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52
552화. 실리콘밸리의 일상 (3)
그동안 보여준 한미루의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단지 돈을 많이 번 것을 떠나, 투자 한 번 할 때마다 증시가 출렁거리고 국제 정세가 변했다.
사마라 회장을 탈출시키는 바람에 자민당의 영입 대상 1순위였던 요시네 켄타로 검사를 몰락시켰고, GL엔텍 투자로 인해 일개 국회의원이었던 남궁석은 지지율이 올라 한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에 온 에런 베이커 회장을 인터뷰하게 만들어 한국 대통령실이 추진하던 사회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고, 인도의 수니르 그룹을 몰락시켜 대기업 육성 정책을 펼치던 아난드 정권의 정책 방향을 바꾸게 만들었다.
도저히 한 사람이 벌였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게다가 컨티뉴 캐피탈 산하의 스노우 크래시는 엔플과 구블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
어차피 미국 기업끼리의 경쟁이긴 하지만, 이 기업을 움직이는 사람 역시 한미루다.
현재 한미루는 미국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외국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워낙 영향력이 큰 만큼 미국의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은 한미루를 주목했고 관리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나선 곳이 FBI와 NSA.
엘리노어 리드와 빅터 윌튼 모두 FBI와 NSA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다.
가뜩이나 바쁜 사람들이 직접 실리콘밸리로 찾아온 이유는 일전에 한미루와 시드와 만난 적이 있기 때문.
설명을 들은 한미루와 시드는 순순히 동의서에 사인했다.
정보 수집 항목에 대한 동의를 받긴 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정보 수집 범위를 넓힐 생각이었다.
그런데…….
“걱정 안 해요. 혹시라도 불법으로 정보 수집하면, 해킹으로 돌려주면 되니까요.”
“…….”
“…….”
시드의 말에 리드 조사관과 윌튼 조사관은 움찔했다.
시드 루카스가 천재 프로그래머라는 것은 지난번 사건 때 옆에서 지켜봐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FBI와 NSA 전문가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몇 날 며칠을 붙들고 있어도 못 할 일을 혼자 나서서 24시간 안에 해결했으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FBI와 NSA 서버를 해킹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수사기관들의 불법 정보 수집 행위에 대한 증거 자료를 긁어모으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괜히 잘못 건드렸다가는 진짜 큰일 나겠는데.’
‘국장님께 절대 불법 정보 수집은 하지 말라고 보고드려야겠군.’
리드 조사관은 애써 웃음을 지었다.
“FBI는 불법 정보 수집을 하지 않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윌튼 조사관 역시 다짐하듯 말했다.
“NSA는 그저 국가 안보를 위해 일할 뿐. 개인을 불법 사찰하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한미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의 말씀을 들으니, 너무 안심이 되네요.”
* * *
아무래도 미국 입장에서 나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인물인 모양이다.
지금이야 절대 불법 정보 수집을 안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나중에 생각이 바뀔지 어떨지 알 수 없는 노릇.
어쩌면 윗선의 생각은 좀 다를 수도 있고.
다행히 시드의 한마디에 표정이 바뀌는 것을 보니 든든하다.
이 정도면 충분히 경고가 됐겠지?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잠시 대화를 나눴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긴 해도 역시나 신기한 느낌이다.
국제 테러범이 아닌 이상, FBI와 NSA 요원을 실제로 마주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난 이번 기회에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많이 일어나는 것 같던데요.”
리드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범죄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잡히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케이스와 그렇지 않은 케이스로요. 전자가 절도, 강도, 은행털이, 마약 유통 등 일반적인 범죄라면, 후자는 극단 범죄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대상도 없고 동기도 없는 범죄가 가장 골치 아픕니다. 체포와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식으로 범죄를 저지르니까요. 대표적으로 총기 난사를 들 수 있겠네요.”
총기 난사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은 범인을 제외하고 4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규정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3명이 죽거나 다친 건 총기 난사로 치지도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 기준으로 올해 1월에 발생한 총기 난사가 몇 건이나 될 것 같습니까?”
“글쎄요. 한 20건 되나요?”
“40건입니다.”
“…….”
20건도 나름 많이 부른 건데.
하루에 한 번꼴도 아니고, 사흘에 네 번꼴이다.
이쯤 되면 총기 난사는 미국에서 일상이나 다름없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두 명 죽은 걸로는 뉴스조차 나지 않고, 최소 10명 이상 죽어야 그나마 이슈가 된다.
그때마다 총기 규제 여론이 들끓지만 금세 잠잠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리고 총기 난사 사건은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는 중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나라다.
윌튼 조사관이 말했다.
“한동안 잠잠하던 랜섬웨어 범죄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세계 최대 랜섬웨어 범죄조직 그레이트넷을 일망타진한 덕분인지 이전처럼 통신망이나 전력망을 잠그는 등의 대규모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랜섬웨어 범죄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리드 조사관이 한마디 덧붙였다.
“대기업들의 보안이 강화되며, 상대적으로 보안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은 자체 서버가 아닌 클라우드를 활용하는 것.
꼭 스노우 크래시만이 아니더라도 대형 클라우드 회사들은 몇 겹의 보안망을 갖추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신대륙과의 무역이 늘어나자 이를 노린 해적들 역시 우후죽순 생겨났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세계가 커질수록 디지털 범죄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겠지.
“앞으로 디지털 범죄는 더욱 기승을 부릴 거예요. 그러니 그쪽으로 더 수사역량을 강화해야 할 겁니다.”
두 사람은 내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참고로 디지털 범죄 수사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스노우 크래시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활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다.
이는 FBI와 NSA에서 이미 입증된 만큼, CIA와 DEA, DIA 등도 관심을 보이는 중.
리드 조사관이 말했다.
“디지털 범죄 얘기를 하니, 최근 심각한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건가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입니다. 혹시 킹킹 사건이라고 아십니까?”
“킹킹이요?”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텔로그램에서 일어난 성범죄 사건이죠.”
킹킹은 범죄자의 텔로그램 닉네임.
닉네임을 제외하면 나이, 인종, 성별, 거주지 등 어떠한 정보도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범죄 수법은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먼저 SNS나 모임 앱을 통해 미성년자들에게 마치 또래인 것처럼 접근해 개인 신상을 캐내고, 은밀한 사진 등을 요구한다.
여기에 걸려들면 이를 가족, 친구, 학교 등에 알리겠다고 협박하며, 더욱 심한 수위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라고 요구하고, 자신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사진과 영상은 텔로그램 채팅방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유했다.
범죄는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확인된 피해자만 70여 명이고, 계속된 협박으로 인해 12세 소년이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기사가 나가고 본격적인 FBI의 수사가 시작되자 킹킹은 아이디를 삭제하고 잠적했고, 수사는 난항에 부딪혔다.
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1회차 때 이 사건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은데…….
“텔로그램 쪽에 협조 요청은 해봤나요?”
리드 조사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디가 남아있으면 어떻게든 추적해볼 텐데, 이미 탈퇴해서 수사가 쉽지 않습니다.”
시드가 말했다.
“텔로그램은 핸드폰 번호 없이도 가입이 가능하고, 탈퇴시에는 즉시 모든 정보를 서버에서 삭제하거든요.”
이러한 보안성과 익명성은 다른 메신저앱과 텔로그램의 가장 큰 차별성이기도 하다.
괜히 한국 정치인들이 멀쩡한 국내 메신저 놔두고 텔로그램을 애용하는 게 아니다.
“죽은 소년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피해자들 모두 극도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성에 관대한 나라.
성인이 성인물을 못 보게 하는 한국과는 달리, 매년 할리우드 영화보다 많은 포르노가 쏟아져 나오고, 개인이 채널을 만들어 성인물을 찍어 판매하는 플랫폼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게 하나 있으니, 바로 아동 포르노다.
아동 포르노는 제작과 유포는 물론이고 소지하기만 해도 징역형이다.
따라서 이러한 미성년자 성착취 범죄에 대해서는 살인보다도 더 강력하게 처벌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범죄자를 잡았을 때의 얘기.
차라리 모나앱을 사용했으면 쉽게 잡을 수 있었을 텐데, 하필 텔로그램이라 답이 없는 상황이다.
리드 조사관은 이를 갈듯 말했다.
“20년 동안 FBI에서 일하며 온갖 사건들을 봐왔습니다. 살인, 강간, 테러, 총기 난사, 보복 범죄 등등. 그러나 이번처럼 역겨운 사건은 처음입니다. 딸 가진 부모로서 반드시 붙잡고 싶습니다.”
난 그 분노에 십분 공감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자 그녀가 물었다.
“예? 혹시 딸이 있으십니까?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아! 그건 아니지만, 딸 가진 부모 입장으로 한번 아이덴티파이 해봤습니다.”
“…….”
지금은 없지만, 나중에 낳을 예정이다.
그러니 나도 예비 딸바보(?)라고 주장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당장 딸은 없지만 여동생이 있는 입장에서 이런 얘기를 들으니 분노가 끓어오른다.
그나저나 1회차 때 이놈 잡히지 않았나?
어떻게 잡혔더라……?
“아!”
“왜 그러십니까?”
난 리드 조사관을 보며 말했다.
“이놈을 잡을 방법이 하나 생각나서요.”
그러자 그녀는 반색했다.
“정말입니까? 어떤 겁니까?”
“우리도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겁니다.”
“……예?”
내 말에 두 사람은 얼어붙은 채 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뭔 개소리야?’
‘미친놈인가?’
대충 뭐 이런 눈빛이다.
“그러니까 제 얘기는…….”
난 오해하지 않도록 바로 생각하고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이 끝나자 리드 조사관은 황당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난 직접 대답하는 대신 시드를 보며 물었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그러자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윌튼 조사관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한다고 정말로 걸려든다는 보장은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내 기억이 맞다면 반드시 걸려든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잖아요. 안 그래요?”
내 말에 리드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보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