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88
588화. 게임(탓)은 정신병 (9)
쫓아오는 적을 피해 좁은 통로를 내달리는데, 눈앞에서 갑자기 괴물이 튀어나왔다.
난 놀라 총을 들어 쐈다.
끈적한 액체와 살점이 튀었다.
한숨 돌리려는데, 이번에는 천장에서 괴물이 뛰어내렸다.
고개를 들어 반응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헉!”
비명과 함께 눈앞이 새까맣게 변하며 ‘GAME OVER’라는 글자가 떴다.
난 VR헤드셋을 벗었다.
순간, 머리가 핑 돌며 몸이 휘청거렸다.
속이 울렁거리는 불쾌한 느낌에 난 깊게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켰다.
“확실히 멀미가 문제네.”
계속 하다 보면 어떨게든 적응하겠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이라면 길게 게임을 하기가 힘들다.
선우가 옆에서 물었다.
“게임은 어때?”
“끝내주는데.”
“밸뷰가 만든 게임이니까.”
내가 방금 한 게임은 쿼터라이프 알렉스.
이 게임을 만든 회사는 PC ESD 스트림을 운영하는 밸뷰 코퍼레이션.
원래 밸뷰는 유명 게임 제작사고, 스트림은 자사의 게임을 판매하고 지원하기 위해 만든 거다.
이제까지 수많은 명작을 만들어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한 건 쿼터라이프 시리즈.
그리고 쿼터라이프 알렉스는 밸뷰가 처음으로 내놓은 VR게임이다.
눈 앞에 짝 찬 시야각과 3D로 구현된 배경 덕분에 다른 FPS 게임에 비하면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건 진짜 레벨이 다른 수준이야. 그야말로 VR게임의 레퍼런스가 어면 건지 확실하게 보여준 거지. 다른 VR게임들은 여기에 비할 바가 아니야.”
“흐음.”
실제로 쿼터라이프 알렉스로 VR게임에 입문했다가 다른 VR게임 해보고 때려치웠다는 얘기가 한 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VR게임 유저들 사이에서는 쿼터라이프 알렉스를 먼저 하면 그 다음에 할 수 있는 게임이 없으니, 다른 게임들 다 해보고 마지막에 하라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다.
“쿼터라이프 알렉스가 게이머들 눈높이를 너무 높여놨어. VR게임을 만들려면 이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서 이것보다 낫게 만들 수 있겠어?”
선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해봐야지. 그때보다는 개발 환경도 훨씬 좋아졌으니까.”
블루빈즈가 개발하던 게임은 스테피아 서비스를 위한 것인 만큼 당연히 모바일 게임이다.
그런데 선우가 이걸 VR게임으로 방향을 틀었다.
VR게임은 360도의 영상을 입체감 있게 보여줘야 하는 데다가 조작 방법이 다르다.
때문에 기존 게임과는 개발 방식이 다르고, 개발비 역시 비싸다.
다행히 써릴 엔진5는 VR게임 제작을 지원한다.
정확히는 엔진을 만들 때부터 VR게임 제작을 염두해 두었던 만큼, 휠씬 실감 나는 영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대박칠 수 있겠어?”
“대박을 쳐도 큰 수익을 내기는 힘들 거야. 아직 VR게임은 틈새시장이니까. 개발비만 건져도 다행이겠지.”
이건 쿼터라이프 알렉스 역시 마찬가지.
이럴게 잘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기기 제작비까지 생각한다면 손익분기점이 간당간당 하다.
“그런데 어째서 만들려는 거야?”
“예전부터 꼭 한번 만들어 보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괜찮은 게임이 계속 나와줘야 VR게임시장도 더욱 커질 테고.”
“좋은 생각이야.”
VR 시장은 아직은 초기 단계. 그러나 성장 가능성은 엄청나다.
난 1회차 때를 떠올렸다.
현재 VR기기는 대부분 머리에 쓰는 헤드셋(HMD)과 양손에 취는 컨트롤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향후 BCI 기술이 발전하며 양상이 바꾼다.
여기서 또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알렌 에버하트.
그는 인간이 AI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AI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올뉴링크를 설립했다.
뇌에 초소형칩을 설치해 컴퓨터와 두뇌가 상호작용 하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스노우 크래시가 인수한 링크랩스는 비삽입형 방식을 지향한다.
머리에 칩을 심는 대신 헤드셋 장비를 통해 뇌파를 측정, 분석하고, 유도하는 방식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현재 문제가 되는 VR 멀미를 해결하고, 좀 더 실감 나게 가상세계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VR은 사무용 오피스부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러니 이 시장을 미리 선점해놓을 필요가 있다.
선우는 개발 중인 게임을 보여주며 신나서 떠들어댔다.
“게이머는 게임 상황을 지켜보며 자원 채취, 생산, 건설. 전투 등을 그때그때 빠르게 판단하고 지휘를 내리는 거야. 정말로 전장의 한복판에 앉아 지휘관이 된 것처럼 말이지. 스마트폰으로 터치하는 것보다 훨씬 실감 나고 재미있지 않겠어?”
확실히 얘는 게임 얘기할 때 가장 행복해 보인다.
이렇게 게임 만드는 거 좋아하는 놈이 그동안 치킨을 튀기고 있었으니…….
“…….”
뭐, 그건 그것대로 행복해하긴 했다만.
“그래서 이 게임의 이름은 뭐야?”
선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커맨더 오브 배틀필드.”
* * *
선거 운동과 몇 차례의 TV 토론회가 끝나고, 드디어 투표가 시작됐다.
이번 대선은 이전과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첫째는 총선과 함께 치러지고, 둘째는 이번부터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에서 4년 중임제로바뀐다는 것.
그래서인지 투표 열기는 이전보다 뜨거웠고, 투표율 역시 치솟았다.
치열한 접전 끝에 새한국당 금양섭 후보는 우리국민당 임창식 후보를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속보)새한국 금양섭 후보, 대통령 당선!] [금양섭 당선인, 정권교체를 성공시켜준 국민께 압도적 감사!] [금 당선인 첫 메시지, 연대와 통합!]금양섭 당선인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저의 승리가 아닌, 정권교체를 열망한 국민의 승리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저는 국민께 봉사하는 마음으로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함께 치러진 총선 결과는 무소속과 제3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되며, 양당 모두 과반을 차지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임창식은 또 떨어졌네.
-승복 연설하는데 울더라 ㅎㅎ
-쯧쯧! 그놈의 게임 규제한다고 헛짓거리만 안 했어도 당선 가능성이 있었을 것 같은데.
-괜히 학부모 표 얻어보겠다고 나섰다가, 게임 관계자들 표랑 20, 30대 남성들 표 다 날려먹음.
-암호화폐 규제 완화하고 육성하자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음.
-임창식 이제 그만 정계 은퇴하자~
-그래. 이 정도로 삽질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음.
-사퇴하세옷!
* * *
개표방송을 지켜보느라 늦게 잤는지, 동호 선배는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결국 금양섭이 당선됐네. 임창식은 또 떨어졌고.”
별로 안타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본인 표 본인이 깎아 먹었으니 누구를 탓하겠는가?
“표정이 너무 억울해 보였어. 마치 자신이 당연히 대통령이 돼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처럼.”
“으음.”
사실 1회차 때는 임창식이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그는 5년 안에 나라를 어떻게 말아먹을 수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줬다.
경제성장률은 1퍼센트 대로 추락하고, 물가는 치솟고, 주가는 폭락하고, 대기업들마저 휘청거렸다.
“남궁석 대통령은 앞으로 퇴임 후에 뭘 하려나?”
그러자 옆에 있던 김범석이 말했다.
“강단으로 돌아올 거라는데.”
“응?”
“신라대에 교수 복귀 신청할 거라는 얘기가 있어. 평소에도 계속 학생들 가르치고 연구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 말에 난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교수였던 남궁석은 그저 학생들에게 기숙사를 지어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다.
어쩌다 보니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또 어쩌다 보니 대선에 나가 대통령이 됐다.
그렇게 15년 넘게 돌고 돌아 다시 교수직으로 돌아간다니.
아마 본인은 홀가분한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난 강단에 선 남궁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왠지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릴 것 같다.
* * *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거실 불이 켜져 있고, TV 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선우가 먼저 돌아왔나?
그럴 리 없다.
왜냐하면 남아서 일하는 거 보고 왔으니까.
그럼 설마……?
“아! 오빠, 왔어?”
“…….”
니가 여기서 왜 나와?
비번 바꿔놓는다는 거 깜빡했네.
아예 열쇠로 바꿔버리든지 해야지.
소파에 누워있던 세나는 벌떡 일어나 쪼르르 달려왔다.
그러고는 나를 꼭 끌어안았다.
“너무 보고 싶었어, 오빠.”
“……떨어져.”
우리가 이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잖니.
남매끼리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던 때가 좋았는데.
“여긴 왜 왔어?”
“엄마가 반찬 가져다 주래서 왔어.”
“아니, 집에서 밥도 안 먹는데.”
“그렇게 말했는데도 가져다 놓으래. 냉장고에 잘 정리해서 넣어봤어.”
“수고했어.”
“저녁은 먹었어?”
“아직.”
“그럼 같이 먹자. 내가 차려줄게.”
“니가?”
“응. 찌개랑 다 가져와서 데우기만 하면 돼.”
세나는 재빨리 찌개를 데우고 반찬을 그릇에 덜어서 밥을 차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집밥은 오랜만이구나.
난 세나와 마주 앉아 저녁을 먹었다.
“엄마가 집에는 언제 올 거나고 물어보래.”
“바쁘다고 전해드려.”
“그렇게 얘기했어. 그래도 얼른 오래.”
“…….”
집에 안 간 지 오래되긴 했구나.
“효도는 잘 하고 있어?”
“그러엄. 엄청 열심히 하고 있지.”
유급 효도 담당관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정도 용돈 줬으면 없던 효심도 생기는 게 정상이지.
“학교는 잘 다니고 있고?”
“응. 재미는 없어. 미국에 놀러 갔을 때가 재미있었는데. 여기저기 구경하고, 알렌 에버하트도만났고.”
“다른 사람에게는 얘기 안 했지?”
흑시 무슨 일 생길 수도 있는 관계로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응응. 예진이랑 유경이한테만 말하고, 학교 친구들에게는 말 안 했어.”
“잘했어.”
“그런데 오빠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뭐가?”
“전부 다. 알렌 에버하트랑도 친하구.”
아니, 별로 안 친한데.
그냥 아는 사이일 뿐이다.
세나는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를 보았다.
“난 우리 오빠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인 출 몰랐어. 내가 오빠 동생이라는 게 너무 자랑스러워.”
“훗!”
이제야 이 오빠의 위대함을 깨달은 모양이다.
평소 오빠 알기를 우습게 알던 혈육에게 존경의 시선을 받으니, 왠지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밝힐 걸 그랬나?
“그래서 말인데…….”
난 재빨리 정색했다.
“설마 또 용돈 달라고?”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알렌 에버하트에게 말해서 나 로켓 한 번만 태워주면 안 돼? 나도 우주 가보고 싶은데.”
“…….”
이게 대체 무슨 부탁이야?
오빠에게 이런 부탁을 하는 여동생은 얘밖에 없지 않을까?
세나는 다른 얘기를 꺼냈다.
“아! 지유 언니가 지금 세븐 라운드 시즌2 촬영 중인 거 알지?”
“그래서? ”
“촬영장에 한번 놀러 오래.”
난 젓가락질을 멈추고 여동생을 빤히 쳐다보았다.
“니가 가보고 싶다고 땡깡 부린 건 아니고?”
“아니야. 지유 언니가 진짜 놀러 오라고 했어.”
“진짜?”
“응. 언니가 나 보고 싶대.”
“흐음.”
흑시 얘가 언니들에게 귀염받는 타입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