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Of The Fallen Family RAW novel - Side story (8)
외전 8화. 빅토르 아이반
*전생
“안 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동생의 시신을 본 순간 할 수 있는 건 소리를 지르는 일뿐이었다.
“리아!!!”
그리고 떠오르는 것은 결국 지난밤에 동생을 끌고 간 주인, 아니 돼지 새끼의 얼굴.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반드시!!’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그뿐이었다.
“찢어 죽인다, 돼지 새끼.”
까드득.
주변의 노예들이 주춤주춤 물러설 정도로 소름 끼치는 살기를 내뿜던 빅토르는 이내 주방장이 들고 있는 식칼을 보며 서서히 그를 향해 다가갔다.
“……왜, 왜?”
고작 어린아이, 그것도 또래보다도 작은 아이가 다가오는데 이상하게 소름이 돋았다.
마치 맹수가 노려보는 듯한 느낌.
‘무, 무슨 꼬마가…….’
이게 그 순한 녀석이라고?
동생만 끔찍이 아끼고 말 잘 듣던?
그 괴리감에 몸이 더욱 굳어졌고, 결국 주방장 돈은 녀석이 자신의 식칼을 뺏어 갈 때까지 꼼짝도 못 했다.
그리고 녀석이 사라진 후에야 똑같이 얼어붙었던 다른 노예들이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돈!”
“괘, 괜찮아. 그, 그 꼬마 놈이 뭔 사고를 치겠어. 치더라도 기사님들이 잡겠지.”
“기사님들은 다 장주님과 함께 전쟁에 나갔다고!”
지들도 안 쫓아가면서 왜 나한테…….
“경비병들이 있잖아!”
돈은 버럭 고함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 꼬마를 안 쫓아가도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 * *
동이 터 오는 새벽, 관저를 걷고 있는 노예 꼬마가 한 손에 피가 뚝뚝 흐르는 식칼을 들고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저 꼬마 뭐야? 저거 칼 아냐?”
“그 짝눈 노예잖아. 근데 피……?”
“어이, 꼬마. 멈춰라!”
관저의 대공자 침실 앞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꼬마를 향해 창을 겨눴다.
하지만.
“……꺼져.”
“뭐?”
창을 겨눈 병사가 산발한 푸른 머리 아래, 붉고 파란 눈동자에 서린 귀기를 보며 흠칫 놀랐다.
“꺼지라고!”
버럭 고함을 지른 꼬마가 번개처럼 달려들며 식칼을 휘둘렀다.
“뭐……!”
“잡아!”
일반 경비병들이 당황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스각.
“끄르륵.”
푸욱.
“끄헉!”
쩍.
“아아악!”
몇 번의 소음과 비명만을 남기고는 피바다 속에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진작 이랬어야 했어.’
빅토르는 숨통이 끊어진 경비병들을 보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굳건하게 잠겨 있는 문을 그대로 걷어찼다.
쾅!
문이 단번에 부서지며 열렸다.
분노 때문일까. 전신에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힘이 평상시의 몇 배는 되는 힘을 발휘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으헉!? 뭐, 뭐야!?”
술 냄새가 가득한 방 안 넓은 침대 위에서 깜짝 놀라 깬 사람, 아니 돼지를 보자 빅토르의 살기는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이내 그의 시선이 침대 한 부분과 밑에 가득한 핏자국에 고정되었다.
그것이 누구의 피일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너, 넌 뭐야!?”
잠이 덜 깬 탓일까.
돼지 새끼가 자신을 못 알아봤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생각나게 해 줄게.”
탓.
무거운 분노와 정반대로 가벼운 몸이 빠르게 놈의 앞으로 접근했다.
푸우욱.
“아아아악!”
돼지의 두툼한 뒷다리에 먼저 칼집을 냈다.
“끄아악! 너, 넌 뭐야! 아파! 아프다고!”
“……이래도 몰라?”
그럼.
‘기억나게 해 줘야지.’
푸우우욱.
푹. 푹.
“끄아아아악! 경비! 미, 미친놈이……!”
“시끄러워.”
푸우욱.
“끄아아악!”
결국 뒷다리 두 개를 전부 작살낸 후에야 겁에 질린 놈의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담았다.
“너, 넌, 그년의…….”
겁먹어 떨리는 음성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우스웠다.
왜 고작 이런 놈의 핍박을 억지로 참고 있었을까.
사실 답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동생을 끌고 가려던 ‘기사’들에게는 도저히 반항할 수가 없었으니까.
– 오, 오빠. 난 괜찮아. 갔다 올게. 별일 없을 거야.
두들겨 맞고 쓰러진 자신을 향해 동생이 남긴 마지막 말.
그때 지금 같은 힘이 있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나는 왜 동생이 죽고 나서야…….
“빌어먹을.”
“노, 노예 따위가 감히!!”
버럭 소리를 지르는 놈의 목소리가 비참한 상념을 깨트렸다.
다시 놈에게 시선이 향하는데.
“히, 히익! 사, 살려 줘. 내, 내가 한 게 아니야. 그 그년이…….”
눈이 마주치자마자 헛소리를 뱉어 내는 놈.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비 ‘아슬란 라이어’는 대단한 기사라던데, 이놈은 그 아비에게서 원숭이 같은 얼굴과 지독한 욕심만 닮았다는 말을 듣긴 했다.
‘고작 이따위 놈한테…….’
동생을 잃었다.
그토록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했다.
그러니 이제는…….
“고스란히 돌려줄게.”
“히, 히익. 사, 살려 줘! 난 아냐! 아니라고!”
“지랄하지 말고 죽어.”
“살려……!”
푸우우욱.
“끄아아악!”
어디서 들었던 것 같았다.
배를 갈라 내장을 끊어 내는 고통이 그렇게 지독하다고.
“끄, 끄륵.”
바로 숨이 끊어지지 않기에 지독한 고통 속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된다고.
그러니.
“그렇게 죽어라.”
더 고통스럽게 죽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털썩.
“끄륵. 끄르륵.”
거품을 물며 경련을 일으키는 놈의 모습이 그나마 작은 위안을 주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가슴의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다.
‘리아…… 내 동생.’
슬프게 웃는 동생의 환영이 보이는 것 같았지만, 이미 떠난 동생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끓어오르는 분노는 어디에 풀어야 할까.
“끄으으…….”
갈피를 잡지 못한 빅토르의 눈동자가 원수의 신음 소리를 뒤로한 채 멍하니 허공을 헤매었다.
그러다.
– 관저다!
– 침입자다!
멀리 관저 바깥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금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돼지는 귀족, 그래서 병사들이 찾는 것이다.’
왜인지 보이지 않는 기사들도 어쩌면 곧 올지 모른다.
‘귀족…….’
그래.
이런 무능한 돼지가 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패악을 부렸다.
그렇다면.
“귀족을 죽인다…….”
갈피를 찾지 못하고 끓어오르기만 하던 분노가 목표를 찾았다.
다만, 아직은 힘이 부족했다.
“곧 돌아오마.”
빅토르는 죽어 가는 원수에게 그 한마디를 남기고는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뛰어내렸다.
– 저기다!
가볍게 착지한 동시에, 뒤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의 반대편으로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붉고 푸른 눈동자엔 다시금 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죽인다. 귀족들 모두. 그래서 동생의 원수를 갚는다.’
하지만 그 힘을 갖추기 위한 시간은 너무나도 오래 걸렸다.
일단 자신을 쫓는 추격부터 꽤 집요했다.
동원된 기사만 거의 열, 병사들은 그 열 배수도 넘는 것 같았다.
그 과정에서 추격자들을 학살하며, 자신이 분노해 깨친 힘이 흔히 말하는 ‘포스’라는 것도 깨달았다.
다만 기사를 상대하기는 아직 벅차다는 것 또한.
다행히 추격자 중 혼자 남은 기사를 어떻게든 기습해서 죽이고 벗어나는 데는 성공했다.
장비까지 빼앗게 된 것은 덤.
하지만 그러자죽은 돼지 새끼의 아비인 아슬란 라이어의 주군, ‘비프로스’ 가문에서 현상금을 걸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덕분에 현상금 사냥꾼들까지 따라붙었다는 것도.
‘빌어먹을.’
추격자와 놈들을 뿌리치기 위해 대륙의 마역이라는 마수림까지 기어 들어가야 했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짐승들과 부딪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그 말도 안 되는 곳에서도 삶을 개척할 재능이 있었다.
정확히는 살육의 재능이.
처음에는 마수림 외곽의 작은 마수들을 사냥해 먹었다. 세상에 다시 나간 후에나 알았지만, 그것은 독극물을 마시는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가 발현한 회색빛 포스는 이상하리만치 마기와 잘 어우러졌다.
마기 때문에 배탈을 앓기는 했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응했다. 빗물을 받아 마시고, 여의치 않으면 마수의 핏물로 목을 축였다.
그러면서 점점 살육에 능숙해져 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만은 잊지 않았다.
‘복수를…… 복수를 해야 한다.’
비참하게 죽어 간 동생의 마지막을 끝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대화를 나눌 사람조차 없는 마수들의 땅에서, 그는 그렇게 한 가지 생각만 하며 칼을 휘둘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수많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 빠르게 상승하던 실력이 답보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조해졌다.
‘안 돼. 이걸로는 안 돼.’
가장 먼저 원수를 갚아야 할 귀족은 그 돼지 새끼의 아비였다.
그는 이름난 기사라고 들었다.
그래서 그는 정체를 타파하기 위해 평소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던 금역에 들어섰다.
마수림 동부, 그 영역을 지배하는 왕의 영지에.
그리고.
“크르르르르릉.”
3개의 머리, 12개의 눈을 가진 거대한 늑대 마수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다.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는 몸.
멍해지는 정신.
죽음이 바로 앞에 다가왔다 생각했을 때.
– 오빠! 복수를!
머릿속을 울리는 동생의 목소리, 그 환청이 그의 본능을 깨웠다.
그리고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
마수의 뿔로 만든 조잡한 검 위에서 상서로운 검은빛이 솟아올랐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이제까지와 질적으로 다른 강력한 힘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물론.
“크와아왕!”
그렇다고 마수의 왕과 대적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간신히 도망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
다만 그것으로 그는 다시 인간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마수왕만 아니라면, 어떤 인간도 이길 수 있다.’
그때는 호칭조차 몰랐지만, ‘오러’라는 권능이 그에게 가져다준 자신감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대다수의 경우 사실로 증명되었다.
세상으로 나간 빅토르는 옛 기억을 더듬어 그 귀족 가문을 찾았다.
그리고.
“잘 만났다! 내 아들의 원수!!”
원숭이를 닮은 얼굴에 긴 팔을 휘두르는 강력한 기사.
그놈의 애비를 산 채로 사지를 찢어 죽였다.
직후 그란디아의 변경백이라는 그놈의 주군이 꽤 큰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홀몸인 그는 도망치면 그만.
이후 추격이 잠잠해지면 튀어나와 ‘빌어먹을 귀족들’을 도살하기 시작했다.
주목표는 당연히 돼지 새끼의 가문과 그 주군이 비프로스의 귀족들이었다.
비프로스가 이를 갈며 자신에게 추살령을 내리고, 세인들이 자신을 ‘귀족 학살자’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쯤.
그란디아는 강력한 제국의 침입을 받아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빅토르에게 기회가 되었다.
복수가 더욱 쉬워졌으니까.
그리고.
“끄, 끄륵.”
기어이 로저 비프로스의 심장에 검을 박아 넣을 수 있었다.
다만.
“왜 이런 일을 하시는 거죠? 왜 이 나라에 혼란을 부추기는 겁니까! 신이 두렵지도 않으세요!?”
그 와중에 놈을 치료하던 여사제와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신이 정말 인간을 위한다면 세상이 이따위일 리가 없지.”
그 한마디에 흔들리는 여사제를 보니, 더는 칼질을 하고 싶지도 않아 돌아섰다.
그때쯤 제국에서 접근해 왔다.
“귀하에게 자작의 위와 장군직을 내리겠다는 폐하의 뜻이오. 공에 따라 더 승작될 수도…….”
뒷말은 더 듣지 않았다.
혐오스러운 귀족이 되라니?
“크하하하하. X 까!”
“……정말 미친 자였군.”
그럼에도 제국은 굳이 그를 적대하지 않았다.
이후로도 눈에 띄는 귀족이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고 다 죽였지만, 주 활동 지역이 그란디아였기에 주로 그란디아의 귀족들이 죽어 나갔으니까.
그러나 전쟁이 끝난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 땅에 제국의 귀족들이 들어왔고, 그는 제국의 귀족들도 죽였다.
결국 제국의 추살령이 떨어졌고, 그는 수많은 기사와 병사들의 포위망 속에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쿨럭.
“X 같은 인생…….”
하지만 그 최후의 순간이 되어서야.
온몸을 가득 채운 거대한 힘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오빠 이제 간다, 리아.”
그는 비로소 홀가분하게 웃을 수 있었다.
*현생
빅토르는 평소 같지 않게 눈을 부릅뜨며 잠에서 깨어났다.
아직은 빛도 들지 않는 어두운 새벽.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공기 때문에 깬 것은 아니었다.
그는 죽을 날이 가까워진 늙은이이기는 하나, 더위나 추위는 애초에 벗어난 지고한 수준의 기사였으니까.
그럼에도 자연스레 한숨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
지고한 경지에 다다른 영혼 덕분에 간밤의 꿈이 단순히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허, 허허. 참 내 인생도…… 그랬구나.”
수많은 상념이 스쳐 지나가는데, 가장 먼저 이 놀라운 경험을 공유하고 싶은 반려 일리아는 더 이상 옆에 없었다.
영혼에 상처를 입었던 성녀는 이미 수십 년 전에 자신의 곁을 떠난 것이다.
‘아니, 내가 너무 오래 산 걸까.’
험난하기만 했던 지난 인생, 그때 스친 짧은 인연 중에는 현생의 반려도 있었다.
‘그때 그 사람이 당신이었구려.’
일리아가 세상을 떠날 때 보여 준 웃음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새삼 허전해진 마음에 침대의 옆자리를 씁쓸하게 더듬는데.
“너는 정말 늦는구나, 빅토르. 먼저 간 로니안 녀석이 비웃겠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이미 하얗게 늙어 버린 자신과는 달리 여전히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군주의 모습이 보였다.
“주군.”
황급히 일어나 예를 취하려 했지만, 그럴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 확실히 인지하게 되었다.
순간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데.
“둔한 녀석 같으니.”
씁쓸한 주군의 음성이 그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다.
새삼스레 군주의 모습이 몇 달 전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보다 조금 더 투명해졌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왜 이걸 먼저 못 봤을까.’
그리고 그제야 주군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빅토르는 억지로 웃었다.
“허허. 로니안이야 핏줄인 데다가 항상 폐하 근처에 있지 않습니까. 영향을 받았겠지요. 그런 걸로 비교하시면 섭섭합니다. 허허.”
“……어땠느냐? 후회가 남는 일은 없느냐?”
많은 것이 생략된 물음이었지만,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후회가 남을 일이 있겠습니까. 애초에 리아를 잃고 폭주하던 비참한 인생이었습니다. 덕분에 더욱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가. 다행이구나.”
“다만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습니다.”
“음?”
“그게…….”
빅토르는 자신과 원한이 얽혔던 가문이 ‘그’ 비프로스임을, 그리고 자신을 각성하게 만들어 준 것이 ‘신수 티르’임을 최대한 재미있게 꾸며 말했다.
물론 그런다고 그에게 없던 말재주가 생긴 것은 아니었고, 말을 하다 보니 점점 기력이 없어져 다시 자연스레 침대에 눕게 되었다.
끝에 가서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도 알 수 없게 되었으나, 다행히도 흐릿해지는 시야의 마지막에는 주군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그랬었구나. 너 또한 그런 인연이 있었어.”
조금은 밝아진 음성.
빅토르는 마지막 가는 순간에나마 주군에게 도움이 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였다.
‘나마저 떠나면 주군 곁에는…….’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수도 없이 떠올랐지만, 울컥하는 마음에 나오는 말은 결국 하나였다.
“감사했습니다, 주군.”
“……나도 고마웠다, 빅토르.”
다시 만날 수 있겠지요.
그 뒷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지만, 영원히 잠든 노인의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남아 있었다.
* * *
• 빅토르 아이반
맥라인 제국 초기의 오러마스터 중 한 명이자 대마도사 빅토리아 윈스터의 친오빠.
*대마도사 ‘빅토리아 윈스터’ 편에 별도 기술.
맥라인 제국 성립 시 그 공을 인정받아 아이반의 성과 후작위를 받았고, 신들이 떠난 시대의 초기에 성녀와 결혼을 하는 논란을 일으키면서 스스로 영지를 반납했다. 그럼에도 신황제의 신뢰와 본인의 실력으로 제국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나, 오직 황제만을 받들고 그 권력을 활용하지 않아 자식들이 많이 반발했고, 실제로 행동에 옮긴 이들도 있었다.
*제국 초기 사건 사고 편에 별도 기술.
그의 특성 ‘무한한 생명력’은 아직도 여러모로 회자되는 강력한 특성으로, 전투 시의 강점을 떠나 그가 인간의 몸으로 무려 201세에 이를 때까지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 놀라운 평가를 받는다. 그것은 이날까지 인간으로서는 최고령 기록으로 남아 있다.(신황제 로건 맥라인 제외.)
아이반 후작가는 결국 그의 사후 그의 고손자 타르 아이반이 2대 후작이 되는데, 그가 바로 초마검사 바론 아레스의 첫 번째 장인이 된다.
*제국의 반역자 ‘바론 아레스’ 편에 별도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