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56
556화. 실리콘밸리의 일상 (7)
전기차 시대가 열리며 자동차와 반도체는 더욱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하지만 아무리 티슬라라고 해도 직접 반도체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인 만큼, 파운드리에 칩 생산을 위탁했다.
티슬라는 지속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을 끌어 올리는 중이고, 더욱 강력한 칩셋이 필요해졌다.
유성전자는 이미 미국 반도체 공장에서 티슬라의 칩을 생산 중.
현재 14나노에서 생산하는 칩을 향후 7나노 공정으로 생산할 예정으로 이를 위해 아예 티슬라 전용 생산라인을 설치할 계획이다.
CEO 둘이 만났다는 것은 이미 실무자들끼리 세부적인 조율을 끝냈다는 뜻.
이번 만남은 서로 친하게 지내며 잘해보자는 의미로 마련된 것이다.
그래서 나도 참석한 거고.
알렌은 유재호 회장에게 말했다.
“유성전자와 함께하게 돼서 저희도 매우 기쁩니다.”
양사는 단지 차량용 반도체뿐 아니라, 우주 개발, 로봇 등 여러 분야에서 서로 협력해나갈 계획이다.
난 두 사람이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재호 회장과 알렌 에버하트라니.
왠지 좀 신기한 그림이다. 가장 신기한 건 내가 같이 이 자리에 있는 거고.
알렌 에버하트가 한국어를 못하는 관계로 대화는 당연히 영어로 이뤄졌다.
유재호 회장의 영어 실력은 꽤 훌륭했다. 발음도 좋고.
형식적인 일 얘기가 끝난 뒤.
우리는 음료를 마시며 잡담을 나눴다.
알렌은 나에게 물었다.
“인도에 기부는 왜 그렇게 많이 한 거야?”
“많이 벌었으니까요.”
“그래도 금액이 너무 큰 거 아니야?”
“그 정도는 해야 임팩트가 있죠.”
한번 쓸 때 제대로 써야 한다.
“아깝지는 않아?”
“별로요. 돈이야 또 벌면 그만이죠.”
마이크로크레딧으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컨티뉴 캐피탈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테고, 이후 인프라와 기업에 투자할 때마다 관련 뉴스가 날 것이다.
내 얘기를 들은 알렌은 피식 웃었다.
“이야! 거기까지 생각한 거였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면 아까울 것도 없잖아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도 될 테구요.”
이런 게 바로 일타쌍피라는 거다.
난 알렌을 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돈도 많은데 기부 안 해요?”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
그런데 기부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투위터 살 돈만 아꼈어도 수백억 달러는 기부할 수 있었을 텐데.
“기부는 나중에. 지금은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뭐하는데요?”
“뭐하긴. 화성 가야지.”
“언제 가려구요?”
알렌은 손가락을 쫙 펴보였다.
“5년. 그 안에 반드시 간다.”
“으음, 그때까지 될까요?”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
“…….”
아니. 내가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서 아는데, 당신 그때까지 못 갔어.
뭐,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르지.
알렌은 나와 유재호 회장의 인연을 궁금해했다.
“그런데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난 겁니까?”
유재호 회장은 말해도 되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마 미루 씨가 다니던 증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됐을 때였을 겁니다. 어느 날…….”
유재호 회장은 최대한 간략하게 당시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얘기를 들은 알렌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니, 채권을 헐값에 산 다음, 동우정밀을 인수하라고 회장님께 권했다구요?”
“예. 처음에는 저도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가장 잘한 선택이지만요.”
“허…….”
유성전자의 동우정밀 인수는 당시에는 큰 뉴스가 아니었다.
그러나 현재는 반도체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현재 전세계에서 미세공정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기업은 딱 두 곳.
바로 대만의 PSMC와 한국의 유성전자다.
종합 IT기업인 유성전자와는 달리 PSMC는 파운드리 전문회사.
때문에 파운드리에서는 유성전자는 PSMC에 상대가 되지 않고, 점유율도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런데 미세공정에 NIL 방식 적용이 성공하며 반전의 계기가 열렸다. 덕분에 유성전자는 수율을 높이고 생산단가를 낮출 수 있게 됐다.
이미 주문이 잔뜩 밀려있는 ESML의 EUV 장비를 대신해 NIL 장비를 활용하면 공장을 빠르게 증설할 수도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PSMC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알렌은 나를 보며 감탄했다.
“이야! 그때부터 엄청 났군.”
“뭘요.”
20대에 백만장자가 됐고, 지금은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
알렌 에버하트는 전기차와 자율주행, 그리고 우주 개발을 선도하고 있다.
나라면 인생 3회차에도 그렇게는 못할 것 같은데.
나와 알렌 에버하트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는 유재호 회장에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 본인이 실시간으로 투위터로 생중계했었으니까.
한 줄로 요약하자면 ‘현피 뜨러 갔다가 친해졌다’ 랄까?
의외로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돼?”
“계획이랄 게 있나요?”
그냥 흘러가는 대로 투자하는 거지.
올해도 여러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는 만큼, 열심히 해봐야지.
세 시간에 걸친 대화가 끝나자, 알렌 에버하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루에도 몇 개씩 투윗을 올리는 걸 보면 방구석 백수인가 싶지만, 실제로는 미치도록 바쁜 사람이다.
그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텍사스에 한번 놀러 와. 티슬라 공장 구경시켜줄게.”
이번이 몇 번째 듣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한번 갈게요.”
내 말에 알렌은 반색했다.
“어! 약속한 거야.”
“네.”
안 그래도 가려고 했었다.
블랙우드 인터내셔널도 한번 들러야 하니.
헤어지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두 사람은 투위터 로고 앞에 다정하게 붙어서 섰고, 유재호 회장이 데려온 사진사가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은 향후 언론 보도자료에 사용될 예정이다.
인증샷은 필수지.
* * *
난 차를 타고 유재호 회장과 스노우 크래시로 향했다.
이렇게 직접 방문하는 이유는 데이터센터 분야에서 서로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
스노우 크래시는 클라우드 확장에만 전념할 수 있고, 유성전자 입장에서는 생산한 반도체를 데이터센터에 자체 소비하며 과잉공급 우려를 덜 수 있는 만큼 양쪽 모두 성공적인 협업이었다.
미리 얘기를 해놓은 만큼, 직원들은 일어나서 박수를 치며 유재호 회장의 방문을 환영해주었다.
시드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형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처음 데이터센터 협력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우려가 컸습니다. 과연 스노우 크래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 성장세를 보니 괜한 걱정이었던 모양이네요.”
“유성전자의 도움 덕분이에요. 그래서 원래 엔폰 쓰다가 코스믹폰으로 바꿨어요.”
그 말에 유재호 회장은 웃음을 터트렸다.
난 바쁜 시드를 대신해 유재호 회장에게 스노우 크래시를 안내해주었다.
“실리콘밸리에는 얼마나 더 계시나요?”
“보름 일정입니다. 만나야 할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실리콘밸리에 온 김에 유성전자 R&D 센터 및 협력사들을 전부 둘러볼 계획.
그중에는 당연히 구블도 포함되어 있다.
“구블 쪽에서는 별 얘기 없던가요?”
유재호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지만 불쾌해하는 기색이 역력하긴 합니다. 이번에도 일정이 있다며 아미트 굽타 CEO가 만남을 피하더군요.”
원래 유성전자와 구블은 매우 끈끈한 관계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성전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안드로메다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회사니까.
그런데 유성전자가 구블의 플레이마켓이 맞서서 코스믹스토어를 키우고, 검색엔진을 NS의 밍으로 교체하고, 포크OS 개발 쪽으로 돌아서며, 관계가 많이 틀어졌다.
“걱정하실 것 없어요. 아쉬우면 다시 친한 척할 테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는 법이지.
유재호 회장은 회사를 둘러보며 말했다.
“미루 씨가 어째서 그렇게 무리해가면서까지 스노우 크래시 인수를 서둘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한 다른 모든 투자를 합쳐도 스노우 크래시 인수보다 중요한 건 없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미래는 클라우드에 있으니까요.”
인터넷으로 인해 세계는 하나가 되어가고 있고, 독점 기업의 출연이 빈번해졌다.
지금만 해도 모두가 똑같이 엔폰을 쓰고, 모두가 구블로 검색을 하고, 모두가 페이스노트로 소통하고, 모두가 에이튜브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장악할 단 하나의 기업이 바로 스노우 크래시다.
판게아로 모든 것을 통합해 진정한 의미의 가상세계를 만들어내니까.
하지만 가상 세계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실 세계가 존재해야 한다.
데이터센터와 여기에 들어가는 엄청난 양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그래서 저희에게는 유성전자가 필요합니다.”
최근 제조업에서는 설계와 생산이 분리되는 추세다.
엔플은 제품을 설계만 할 뿐, 생산은 부품업체들을 경쟁시켜 납품을 받고, 조립은 중국에 맡긴다.
이처럼 제조는 얼마든지 하청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반도체만은 다르다.
미세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회사라고는 전세계에 PSMC와 유성전자뿐.
지금도 그렇지만 미래에는 더더욱 반도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다른 반도체 기업들 역시 뒤늦게나마 설계만큼이나 생산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부랴부랴 파운드리에 뛰어드는 중이다.
유성전자가 확실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벽을 구축해야 한다.
유재호 회장은 나를 보며 말했다.
“제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께서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자원도 없고, 인구도 그리 많지 않은 한국이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기술뿐이라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한국이 그동안 발전해올 수 있었던 건 국가와 기업 모두 기술 발전에 끊임없이 투자했기 때문.
그동안 자동차, 반도체, 화학, 배터리 등 여러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지금은 또다시 산업이 급변하는 시기.
1회차 때 한국 기업들은 이 시기에 많은 실수를 했고,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난 회귀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았다.
내가 그사이 얼마나 세상의 모습을 바꿔놓았을까?
그리고 나로 인해 앞으로는 얼마나 더 바뀌게 될까?
다가올 미래에 가슴에 두근거린다는 송 가즈키 회장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난 자신 있게 말했다.
“더 빨리, 더 많이 투자하세요. 미래는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유재호 회장은 미소를 지었다.
“미루 씨가 꿈꾸는 미래에 유성전자가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