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611
611화. NDY 인베스트먼트 (4)
선우는 슬쩍 가지고 온 CD를 내밀었다.
“혹시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정창민은 CD를 보더니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7집이라……. 이때가 벌써 20년쯤 전이네요.”
“네. 어렸을 때 용돈 모아서 산 겁니다.”
그는 기꺼이 사인을 해주었다.
선우는 사인 CD를 품에 잘 챙겼다. 여기까지 따라왔는데, 이 정도 소득이라도 있어야지.
참고로 이번이 아니면 한동안 사인받기 힘들다.
난 정창민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언젠가는 콘서트도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마 콘서트장이 아닌, 다단계 투자설명회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난 그에게 말했다.
“평소 팬이었습니다.”
“정말요?”
“네. 어렸을 때부터 엄청 들었거든요.”
이 자리에서 그의 노래 열 곡 정도는 풀버전으로 부를 자신이 있다. 물론 고음은 안 되지만.
“미국에서요?”
“아, 네. 한인들 사이에서 엄청 인기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좋아하시구요.”
정창민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군요. 가끔 외국에서 공연하면 현지 한인분들이 많이 좋아하시긴 하더라구요. 언젠가는 해외 진출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이렇게 나이를 먹었네요.”
“요즘 신곡을 내거나 콘서트는 안 하시나요?”
“네. 기획사 일도 그렇고 좀 바빠서요.”
“보이그룹을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정창민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네. CM8이라는 8인조 보이그룹입니다.”
안타깝게도 현재 인지도는 바닥이다.
멤버 이름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룹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CM8을 준비한 지 이제 4년쯤 됐네요. 정말이지 재능이 넘치는 아이들입니다. 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드물긴 하지만 데뷔 초에는 거의 주목을 못 받다가 이후에 크게 성공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참고로 라벤더베리가 그랬다.
하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닫아버린 사람은 다름 아닌 정창민 본인.
주가 조작 가담범이 만든 보이그룹에 누가 관심을 갖겠는가?
결국 그는 CM8과의 계약을 해지하고, 다른 기획사에 통째로 넘긴다.
난 정창민에게 물었다.
“NDY 인베스트먼트에 투자하고 계시죠?”
“네. 물론입니다.”
“지유에게 들으니 큰 수익을 내셨다고?”
“네. 백상철 대표를 알게 된 건 정말 큰 행운입니다. 원래 주식투자 같은 건 전혀 몰랐는데, 이렇게 큰돈을 벌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정창민은 27년 동안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감성적인 발라드를 불렀다.
그의 노래를 따라부르며 자신도 모르게 감상에 젖어 눈시울을 적신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마이크만 잡으면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르던 사람이 이제는 마이크를 잡고 열정적으로 투자를 권유하고 있다.
대체 뭐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처음에는 절박함이었을 것이다.
그는 기획사를 설립해 아이돌을 양성하며 200억 원 넘게 쏟아부었다.
직접 곡을 쓰고, 프로듀싱을 하고, 발로 뛰어다니며 홍보했지만, 그가 만든 보이그룹 CM8은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사실은 그도 내심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실패할 거라는 것을.
이때 백상철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아마 정창민 입장에서는 백상철이 구세주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모든 것을 한 번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수익이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절박함은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고, 욕망은 눈을 멀게 만든다.
어느새 그는 주가 조작범들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아시겠지만 이번 투자는 엄청난 기회입니다. 안정적으로 두세 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까요. 백상철 대표는 진짜 투자의 신이라니까요. 믿지 않을 수가 없어요. 아!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백상철 대표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정창민이 잠깐 자리를 뜨자 선우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정창민 얘기 들으니까 나 투자하고 싶어졌어.”
“정신 차려, 인마.”
사실 나도 결말을 알지 못했으면 혹할 뻔했다.
설마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거나 범죄에 가담하고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선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게 진짜 사기라고?”
“응. 녹화는 잘하고 있지?”
“문제없어.”
여기 온 건 놀러 온 게 아니라 증거 수집을 위함.그래서 선우의 옷에 몰래 카메라를 숨겼다.
“그럼 정창민은 어떻게 되는 거야?”
“뭐…….”
돈이라도 벌면 다행이겠지만, 그는 투자한 돈을 다 날리는 것도 모자라 빚까지 지게 된다.
그러나 그가 입은 손실은 돈에서 그치지 않는다.
진짜 손실은 바로 27년 동안 쌓아 올린 커리어와 이미지에 먹칠을 하게 된 것.
그가 앞으로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과연 그의 노래를 들으며 예전과 같은 감성을 느낄 수 있을까?
한때 팬으로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있기 전에 지유나 김범석의 소개로 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렇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가 말했다.
“백상철 대표님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던 백상철을 데려왔다.
나이는 40대 중반 정도.
말끔하고 호감형의 외모를 지녔다.
겉모습만 봐서는 어디 가서 거짓말 한번 안 해봤을 것 같다.
난 그와 인사를 나눴다.
“지유의 사촌오빠인 시드 한입니다.”
“아아, 지유 씨는 저도 팬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고 계십니까?”
“미국에서는 IB에서 잠깐 일했고, 현재는 지유의 자산을 관리하고 투자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지유는 글로벌 스타.
벌어들이는 돈은 웬만한 중소기업 이상이다.
잘나가는 연예인에게 일가친척이 달라붙어서 일하는 건 매우 흔한 일이다. 아마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 정도로 생각되겠지.
“그럼 투자도 엄청 잘하시겠네요.”
내가 또 투자로는 어디서 꿀리지 않지.
이제까지 내 투자 에피소드를 얘기하자면 몇 날 며칠을 떠들어도 부족하다.
“잘한다고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꽤 하는 편입니다.”
백상철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정창민 대표님께 얘기를 들으셨겠지만, 이미 많은 분들이 투자하셔서 큰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인맥을 자랑하는 것은 사기꾼들의 수법 중 하나.
역시 눈앞에서 개소리를 들으니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난 선우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저번에 투자를 잘못해서 돈을 좀 날렸습니다.”
“……응?”
선우는 ‘내가?’라고 묻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백상철이 물었다.
“어떤 투자였나요?”
“혹시 KNC인터내셔널이라고 아시나요?”
내 말에 백상철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는 바로 표정을 고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KNC인터내셔널이요?”
“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몇 년 전 그 회사에서 세계 최대 코발트 광산을 발견했다고 공시를 했습니다. 당시 외교부까지 나서서 광산이 있다고 확인해주는 바람에 안 믿을 수가 없었죠. 그런데 알고 보니 사기였습니다. 그렇지?”
내 말에 선우는 재빨리 말을 맞췄다.
“네. 천덕유라는 희대의 사기꾼이 있지도 않은 코발트 광산을 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끌어올렸습니다. 그 말 믿고 투자했다가 거액의 손실을 봤네요.”
“그, 그렇군요.”
정창민은 아는 척했다.
“아! 뉴스에서 본 적이 있네요. 그거 결국 어떻게 됐나요?”
“처분 직전에 누가 제보를 하는 바람에 작전이 발각돼 돈도 못 벌고, 깜빵에 들어갔습니다.”
“다행이네요.”
난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라니요? 천덕유는 겨우 5년 형을 받았을 뿐입니다. 한국은 사기꾼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합니다. 사기꾼 놈들이 사기 쳐서 수백억 벌고 빼돌린 다음, 몇 년 살고 나와 그 돈 펑펑 쓰며 잘 먹고 잘사니까 사기 사건이 줄지를 않는 겁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놈들은 평생 햇빛을 못 보게 만드는데.”
“그러게요. 몇 년 후 나오면 또 다른 사기를 칠지도 모르겠네요.”
“어쩌면 감옥 안에서 또 다른 사기를 모의하고 있을 수도 있죠. 원래 제 버릇 개 못 주는 법이라고 하잖아요.”
내 말에 정창민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하긴 그렇죠. 제가 만나본 사기꾼들도 그랬습니다.”
“하하…….”
백상철 역시 따라 웃긴 했지만, 어째서인지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천덕유의 사위이기 때문.
어떻게 보면 처가의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다.
정창민은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단기 수익을 노리는 투자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난 고개를 끄덕였다.
“네. NDY 인베스트먼트는 저평가 우량주에 장기투자를 하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투자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물론 투자할 계획입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죠.”
그러고는 바로 농담처럼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투자를 해야 저도 지유에게 수수료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정창민은 나에게 말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지유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 *
녹취와 영상을 본 동호 선배는 혀를 내둘렀다.
“이야, 진짜 본격적이네. 이러니 다들 속아넘어갔지.”
“그러게 말이에요.”
동호 선배는 나에게 다른 자료를 내밀었다.
“이번 작전에 아무래도 인플루언서와 에이튜버, 톡티커도 끌어들인 것 같아.”
과거에는 금융 정보를 뉴스와 증권사에서 얻었다면, 현재는 누구나 인터넷에서 쉽게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개인투자자 1,400만 명.이 중 2~30대는 주로 SNS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이렇다 보니 투자에 있어서 인플루언서들의 역할은 나날이 커지는 중.
이들을 일명 핀플루언서(Finfluencer)라고 한다.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스(Finance)와 인플루언서(Influencer)의 합성어로, 투자 정보를 제공하고 투자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뜻한다.
자료를 훑어보니 NDY 인베스트먼트가 작전을 벌이고 있는 종목들에 대해 추천하는 영상들이 넘쳐났다.
이들이 돈을 버는 방법은 바로 선행매매.
정보를 먼저 얻어서 주식을 산 다음 구독자들에게 매수를 권한다. 매수가 몰려서 주가가 오르면, 정작 자신은 팔아서 돈을 챙기는 것이다.
이러니 한국 주식시장이 도박판이나 다름없지.
“현재 공매도 가능한 네 종목에 대해서는 차입해서 공매도를 하는 중이야. 유통량이 적다 보니 공매도 규모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어.”
“발상을 전환해봐요.”
“어떻게?”
“CFD는 TRS 상품이죠.”
TRS(총수익스와프).
오르면 그 차액을 투자자가 가져가고, 떨어지면 손실액을 투자자가 물어내야 한다.
“만약 손실이 원금을 넘어서면 어떻게 되겠어요?”
“투자자 증권사에 배상해야겠지.”
작전주가 터지면 손실 규모가 적어도 수천억은 될 텐데, 이걸 과연 개인투자자들이 물어낼 수 있을까?
만약 못 물어낼 경우 손실은 고스란히 CFD를 판매한 증권사의 몫이 된다.
“CFD를 판매한 증권사도 공매도하죠.”
61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