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658
658화. 말레이 스캔들 (19)
난 그동안 때려잡은 사기꾼들의 면면을 떠올렸다.
프리머스 펀드 사기꾼 박태일, 수소트럭을 언덕에서 굴린 브레드 버튼, 친구의 프로그램을 훔쳐 창업한 롤프 부치, 자칭 프랑스 상속녀 에밀리 클로에 등등.
이처럼 세상은 넓고 사기꾼은 많다.
자신들은 사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하지만…… 원래 성공하면 사업, 실패하면 사기 아니겠나?
“그러고 보니 에밀리 클로에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그녀는 그래도 이들 중에서는 가장 죄질이 약한 편.
애초에 미수에 그치기도 했고.
영화사와 드라마사에 자신의 이야기를 판권으로 판매했고, 그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해 보석으로 풀려났다.
“가끔 연락하는데, 엄청 잘살고 있어요.”
“뭐하면서요? 설마 또 사기 쳐요?”
“아니요. 린스타그램이랑 톡틱도 운영하고, 투위치에서 개인방송도 하고 있어요. 후원이랑 광고가 쏠쏠하대요. 사기 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잘 번다고. 린스타그램 보니까 얼마 전에는 포르쉐도 뽑았던데요.”
“…….”
이래서 사기를 치더라도 유명해져야 하는 모양이다.
자신의 악명을 이용해서 방송을 하다니.
대체 관종이란 뭘까?
트리시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책이 꾸준히 팔리고 있어요.”
“그건 좋겠네요.”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는 인세를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기 마련이지.
“아, 맞다. 미루한테 한번 방송에 나와 달라고 전해달라던데요.”
“……됐다고 전해주세요.”
도네 들어오는 건 반띵해주나?
나중에 돈 떨어지면 한번 생각해봐야지.
그나저나 이러다가 밍 리우도 50년 후쯤 출소해서 개인방송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빈티 라임 전 총리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할 거라던데.”
“쉽지는 않겠죠.”
사실 밍 리우가 부각돼서 그렇지, 이번 일의 책임자는 빈티 라임 전 총리다.
그가 밍 리우에게 지시해서 1IDB를 만들었고,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아 챙겼으니까.
비록 선거에서 패했지만, 빈티 라임 전 총리는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실제로 1회차 때 1심에서 징역 12년 형을 받았으나…… 결국 최고법원에서 무죄를 받아내며 구속을 면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1IDB 채권의 상환 문제가 남아있다.
“말레이시아 새 정부가 채권자들과 협상에 나서겠다고 하던데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구제금융 해야 할 판이니 좀 깎아달라는 거죠.”
1IDB 채권을 사간 곳은 주로 외국 기관과 연기금.
당연하게도 이들은 국가가 보증한 국영 투자회사의 채권인 만큼 손실이 발생하면 국가가 나서서 물어내야지, 협상은 뭔 놈의 협상이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일이 미국 대선에는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요?”
“글쎄요.”
월레스 선거캠프 역시 재빨리 손절에 나선 만큼, 선거에 끼칠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렇다 해도 악재인 것만은 분명하겠지.
1회차 때는 내 도움 없이도 마크 필립스가 이겼다.
그러니 아마 이번에도 이기겠지만…… 기왕이면 내 덕이라고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아무튼 잘 끝나서 다행이네요.”
“수고했어요.”
우리는 잔을 부딪쳤다.
* * *
투자가 끝났다고 침대에 누워 늘어져 있는 대신, 난 트리시와 함께 운동을 하러 나왔다.
뉴욕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동시에 문화의 중심지.
이 문화에는 운동도 포함된다.
뉴요커들은 요가, 필라테스, 러닝, 헬스 등 다양한 운동을 즐긴다.
길거리에서는 운동복을 입고 요가매트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나라의 비만율이 왜 40퍼센트씩 찍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운동 하는 사람만 열심히 하고, 안 하는 사람은 아예 안 해서 그러나?
오늘 우리가 온 곳은 크로스핏 박스.
마치 창고 같은 공간에는 바벨, 덤벨, 캐틀벨, 철봉 등 다양한 운동기구가 준비되어 있었다.
헬스장과는 달리 머신은 거의 없다.
“사람이 꽤 많네요.”
“요즘 엄청 많이 해요.”
어림잡아 스무 명은 넘어 보인다.
남녀 비율은 반반쯤.
나이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다.
난 트리시를 보았다.
그녀는 머리를 올려서 묶고, 레깅스와 탱크탑을 입었다. 드러난 팔과 어깨를 보니 탄탄하게 근육이 잡혀 있다.
할리우드 여배우 못지않은 멋지고 늘씬한 몸매다.
키가 커서 그런지 비율이 좋기도 하고.
내가 빤히 쳐다보자 트리시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왜 그래요?”
“잘 어울리네요.”
그러자 트리시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아, 뭐예요? 놀리지 마요.”
역시 칭찬에 약하다니까.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남자들이 슬쩍 시선을 보내거나 친한 척 인사를 건넸다.
“크로스핏은 정확히 어떤 운동이에요?”
“여러 운동이 결합된 형태의 운동이에요. 짧은 시간에 강도 높은 운동을 할 수 있는 게 특징이에요. 칼로리 소모도 크고, 재미도 있고.”
대충 들어본 무산소 운동과 유산소 운동이 결합된 기능성 운동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인싸 운동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코치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오늘 코치를 맞은 펌키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이 계시는데 손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난 어쩔 수 없이 손을 들었다.
“자! 오늘 힘내시라고 박수 부탁드립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나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힘이 나기는커녕 벌써부터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다.
트리시는 슬쩍 물었다.
“잘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알다시피 제가 요즘 운동을 좀 해서요.”
“힘들면 언제든 얘기해요.”
“제 걱정은 할 필요 없어요.”
코리 덩컨의 홈짐에서도 살아(?) 돌아온 나다.
크로스핏쯤이야 우습지.
어디 한번 몸 좀 풀어볼까?
1시간 후.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운동이 끝나자, 다 같이 박수를 치고 인사를 하고 마무리했다.
트리시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아! 오랜만에 했더니 상쾌하네요!”
“…….”
“어때요? 해보니 재밌죠?”
“…….”
“운동 더 할래요?”
“…….”
“왜 말이 없어요? 별로예요?”
“…….”
숨이 차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
내 상태를 본 트리시는 손가락으로 몸을 콕콕 찔러보았다.
“무슨 체력이 이래요? 미루는 평소 운동 좀 해야겠어요.”
난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아니요.”
올해 운동은 이걸로 끝내도 될 것 같다.
* * *
며칠 후.
난 뉴욕에 온 방문객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내 앞에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나란히 서있었다.
레온 라클레어, 코리 덩컨, 에덴 크레이그, 벤 브라이언, 그리고 촬영이 일찍 끝난 덕분에 다리안 헤럴슨도 함께 왔다.
“오시느라 고생했어요.”
“비행기 타면 금방인데.”
코리의 전용기를 타고 왔다고 한다.
다리안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새 또 재밌는 일을 벌였던데. 덕분에 할리우드가 시끌시끌해.”
“뭘요. 촬영은 잘 끝났어요?”
“그럼.”
벤자민 디아민디 감독은 아쉽게도 일정이 있어서 같이 못 왔다고 한다.
난 모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레온은 나를 보며 말했다.
“이번에 큰 신세를 졌네. 언제든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불러줘.”
난 슬쩍 말했다.
“사실 저희 어머니가 엄청 팬이에요.”
“오! 그래? 언제 한번 소개해줘.”
어머니 환갑잔치에 초청해도 되려나?
난 머릿속으로 어머니 환갑잔치 초청 명단을 검토해 보았다.
노래는 지유에게 맡기고, 코리 덩컨이 전 직장 동료와 함께 프로레슬링 경기 한번 보여주고, 그다음 다리안 헤럴슨, 레온 라클레어, 벤 브라이언, 에덴 크레이그 등이 축사를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는 회사 근처의 펍으로 이동했다.
오코너펍은 언제나 미어터지는 관계로, 근처의 작은 펍을 통째로 빌려서 파티를 열기로 했다.
이 자리에는 트리시와 칼이 먼저 와있었다.
트리시는 레온과 인사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WST 기자 트리시 오코너예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어려울 것 없죠.”
인사를 나누는 사이, 데이비드가 매기를 데리고 왔다.
할리우드 스타들을 본 매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데이비드와 매기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에덴은 생긋 웃으며 매기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 꼬마 아가씨.”
그러자 매기는 머리만 살짝 숙이더니, 데이비드 뒤로 몸을 숨겼다.트리시가 물었다.
“왜 그래?”
그러자 매기는 그녀에게 귓속말로 뭐라 말했고, 트리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너무 잘생겨서 부끄럽대요.”
그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에덴 크레이그 역시 눈부신 미소를 지었다.
붉은 입술 사이로 새하얀 건치가 드러났다.
난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잘생긴 놈들 다 죽었으면…….
난 조리대 앞에 섰다.
“여기까지 오셨으니, 오늘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다들 돈이 많아서 온갖 비싼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을 대접하려면 웬만한 음식으로는 안 된다. 이전에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걸 대접해 줘야지.
코리는 재료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버팔로윙을 하려고? 헉! 혹시 내가 버팔로윙을 가장 좋아한다는 걸 알고, 나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건가?”
“……아니요.”
뭔 쓸데없는 오해를 하고 앉았어.
“버팔로윙을 좋아하시나 보네요.”
“그럼. 내 소울푸드지. 앉은 자리에서 100개도 먹을 수 있어.”
에덴은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예요. 제가 봤어요.”
덩치를 보면 200개도 가능할 것 같다.
난 그에게 말했다.
“버팔로윙보다 더 맛있는 걸 할 겁니다.”
내 말에 코리는 눈을 크게 떴다.
“응?? 버팔로윙보다 맛있는 게 어디 있어?”
그러자 에덴이 말했다.
“그때 부산 헬스장에서 먹었던 치킨 맛있었잖아요.”
두 사람은 부산 방문 당시 호텔 근처 헬스장에서 실컷 운동한 다음, 거기 회원들과 함께 치킨을 먹었다.
참고로 거기 헬스장과 치킨집은 인터넷에 올라온 인증샷 걸어놓고 장사하는 중이다.
“흠, 거기 맛있는 거 인정. 하지만 버팔로윙을 이길 정도는 아니야.”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직 K-치킨의 진정한 맛을 못 본 모양.
한때 업계 종사자로서 K-치킨의 위상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트리시는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치킨이 쉬운 요리는 아닌데. 잘할 수 있겠어요?”
“그럼요.”
칼이 말했다.
“안 도와줘도 되겠나?”
“네. 편하게 앉아 계세요.”
내 요식업 경력이 몇 년인데.
물론 칼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나름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었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난 조리도구를 잡고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좀 어색했는데, 역시나 막상 시작하니 머리보다 몸이 더 빠르게 움직였다.
한정치킨 우수 가맹점주로서의 솜씨를 보여주마!
잠시 후.
난 완성된 치킨을 사람들 앞에 내놓았다.
가장 먼저 코리가 시식에 나섰다.
“이게 정말로 버팔로윙보다 맛있다고?”
“드셔 보시고 말씀하시죠.”
코리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더니, 품에서 합격 목걸이를 꺼내 건네줄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인정할 수밖에 없군. 이건 버팔로윙 이상이야!”
그러자 사람들은 일제히 먹기 시작했다.
트리시는 깜짝 놀랐다.
“앗! 진짜 맛있네요.”
레온과 다리안 역시 한마디씩 했다.
“이렇게 맛있는 치킨은 처음 먹어보는군.”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칼은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
“크흠! 아주 훌륭하군. 이 정도면 나중에 오코너펍을 물려받아도 되겠어.”
“……네?”
그 가게를 왜 나한테 물려줘?
데이비드는 감탄했다.
“보스에게 이런 솜씨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투자자가 아니라, 요리사를 하셔도 되겠군요.”
“뭐…….”
원래는 이쪽이 본업에 가까웠다.
매기는 입가에 소스를 잔뜩 묻혀가며 먹었다.
“맛있어?”
“네. 너무 맛있어요.”
귀엽다.
새삼 이런 딸을 낳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맛있게 먹는 걸 보니 왠지 뿌듯해진다.
진짜 나중에 은퇴 후에는 다시 치킨집 차려야 하나?
물론 배달은 안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