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8
외전 (完)
힘겹게 눈을 떴다. 차가운 무언가가 이마에서 느껴졌다. 샤엘이 올려 둔 것처럼 보이는 수건이었다.
‘기절했던 건가?’
내 몸마저도 제대로 살피지 못해 가족 앞에서 쓰러지는 꼴이라니.
샤엘과 루엘에게는 미안한 짓을 했다.
특히 아직 어린 나이인 루엘에게는 큰 충격이 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식겁하며 어서 몸을 일으켰다. 작은 무언가가 품에서 느껴진 것은 그때였다.
“루엘?”
루엘이 내 품에 안겨 잠을 자고 있었다. 그러니 안심이 되어야 할 텐데,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잠을 잘 때면 항상 미소만을 짓던 루엘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으니까.
그만큼 내가 기절한 것에 충격이 컸다는 뜻이었다.
‘일단 일어나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또다시 느껴지는 무언가에 고개를 다시금 내렸다.
자고 있는 루엘의 손에서는 따뜻한 마력이 나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기절하기 직전에 치유 마법을 성공했다고 말하는 걸 들었지.’
루엘은 나를 위해 간신히 성공했던 치유 마법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던 것이었다.
내 딸이지만, 너무 착했다.
“흐윽, 아빠아⋯⋯. 죽지 마세요⋯⋯.”
귀여운 잠꼬대는 덤이었다. 마법을 쓰며 자고 있으니 제정신이 아니어서 나오는 잠꼬대였다.
루엘을 몇 번이고 쓰다듬으며 루엘의 마력을 잠재워 주었다.
더 루엘의 곁에 있고 싶지만⋯⋯ 이제는 샤엘을 확인해 볼 차례였다. 루엘에게 이불을 덮어 준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엘은 어디에 있지?’
그저 과로에 정신을 잃었을 뿐이지만, 샤엘이라면 분명 루엘처럼 적지 않은 걱정을 했을 거다.
어쩌면 괜히 크게 걱정하며 온갖 약재들을 사러 갔을 수도 있고.
‘그러니 빨리 찾아야 하는데.’
나와 샤엘의 침실에는 없었고, 루엘의 침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정원에도, 식당에도 샤엘은 보이지 않았다.
“집무실에 계실 거예요!”
간신히 샤엘의 행방을 알고 있던 하녀 한 명 덕택에 샤엘을 찾아낼 수 있었다.
‘왜 집무실에 갔지?’
혹시 앞으로는 일하지 못 하도록 서류를 불사른 것은 아닐까.
샤엘이라면 그랬을 수도 있다. 나는 서둘러 집무실에 가 문을 열었다.
끼이이익.
하녀의 말대로 샤엘은 집무실에 있었다. 그녀는 책상에 앉아 턱을 괸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다행히 위험한 마법 같은 게 사용된 흔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여기서 대체 뭘⋯⋯.”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는 서류 뭉치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해야만 했던 일거리들.
많은 양의 그것들이 완벽하게 처리된 상태로 샤엘의 앞에 놓여 있었다.
샤엘이 나를 대신하여 일을 해 준 것이었다.
서류를 펼쳐 보았다. 감탄이 나왔다. 샤엘의 솜씨는 의외로 좋았으니까.
중요한 정보들이 담긴 것들이라서 다른 이에게 떠넘기지도 못 하던 것들이었으나, 샤엘이라면 신뢰할 수도 있기도 했고.
여하튼, 나 때문에 샤엘이 온갖 고생을 해 주었다.
“으음⋯⋯.”
샤엘이 작은 잠꼬대를 슬며시 흘렸다. 내가 다가가기도 전에, 샤엘의 눈이 휙 뜨였다.
“괜찮으십니까?”
“그게, 누가 할 소리인데요.”
왜인지 모르게, 샤엘을 처음 보았을 때의 분위기가 떠올랐다. 살벌한 악녀의 분위기가.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 분위기가 화기롭게 느껴졌다.
바보 같은 웃음을 실실 내보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침묵을 유지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아니, 밑에 있는 쓰레기들은 뭡니까.”
“운동 좀 그만하라고, 제가 직접 먹었죠.”
근육에 좋다는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는 약재들. 내가 줄곧 꺼내먹던 그것들이 깡통이 된 채로 바닥을 거닐고 있었다.
⋯내 단백질이 사라졌다.
* * *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루엘의 키는 쑥쑥 커졌고, 루엘의 마법 실력 역시 어마어마한 발전을 보였다.
다섯 살때부터 치유 마법을 사용하던 루엘. 몇 년이 지난 시점에 이르러서 루엘은 웬만한 마법을 모조리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 루엘은 혼자 성국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빠랑 엄마가 걱정하겠지만⋯⋯!’
그리고 벌써부터 귀여운 동생들이 보고 싶지만.
아주 잠깐이면 된다. 어차피 루엘은 안전했다. 보호용 액세서리들을 챙겨왔고, 애초에 루엘의 마법 실력은 훌륭했으니까.
그런 루엘의 목표는 엄마가 성국에 붙였다던 메모지였다.
거대한 나무의 꼭대기에 붙였다고 했으니,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조차도 소원이 적힌 메모지는 안전할 터였다.
마침 엄마와 아빠가 다녀왔을 나무가 보였다. 확실히 거대한 나무였다.
그러니 꼭대기에는 메모지가 없을 거다. 마법을 쓰지 않고서야 닿는 것이 불가능한 높이였으니까.
‘엄마랑 아빠가 붙인 것들을 제외하고는.’
루엘의 얼굴에 잔뜩 기대감이 실린 미소가 피어올랐다. 루엘의 손에는 마법을 위한 스크롤들이 놓여 있었다.
쫘아악.
루엘이 재빠르게 나무로 시선을 올렸다. 스크롤을 통해 엄청나게 좋아진 시력이 꼭대기에 있는 메모지들을 찾아냈고, 또 다른 스크롤을 찢어 이를 끌어왔다.
마침내 루엘의 손에 쥐어진 것은 네 장의 메모지.
아빠와 엄마가 소원을 적었다던 메모지였다. 뭔가 한 장을 더 찾게 되긴 했지만, 그닥 신경 쓰지는 않았다.
루엘은 곧장 메모지를 펼쳤다. 우선, 함께 행복한 가족을 꾸릴 수 있게 해 달라는 소원이 아빠의 필체로 적혀 있었고.
그다음은 엄마의 필체로 비슷한 내용의 소원이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엄마가 그렇게나 숨기고 숨기던 소원이 드러날 차례였다. 루엘은 또 다른 메모지를 빠르게 펼쳤다.
ㅡ에란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엄마의 수줍은 마음이 드러나는 소원이었다. 필체를 보아도, 끝부분에서는 글씨를 서둘러 썼다는 것이 티가 났으니까.
물론, 루엘은 조금 아쉬웠다. 엄마의 훨씬 부끄러운 비밀을 알고 싶었는데.
루엘은 쩝 입을 삐죽이며 세 장의 메모지를 도로 나무의 꼭대기에 붙였다.
이제 자신의 것을 꼭대기에 붙일 차례였다. 루엘은 소중한 소원을 담아 엄마와 아빠가 적은 메모지 옆에 붙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전에, 아직 펼쳐보지 못 한 메모지가 한 장 있었다.
“이건?”
이미 엄마랑 아빠가 적었다던 메모지는 모두 펼쳐 보았다. 이 메모지는 다른 사람의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펼쳐 보지 않고 제자리에 두는 것이 맞겠지만, 루엘은 왜인지 모르게 메모지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잇, 모르겠다!”
루엘이 메모지를 과감하게 펼쳤다.
보이는 것은 글씨가 아니었다. 메모지 안에는 넓적한 종이가 여러 장 있었다.
글씨가 가득 차 있다. 메모지 안에 이런 게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축소 마법을 사용한 것이 분명했다. 동시에, 루엘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 글씨체?”
아무리 보아도 종이에 적혀 있는 글씨는 자신의 것이었다.
다만, 의문이 들었다. 루엘은 이런 종이 따위를 적은 기억이 없었으니까.
루엘은 쏟아지는 흥미를 느끼며 어서 종이를 읽어 내려갔다.
우선 적혀 있는 것은 레시피.
디저트를 만들기 위한 레시피들이었다.
아빠가 해 주던 것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디저트들의 레시피였다.
그다음은 어떠한 책에 대한 설명이었다.
존재의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누군가에게 전해 줘야만 할 책에 대한 설명.
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누군가의 필체를 유심히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은 황금빛을 띠는 진주에 대한 내용이었다.
시간과 관련되어 있는 무척 신비로운 능력을 지녔다는 진주.
딱 하나뿐이라는 그 진주의 위치와 ‘성력이 강하게 깃들어 있던 팔찌’를 으깬다면 진주를 또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루엘은 머릿속에 그 내용을 새기겠다는 듯이 종이를 읽었다.
이윽고 루엘의 눈동자에 빛이 서렸다.
아무래도, 아빠와 엄마의 풋풋한 사랑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루엘이 뒤돌아섰다. 나무의 꼭대기에 메모지를 붙이려고 온 것이었으나, 그 일은 미래로 미뤄두어도 될 듯했다.
아니, 어쩌면 과거로 미룬다는 표현이 옳을 터였다.
* * *
비스듬히 고개를 기울인 채로 샤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햇빛. 너른 챙이 샤엘을 위해 그늘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샤엘은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더 편히 잘 수 있도록 껴안아 그늘을 만들어 준 뒤에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루엘은?’
나는 매번 루엘을 무의식적으로 확인하고는 했다. 몇 주일 전에 갑작스럽게 사라졌던 루엘.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와 주었지만, 솔직히 말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루엘에게 잔소리가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루엘은 모험심이 풍부한 아이였으니까.
얼마 전에는 어떻게 안 건지 혹시 몰라 보관해 두었던 ‘부서진 성력의 팔찌’의 파편을 내게 요구하기도 했고, 내가 일할 때마다 호시탐탐 내 글씨를 살피기도 했다.
‘아마 루엘보다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없겠지.’
언제 홀로 저택을 아무 호위 없이 나서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하여 나와 샤엘은 매순간 루엘에게 그 누구도 루엘을 해치지 못할 보호 마법진들을 걸어 주었고, 그것은 제스펜 공작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설령 제국의 기사단장이 오더라도 루엘을 해칠 수는 없을 터다. 루엘 본인마저도 뛰어난 마법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니까.
갑자기 생각난 김에 추가하자면, 루엘은 뛰어난 디저트 솜씨도 지니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의문이긴 하지.’
내가 루엘에게 디저트를 가르쳐 주기는 했다. 한데 나는 루엘에게 디저트의 제대로 된 비법을 전수해 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 주 전부터 루엘의 디저트는 내 것과 비슷해졌고, 심지어는 내가 한 것 이상으로 좋은 맛을 내기 시작했다.
재능의 차이인가?
어쨌든. 일단 루엘은 지금 내 시야 안에 들어와 있었으니 상관없었다.
“여기 푹신해!”
우뚝하게 서 있던 루엘이 들판을 밟았고, 오도카니 앉아 있던 두 아이들이 루엘을 아장아장 뒤따랐다.
푸른색의 머리카락과 하늘색의 눈동자를 지닌 여자아이와, 그게 반대로 뒤바뀌어 있는 남자아이.
나와 샤엘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존재들이었다. 샤엘이 엄청난 고통을 겪은 뒤에야 나오게 된 소중한 보물들.
하여간, 이렇게 귀여운 동생들을 두고 나 몰래 가출을 했었다니. 루엘이 괘씸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리 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아이들이 향한 곳은 내 품이었다.
짐짓 시큰둥한 미소를 자아냈다. 기껏 샤엘을 위해 가려 주었던 햇볕이 더 강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빠아!”
루엘의 천진난만한 목소리에 고개를 내렸다. 샤엘과 다른 아이들은 잠을 자고 있었고, 루엘은 내게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는, 엄마랑 처음부터 사이가 좋았어요?”
“당연하지. 이래 봬도 처음부터 결혼을 약속한 사이인데.”
사실 엄청나게 안 좋았지만⋯⋯.
그 사실을 루엘에게 말할 수는 없다. 루엘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그렇구나⋯!”
왜인지 모르게 키득거리는 루엘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지만, 온 가족을 끌어안는 것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어느덧 하얀 구름이 햇볕을 가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루엘의 눈이 감겼고, 나는 온 가족을 차례차례 쓰다듬기 시작했다.
이러고 나면 오히려 내 기분이 차분해진다. 누군가가 내 손길에 미소를 띤다면 나 역시도 그 미소에 전염되기도 한다.
“제가 애도 아니고 왜 자꾸 머리를⋯⋯.”
어느샌가 일어난 샤엘이 툴툴대며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나는 괜찮았다. 말과는 달리 샤엘은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으니까.
샤엘은 그저 내게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휙휙 손을 뻗을 뿐이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머리에서 느껴졌다.
누가 먼저 쓰다듬는 것을 포기해 버릴지, 그런 내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부드러운 손길을 계속했다.
샤엘이 활력을 띠며 나를 부드럽게 노려보았고, 나는 찬찬히 웃으며 샤엘을 내려다 보았다.
샤엘은 경쟁심이 강했다. 샤엘의 손은 내 머리에서 떨어지지를 않았고, 급기야 해가 저물어 달이 떠오를 판국이었다.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며 졸고, 그러다가도 별 이상한 내기에서 지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휘저으며 잠에서 깨어나고.
웃긴 그 행동들을 비금비금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서로 고개를 떨구었다.
소통도 없이 내건 내기의 승자는 없었다. 나와 샤엘은 유치한 그 내기에서 비긴 셈이었다. 따라서 내기에는 패자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말 없는 미소를 보상으로 거머쥐며 행복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다. 꿈에서는 훗날의 일상을 보았다.
행복에 흠뻑 젖게 되는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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