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106
106화. 왕세자 방한 (3)
사우디가 돈이 많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사우디를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와하비즘의 이념으로 세워진 나라다 보니 이슬람 율법이 법보다 우선하고, 소수의 왕족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부정부패는 일상이다. 여성 인권은 웬만한 후진국보다도 못하고, 교육 수준 역시 뒤처져 있다.
애초에 21세기에 전제군주제라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국가가 굴러갈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석유 덕분. 다른 나라들이 오일쇼크로 신음하는 동안 사우디는 전세계의 부를 긁어모았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언제나 계속될 수는 없다.
자원의존형 경제의 취약점은, 자원이 고갈되거나 가격이 하락하면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것이다.
사우디는 그동안 내부의 불만을 오일머니로 틀어막았다. 그러나 저유가로 국민들에게 뿌릴 수 있는 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빵이 없다면 무엇으로 국민들을 달래줄 수 있을까?
“지금은 급격한 변화의 시기입니다. 더 이상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사우디에는 강력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변화의 시기에는 가만히 있어도 뒤처지기 마련이다. 실제로 사우디의 국가 경쟁력은 나날이 추락 중이었다.
전제군주제라는 현재의 정치체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변화는 필수적이다.
라시드 왕자의 눈에 당혹스러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마 좀 황당할 것이다. 갑자기 나타난 한국인이 사우디 국가 경제에 대해 지적을 늘어놓고 있으니.
잠시 후, 라시드 왕자가 입을 열었다.
“문제를 지적하고 불만을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죠.”
맞는 말이다. 아무런 대책 없이 말만 떠들어대는 인간을 어디 한두 명 만나봤겠는가?
그러나 난 그들과 다르다.
“해결책이 있습니다.”
“한번 말해 보시죠.”
유수의 경제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할 텐데, 내가 뭐라고 해결책을 생각했겠는가?
하지만 난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다.
“자원의존형의 경제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이를 위해 광산업, 관광산업,제조업 등에 투자해 GDP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을 60퍼센트 이상으로 늘려야 합니다.”
그는 조소를 지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면 그동안 왜 안 했겠습니까?”
그 말대로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내가 말하기 전에 이미 했겠지.
“여성 인력을 활용하면 됩니다.”
라시드 왕자가 흥미를 보였다.
“여성을 경제에 참여시키라는 겁니까?”
“예. 이를 위해 여성의 운전을 허가하고, 여성의 스포츠 관람을 허용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고,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재미있다는 듯 웃는 라시드 왕자와는 달리 아셰르는 깜짝 놀랐다.
“말도 안 됩니다, 왕자님! 여자가 운전을 하고, 경기장에 입장한다니요! 게다가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한다니! 그런 과격하고 급진적인 개혁조치를 취했다가는 엄청난 반발이 일어날 겁니다.”
“…….”
대체 뭐가 과격하고, 뭐가 급진적이라는 걸까?
한국인이 들으면 어이가 없겠지만 사실 저게 사우디인의 정상적인 반응이다.
방금 내가 한 말을 바꿔 말하면, 현재 사우디는 여성이 운전대를 잡는 것이 불법이고,여성의 경기장 입장이 불가능하고, 여성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으며, 직장에서 남녀가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싶지만 진짜 그렇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가문과 와하브파 종교집단의 거래에 의해 탄생한 국가.
와하브파는 사우드 가문의 통치를 지지했고, 대신 사우드 가문은 와하비즘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성직자들의 지위를 보장해주었다.
이들은 법과 제도보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우선시한다. 그리고 샤리아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나 다름없다.
여성 인권을 신장한다는 것은 이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인 만큼, 와하브파 성직자들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반대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미래형 신도시와 원전을 건설하고, 국부펀드를 조성해 대외투자를 늘려야 합니다.”
난 고개를 들어 라시드 왕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일을 지금의 왕세자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할리드 왕세자는 현재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있지, 개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실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왕자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우디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언젠가 위기가 온다는 걸 알아도, 코앞에 닥치지 않는 한 사람은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과연 누가 그걸 할 수 있을까?
할리드 왕세자는 이미 60세가 넘었다. 그에게는 개혁을 할 만한 의지도 능력도 없다.그렇다면 라시드 왕자는 어떨까?
일반적으로 왕정국가에서 찬탈은 죄악으로 취급된다. 국가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습은 핏줄만 가지고 할 수 있는 반면, 찬탈은 능력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가 지금의 왕세자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이미 국방부와 에너지부를 뜻대로 움직이고 있는 라시드 왕자가 왕세자의 권력마저 손에 넣으면, 사실상 정부의 주요 권력을 다 장악하게 되는 셈이다.
국왕은 어차피 고령인 만큼 사실상 그가 모든 국정을 대행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럴듯한 얘기를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것은 그가 더 잘 알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한 얘기들은 어차피 그가 왕세자가 된 후 실제로 실행할 일들이니까.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고,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모른다.
잠시 후, 라시드 왕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대외투자를 한다면 어디에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향후 10년 안에 뜰 만한 산업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당장 수십 개는 댈 수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 하나 뽑자면…….
“IT산업에 집중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요? 지금이 닷컴버블 때와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던데.”
현재의 인터넷 환경을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상전벽해 수준이다.
때문에 이미 충분히 발전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지금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 단계입니다.”
“투자할 만한 기업은 너무 많이 오르지 않았습니까?”
“잘 찾아보면 크게 성장할 분야와 기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IT산업이라고 하니 광범위하군요. 그중에서 어디가 가장 유망하다고 봅니까?”
“데이터와 콘텐츠입니다. 따라서 클라우드와 게임 쪽에 집중 투자할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래서 스노우 크래시를 인수한 겁니까?”
“예. 앞으로 데이터는 더욱 중요해질 테고, 그게 세상을 바꿔놓을 겁니다.”
발전이란 반드시 단계적으로 진행되진 않는다.
특이점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 시기가 오면 산업은 또다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 성장세에 올라탄 기업과 국가는 살아남겠지만, 그렇지 못한 곳들은 몰락한다.
그리고 난 어디가 살아남을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자원부국의 대외투자에는 중요한 원칙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바로 보유 자원과 연관성이 적은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산유국인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등 역시 마찬가지다.
라시드 왕자는 IT산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는 그의 향후 행보에서도 드러난다. 소프트박스 송 가즈키 회장이 만든 인사이트펀드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게 대표적이다.
라시드 왕자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그건 DA증권에서 일하며 배운 겁니까?”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뒷조사까지 끝마친 모양이다.
딱히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만나기 전 상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나 역시 그에 대한 각종 자료를 찾아보았고.
“아니요. 그냥 제가 평소 생각하던 겁니다.”
그는 이어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내수를 활성화하고 대외투자를 늘린다라…… 듣기에는 좋은 계획입니다. 그런데 재원은 어떻게 마련합니까?”
한때 사우디는 재정이 넘쳐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옛말.
사우디의 재정은 철저하게 유가와 연동된다. 다시 말해 기름값이 오르면 흑자가 나고,떨어지면 적자가 나는 구조다.
그런데 유가는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인해 작년에만 300억 달러가 넘는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고유가 시절 재정을 비축했으면 별문제가 없겠지만, 그 돈은 진작 펑펑 썼고, 국채를 발행해 모자라는 재원을 조달하는 중이다.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국가의 존립마저 위험해질 것이다. 라시드 왕자라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겠지.
“어느 나라든 경제개발을 위한 좋은 계획이 있습니다. 다만 그걸 실행할 돈이 없을 뿐이죠.재원 마련 방안 없이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가 중요한 테스트 지점이다.
그는 재원 확보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여기서 제대로 대답을 못 하면 쫓겨나게 될 것이다.
다행히 난 재원 마련 방안을 들고 왔다.
“먼저 아람코를 상장해 지분 일부를 시장에 매각해야 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의 시총은 세계 1위.
시장의 예상치는 최소 1조 5천억 달러. 이를 상장해 지분을 매각하면 상당한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참고로 아람코 상장 얘기는 오래전부터 흘러나왔다. 실제 상장하는 것은 그가 왕세자가 된 후의 일이지만.
라시드 왕자는 팔걸이에 기대 턱을 괸 채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아람코는 국영기업인 만큼 지분을 다 팔 수 없습니다. 10퍼센트를 매각한다고 해봐야1500억 달러 정도 확보할 수 있겠네요. 방금 얘기한 계획들을 다 실행하려면 그걸로는 부족할 텐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단기간에 수천억 달러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습니다.”
라시드 왕자는 흥미롭다는 웃음을 지었다.
“뭡니까?”
난 당당하게 말했다.
“부패한 정치인, 관료, 그들과 결탁한 사업가와 자산가들을 전부 체포해 그동안 부정축재한 돈을 국고로 환수하는 겁니다.”
“…….”
웃고 있던 라시드 왕자는 놀라 눈을 크게 떴고, 뒤에 서있던 아셰르는 입을 쩍 벌렸다.그의 눈은 ‘이놈이 미쳤나?’라고 말하는 듯했다.
여기가 한국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사우디였다면 말을 꺼내는 순간 목이 잘려도 할 말 없었을 테니.
라시드 왕자는 두 눈을 부릅뜨며 팔걸이를 주먹을 내리쳤다.
“뭐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부패와 정경유착 없는 깨끗한 나라 만들자는 좋은 얘기에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걸까?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바로 그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전부 왕의 일가친척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