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595
595화. 화안그룹 (4)
난 점심 무렵 회사로 출근했다.
그 모습을 본 동호 선배가 말했다.
“뭐 이렇게 일찍 출근해? 해지고 출근해도 되는데.”
“약속이 있어서요.”
없었으면 계속 집에서 누워있었을 것이다.
“어제 많이 마셨어?”
“적당히 마셨어요.”
참고로 술값은 내가 계산했다.
허민웅이 본인이 내겠다고 하는데, 왠지 불우이웃 뜯어먹는 것 같아서 그냥 내가 사줬다.
난 동호 선배에게 슬쩍 물었다.
“회사에 돈 좀 있어요?”
“없지는 않지.”
“2조 원 정도 있어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야 있지. 왜 필요해?”
금액을 듣고도 놀라지 않는 걸 보니, 우리가 재벌보다 낫다는 게 실감 난다.
이젠 재벌 만나면 힘내라고 격려해줘야 하나?
대한민국 재벌 간바떼 구다사이.
난 슬슬 본론을 꺼냈다.
“지금 산은이 대호조선 매각 중인 거 알죠?”
“응. 그동안 정부가 수십 차례 매각하려다가 매번 실패했잖아. 이번에도 불발될 것 같던데.”
“화안에너지가 인수할 거예요.”
“화안그룹이?”
“아니요. 화안에너지 단독으로요.”
내 말에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뭐? 진짜?”
“네.”
“어째서?”
난 단호하게 말했다.
“한국 조선업 붐은 반드시 옵니다.”
“언제 오는데? 망한 뒤에 오면 소용없는 거 아니야?”
“흠.”
역시 애널리스트 출신답게 핵심을 정확하게 짚었다.
중요한 건 타이밍.
시장을 섣불리 예측해서 먼저 투자했다가 망한 기업이 어디 한둘인가?
“금방 올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요.”
동호 선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내 일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긴 하지.”
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제부터 내 일이 될 테니 계속 걱정해도 돼요.”
“응?”
“대호조선 인수에 컨티뉴 캐피탈 한국지사가 FI로 참여하기로 했으니까 준비해요.”
내 말에 동호 선배는 깜짝 놀랐다.
“뭐? 진짜?”
“네. 망하면 같이 독박 쓰는 거예요.”
“그걸 왜 지금 말해?”
“어제 술자리에서 결정된 일이라서요.”
“…….”
* * *
동호 선배는 부랴부랴 재무적 투자 참여를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동안 벌어놓은 게 많아서 자금 걱정은 없다.
그사이 난 회사로 찾아온 50대 남성을 만났다.
“잘 지내셨나요?”
“네.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용진.
현재 병진공업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체구는 작지만, 여전히 강단이 있어 보이는 모습이다.
그는 회사를 둘러보며 말했다.
“솔직히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라는 얘기를 듣고도 그동안 실감이 잘 안 났는데, 여기서 만나 뵈니 제대로 실감이 나네요.”
“출장은 잘 다녀오셨어요?”
“네.”
매일같이 칼퇴해서 여행도 다니고 골프도 치러 다니는 아버지와는 달리, 그는 주말도 휴일도 없이 회사 일에 매진했다.
직접 발로 뛰며 거래처를 챙겼고, 한 달에도 몇 차례씩 출장을 다녔다.
“요즘 회사 사정은 어떤가요?”
“아주 좋습니다. 기술력만 갖추면 앞으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병진공업이 이렇게 빠르게 성장한 이유는 두 가지.
첫째는 화안에너지의 지원, 그리고 둘째는 박용진 부사장이 열심히 일한 덕분.
아무리 대기업이라는 뒷배가 있다 해도 그가 아니었다면, 병진공업이 지금처럼 빠르게 성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신 그는 그만큼의 보상을 챙겼다.
박용진 부사장은 병진공업 지분 30퍼센트를 보유한 2대 주주. 나중에 상장하게 되면 돈 방석에 앉게 될 것이다.
“요즘 화안그룹 상황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허민홍 사장이 그룹 장악에 나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 잘 알고 계시네요.”
“뭐, 오래 일했으니까요.”
전무까지 했던 만큼, 화안그룹 내부 사정에 대해서는 빠삭할 것이다.
“허민웅 사장이 화안에너지를 물려받기는 무리일까요?”
그는 잠시 생각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화안에너지는 허민웅 사장이 맡기에는 너무 커졌습니다. 어떻게든 그룹에 묶어두려 할 겁니다. 아마도 허성훈 회장은 허민홍에게 그룹 핵심을 물려주고, 허민웅에게는 비핵심 계열사들을 모아서 물려줄 생각이겠죠.”
아무리 최근 성과를 냈다고 해도 그룹의 핵심 사업을 허민웅에게 맡기기에는 불안감이 크겠지.
그의 예측은 정확하다.
실제로 1회차 때는 그렇게 했고, 허민웅은 이를 받아들였다.
1회차 때의 허민웅은 적당히 재산 받아 놀고먹는 것에 만족했을 테니까.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난 박용진 부사장에게 말했다.
“병진공업 자본으로 대호조선 주식을 매수하세요.”
내 말에 그는 멈칫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화안에너지가 대호조선을 인수할 겁니다.”
뜬금없는 얘기인지 그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화안그룹이 아니라 화안에너지가 말입니까?”
“네.”
그는 이것저것 묻는 대신 바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화안에너지가 인수한다 해도 주가에 그렇게 큰 호재는 아닐 텐데요.”
그의 말대로 인수 자체는 호재가 아니다.
아마 인수가 결정 난다 해도 주가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행이죠.”
호재를 미리 알고 매수하는 것은 내부자거래에 해당한다.
만약 인수 직후 주가가 폭등한다면, 그 직전에 대량 매수한 곳들은 금감원 조사를 피하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병진공업은 화안에너지와 연관이 깊으니.
“괜히 트집 잡히지 않으려면 발표 직후에 인수하는 게 좋겠네요. 조금만 지나도 이게 호재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테니, 그전에 매수하세요.”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현금성 자산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필요한 만큼 회사채 발행하면, 저희가 사겠습니다.”
박용진 부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지분을 확보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수하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었겠지.
내 말에 그는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뭘요.”
아버지를 도와서 일하시는데, 이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우리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그나저나 화안그룹도 아닌 화안에너지 단독 인수라니. 꽤나 무리한 일을 하는군요. 혹시 허민웅 사장의 경영권과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게 목적입니까?”
“맞습니다.”
“그룹이 포기한 인수를 나서서 한다는 것은 그룹의 결정에 반기를 드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허성훈 회장도 골치가 아프겠군요. 형제끼리 경영권을 놓고 다툼이 일어나기 전에 정리를 해야 할 텐데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일반적으로 형제자매끼리는 친하기 마련.
그러나 재벌가라면 얘기가 다르다.
한국 재계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피만 보지 않았을 뿐, 골육상잔이 따로 없다.
유성가에서는 아들이 아버지를 검찰에 고발했고, 대연가에서는 왕자의 난이 벌어져 그룹이 여럿으로 쪼개졌고, 리테그룹은 형제끼리 한국 리테와 일본 리테의 경영권을 놓고 분쟁을 벌였고, SL그룹에서는 유산 분배를 놓고 어머니가 자식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로는 10대 그룹 중 하나인 한정그룹이 형제간 싸움으로 해체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외국이라고 해서 비슷한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구찌 가문에서는 실제 살인까지 벌어졌으니까.
그래도 그동안의 일이 교훈이 됐는지, 최근 재벌가들은 분쟁을 피하고자 미리 계열사를 분할해 교통정리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분쟁이 벌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만.
그도 그럴 것이 수천만 원, 수억 원 정도면 참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게 수백억, 수천억이 되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경영권까지 개입되어 있으면 단지 본인이 더 받고 덜 받고 문제가 아니라, 파벌과 파벌, 세력과 세력의 싸움이 된다.
본인이 물러나고 싶어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싸움은 어느 쪽이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싸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양쪽 모두가 납득해야 하겠죠.”
“그래서 허민웅 사장이 승부수를 던진 겁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죠.”
박용진 부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한때는 모두가 망나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핏줄은 어디 가지 않는 모양이군요.”
경영권 얘기를 하니까 며칠 전 아버지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남의 집안일은 그렇다 치고, 이번 기회에 병진공업의 경영권 승계(?) 문제도 미리미리 해결해놓을 필요가 있겠지.
난 그에게 물었다.
“아들이 있다고 하셨죠?”
“네. 현재 멜버른 대학에서 MBA 과정을 진행 중입니다.”
“공부를 잘하나 보네요.”
“그렇습니다.”
표정에서 뿌듯함이 엿보였다.
자식의 성적은 부모의 자랑이지.
참고로 내가 한국대에 합격했을 때도 우리 부모님이 주위에 엄청 자랑하고 다니셨다. DA증권에 입사했을 때도 마찬가지.
“졸업 후에는 어떻게 할 예정인가요?”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하겠죠.”
난 그에게 말했다.
“혹시 병진공업에 관심이 있다고 하면 잘 가르쳐보세요. 나중에 맡아서 경영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였는지, 박용진 부사장은 당혹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입니까?”
난 그에게 말했다.
“아시겠지만 제가 병진공업을 물려받을 일은 없을 겁니다.”
아버지께는 죄송한 얘기지만 나에게 있어서 병진공업은 별로 중요한 회사가 아니다.
아무리 성장한다 한들 투자한 다른 기업들에 비할 바는 아니고, 컨티뉴 캐피탈의 핵심 사업들과 연관성도 떨어지니.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회사다.
그리고 그건 박용진 부사장 역시 마찬가지.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화안솔루션 전무 자리에까지 올랐고, 구멍가게나 다름없던 병진공업의 경영을 맡아 여기까지 키웠다.
그에게는 지금보다 회사를 더 키우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아버지가 은퇴하시면 그때부터는 부사장님께서 회사를 맡아야 할 겁니다.”
지금도 사실상 그가 경영을 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위에 누가 있냐 없냐는 차이가 크겠지.
“그리고 부사장님께서 은퇴하실 때쯤에는 또 다른 후계자가 필요하겠죠.”
그게 자식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러니 내 회사라고 생각하고 계속 잘 키워보세요.”
그가 병진공업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본인이 30퍼센트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
이렇게 키운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다면?
그에게는 은퇴할 때까지 더욱 열심히 일하고, 후계자를 양성할 동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제가 원하는 건 앞으로도 병진공업이 계속 잘나가는 겁니다. 아버지가 은퇴하시기 전에 상장도 하고 대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업으로요. 은퇴하신 뒤에는 적당히 고문 자리 하나 맡아서 가끔 회의나 행사에 참석해서 잔소리나 한 번씩 하면 좋겠네요.”
자신의 이름을 딴 기업이 계속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말년에도 즐거우시겠지.
이게 효도가 아니고 뭐겠는가?
박용진 부사장은 감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날 그 제안을 받은 것은 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뭘요.”
사실 여기에는 그에게는 말하지 못할 절박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한세나.
한세나에게 병진공업 경영권이 넘어가는 일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