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641
641화. 말레이 스캔들 (2)
내 말에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정말요? 거기 할리우드 셀럽들은 다 오지 않았어요?”
“그런 모양이에요.”
“레온 라클레어가 얼마 전 사귄 새 애인은 봤어요?”
“그게 누구죠?”
그가 사귄 여자가 한둘이 아니다 보니, 이름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모델 같은 여자랑 끌어안고 키스하는 모습은 본 것 같다.
“거기 예쁜 여자들 엄청 많았죠?”
“그랬던 것 같긴 해요.”
전부 에덴 크레이그 주변에 몰려있었지만.
잘생긴 놈들 다 죽었으면…….
트리시는 살짝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거기서 누가 제일 예뻤어요?”
“글쎄요.”
사실 기억도 잘 안 난다.
왜냐하면 밍 리우를 만난 순간부터 머릿속이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
“트리시보다 예쁜 사람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엑!”
그 말에 트리시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노, 농담하지 마요. 거기 모델들도 많았을 텐데.”
“에이, 모델이 뭐 대단한가요?”
물론 대단하다.
애초에 레온 라클레어 파티에 올 정도면 그냥 모델이 아닌 톱모델.
하지만 평소 대충하고 다녀서 그렇지, 트리시의 외모면 웬만한 모델 못지않다.
키도 크고, 몸매 좋고, 얼굴도 예쁘고.꾸미면 엄청나지 않을까?
“뭐, 뭐예요? 자꾸 놀리면 화낼 거예요.”
말과는 달리 표정은 좋아 어쩔 줄 몰라 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었다.
역시 칭찬에 약하다니까.
“그보다 거기서 재밌는 일이 하나 있었어요.”
“뭔데요?”
“레온 라클레어의 절친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난 밍 리우를 만난 얘기를 해주었다.
트리시는 고개를 갸웃했다.
“밍 리우요? 들어본 것 같은데.”
“1IDB 알아요?”
“아! 알아요. 말레이시아 국영 투자회사잖아요.”
역시 기자답게 알고 있구나.
“맞아요. 이 밍 리우라는 사람이 현재 1IDB 자문을 맡고 있는 모양이에요.”
“자문이면…… 그냥 투자에 대한 조언만 하는 것 아닌가요?”
“원래라면 그렇겠죠.”
1IDB의 대표는 따로 있고, 엄밀히 말하면 밍 리우는 그저 자문일 뿐 책임자가 아니다.
하지만…….
직책에는 그에 맡는 책임과 권한이 부여되고, 견제 장치도 존재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직책 없는 사람이 권한만 휘두른다면?
그럼 책임도 없고, 견제 장치도 없다.
다시 말해 무슨 일을 하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다.
난 슬쩍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 사람이 좀 수상해요.”
내 말에 트리시는 귀를 쫑긋 세웠다.
“뭐가요?”
“그걸 이제부터 알아봐야죠.”
트리시는 김빠졌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예요?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거예요?”
“잘하면 이거 엄청난 특종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특종이라는 말에 트리시는 눈을 번쩍 떴다.
“진짜요?”
“네. 다 먹은 뒤 회사에 가서 마저 얘기해요.”
그러자 트리시는 재빨리 남은 햄버거를 입에 넣고 맥주를 원샷했다.
“뭐해요? 어서 가요!”
* * *
오코너펍을 나온 나는 트리시와 함께 컨티뉴 캐피탈 본사로 향했다.
그러자 트리시가 말했다.
“어디로 가요? 이쪽이잖아요.”
“무슨…… 아!”
나 없는 사이 이사했지?
하마터면 예전 장소로 찾아갈 뻔했다.
“저 따라와요.”
“네.”
난 뉴요커인 트리시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 빌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빌딩에 ‘컨티뉴 캐피탈’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걸 보니,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그동안 힘들게 월세살이하다가 드디어 자가를 마련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여기는 빌딩값 비싸기로 유명한 월스트리트 한복판.
이런 곳에 자기 빌딩을 가진 투자사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 정도면 어디 가서 성공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트리시는 내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돈을 그렇게 벌었는데, 빌딩 하나에 감동하는 거예요?”
“저에게는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요.”
“무슨 뜻이에요?”
“한국인은 부동산을 좋아한다는 뜻이죠.”
그래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내 집 마련을 포기하지만, 한국인은 영혼까지 끌어다가 매수하지.
미리 온다는 얘기를 했기 때문인지 데이비드는 직접 입구로 나와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잘 지내셨죠?”
“물론입니다.”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새 더 멋있어지신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는 피식 웃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일단 보스 집무실부터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데이비드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도착한 곳은 최상층.
집무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트리시는 감탄을 터트렸다.
“우와! 여기 너무 좋은데요.”
드넓은 공간에는 책상과 소파 등이 놓여있고, 바깥 쪽에는 비서실이, 안쪽에는 샤워실과 휴게실이 있다.
공간도 공간이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유리벽 너머로 펼쳐진 탁 트인 전경.
“여기가 제 사무실이에요?”
“그렇습니다. 원래 마이클 프레스턴이 쓰던 집무실입니다.”
“그래요?”
마이클 프레스턴은 한때 모든 투자를 성공시키며 불패의 명성을 쌓았고, 부호들은 너도나도 돈을 싸들고 찾아와 제발 투자할 수 있게 해달라며 사정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샤크 매니지먼트였지만, 토머스 모터스를 시작으로 그 뒤 줄줄이 실패하며 체면을 구겼다.
그리고 게임스타트 사태 때 공매도에 나서며 엄청난 손실을 봤다.
결정타는 수니르 모터스 채권을 매수한 것.
결국 수니르 모터스가 파산하며 샤크 매니지먼트 역시 같이 무너졌다.
한때 월스트리트를 주름잡던 샤크 매니지먼트가 파산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진작 데이비드를 고용했으면 그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역시 이 바닥에 영원한 승자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회귀빨(?) 떨어지기 전에 재빨리 은퇴하던 해야지.
난 잠시 창가에 서서 월스트리트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이러고 있으니, 돈밖에 모르는 탐욕스러운 자본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 역시 돈이 최고지.
앞으로 더 열심히 벌어야겠다.
“매기는 잘 지내고 있죠?”
“네. 아주 건강합니다. 오늘 저녁 같이 드시는 거 어떻습니까? 매기도 보스를 많이 보고 싶어하는데.”
“어! 그럴까요?”
트리시는 슬쩍 말했다.
“저도 가도 돼요?”
“물론입니다. 매기가 좋아하겠네요.”
잡담을 좀 나눈 다음, 이제 본격적인 일 얘기를 시작했다.
“지시하신 대로 밍 리우에 대해 조사해보았습니다.”
난 트리시와 함께 데이비드에게 건네받은 자료를 살펴보았다.
현재 나이는 36세.
국적은 말레이시아.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 화교다.
그의 조부는 광둥성 출신의 사업가로 홍콩을 거쳐, 말레이시아로 넘어왔다. 주류사업과 부동산 투자를 통해 꾸준히 부를 축적했다.
덕분에 재벌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호라 할 만큼 꽤 사는 집안이었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중학교까지 다닌 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이튼 칼리지에 입학.
이곳에서 영국 상류층과 명문가 자제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리고 이곳에 그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한 사람을 만난다.
바로 리지 라임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아무튼 영국에서 유학을 끝낸 밍 리우는 미국 펜실베니아 경영대인 와튼스쿨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또다시 금융가와 사업가 자제들과 친분을 쌓았다.
트리시는 혀를 내둘렀다.
“엄청난 엘리트네요.”
“그러게요.”
이 정도면 한국대 졸업은 명함도 못 내밀지 않을까?
“대학을 졸업한 밍 리우는 25세부터 본격적인 투자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집안의 자산을 관리할 목적으로 홍콩에 WM크로스라는 사모펀드를 설립하고, 여러 곳에서 투자도 받은 모양입니다. 주로 컨소시엄에 참여해 부동산과 M&A 쪽 투자를 진행한 것 같습니다.”
“투자 성적은 어떤가요?”
“본인은 여러 투자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홍보했습니다만…… 딱히 크게 번 건 없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크게 손실 본 것도 없는 듯하구요.”
“그렇군요.”
어쨌거나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경력을 지닌 투자자는 월스트리트에 넘쳐난다.
하지만 진짜 대단한 건 이제부터다.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IDB에 대해 알아야 한다.
말레이시아를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하면 모두가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를 떠올릴 것이다.
이 건물을 지은 곳이 바로 페트로나스(PETRONAS)로 말레이시아의 국영 석유회사다.
말레이시아는 산유국으로 GDP에서 석유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0퍼센트, 국가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퍼센트다.
자원을 팔아 돈을 버는 국가는 그 돈으로 해외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나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등이 대표적이다.
총선에서 승리한 빈티 라임 총리는 말레이시아 국민의 자산을 늘려주겠다며, 국부펀드를 설립해 해외투자에 나서겠다는 거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1IDB(1 Invest Development Berhad)라는 국영 투자회사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여기서 밍 리우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이튼 칼리지에서 만난 리지 라임과 오랜 기간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 리지 라임의 아버지가 바로 빈티 라임입니다.”
“그 빈티 라임이 말레이시아 총리가 된 거군요.”
“그렇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밍 리우가 꽤 많은 역할을 한 모양이더군요.”
그 과정에서 그는 빈티 라임 총리의 신뢰를 얻었다.
트리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자문을 맡을 수 있었군요.”
아들의 친구이자 투자 업계에서 경력을 쌓고 인맥도 넓은 만큼, 이후에도 믿고 여러 가지 일들을 맡겼다고 한다.
데이비드가 말했다.
“제 추측인데, 어쩌면 1IDB를 밍리우가 설계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요?”
“네. 이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서요.”
역시 예리하다.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요.”
이렇게 생각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1IDB는 어떠한 자본도 없이, 사실상 무자본으로 설립됐기 때문.
기존에 석유를 판매해 벌어들인 돈은 이미 사용처가 정해져 있어서 함부로 쓸 수가 없다. 그렇다고 세금을 거둬서 국부펀드에 쓴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트리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그럼 1IDB는 어떻게 투자금을 마련한 거예요?”
“채권 발행이죠.”
채권을 발행해 그 돈으로 먼저 투자를 집행하고, 이후 석유를 판매해 번 돈으로 채권 대금을 상환한다는 훌륭한 계획이다.
어차피 국영 투자회사가 발행한 채권인 만큼, 사실상 말레이시아 정부가 지급보증을 선 거나 다름없다.
게다가 땅 속에 있는 석유를 뽑아서 팔면 되니, 못 갚을 일도 없을 테고.
1IDB는 글로벌 투자를 위해 설립한 것인 만큼, 채권은 대부분 달러 표시로 미국,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나눠서 발행됐다.
이중 미국에서만 무려 70억 달러의 채권이 발행됐다.
“1IDB 채권을 발행한 곳이 어딘가요?”
내 물음에 데이비드는 한마디로 대답했다.
“리치먼삭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