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82
582화. 게임(탓)은 정신병 (3)
최근 불거진 흉기 난동 사건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실 이런 식의 목적이나 동기가 없는 살인은 선진국에서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일어나는 것은 드문일.
원인을 알 수 없기에 마땅한 대책도 없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데 이럴 때 그럴듯한 대책을 내놓는다면?
이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른다. 설사 효과가 있다고 해도 중장기적으로 나타날 테고.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적 분노가 집중된 사안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게 중요하지.’
워낙 이슈인 사건인 만큼 표심을 잡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날림으로 공약을 만들면 안 돼. 제대로 하려면 전문가 의견도 필요할 텐데.”
박성주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진송이 전 의원을 캠프에 특보로 영입하는 건 어떻습니까?”
“흐음.”
진송이 의원은 정신의학과 전문의로서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있다.
이때 그녀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게임 중독 문제를 앞장서서 입법했다. 이때 만들어진 법이 바로 그 유명한 ‘4대 중독법’이다.
또한 그녀는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셧다운제를 공동 발의하기도 했다.
이미 관련 법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는 만큼 충분히 적임자라 할 수 있다.
이미 마음은 거의 기울었다.
그래도 뭔지 모를 찝찝함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이거 괜히 또 쓸데없는 짓 하는 거 아니야?”
그러자 박성주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금양섭 캠프에서는 천인순 영입에 나섰다고 합니다.”
“뭐!? 그게 진짜야?”
“예. 확실합니다. 며칠 안에 발표할 겁니다.”
한때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천인순은 게임사들을 상대로 중독 치료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매출의 1퍼센트를 징수하려 했다.
또한 청소년 보호를 위해 게임 심의를 여가부가 해야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만약 이게 현실화 됐다면 여성가족부는 정부 예산 없이도 운영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갑자기 천인순을 영입한다는 것은 상대 후보 역시 게임 중독 문제를 선거에 활용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슈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선거에서는 이슈를 선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상황을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표가 따라붙을테니.
결심을 끝마친 임창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진송이를 캠프로 영입하고, 언론에 보도자료 돌려.”
“알겠습니다.”
* * *
검찰 조사 결과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두 명 모두 게임 중독으로 밝혀졌다.
그러자 언론에서는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상파 3사는 물론이고 종편까지 달려들었다.
뉴스에서는 PC방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모여 앉아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습을 모자이크 쳐서 내보냈다.
“내가 썰었어! 내가 죽였어!”
“머리 쏴! 머리 쏘라고!”
“야! 이 씨XXX야! 그냥 죽여버리라니까!”
“칼침을 박은 다음 빙글 돌려!”
기자의 말이 이어졌다.
“지금 학생들이 하고 있는 게임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으로, 총과 칼로 상대를 죽이는 것이 목표입니다. 상태를 더 빠르게 더 많이 죽일수록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한 스트리머가 욕을 하며 게임방송을 하는 화면이 나왔다.
“오케이! 하나 죽였고! 아XX, 뒤로 가라니까! 거점 털리면 다 뒈진다, 진짜! 면상궁 날려! 류진호 키모찌이이!!”
기자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게임방송을 보는 이들은 대다수가 청소년입니다. 이처럼 우리 청소년들은 총칼 게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걸까요?”
이어서 흰색 가운을 입은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나왔다.
“최근 게임들은 그래픽 기술이 발전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실적이고 생생해서 본인이 직접 칼을 휘두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1인칭으로 진행되는 총칼 게임의 경우 게이머가 직접 키보드, 마우스로 살인을 체험하는 형태여서 TV나 영화로 시청하는 것에 비해 훨씬 뇌에 끼치는 효과가 큽니다. 특히 이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악영향을 끼칩니다. 2009년에 발표한 ‘청소년 컴퓨터 게임 이용과 공격성’ 논문에 따르면,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할 수록 인내심과 참을성은 줄어들고, 부정적 정서가 높아지고, 개인적 공격성도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평소였다면 한동안 언론이 떠들어대는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은 선거철.
그것도 전국구 초대형 선거인 대선과 총선이 함께 이뤄지고 있다.
일단 우리국민당 임창식 캠프에서는 진송이 전 의원의 영입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시절 그 유명한 4대 중독법과 셧다운제를 대표 발의한 장본인.
4대 중독법 입법 당시 게이머와 게임 업체들이 게임을 빼야 한다고 반발하자, ‘게임을 빼느니 차라리 마약을 빼는 게 낫다’는 희대의 명대사를 날린 적이 있다.
그렇게 게임은 술, 마약, 도박과 함께 한국에서는 중독 물질이 됐다.
진송이는 캠프에 합류하자마자 당당하게 발표했다.
“저는 이전부터 게임 중독의 위험성을 경고해왔습니다. 그런데도 그동안 역대 정부들은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게임 중독자들에 의한 이런 끔찍한 범죄가 벌어졌습니다. 저희 임창식 후보는 강력한 게임 규제를 통해 국민을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으로부터 지키겠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지켜본 새한국당 금양섭 캠프의 반응은 어땠을까?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
천만에.
이에 질세라 천인순 영입을 발표했다.
그녀는 과거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내며 게임 중독 문제를 적극 알리고, 게임사들에게 기금을 걷으려 했던 인물이다.
“총칼 게임으로부터 우리 청소년을 보호해야 합니다!”
10년 전에나 활동하던 게임 규제 양대 거두가 다시 정치권에 등판한 것이다!
이러한 언론과 정치권의 반응에 게이머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이 새끼들 또 시작했네.
-그새 쿨타임 돌았냐?
-이야! 진송이와 천인순이라니!
-용호상박, 난형난제, 자강두천!
-자존심 강한 두 천치의 대결인가??
-아니 시발! 왜 여기로 불똥이 튀나?
-칼부림이랑 게임이 무슨 상관인데?
-조용히 집에서 게임하는 우리들이 대체 무슨 죄냐?
-아오! 그냥 게임 좀 하자!
* * *
게임 에이튜버들 역시 분노했다.
백금호는 라이브 영상을 켜자마자 사자후를 토해냈다.
“야, 이 시발롬들아! 왜 또 게임한테 지랄인데? 대체 왜 뭔 일이 생길 때마다 게임 탓하는데? 왜 방구석에서 조용히 게임하는 우리를 예비 칼부림 범죄자로 몰아? 그리고 내 영상은 왜 뉴스에 갖다 써!?”
채팅창에는 실시간으로 반응이 올라왔다.
[형, 진정해.] [뉴스에 박제됐으니 플타 빡칠 만 하지.] [모자이크 쳣는데도 플타인 거 전국민이 다 알겠더라.] [류진호 키모찌이이이ㅎㅎㅎ 존나 쪽팔릴 듯] [오버클락2 한창 신나게 하고 있는데, 총칼 게임이라고 욕 처먹음 ㅋㅋ]“이게 야동 보고 성범죄 저질렀다는 얘기랑 뭐가 다른데? 원래 남자들은 다 야동을 봐. 그중 성범죄를 저지르는 새끼가 있을 뿐이고.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다 게임을 해. 그중 칼부림을 하는 새끼가 있는 거고. 그런데 이 새끼들은 대가리가 없나? 정치인들이 좆같이 정치해서 칼부림한 거라는 생각은 안들어? 진짜 이놈들은 한국에 총기 없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ㅅㅂ 살인 게임하면 살인한다는데, 맨날 미연시하는 나는 왜 여자를 못 사귀냐? ㅜㅜ] [맨날 미연시만 하니까 여자를 못 사귀지…….] [셧다운제에 이어서 이번에는 또 뭐가 나오려나?] [검찰 조사에 따르면 주오성이 9개월간 집에서 게임만 했다는데. 그래서 사회와 단절됐다고.]백금호는 코웃음을 쳤다.
“인과관계가 뒤바뀌었잖아. 게임에 중독돼서 사회와 단절된 게 아니라, 사회와 단절된 뒤 할 게 없어서 게임만 한 거잖아. 그럼 집에 처박혀서 뭐할 건데?”
* * *
[오버클락2, 남자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는 게임] [잔혹성과 폭력성에 관대한 게임 심의 관행, 이대로 괜찮은가?] [학부모 단체 안아키, 살인 게임 규제해야…….]난 SW게임즈로 가보았다.
역시나 회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선우는 어이 없어하며 말했다.
“아니, 총칼 게임은 대체 뭐야? 살다살다 FPS 게임을 총칼 게임이라고 부르는 건 또 처음 들어보네.”
오버클락2는 FPS 게임답게 총이 주력이고, 칼은 보조 무기일 뿐이다.
때문에 이를 총기 난사와 연결할 수는 있어도 칼부림과 연결 짓는 것은 좀 무리다.
언론과 정치권 역시 이를 알았는지 ‘FPS 게임’이라는 멀쩡한 용어를 놔두고 ‘총칼 게임’, ‘살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냈다.
“진짜 가지가지하네.”
어떻게든 범죄와 게임을 엮어보려는 시도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다.
선우는 나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양쪽 캠프에서 아이스스톰 쪽으로 공문을 보냈어.”
거기에는 오버클락2의 잔혹성과 폭력성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심의가 적절했는지에 관해 묻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흉기 난동 사건을 오버클락과 엮는 건 무리 아니야?”
오버클락2는 히어로 슈팅이라는 장르로 하이커 캐주얼 FPS를 추구한다.
살이 찢기거나 피가 튀는 등의 이펙트도 없어서 한국에서는 15세 이상, 미국에서도 비슷한 T등급을 받았다.
“일단 지금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을 때려야 이목을 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외국 게임이라 별로 부담도 없고.”
국산 게임을 때리면 게임사 주가가 폭락해 주주들의 비난이 쏟아질 수 있다. 그러나 외국 게임은 그럴 걱정이 없다.
어차피 전체 매출에서 한국 비중이 그리 크지 않은 만큼 때려도 별 부담이 없기도 하고.
선우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레기들이 게임 물어뜯는 게 어디 하루이틀 일이야? 그런데 진짜 심각한 문제는 여기에 정치권이 숟가락을 얹기 시작했다는 거야.”
검찰이 조사 결과에 떡하니 ‘게임 중독’이라고 적어놓자, 언론이 바로 이를 물었다. 그리고 이때다 싶은 정치인들이 나섰다.
한마디로 검찰은 헛짚고, 언론은 부풀이고, 정치권은 숟가락을 얹었다.
그래서 나온 결과가 게임을 때려야 한다는 것.
양쪽 선거 캠프에서 진송이와 천인순을 영입한 걸 보면 알 수 있듯, 게임 규제는 특정 진영이나, 특정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그저 때리면 표가 나오는 화수분에 불과하다.
이러다가는 어느 쪽이 당선되든 두드려 맞게 생겼다.
난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1회차 때도 비슷한 언론 보도가 나오긴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태가 커지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선거가 겹치지 않았기 때문. 오버클락2도 이 정도로 흥행하지는 못했고.
그런데 이번에는 흉기 난동 사건, 대선과 총선, 그리고 오버클락2의 흥행이 겹치는 바람에 이런 대환장의 콜라보가 펼쳐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선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해명해야지.”
“뭔 소리야? 왜 해명을 해?”
“그럼 어떡하라고?”
난 양쪽 캠프에서 온 공문을 찢어버렸다.
“모조리 쓸어버려야지.”
“응?”
“아예 입도 뻥긋 못하게 도륙을 내버려.”
내 말에 선우는 당황했다.
“어……. 그렇게까지 해야 해?”
“생각해봐. 이놈들이 말로 한다고 들어 처먹겠어?”
“안 들어 처먹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확실히 짓밟아서 시궁창에 던져 버리자. 다시는 게임 탓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