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58
558화. 실리콘밸리의 일상 (9)
시드가 존경한다고 말할 정도니, 제이슨 킴 역시 시드 못지않은 천재였을 것이다.
그러나 머릿속이 0과 1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머들과는 달리 줄리아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제이슨 킴이 정확히 어떤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했는지 몰랐다.
덕분에 우리는 프로그래머로서의 제이슨 킴이 아닌, 인간 제이슨 킴에 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줄리아는 그와 어떻게 만났는지, 같이 살며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를 담담하게 말해주었다.
같이 살며 생계를 책임진 건 줄리아였다.
그녀가 일해서 돈을 번 덕분에 제이슨 킴은 개발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
그가 개발하는 프로그램은 학습과 성장이 가능한 AI.
모든 것을 혼자 진행했어야 했던 만큼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중간에 몇 번이고 포기할 뻔했었지만, 그때마다 줄리아는 그를 응원해주었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제이슨 킴은 더욱 열심히 일했고, 결국 아이가 태어나기 전 미미르를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약 중독자가 몰던 차에 치어 숨졌다.
만약 그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많은 게 바뀌었을 것이다.
줄리아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도 잘 믿기지 않아요. 그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스노우 크래시가 만들어지고, 지금도 계속 활용되고 있다니.”
미미르가 훌륭한 AI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의 미미르는 제이슨 킴이 만든 초기 형태와는 많이 다르다.
그사이 계속해서 시드가 버전을 업그레이드 했으니까.
제이슨 킴이 낳은 아버지라면, 시드는 길러낸 아버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의 미미르는 두 천재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같이 살면서도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요. 저에게는 그저 다정하고 좋은 남편이었어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줄리아를 만나지 않았다면 제이슨 킴은 과연 미미르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얘기를 끝낸 그녀는 나를 보며 말했다.
“미루 씨에게는 몇 번을 감사해도 부족해요. 덕분에 미미르를 제이슨이 만들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저도 이렇게 잘 살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천만에요.”
나로 인해 인생이 좋은 쪽으로 바뀐 사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는 경우가 살짝 다르다.
1회차 때는 패트롤이라는 특허괴물이 접근해 헐값에 미미르에 대한 권리를 확보했다.
이때 그녀가 받은 금액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훗날 진실을 알게 된 시드가 그녀와 제이슨 킴의 아이들을 후원해주었다.
그러니 1회차 때도 크게 돈 걱정 없이 살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 만큼, 그사이 고생을 좀 더 하긴 했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신기해요. 다른 사람들은 롤프 부치의 말에 전부 속아 넘어갔는데, 대체 어떻게 진실을 알아낸 거예요?”
그녀의 물음에 난 적당히 둘러댔다.
“롤프 부치와 얘기를 하다 보니, 뭔가 좀 이상함을 느껴서요. 그렇게 추적을 하다가 운 좋게 찾아낸 거죠.”
시드는 새삼 존경 어린 눈으로 나를 보았다.
“역시 형은 정말 대단해요.”
“그, 그래?”
타고난 천재인 시드와는 달리 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이제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단지 미래를 알고 있었던 덕분.
내가 아는 미래가 다 끝나고 나면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밑천 다 떨어지기 전에 벌 만큼 벌고 빨리 은퇴하든지 해야지.
“아! 오코너 버거 개점 축하드려요.”
“고마워요.”
원래 오클랜드의 작은 집에서 살던 그녀는 현재 캘리포니아의 주도인 새크라맨토의 대저택으로 이사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오코너 버거 지점을 차렸다.
오면서 봤는데 매장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는 등 인산인해를 이뤘다.
오코너 버거가 워낙 장사가 잘되는지라 지점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줄을 서 있었다.
돈만 있다고 지점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철저한 심사와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인맥이 있으면 얘기가 다르지.
“일 안 해도 괜찮지 않나요?”
만약 나한테 누가 매달 100만 달러씩 꽂아줬다면 취업도 안 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사람이 일은 해야죠.”
“힘들진 않아요?”
내 물음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전에 음식점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가 와주었으니까요.”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죠?”
“네. 나중에 애들이 좀 더 크면 한국에 데려가 보고 싶어요.”
“언제든 말씀하세요. 제가 다 준비해 놓겠습니다.”
얘기가 끝난 뒤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차는 티슬라의 대형 SUV. 내가 세나에게 사준 것과 같은 모델이다.
줄리아는 트렁크를 열고 박스를 하나 뺐다.
“이사를 하며 정리한 그이의 유품이에요.”
안에는 SSD, 태블릿, 노트 등이 담겨있었다.
“저희에게 주셔도 되는 건가요?”
“네. 전 봐도 뭔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만큼이나 소중하게 간직해주실 거잖아요.”
“물론입니다. 나중에 필요하시면 언제든 돌려드릴게요.”
* * *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실리콘밸리로 향했다.
난 시드에게 물었다.
“어땠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제이슨 킴에 대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됐구요.”
좋아할 줄 알았다.
시드는 나를 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형. 그동안 제이슨 킴에 대해 많이 궁금했거든요. 직접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렇게라도 그에 대해 알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고맙긴.”
스노우 크래시의 근간은 미미르.
그런 만큼 제이슨 킴에 대해 좀 더 알아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이상할 수 있겠지만, 처음 미미르를 봤을 때부터 제작자의 깊은 애정이 느껴진다고 생각했어요. 완성된 코드를 뜯어보면 이 사람이 어떤 심정으로 개발을 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마치 책을 보면 작가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네.”
아마 이건 프로그래머들끼리만 서로 느낄 수 있는 것일 테지.
“제이슨 킴은 줄리아를 정말로 사랑했나 봐요.”
“그랬겠지.”
정해진 틀 안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어둠 속을 등불 하나에 의지해 나아가는 것과 같다고 한다.
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계속 개발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시 가족이 제일 중요하지.”
“형도 그래요?”
“물론이지.”
돈이야 이미 죽을 때까지 써도 다 쓰지 못할 만큼 벌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가 전세계 사람들을 다 같이 잘살게 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내 가족과 주위 사람들은 확실하게 챙겨야지.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드가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사랑이란 뭘까요?”
“……응?”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대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아마 누구에게 물어도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겠지만, 그래서는 형으로서의 체면이 살지 않는다.
뭔가 그럴듯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어, 음. 사랑이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안 보면 보고 싶고, 얘기가 잘 통하고, 취미가 같고. 뭐, 그런 거지.”
“그런가요?”
아무래도 대답이 별로였는지 시드는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면 시드는 연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나이면 여미새…… 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자에 한창 관심이 많을 때인데 말이지.
심지어 회귀하기 전까지 시드는 결혼도 하지 않았다.
애인이야 있었을지 모르지만…… 사생활 쪽은 밝혀지지 않아서 잘 모르고.
뭐, 회귀하기 전에도 30대 초반이었으니, 아직 결혼할 나이가 아니기도 했고.
왠지 형으로서 연애에 대해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귀는 사람은 없지?”
“네.”
“직원들 중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 없어?”
“네.”
시드가 하는 건 하루종일 프로그래밍과 영상 보는 것.
그 외에는 밖에 나가지도 않고, 사람도 만나지 않는다.
일단 밖에 나가야 여자를 만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접촉하는 여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비율은 낮지만 스노우 크래시에도 여자 직원들이 적지 않게 있으니까.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시드에게 관심이 있다.
어린 나이에 거대 기업 CEO인 것도 그렇고, 돈도 많고, 실력도 누구보다 뛰어나니까.
난 슬쩍 물었다.
“혹시 남자를 좋아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
“전혀요.”
아무래도 이건 아닌 모양이다.
참고로 미국 CEO 중에는 동성애자가 많고, 딱히 이를 숨기지도 않는다.
“그러는 형은요?”
“응?”
“형도 사귀는 사람 없지 않아요?”
“…….”
생각해보니 지금 남 연애 신경 쓸 때가 아니라, 내 연애가 문제 아닌가?
* * *
난 스노우 크래시 CFO 캐시 볼로드의 보고를 받았다.
“직원을 더 충원해야 하는데, 업무 공간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스노우 크래시는 고객수와 데이터센터가 늘어나는 것만큼이나 직원 수 역시 빠르게 늘어났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건물 외에도 옆의 건물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지만, 이것도 슬슬 한계다.
엔플이나 페이스노트처럼 크고 아름다운 사옥을 짓고 싶지만…… 당장은 시간이 없다.
지금 공사를 시작해도 최소 5년은 걸릴 테니까.
그렇다고 누구처럼 하루아침에 직원 절반을 해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일단 조금만 기다렸다가 적당한 빌딩이 매물로 나오면 사들이는 걸로 하죠.”
“괜찮은 매물이 나올까요?”
“그럴 거예요.”
머릿속에 조만간 망할 기업이 하나 떠올랐지만, 지금 말하지는 않았다.
얘기를 끝내고 나오자 시드가 나에게 말했다.
“형한테 선물이 있어요.”
“선물?”
“그동안 형한테 받기만 한 것 같아서 저도 주고 싶어서요.”
“아니, 괜찮은데…….”
역시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는 법이지.
시드는 나를 미팅실로 안내해주었다.
“형이 기뻐했으면 좋겠어요.”
“물론이지.”
1달러 숍에서 사온 장난감이나 과자라도 기쁘게 받아줄 용의가 있다.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거 아니겠나?
난 내심 기대를 하며 미팅실 문을 열었다.
“짜잔! 안녕, 오빠!”
“허억!”
난 안에 있는 그것(?)을 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 문을 다시 닫았다.
내가 대체 뭘 본 거지?
혹시 나를 속이기 위해 스노우 크래시가 개발한 최첨단 홀로그램인가?
안타깝게도 그런 건 아닌지 상대가 문을 열었다.
“뭐야? 왜 보자마자 문을 닫아?”
“니가 왜 여기에……?”
그러자 세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시드가 불러서 왔어.”
“응?”
그러자 옆에 있던 시드가 말했다.
“제가 놀러오라고 했어요.”
“어, 어째서?”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한 거야!?
그러자 시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형이 좋아할 것 같아서요.”
“응? 내가?”
시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고 했잖아요.”
“아, 아니…….”
그건 부모님 얘기지.
거기에 여동생은 포함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