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60
560화. 실리콘밸리의 일상 (11)
늦은 저녁 식사가 끝난 뒤.
한세나와 정소진은 호텔 룸으로 들어갔다.
“우와! 여기 예쁘다.”
침실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유리벽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내려다 보였다.
세나는 소파에 털썩 누웠다.
“아! 배부르다. 오늘 엄청 재밌었지?”
“응응.”
정소진은 세나가 오빠를 만나러 미국에 간다며 갑자기 끌고 가는 바람에 별생각 없이 따라왔다.
그런데 공항에서 바로 향한 곳은 스노우 크래시 본사.
그곳에서 시드 루카스 CEO를 만났다.
이후 실리콘밸리를 둘러보고, 헬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야경을 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마치 꿈만 같은 여행이다.
정소진은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았다.
“미루 오빠가 컨티뉴 캐피탈 CEO라니…….”
사실 그동안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민아름, 허민웅 등 재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그렇고, 전용기를 사질 않나, 1박에 수십만 달러짜리 호텔과 리조트에서 머물지 않나, 할리우드 스타들과 알고 지내지 않나.
그래서 미국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설마 컨티뉴 캐피탈 CEO일 줄이야!
“컨티뉴 캐피탈이 그렇게 유명한가?”
“그럼. 우리 학교 사람들도 다들 컨티뉴 캐피탈에 입사하고 싶어 해.”
“회사가 월스트리트에 있다며?”
“한국에도 지사가 있거든.”
어째서 한국에만 지사를 두고 있는 건지 다들 궁금해했는데…….
‘아마 미루 오빠 때문이겠지?’
세나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혹시 오코너 버거도 오빠랑 관련이 있어? 우리 그냥 입장시켜줬잖아.”
“응. 컨티뉴 캐피탈이 오코너 버거 최대주주야. 아마 미루 오빠가 힘써서 한국에 제일 먼저 들어왔을 거야.”
“오오!”
세나 입장에서는 투자해서 큰돈을 벌었다는 얘기보다, 유명 햄버거 가게를 보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더욱 와닿았다.
“우리 오빠가 진짜 그렇게 대단해?”
“응응. 엄청.”
“공동 대표라며? 그럼 다른 사람이 있는 거잖아.”
“그렇긴 한데…… 그래도 엄청난 거야.”
컨티뉴 캐피탈은 비상장기업에 자기 자본만으로 운영되는 패밀리 오피스.
비상장기업이라 해도 투자금을 모집하기 위해서는 회사의 내부사정을 공개해야 하지만, 따로 투자를 받지 않으면 공개할 의무도 없다.
때문에 유명세와는 별개로 회사의 상황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언론들도 주로 데이비드 록허트에 대해서만 보도한 만큼, 공동 CEO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어쩐지. 돈이 너무 많은 게 좀 수상했어.”
남매인 만큼 세나는 누구보다 가까이 곁에서 한미루를 지켜보았다.
기억을 되돌려 오빠의 대단한 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으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별 게 없었다.
‘TV 채널 가지고 싸우고, 먹을 걸로 싸우고, 같이 놀다가 싸우고, 공부 배우다가 싸우고, 그냥 싸우고…….’
이상하게도 쓸데없는 일로 싸운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랬던 오빠가 월스트리트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회사의 대표라니!
‘이게 실화인가?’
한참을 생각하던 세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에잇! 돈이 있으니 없으나, 오빠는 그냥 오빠지.”
그래도 기왕이면 돈 없는 오빠보다는 돈 많은 오빠가 좋다.
‘용돈 더 올려달라고 슬쩍 말해 볼까?’
정소진은 부럽다는 듯 말했다.
“좋겠다, 세나야. 미루 오빠 같은 오빠가 있어서.”
“흐응, 좋기는.”
부러움 가득한 친구의 시선을 받으니 저절로 어깨가 으쓱한다.
뭐, 그건 그렇고…….
“그러고 보니, 오빠가 요즘 잘나가서 주위에 예쁜 여자들이 많은 건가?”
“응?”
“생각해봐. 윤아 언니도 그렇고, 지유 언니도 그렇고. 아! 지난번에 본 기자 언니도 있잖아. 다들 엄청 미인이잖아.”
“그, 그렇긴 하지.”
성윤아는 DA금융그룹 회장 외동딸에 드림페이를 운영하는 드림 파이낸셜의 대표, 지유는 가수와 배우 양쪽 분야에서 모두 성공한 글로벌 스타, 그리고 트리시 오코너는 WST의 간판 기자이자 오코너 버거 대표의 여동생.
누구 하나 외모나 배경으로나 빠지지 않는다.
“오빠 설마 바람둥이는 아니겠지?”
그 말에 정소진의 표정이 울상이 됐다.
‘아, 아닐 거야!’
* * *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호텔 2층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카운터에 있는 직원은 나를 보며 반갑게 인사했다.
“굿모닝, 미스터 한.”
“굿모닝, 샐리.”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좋아요.”
이 호텔에 오래 머무르다 보니 직원들과도 꽤 친해졌다.
“오늘도 혼자 식사하시나요?”
“아니요. 오늘은 여동생이 놀러 와서 같이 먹을 거니 넓은 자리로 주세요.”
“알겠습니다.”
난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
“즐거운 식사되세요.”
“고마워요.”
일찍 일어나서 조식을 먹으면 좋은 점이 비즈니스하는 기분을 낼 수 있다는 것.
난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실리콘밸리다 보니 출장 온 사람들이 많다.
옆자리의 여자는 태블릿으로 서류를 검토하며 크루아상을 먹었고, 세 남자는 식사를 하는 내내 진지한 표정으로 투자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잠시 후, 세나와 소진이가 내려왔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온 세나는 잠이 덜 깼는지 입을 쩍 벌리고 하품을 하며 손가락으로 눈을 비볐다.
“하암. 오빠, 굿모닝.”
대충 말아 올려 묶은 똥머리.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이 나온 트레이닝복 바지.
집에서 입던 옷을 그대로 가져온 모양이다.
“그 티셔츠는 좀 버리면 안 되니? 누가 보면 한국 거지가 외화벌이하러 출장 온 줄 알겠는데.”
“뭐래? 이게 얼마나 편한데.”
뭐, 누구나 집에 소울 티셔츠(?) 하나쯤은 있는 법이지.
“안녕하세요, 오빠. 잘 주무셨어요?”
“응. 잘 잤어?”
“네. 침대가 너무 좋아서 푹 잤어요.”
누가 봐도 방금 일어난 것 같은 꾀죄죄한 모습의 세나와는 달리, 소진이는 프릴이 달린 원피스를 입고 가벼운 메이크업까지 끝마친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화보를 찍어도 될 것 같은 예쁜 모습을 보니, 꾀죄죄한 모습의 내 여동생과 너무 비교된다.
“옷 잘 어울리네.”
“정말요?”
“응.”
소진이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좋아했다.
마침 또 한 명이 등장했다.
“형.”
“여기야.”
오랜만에 같이 먹자고 시드도 불렀다.
시드는 쌀쌀한 날씨임에도 맨투맨에 반바지, 그리고 맨발에 크록스를 신고 있었다.
원래 진정한 부자는 옷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법이지.
우리는 둘러앉아 조식을 먹었다.
우유를 한 컵 마신 세나는 잠이 깼는지 먹는 내내 열심히 떠들었다.
“내가 말한 드라마 봤어?”
“봤어.”
“어때? 재밌었지?”
“응.”
주로 세나가 말하고 시드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을 하는 식이었다.
소진이는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어 엄청 잘하시네요.”
그러자 세나는 괜히 턱을 치켜들었다.
“응. 내가 그동안 열심히 가르쳐줬거든.”
“…….”
아니, 니가 왜 자랑스러워 하는 건데?
뭐, 얘 때문에 시드가 한국어를 배운 건 사실이긴 하다만.
난 세나와 소진이가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 시드에게 물었다.
“세나랑 대화하는 거 불편하지는 않아?”
“어떤 게요?”
“말이 잘 안 통한다거나.”
“잘 통하는데요.”
“…….”
극과 극은 통한다고, 세나가 아예 백지 상태라서 말이 통하는 건가?
“내 동생이지만 상식이 좀 부족해서.”
“그런가요? 다른 사람과 비슷한데요.”
“…….”
인간들끼리는 키가 150센티냐 180센티냐를 놓고 작다 크다 하지만, 거인이 보면 그냥 다 작아 보일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시드가 보기에는 아이큐 80이나 100이나 거기서 거기로 보이려나?
“세나랑 얘기하면 재미있어요.”
“그래?”
“네.”
시드가 다른 사람과 이렇게 대화하는 건 흔치 않은 일.
이런 걸 보면 세나가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세나와 소진이는 오늘도 열심히 관광할 예정.
“항상 조심하고.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관광객들이 많이 가는 곳은 안전하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법. 그래서 호텔 측에 얘기해 경호원과 가이드를 붙여주었다.
“오빠는 같이 안 가?”
“만날 사람이 좀 있어.”
“누군데?”
“송 가즈키 회장.”
“그게 누군데?”
당당하게 묻는 세나와는 달리 소진이는 바로 알아챘다.
“설마 소프트박스 회장님이요?”
“맞아.”
* * *
난 실리콘밸리의 한 빌딩에서 노년의 일본인을 만났다.
“또 뵙네요.”
“반갑습니다.”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이 정도면 인연이라고 봐도 좋지 않을까?
송 가즈키 회장은 내 손을 붙잡고 악수했다.
인사를 끝낸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수니르 그룹 투자에서 큰 수익을 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의 도움이 컸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계획으로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매입한 겁니까?”
“글쎄요. 투자 계획이야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매각한 게 이런 결과를 불러올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
“지난번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고. 언제나 제가 생각한 것 이상의 투자를 하시는군요.”
지난번 일이란 요코하마 일렉트론 사태를 말하는 거겠지.
송 가즈키 회장이 일본에서 여기까지 온 건 지나간 얘기를 하기 위함이 아닌, 당장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
“워크스페이스 파산 얘기가 돌고 있던데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워크스페이스는 미국의 공유오피스 기업.
빌딩을 매입하거나 통으로 저렴하게 임대해 작게 쪼개 다시 임대를 주는 방식으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사무실 임대계약 절차가 복잡하고, 돈도 많이 필요하다.
괜히 차고에서 창업한 스토리가 넘쳐나는 게 아니다.
아무튼 때마침 불어온 스타트업 열풍과 맞물리며 워크스페이스는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가능성을 본 송 가즈키 회장은 인사이트 펀드를 통해 150억 달러를 투자했고, 워크스페이스의 기업가치는 480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상장하면 두 배는 더 오를 거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상장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자 온갖 부실이 터져나오며 기업 가치가 폭락했다.
부채 해결을 위해 소프트박스가 직접 나서서 50억 달러를 추가로 투자했고, 간신히 상장을 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시총은 고작 90억 달러에 불과했다.
최고가 대비 5분의 1도 안 되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상장 이후 주가 흐름은 어떨까?
놀랍게도 현재 주가는 1억 2천만 달러로 상장 이후 시총 98퍼센트가 증발했다.
소프트박스의 누적 손실액은 무려 200억 달러.
오죽하면 송 가즈키 회장이 워크스페이스를 가리켜 ‘아픈 손가락’이라고 했을 정도다.
손실 규모만 보면 아픈 정도가 아니라 썩어들어 간 수준이지만.
워크스페이스는 촉망받던 스타트업이 어떻게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고 워크스페이스 몰락의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것은 바로 스노우 크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