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Successful Investment Method RAW novel - Chapter 67
67화. 화안그룹 망나니 (2)
순간, 잘못 들었나 했다.
‘이놈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마치 잘못 들은 게 아니라고 말해주기라도 하듯, 한미루는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댔다.
“아! 괜찮습니다. 편하게 대해주시면 저야 좋죠. 저도 이제부터 격식 차리지 않고 편하게 하겠습니다.”
“…….”
이게 뭔 소리야?
말이든 행동이든 편하게 할 수 있는 건 권력자만이 가능한 일이다. 자신이야 상대에 따라 반말을 해도 되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그러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너 지금…….”
어이가 없어서 소리치려는데, 한미루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유재호 회장님께서 계속 저한테 예의를 차리시고 존대를 하셔서 좀 불편했거든요.저보다 한참이나 연배도 높으신 분이 말이죠.”
“…….”
한마디로 나이 많은 유재호 회장도 나한테 말을 놓지 않는데, 넌 뭔데 그러냐는 뜻이다.
한미루는 아예 넥타이를 풀며 다리까지 꼬았다.
“재벌가 사람들은 다들 그러나 했는데 허민웅 씨는 그러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뭐? 씨?”
“예. 말도 놓을 정도로 편한 사이인데 직함으로 부르면 너무 딱딱하잖아요. 그렇다고 형이라고 부르기는 너무 빠른 것 같아서요.”
“…….”
이쯤 되면 기가 막힌다.
‘이거 뭐하는 새끼야?’
재벌은 단지 돈만 많은 게 아니다.
기업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계, 학계, 법조계, 언론 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는 대한민국 10대 재벌이라는 화안그룹 회장의 아들.
나이와 지위가 어떻든 상대는 대부분 그에게 예의를 지켰다. 물론 이제까지 그의 앞에서 건방을 떤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예의 없게 구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평소였다면 말 대신 바로 주먹부터 나갔을 것이다.
문제는 이놈을 소개시켜준 사람이 유재호 회장이라는 것. 소개시켜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주선자를 무시하는 행위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아예 대놓고 건방지게 나오니 오히려 손을 대기가 힘들었다.
허민웅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으며 말했다.
“무슨 일로 왔는지나 말해봐.”
지 주제도 파악 못 하는 놈과 길게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용건만 듣고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상대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허민웅 씨를 살려드리려고 왔습니다.”
“……뭐?”
* * *
난 눈앞의 남자를 보았다.
나이는 31세. 아직 결혼은 안 했다.
키는 약 180센티로 몸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다. 대학은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있는 명문대인 듀크대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바로 화안그룹 허성훈 회장의 둘째 아들 허민웅이다.
영어도 잘하고 외국물을 먹은 만큼, 주로 해외사업 쪽을 담당했다. 현재는 화안에너지 해외투자팀장으로 일하는 중이다.
토머스 모터스와의 협력 역시 그가 맡아서 진행했다.
그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1회차 때였다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사람이다. 살면서 재벌가 후계자를 직접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별 긴장감은 없었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기 때문일까?
하기야 유재호 회장도 만났는데, 화안그룹 회장 아들이 뭐라고 긴장을 하겠는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음에도 내가 태연하게 가만히 있자, 허민웅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나를 살려주기 위해 왔다고?”
“예.”
“내가 지금 죽을 상황에 처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럼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던 허민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술병이 늘어서있는 바로 향했다.그러고는 맥캘란 위스키를 잔에 따라 벌컥벌컥 마셨다.
저 술 한 병이 웬만한 직장인 월급이다.
“나도 예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쪽은 무례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표정과 말투를 보니 끓어오르는 화를 꾹 참고 있는 듯했다.
하기야 화안그룹 회장 아들이 어디서 이런 대접을 받아봤겠는가? 나니까 이런 대접 해주는 거다.
유재호 회장 소개로 온 게 아니었다면 진작 쫓겨났겠지.
기왕 이렇게 컨셉을 잡은 김에 이대로 쭉 가기로 했다.
“저도 한 잔 주시죠.”
“니가 마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술값도 못하는 사람이라면 유재호 회장님께서 소개를 안 시켜주지 않았을까요?”
잠시 내 얼굴을 쳐다보던 그는 온더락 잔에 위스키를 반쯤 따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딱히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비싼 술 마실 기회를 사양할 생각은 없다.
난 천천히 위스키를 마셨다.
“모레 토머스 모터스에서 퓨어셀 데이 행사가 열립니다. 수소인프라 업무협약은 행사 전에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발표가 나가고 나면 토머스 주가는 물론이고,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 주가도 크게 오르겠네요.”
“다 아는 얘기는 그만하지?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바로 하고 나가줬으면 하는데.”
난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일이 잘 풀릴 경우를 생각해보죠. 수소인프라 투자가 잘돼 성과가 나올 것 같으면 어차피 화안솔루션이 가져갈 겁니다.”
화안솔루션 허민홍은 부사장은 허성훈 회장의 장남이다.
“형이 가져간다고? 어떻게?”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을 합병하면 되겠죠.”
허민웅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누구 마음대로?”
“경영진과 주주의 마음이죠. 그룹에서 합병을 추진한다고 하면 막으실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실제로 이 합병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로 합병이 진행됐지만 결국 화안에너지는 화안솔루션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그가 많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한들, 대주주는 어차피 그룹 지주사인 화안이다.
그리고…….
“화안에너지가 그룹의 지원 없이 혼자 사업을 진행할 만한 자본과 능력이 되나요?수소인프라 구축에는 그룹사 차원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겁니다. 열심히 인프라를 깔아도 수익을 내기까지는 3년은 걸릴 텐데, 결국 사업이 정상적으로 진행되려면 위에 손을 벌려야 하지 않나요?”
허민웅은 불쾌하다는 듯 말했다.
“남의 집안일에 신경 끄지 그래?”
이 정도는 그도 당연히 알고 있을 테고 나름 대책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물론 대책을 세워봐야 방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의 말대로 내가 남의 집안일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다.
“그러죠.”
난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잠시 후 허민웅이 슬쩍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라니요?”
“뻔히 아는 얘길 해서 남의 심기를 건드렸으면 대책이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난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본인 집안일은 본인이 생각해야지, 왜 남한테 묻나요?”
“……뭐?”
이젠 화도 안 난다는 표정이다.
난 혹시 그가 고민할까봐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할 필요조차 없어요.”
“어째서?”
“왜냐하면 이번 사업은 망하고 허민웅 씨는 그룹에서 쫓겨날 테니까요.”
“…….”
잠시 침묵이 흘렀다.
허민웅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헛소리 그만하고 꺼지지?”
“헛소리 아닌데. 수소인프라 협력 사업은 쫄딱 망할 테고, 허민웅 씨는 그 책임을 져야 할걸요.”
“이유는?”
“사기니까.”
“뭐가?”
“토머스 모터스가.”
“……너 말이 점점 짧아진다.”
“길게 할까요?”
그게 중요한 건 아닌지, 그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토머스 모터스의 뭐가 사기라는 건데?”
“전부요.”
허민웅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하하!”
“왜 웃어요?”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난 똑같이 웃었다.
“하하!”
“넌 왜 웃어?”
“제가 처음 DA증권에서 프리머스 펀드 부실을 지적했을 때도 똑같은 얘기를 들었거든요.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됐나요?”
“…….”
두말할 것도 없다.
내 지적은 사실이었고 양정욱 전무는 목이 날아갔으니까.
이번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비드의 리포트로 인해 토머스 모터스가 사기로 밝혀진 뒤 주가 80퍼센트가 날아갔다. 400억 달러였던 시총은 80억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화안에너지와 화안솔루션 모두 워낙 쌀 때 샀던 만큼 투자금 대비 마이너스가 나지는 않았지만, 장부상의 수익은 대부분 사라졌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화안그룹의 에너지 로드맵이 완전히 망가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전부 허민웅이 뒤집어썼다.
그는 책임을 지고 화안에너지 팀장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로는 그룹 내에서 거의 힘을 쓰지 못했고, 형이 그룹을 집어삼키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허민웅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자신이 진행하는 사업이 사기라는 말을 들었으니 기분이 좋을 리 없겠지.
“지금 한 말에 책임질 수 있어?”
“제가 책임진다고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차피 판단은 본인이 해야 할 텐데.”
그는 술잔을 깨트릴 듯 움켜쥐며 말했다.
“제대로 설명해봐.”
“먼저 수소 생산 계획부터 살펴보죠. 토머스는 태양광을 활용해 연 3천 톤의 수소를 생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비를 기존의 3분의 1 이하로 낮췄다고 했는데, 대체 그 기술이 뭔가요? 다른 업체들은 전부 바보라서 토머스의 세 배 가격에 수소를 생산하고 있나 보죠? 화안에너지에서 본사에 태양광 패널을 잔뜩 깔아준 걸로 알고 있는데, 그래서 지금 수소를 생산하고 있기는 합니까?”
“생산이 계획보다 늦어지는 건 흔히 있는 일이지. 그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그럼 이번에는 수소차에 대해 얘기해보죠. 토머스를 티슬라와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티슬라는 적어도 스타트업 시절부터 꾸준히 차를 내놓았습니다. 티슬라가 향후 흑자를 낼지 못 낼지 의견은 엇갈리지만, 전기차와 자율주행 시장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토머스는 어떻나요? 토머스가 이제까지 차를 한 대라도 만들었습니까? 양산이야 둘째 치고, 토머스에서 만든 수소트럭을 타본 적이 있긴 합니까?”
“…….”
허민웅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당연히 없을 테니까.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작년에 T1 FCV를 공개했잖아.”
“아! 그 시제품이요?”
“이미 시험주행을 끝마쳤고, 내년 하반기에는 정식 출시할 예정이야.”
“주행을 했다구요? 누가 그래요?”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얼굴을 찌푸렸다.
“도로에서 시험주행 했잖아. 못 봤어?”
난 노트북으로 영상을 틀어 보였다.
“설마 이 영상이요?”
허민웅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이거 언덕에서 굴린 거예요.”
“……뭐?”
“생각해보세요. 브레드 버튼 CEO는 트럭이 움직인다고만 했지, 주행한다는 말은 안 했잖아요.”
허민웅은 언성을 높였다.
“지금 나랑 장난해?”
“역시 농담처럼 들리죠?”
놀랍게도 나중에 들통 나자 실제로 이렇게 변명했다. 나도 처음에 듣고 말장난하는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