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645
645화. 말레이 스캔들 (6)
워낙 엄청난 사건이라 기사로 내면 특종이다.
트리시는 다른 일을 전부 중단한 채,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기사를 작성했다.
그리고 난 데이비드와 그동안 분석한 자료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밍 리우가 워낙 여기저기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대한 자료는 넘쳐났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가는 곳마다 돈을 뿌리고 다닌 것.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리치먼삭스 쪽은 좀 알아보셨어요?”
“네. 리치먼삭스 전현직 임원들이 로비를 받고, 뇌물 수수와 돈세탁 등에 관여한 것 같습니다. 채권 발행 과정에서 수많은 불법행위가 있었고, 사업을 하는 것처럼 위장한 밍 리우의 개인 계좌로 돈이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역시 그렇군요.”
이 정도 규모의 사기는 혼자서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다.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중 가장 큰 도움을 준 곳은 바로 리치먼삭스.
리치먼삭스의 협력이 없었다면, 애초에 이번 일은 성립될 수 없었다.
내가 무슨 공익제보자나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그저 일개 투자자일 뿐.
사기꾼 잡는 건 잡는 거고, 투자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든 돈 벌 궁리를 해야겠지.
“리치먼삭스는 정부랑 친하죠?”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등 거의 모든 나라에 손을 뻗치고 있습니다. 금융인들에게 리치먼삭스의 본사와 지사는 각국 재무부나 중앙은행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할 수 있죠. IMF, WB, ECB 등에도 리치먼삭스 출신들이 요직에 앉아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전 총재, 현 WB(세계은행) 총재, ECB(유럽중앙은행) 차기 총재 모두 리치먼삭스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나 미국 금융사인 만큼 가장 관계가 깊은 것은 바로 미국 정부.
연준과 재무부는 리치먼삭스 동문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금융사도 비슷한 경우가 있나요?”
“그렇습니다.”
금융계 최고의 엘리트들 숫자는 정해져 있다.
그러니 이들이 사기업에서 일하다가 공직으로 가는 것 역시 크게 이상할 건 없다.
“다만 리치먼삭스가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리치먼삭스 내부에는 임직원의 공직 출마를 장려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공직을 한번 겪어야만 진정한 ‘진짜 리치맨’으로 인정받을 수 있죠.”
“진짜 리치맨이라……. 그런데 IB에서 일하다가 공직으로 가면 연봉이 크게 깎이지 않나요?”
“맞습니다. 성과급과 보너스도 안 나오니까요.”
리치먼삭스 내에서 요직에 앉을 정도면 1년에 버는 돈은 수백만 달러.
그러나 공직은 기껏해야 수십만 달러다.
반토막도 아니고, 10분의 1 이상 줄어드는 것이다.
난 웃으며 말했다.
“다들 봉사 정신이 투철한 모양이네요.”
데이비드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언뜻 보기에 이들이 고액의 연봉을 포기하고 공직을 맡는 것은 마치 사회를 위한 봉사처럼보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착시현상(?).
“어차피 공직 임기가 끝나고 나면 몸값을 더욱 올려 다시 리치먼삭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공직에 있을 때 얻은 정보와 인맥을 바탕으로 다시 리치먼삭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죠.”
실제로 리치먼삭스는 최근 BOE(영란은행), BOJ(일본은행), ECB(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담당자들을 이코노미스트로 채용했다.
금융만큼 국가의 규제가 세고 정책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산업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산업은 문제가 터지더라도 해당 산업만 망하고 끝이지만, 금융에 문제가 터지면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니까.
공직 출신은 각국 중앙은행의 내부 시스템을 잘 알고 있고, 정계에 넓은 인맥이 있다.
따라서 각국의 통화정책과 규제를 잘 이해하고, 정책 변경시 빠르게 정보를 입수해 대응할 수 있는 것이다.
리치먼삭스 출신은 공직으로, 공직은 다시 리치먼삭스로.
“말 그대로 회전문 인사네요.”
데이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죽하면 거버먼삭스라는 말까지 있겠습니까?”
이 정도는 해야 세계 최대 IB가 될 수 있는 거다.
실제로 리치먼삭스는 정부와 국회에 엄청난 로비를 벌이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건 이번 사태에도 마찬가지.
원래대로라면 채권 발행 대금 70억 달러에 과징금까지 내야 했지만, 온갖 정치적 인맥을 동원해 35억 달러로 합의했다.
뭐, 이것만 해도 미국 금융 역사상 가장 많은 액수의 벌금이지만.
이로 인해 리치먼삭스의 한 분기 수익이 통째로 날아갔을 정도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불법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지.
이번에 제대로 처벌해야 다시는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빈티 라임 총리 쪽으로는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적게 잡아도 20억 달러가 넘을 겁니다. 일부 자금은 홍콩을 통해 중국 쪽으로 흘러들어간 것 같습니다.”
“중국이요?”
“네.”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수천 년 동안 교류해온 만큼, 화교는 오래전부터 이 나라들에 자리를 잡았다.
이는 말레이시아 역시 마찬가지.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분리된 것 역시 화교 문제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레이시아의 중국계 비중은 20퍼센트가 넘고, 이들은 정치 경제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 말레이시아에서는 영어보다 중국어가 고급 언어로 쓰일 정도다.
그렇다고 화교를 중국인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화교들은 자신들이 중국계라는 것에 자부심이 있지만, 말레이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하고,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
그러나 밍 리우는 좀 다르다.
집안이 홍콩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인지, 그는 이전부터 중국 정재계 인사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실제로 일이 터지자 밍 리우는 재빨리 마카오로 도망갔다.
이후에는 중국으로 넘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데이비드가 또 다른 얘기를 꺼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뭔가요?”
“미국 대선 캠프에도 후원을 한 것 같습니다.”
“아!”
내 반응을 본 데이비드가 물었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요. 그냥 좀 놀라서요.”
자본주의 본국답게 미국 대선은 그야말로 쇼미더머니.
슈퍼팩(Super PAC)이라고 해서 개인은 물론 기업의 후원과 지지도 합법이다.
때문에 선거철이 되면 개인과 기업 모두 특정 후보와 정책을 공개 지지하며 돈을 쏟아붓는다.
돈이 없으면 아예 판에 끼지도 못 한다.
실제로 경선 레이스 도중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선거자금 부족 때문이다.
난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얼마나요?”
“3천만 달러쯤으로 추정됩니다. 마크 필립스의 열성 지지자인 래퍼 미크라에게 3천만 달러를 건넸습니다. 아마도 이를 쪼개서 차명으로 후원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째서 그런 방식을 쓴 거죠?”
“외국인이 미국 대선 후보 캠프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불법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래서 난 정치 후원금을 낼 수 없다.
그러나 컨티뉴 캐피탈은 낼 수 있겠지.
데이비드는 한마디 덧붙였다.
“민주당 캠프뿐 아니라 공화당 캠프에도 후원한 모양입니다.”
“양다리를 걸친 건가요?”
“그런 셈이죠.”
누가 이길지 모르니, 양쪽 다 기부를 한 건가?난 혀를 내둘렀다.
사실 이런 방법을 누가 생각 못 하겠는가?
그럼에도 쉽게 시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이 두 배로 들기 때문. 기왕이면 이길 쪽에 몰아주는 게 낫지.
역시 내 돈 아니니 정치 후원도 마음껏 할 수 있구나.
또 하나는 나중에 양다리 걸쳤다는 게 들통날 경우 욕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처럼 차명으로 후원한다면, 혹시나 의심받더라도 관련 없다고 우길 수 있다.
“정치 후원금을 낸 목적이 뭐였을까요? 설마 순수하게 미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기부한 건 아닐 테고.”
데이비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대선 주자에게 접근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생각이었겠죠.”
소금 먹은 놈이 물켠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진리인 만큼,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으면 뭐라도 해줘야 한다.
애초에 그걸 바라고 후원을 하는 거고.
“진짜 재밌는 사람이네요.”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 워싱턴 정가에까지 돈을 뿌리다니.
하기야 이 정도로 큰 금액을 후원하면, 대선후보 입장에서도 쉽게 무시하기는 힘들겠지.
다시 말하지만 이건 3년 뒤쯤 터지는 일이다.
그때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은 이미 대통령에 당선돼 재임 중이었다.
밍 리우의 대선 불법 후원금 사실이 알려지자, 마크 필립스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남은 임기 내내 공화당의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는 선거 중.
이번 일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모르는 만큼, 변수는 최대한 제거해야 한다.
난 마크 필립스 상원의원을 떠올렸다.
“안 그래도 한 번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잘됐네요.”
* * *
크리스토퍼 로무.
미국 공군 정비사로 오랜 기간 군 복무를 끝마친 그는 전역 후, 인생 2막을 시작했다.
그러나 관련 직종 취업은 쉽지 않았고, 경비원 같은 임시직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 일자리마저 구하기 힘들어서 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비행기에서 만난 한 남자 덕분에 그의 인생이 뒤바뀌었다.
‘설마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동양인 청년이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였을 줄이야!’
물론 그때는 컨티뉴 캐피탈이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양인 청년은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가 돼서 나타났다.
그리고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차를 사주고, 돈을 주고, 회사를 차려주었다.
크리스는 하루아침에 전용기 정비 회사의 사장이 됐다.
회사를 차려줬다고 해서 없던 사업 수완이 갑자기 생겨날 리 없다. 그래서 컨티뉴 캐피탈에서는 아예 경영 전문가를 파견해주었다.
전용기 공유 서비스를 운용하는 블랙우드 인터내셔널에서도 정비 일감을 몰아주며, 어느새 직원이 100명이 넘는 회사로 성장했다.
그는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성공을 꿈꾸긴 했지만, 이 정도로 성공하기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지금도 자다 깨면 꿈인지 생시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건 왜 자신에게 잘해주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한미루는 그가 그날 비행기 안의 모든 사람들을 구한 거라고 말했지만, 정작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야 할 텐데…….’
그런데 어떻게 은혜를 갚아야 할지 모르겠다.
컨티뉴 캐피탈 공동대표에게 부족한 게 뭐가 있겠는가?
가끔 연락을 하긴 했지만, 바쁜 사람에게 자주 연락하는 것도 실례가 될 수 있어서 자제하는 중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의 이름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크리스.]크리스는 기뻐하며 말했다.
“하하! 이게 누군가? 반갑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지. 안 그래도 전화하려고 했었는데. 한국인가?”
[아니요. 며칠 전 뉴욕에 왔어요.]“엇! 뉴욕에?”
[네.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나야 언제든 괜찮지. 없으면 만들겠네.”
[그럼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시죠.]“응? 어디를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