이 돌아가셨다.
땡땡땡땡.
언제나 기계 돌아가는 소리로 시끄럽던 마도 공방의 도시, 타렌이 오늘 하루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
공방에 소속된 모든 드워프와 인간들은 도시의 가운데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묵념했다.
이 마도 공방의 탄생과 함께한 대장 하마르의 죽음을 기리는 그들만의 추도 의식이었다.
* * *
[맥라인 제국 인물전>• 하마르 마이스터
대륙에 남은 소수 종족 드워프 출신 장인으로, 신황제가 남작가의 후계자 시절부터 그를 도왔다.
그가 남긴 수많은 무기와 기기들은 맥라인 제국의 발전을 가속화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신황제로부터 ‘마이스터’라는 칭호 겸 성을 하사받았다.
그의 유산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마도 도시 타렌은 지금도 드워프 혼혈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그가 만든 대표적 발명품에는 현대 순수 과학의 시초가 되는 태엽 시계, 열기구, 최초의 증기기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