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일상 (8)
정신을 차린 홍서진이 물었다.
“그, 그럼 가수 활동은 가능하신가요?”
“다행히 회사에서 겸업을 허락받았습니다. 시간을 많이 뺄 수는 없겠지만요.”
그 말에 홍서진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그런데 혹시 지금 발표한 노래 말고도 만들어 놓은 노래가 더 있나요?”
“예. 한 서른 곡 정도 됩니다. 일하면서도 틈틈이 작사 작곡은 했으니까요.”
그러자 이동호가 옆에서 한마디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너 이번에 나온 브란덴브루크 리서치 리포트 다 읽었어?”
“다 읽고 분석까지 끝냈어. 그러는 너는?”
“니가 다 읽었으면 된 게 아닐까?”
“…….”
홍서진은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 두 분이 같이 일하고 계신가요?”
“아! 제 소개를 안 드렸군요.”
이동호는 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장 이동호라고 합니다.”
“아, 네.”
태연한 척 명함을 받았지만 내심 깜짝 놀랐다.
‘지사장이라고? 이렇게 젊은데?’
이제 본격적인 계약 얘기가 시작됐다.
김범석과 이동호는 함께 계약서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오호! 연예기획사 계약서는 이렇게 되어 있구나. 여기 공정위 마크는 왜 찍혀 있는 거야?”
“그동안 각 기획사들마다 계약 내용이 달라서 아티스트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많았으니까. 그래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라 표준약관을 제정했지. 이게 만들어진 이후로 불공정계약과 노예계약 문제가 크게 줄어든 모양이야.”
“표준약관이라 해도 각자 계약 내용은 좀 다를 거 아니야?”
“약관규제법 보니까 내용이 다를 경우 표준약관을 기준으로 예술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하지만, 불리한 것은 무효로 한다는 조항이 있어. 그런데 대부분은 모르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하기야 법률이 계약보다 상위에 있으니까. 매번 수백 장씩 되는 M&A 계약서 같은 거 읽다가 이렇게 얇은 거 보니까 재밌네.”
홍서진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이 둘은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컨티뉴 캐피탈은 금융사에 대해 잘 모르는 그도 여러 번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그동안 수조 원짜리 계약을 처리했을 테니, 이런 계약쯤이야 장난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홍서진은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저희 회사는 표준계약을 준수합니다.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조항이 있으면 고치겠습니다.그 외에 조건은 최고로 맞춰드리겠습니다. 회사 측에서 가능한 지원도 전부 해드릴 생각입니다.”
사실 그에게는 이번 계약이 절실했다.
신인가수의 경우 계약을 해도 투자해서 수익을 내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은 걸린다.
하지만 김범석은 이미 발표한 노래도 많고 만들어놓은 노래도 많다. 투자비는 거의 들지 않고,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현재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가수를 영입하는 데 성공한다면 메이블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이미지도 크게 올라가지 않을까?
마지막 장까지 꼼꼼하게 다 읽은 김범석은 계약서를 내려놓았다.
“몇 군데 고쳐야 할 부분이 있지만, 이 정도면 괜찮겠네요. 겸업 문제와 관련해서 조건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 다행입니다.”
홍서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최근 메이블 엔터의 사정이 좀 어렵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아,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상대는 기업분석의 전문가들이다.
사모펀드에서 일하는 만큼 여기 오기 전 회사의 자금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했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곧 투자를 받을 예정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이동호가 물었다.
“그래요? 어디서 투자한다고 하나요?”
“광파 캐피탈이라는 곳입니다.”
“어! 거기 중국계 사모펀드 아닌가요? 상하이에 본사가 있는.”
“맞습니다.”
광파그룹에서 만든 사모펀드로 원래는 중국 연예기획사, 영화사, 제작사 등에 주로 투자를 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중이다.
“투자 받을 수 있는 건 맞아요?”
“물론입니다. 요새 중국 투자사들이 한국 엔터에 관심이 많습니다.”
투자를 받지 않으면 당장 직원들 월급도 못 줄 판이다. 때문에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조건이 안 좋긴 해도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이동호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에이, 중국 자본이 달콤하긴 해도 잘못 삼켰다가 체하면 큰일이에요. 투자는 신중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경영 간섭도 심하면서요? 가끔 별 이상한 쌈마이 무대가 튀어나오는 거 보면 그쪽 높은 양반들이 한마디씩 해서 그런 거라던데.”
“그건 그렇긴 한데…….”
“원스패밀리 엔터만 해도 중국 쪽에서 식스티걸즈에 중국인 멤버 추가하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링링과 요요 넣었다가 멤버 구성이 완전히 꼬였잖아요. 기존 일곱 명으로 갔으면 성공했을 텐데.”
홍서진의 이마에서 또다시 땀이 흘러내렸다.
“그, 그렇죠.”
“헤이스터의 경우 한국 활동에 집중해야 할 시기에 중국으로 가는 바람에 망했죠. 거기서 뭔 기괴한 광고 찍어서 이미지 다 말아먹고. 그것도 중국 투자사의 요구였다면서요?”
“그, 그런 일이 있었죠.”
‘아니, 컨티뉴 캐피탈 지사장이라는 사람이 별 유명하지도 않은 걸그룹을 뭐 이렇게 많이 알고 있어?’
그야말로 업계 사람들이나 알 법한 이야기를 줄줄이 꿰고 있다.
김범석은 옆에서 한심하다는 눈으로 열변을 통하는 이동호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걸그룹 덕후였을 줄이야.’
홍서진은 연신 손수건으로 연신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이동호는 손을 내저었다.
“에이, 안 돼요, 안 돼. 중국 자본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주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상대는 투자에 있어서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
이렇게까지 말하니 반박할 말이 없다.
“그럼 어떻게……?”
“다른 투자사를 찾아봐야죠.”
“다른 투자사요?”
“그런데 루나틴즈 실패로 인해 그것도 쉽지는 않겠네요.”
‘아니, 시발. 나보고 뭘 어쩌라고?’
홍서진은 순간 욕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이어진 말은 전혀 뜻밖이었다.
“그러니 컨티뉴 캐피탈의 투자를 받으시는 게 어떤가요?”
“……예?”
“저희는 경영에 간섭을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중국 애들처럼 쓸데없는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자금은 얼마든지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가수와 계약하는 자리에서 컨티뉴 캐피탈이 투자하겠다고 나서다니!
‘혹시 꿈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대체 왜 저희 회사에 투자를……?”
이동호는 웃으며 말했다.
“컨티뉴 캐피탈이 앞으로도 엔터 산업에도 꾸준히 투자할 예정이라서요.루나틴즈의매력을 전세계에 알려 보죠.”
* * *
무명 가수나 다름없던 김범석이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에이튜브에 올라온 한 웃긴 영상 때문.
보통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는 경우 잠깐 이슈가 됐다가 금방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김범석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이유는 노래가 정말로 좋았기 때문이다.
마침 시기도 딱 맞았다.
현재 한국 음악계의 주류는 댄스와 힙합.
반면 발라드는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그나마 여자 발라드 가수로 지유가 있지만, 남자 발라드 가수는 기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김범석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였다.
처음에는 밈으로 소비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노래가 좋아서 찾아 듣기 시작했다.
음원 순위가 역주행했고, 예전에 에이튜브에 올렸던 영상들의 조회수가 급상승했다.
-이야! 그냥 대충 부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런 감성이 나오지?
-밤에 듣다가 헤어진 여친 생각나서 울었다 ㅜㅜ
-요즘 심장이 무미건조했는데, 이 노래를 들으니 물 한 방울 떨어진 것 같네.
-공부하면서도 무한 반복으로 듣는 중
-매직캐슬 가사가 너무 아름답네요. 한 편의 동화 같아요.
-애한테 들려주니 좋아하네요^^
-그거 게임 하다가 하도 죽어 빡쳐서 만들었다는데 ㅋㅋㅋ
-진짜요??
-예. 대학생 때 인터뷰한 기사 있습니다.
-음원은 나와 있는데, 노래방에는 왜 등록이 안 되어 있지?
-금진이랑 태영은 뭐하냐?
-그런데 이분 지금 뭐하시나요? 이제는 음악 안 하시나요?
-대학 졸업 이후 활동을 안 한 것 같은데.
-이제 가수는 안 하시나?
많은 사람들이 김범석의 활동에 대해 궁금해하는 와중에 새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가수 김범석, 알고 보니 금융인?] [김범석 신라대 경영학과 졸업 후 미국에 MBA 취득, 현재 컨티뉴 캐피탈에서 재직 중] [‘매직캐슬’, ‘이별 편지’ 음원 차트 역주행] [김범석, 메이블 엔터와 계약] [컨티뉴 캐피탈, 메이블 엔터테인먼트 지분 70퍼센트 인수] [펀드를 조성해 향후 국내 엔터 사업에 적극 투자]일반적으로 가수의 계약 기사는 연예란에 올라가기 마련. 그런데 이 기사는 특이하게 경제란에 올라왔다.
기사 밑에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렸다.
-뭐?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하고 있다고?
-이게 말이 돼?
-우와! 와우!! 컨티뉴 캐피탈!!!
-거기 유명함?
-뉴스 안 보냐? 한정그룹 해체한 곳이잖아.
-지금 월가 최고의 사모펀드 아닌가?
-작사 작곡에 노래까지 저렇게 잘 부르는데, 펀드매니저 겸 애널리스트라니! 이게 말이 되나?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 ㅜㅜ
-엄마, 미안해~
-그런데 컨티뉴 캐피탈은 왜 갑자기 메이블 엔터를 샀어?
-직원이 계약한다니까 아예 기획사를 사버리는 클래스 ㄷㄷㄷ
-컨티뉴 캐피탈이 지원해주면 루나틴즈 해체할 일은 없겠는데~
동호 선배는 기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으음, 범석이가 진짜 인기가 있구나. 나도 들어봐야 하나?”
“대체 남자 가수 노래는 왜 안 들어요?”
“이어폰 꽂고 들으면 다른 남자가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잖아.”
“…….”
그래서 걸그룹 노래 들을 때 이어폰 꽂고 듣는 건가?
김범석은 컨티뉴 캐피탈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언론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기획사 입장에서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제대로 홍보한 셈이다.
우리라고 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장사, 비상장사 할 것 없이 엔터 관련주들을 전부 분석 중이다.
난 1회차 때 떴던 노래와 영화, 드라마를 떠올리며 두뇌를 풀가동했다.
문화생활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니라 이쪽에 큰 관심이 없긴 해도 중요한 것들은 대략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엔터주들 고평가 얘기가 많지 않아?”
“PBR이나 PER로 보면 그렇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콘텐츠 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일하는 시간이 줄고 여가가 늘어나고 있다. 소득증가로 인해 취미에 쓸 돈 역시 많아지고 있고.
결정적인 이유는 디지털화.
동영상과 음악 스트리밍 앱의 발달로 인해 현재는 전세계에서 올라오는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게 됐다.
이 분야의 최강자는 역시나 미국이지만, 한국은 서구권과는 다른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아이돌만 봐도 서구권의 가수들과는 그 형태가 완전히 다르다.
“아시아 인구는 세계 60퍼센트예요. 중국을 제외해도 42퍼센트죠. 그러니 아시아 시장에서 먹힐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시아에서 그걸 만들 만한 나라가 어디겠어요?”
“한중일?”
“그렇죠.”
시장규모는 중국이 2위, 일본이 3위니, 10위인 한국과는 꽤 격차가 큰 편이다. 다행히(?)이 두 시장은 각자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 검열로 인해 글로벌에서 먹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죠.”
“일본은? 거기는 검열이 없잖아.”
“거기는…… 그냥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음, 그렇긴 하지.”
두 나라 모두 거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콘텐츠 산업이 성장했다. 그런데 내수시장에서 먹힐 만한 것들만 만들다 보니 이상하게 글로벌 시장에서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
반면 한국 내수시장은 너무 작지도 너무 크지도 않다.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만한 규모를 지녔지만, 내수시장만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좀 작은 편이다.
때문에 오래전부터 해외진출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게 디지털화와 맞물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한국 음악, 영화, 드라마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면,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달라지는 거죠.”
“그건 너무 국뽕 아닐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기다려 봐요. 그 국뽕이 실제로 일어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