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120
120화. 사라 에이버리 (2)
사라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합병을 위해서는 양측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해요. 실패시에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텐데요. 그런데도 정말로 합병을 진행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난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정확히는 합병을 위한 준비 작업이 이미 진행 중입니다.”
“준비 작업이요? 무슨…… 아!”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떴다.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을 할 거라는 뜻인가요? 그래서 최근 한정물산 주식이 떨어지고, HJ로직스는 오른 거군요.”
“맞아요.”
이해가 빨라서 좋다.
한정물산의 올해 영업실적은 바닥인 데다가 그동안의 손실을 회계에 한 번에 반영하며 지난 분기에만 3천억이 넘는 적자를 기록했다.
향후 실적에 대한 우려까지 겹치며 올초 10만 원이 넘던 주가는 4만 원까지 미끄러졌다.
반면 HJ로직스는 계열사들 일감 몰아주기와 대규모 투자 덕분에 분기마다 최대실적을 내며 주가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했다.
사라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듯 말했다.
“주가를 기준으로 회사가치를 평가해 합병을 진행하면 총수 일가 입장에서는 한정물산 주가가 최대한 낮고, HJ로직스 주가가 최대한 높은 편이 유리하겠죠. 이 경우 HJ로직스 주주들은 이득을 보지만 한정물산 주주들은 손해를 보게 되구요.”
“경영진 측은 벌써 주요 주주들 설득 작업에 들어갔을 거예요.”
사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HJ로직스 주주들이야 헐값에 인수하는 셈이니 찬성하겠지만, 한정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게 될 합병안에 동의할 리 없을 텐데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걸요.”
“어째서…… 아!”
말을 하려던 그녀는 뭔가를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
주가를 기준으로 합병을 진행한다면 한정물산 주주에게는 불리하고 HJ로직스 주주에게는 유리하다.
그러니 총수 일가를 제외한 모든 한정물산 주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해야겠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부분 한정물산과 HJ로직스를 같이 보유하고 있겠군요.”
“정답이에요.”
큰돈을 굴리는 기관들은 인덱스를 추종한다. 때문에 특정 종목 몰빵이 아닌 여러 종목들을 나눠서 보유하고 있다.
만약 한정물산을 100억, HJ로직스를 100억 원씩 갖고 있다고 치면 이 둘이 1대1로 합병하든 3대1로 합병하든 1대3으로 합병하든 어차피 금액은 똑같다. 합병 이후 주가가 오르기만 한다면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가능성은 충분하네요. 하지만 어떻게 그걸 확신할 수 있는 거죠?”
난 당당하게 말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이죠. 한정그룹 계열사 자료를 전부 조사 분석해본 결과,이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뻥이고, 회귀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거다.
사라는 감명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놀랍네요. 분석만으로 그걸 알아내다니. 프리머스 펀드 부실을 알아낸 게 우연은 아니었군요.”
“예, 뭐 그런 거죠.”
이런 걸로 칭찬을 받으니 양심이 좀 찔린다.
“HJ로직스가 아닌 한정물산 주식을 사들인다는 것은 합병이 부결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난 고개를 저었다.
“사실 부결되느냐 아니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럼 뭐가 중요한가요?”
“최대한 판이 커지는 게 중요하죠.”
원칙적으로 주식은 회사의 가치를 반영한다. 그래서 PER, PBR, ROE 같은 지표를 비교하며 투자하는 거고.
그러나 회사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단지 수급적인 요인만으로 가격이 뛰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팔 사람은 적은데 살 사람은 많으면 가격은 오르기 마련이지. 그리고 가격이 오르면 사려는 사람은 더욱 많아진다.
“그 과정에서 최대한 비싸게 팔고 빠져나오겠다는 거군요.”
“예.”
그녀는 신중하게 말했다.
“현재 한정물산의 시총은 3조 6천억 원. 그럼 3억 달러로 최대한 매수를 해도 9퍼센트 안팎이지 않나요? 매수 과정에서 주가가 오른다면 그보다 더 적어질 테구요. 이 정도로는 합병을 막기는 힘들 텐데요.”
맞는 말이다.
나 혼자서 10퍼센트도 안 되는 지분을 가지고 난리를 쳐봐야 들은 척도 하지 않겠지.
난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그 정도 지분이면 전체 판세를 뒤흔들기에 충분해요.”
* * *
난 사무실로 향했다.
동호 선배는 사표를 쓰기 전 그동안 쌓아놓은 연차를 소진하기 위해 일단 휴가를 내고 이쪽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김범석 역시 양복을 입고 출근했다.
사실 출근했어도 셋 다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주식매수야 어차피 본사에서 진행 중이니.
그래도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 하기에, 난 화이트보드에 글자를 쓰며 현재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동호 선배가 손을 들었다.
“잠깐만. 한정물산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예. 왜요?”
“왜긴 왜야? 내가 그거 입사 때부터 계속 물타기해서 아는데, 절대 안 올라.”
그 말에 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아, 맞다. 선배 한정물산 샀었죠?”
동호 선배는 이마를 짚었다.
“응. 4천만 원 넘게 샀는데 지금 거의 마이너스 50퍼센트야. 이젠 물타기 할 돈도 없어.지금이라도 팔고 다른 주식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 중이야.”
고뇌하는 모습을 보니 안쓰럽다.
“가진 현금은 얼마나 있어요?”
“3천 정도.”
“그걸로 더 사세요. 아예 대출받아서 사세요.”
“아니 왜?”
“조만간 합병안이 발표될 거예요.”
동호 선배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뭔 합병? 어디랑 어디가?”
“한정물산과 HJ로직스요.”
“뭐? 한정물산과 HJ로직스가 합병한다고? 그거 확실한 정보야?”
“예.”
“아니, 증권사에 일하는 나는 전혀 들은 게 없는데. 그거 누가 말해줬어?”
“출처는 밝힐 수 없지만 100퍼센트 확실한 정보예요.”
공개된 정보는 정보로서 가치가 떨어진다.
한정물산과 HJ로직스의 합병은 철저하게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현재로서는 그룹 내에서도 경영진 극소수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동호 선배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자, 잠깐만. 그러니까 총수 일가에게 유리하게 합병을 진행하기 위해 그동안 일부러 한정물산 주가를 떨어트렸다는 거야?”
“정답.”
동호 선배는 분노했다.
“이런 젠장! 난 그런 것도 모르고 월급 쏟아부어서 샀는데! 그렇게 합병되면 한정물산 소액주주들은 완전히 물 먹는 거 아니야?”
“그것도 정답.”
이 합병안은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한정물산 주주들이 손해 보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김범석이 손을 슬쩍 들어올렸다.
“이해가 안 되는 게 하나 있는데요.”
“뭔가요?”
“총수 일가에게 유리하게 합병할 계획이라면, 합병안이 발표되기 직전까지 한정물산은 떨어지고 HJ로직스는 오를 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럼 HJ로직스를 사는 게 맞지 않나요?”
난 그에게 되물었다.
“두 기업이 합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쪽 모두 주총을 열어 전체 주식의 3분의 1 이상, 주총 참석 주식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겠죠.”
“그런데 합병비율이 HJ로직스에게 유리하고 한정물산에 불리하다면요?”
이번에는 동호 선배가 대답했다.
“HJ로직스 주주들은 찬성하겠지만 한정물산 주주들은 반대하겠지.”
“맞아요. 게다가 HJ로직스는 주철진 부회장이 이미 25퍼센트를 들고 있어서 합병안 통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문제는 한정물산이죠. 총수 일가 지분이 적고 소액주주들이 반대할 테니 찬성표를 확보해야 해요.”
“총수 일가가 주식을 사들일 거라는 뜻이야?”
“그건 반대하는 쪽도 마찬가지겠죠.”
김범석이 말했다.
“표 대결이 벌어지면 주가가 오를 거라는 뜻이군요.”
“맞아요.”
경영권 분쟁이 격해지면 주가가 몇 배씩 뛰는 건 일도 아니다.
동호 선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러다가 합병하면 완전 망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합병 못 하게 막아야죠.”
“어떻게? 주총장 가서 드러눕기라도 하게?”
이게 농담이나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주총장에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드러눕는 사람이 꽤 된다.
돈이 걸려있는데 뭔들 못하겠나?
난 피식 웃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저 아니어도 드러누울 사람 많으니까.”
* * *
원래 유성전자를 다니던 진세연은 퇴사하고 아나운서로 전향했다.
SBC에 한 번에 합격한 그녀는 아나운서로서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가는 중이었다.
그녀는 방송국에서 사촌동생이자 가수인 지유를 만났다.
“언니!”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그럼요.”
두 사람은 방송국 건물 안의 카페에서 반갑게 얘기를 나눴다.
“이번 신곡 잘 듣고 있어. 음원 순위도 어느새 30위까지 올랐던데.”
“운이 좋았어요. 이제는 떨어질 일만 남았죠.”
“아니야. 내 주변에도 다들 노래 좋다고 하던데. 이대로 쭉 올라가서 10위 안에도 드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요.”
“아, 맞다! 드라마 오디션 본 건 어떻게 됐어?”
“아직 발표는 안 났는데 확정된 것 같대요.”
“진짜? 잘 됐다. 크랭크인은 언제야?”
“내년 2월이래요.”
한창 얘기를 나누는데 카페에 있던 학생들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저기, 지유 님 맞으시죠?”
“아, 네.”
“저희 팬인데 혹시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노래 너무 잘 듣고 있어요.”
“언니, 너무 예뻐요!”
칭찬에 지유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인을 하고 사진도 찍어주는 사촌동생을 보며 진세연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오! 제법인데. 이 정도 인기면 신인가수상도 노려볼 만하지 않아?”
“후보들이 워낙 많아 힘들걸요.”
그녀가 데뷔한 건 작년 말. 때문에 올해까지는 심사대상에 포함됐다.
“선배한테 들어보니 이번 연말 시상식은 KDK가 휩쓸 것 같던데. 씨랩 이번 곡도 완전 대박 났잖아.”
말을 하던 진세연은 슬쩍 지유를 보았다.
“원래 그 노래 니가 피처링하기로 했잖아.”
“그랬죠.”
씨랩은 KDK의 리더이자 래퍼. 그리고 유명한 작사 작곡가이기도 했다. 쓴 곡마다 히트를 쳐서 저작권료 수입만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그런 씨랩이 신곡을 준비하며 피처링으로 여자 가수를 구한다고 하자, 다들 하고 싶다며 줄을 섰다.
그런데 씨랩은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며 무명이나 다름없는 지유를 지목했다.
전 국민에게 이름을 알 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그런데 정작 지유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소속사는 물론이고 주위 사람들이 전부 나서서 뜯어말렸지만 그녀의 의지는 확고했다.
결국 피처링은 핑크걸스의 리더 케이나에게 넘어갔다.
공개된 씨랩의 신곡 ‘너의 사진’은 역대급 히트를 기록하며 음원 차트 1위와 가요 프로그램 1위를 거머쥐었다.
행사비도 엄청나게 올라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다.
소속사에서는 굴러들어온 복을 걷어찼다고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너, 처음 제안받았을 때만 해도 뛸 듯이 기뻐했잖아. 그런데 왜 안 하겠다고 한 거야?”
이전에도 몇 번 물어봤지만 지유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언니, 사실은…….”
얘기를 들은 진세연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 그날 미루가 그런 말을 했다고?”
“예.”
지유는 그날의 상황을 떠올렸다.
단지 말뿐만 아니라, 표정과 목소리에서 분명히 뭔가를 확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날 했던 말이 다 맞았잖아요.”
“프리머스 펀드 부실이야 자기 회사 일이니 눈치챌 수 있었겠지만, 이건 연예계 일이잖아.걔가 접할 수 있는 정보라고 해봐야 고작 증권가 찌라시일 텐데.”
“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구요.”
지유는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 대기실에서 씨랩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 쎄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도 그날 그런 말을 듣지 않았다면 피처링을 맡았겠지만.’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기회를 놓친 셈이다.
“후회는 안 해?”
“어쩔 수 없죠. 제가 선택한 건데요.”
그러니 그에 따른 결과도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진짜 아쉽네. 미루 얘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해서는.”
‘하기야 당사자 마음이 가장 안 좋겠지.’
진세연은 애써 밝게 웃는 사촌동생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그 선배님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미루? 글쎄. 회사 그만뒀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 이후는 잘 모르겠어. 딱히 동기들과도 연락 안 하는 것 같고.
“그래요?”
진세연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거 터트린 건 역시 나 때문이었나?”
“…….”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녀가 그날 얘기해보고 느낀 건, 그냥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잠시 핸드폰을 보고 있던 진세연이 깜짝 놀란 듯 탄성을 냈다.
“어!”
“왜 그래요, 언니?”
그녀는 지유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거기에는 기사가 한 줄 떠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지유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